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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명에 대한 욥의 탄식 (욥3:1-26)

본문

욥은 자신의 재산과 자녀를 잃고 자신의 신신마저 심한 악창으로 누더기처럼 되 어버린 절박한 상황에서도 심지어 아내의 악한 충고에도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신 앙을 저버리지 않았었다(1-2장). 하지만 절친한 친구들의 방문을 받고 지금까지 억 누르고 있던 그의 감정이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욥은 지금까지의 침묵을 깨뜨리고 자신이 아예 출생치 않았으면(1-10절), 태에서 죽어 나왔으면(11-19절), 지금이라 도 죽었으면(20-26절)이라는 점층되는 탄식의 목소리를 발하게 된다. 한편 우리는 욥이 이처럼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가운데서도 결코 하나님을 대항해서 저 주하거나 불평치 않은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녕 참앙인은 아무리 고통스런 현실을 만났을지라도 감정적으로 자신을 제어하며,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그릇되 지 않도록 힘쓰고 애써야 한다.
'본론'
1. 인간은 고통으로 탄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자신이 지금껏 쌓아놓았딘 재산이 일순간에 날아가버리고, 또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 딸이 몰사하고 심지어 그의 육체가 누더기처럼 되어버린 처참한 상황 중에 서도 결코 하나님을 향해 불평의 말을 일체 하지 않았던 욥이었지만 그 고통의 깊 이가 극에 달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욥은 그 오랜 침묵의 순간을 깨고 부러턴 입술을 벌려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또 저주하기 시작했다. 실 로 아무리 경건하고 순긴한 신앙 언격을 가졌던 욥이었지만 그에게도 인간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깃이다. 진정 인간은 그가 아무리 훌륭한 면모를 갖 고 존경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육신을 가진 나약한 존재요, 날마다 깨어 지고 쓰러질 수에 없는 질그릇 같은 수밖없는 질그릇일 뿐이다(고후4:7).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알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겸손해질 수 있고, 그분의 도움 을 진정으로 간구할 수 있다.
2. 인간의 출생과 죽음은 오직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욥이 심한 고통 아래서 신음하며 울부짖은 내용은 바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 주하는 것이었다. 욥은 가정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만약 자기의 출생일이 죽음의 그림자가 덮인 절망의 날이었으면 차라리 좋았겠다고 탄식한 것이다. 그만큼 욥에게는 현재 자신이 당하고 있는 아픔이 힘겼고 심히 고퉁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욥의 부르짖음은 감래하기 힘든 고난 속에서 더 이상 몸 둘 곳 없이 고 통받는 영혼의 탄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욥이 기억했어야 할 사실은 비록 고통스런 삥일지라도 이 땅에 자신을 출생케 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인생의 출생의 순간을 영원 전부터 계획하셨듯 그 인생의 죽음의 날을 영원 전부터 이미 작정해 두시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실로 인 생의 출생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나 인간의 계획과는 무관하다. 오직 생명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만이 그 일의 결정권자가 되실 뿐이다.
3. 인간의 죽음은 단지 실패나 절망일 수만은 없다.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장수, 곧 오랜 삶은 좋은 것이요, 짧은 삶. 곧 일찍 죽음은 나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죽음을 소망한 것은 어떻 게 보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이 죽음보다 훨씬 절망스런 것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어쨌든 욥은 죽음을 고통스런 현실의 대안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죽음을 그띵게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결코 저주스러운 것이나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곧 탄식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생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천국으로 나아가는 복된 일이기 때문이다 (고후 5:1-10). 더욱이 여호와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실(시127:2)뿐 아 니라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이다(시 116:15).
'결론' 인간은 연약한지라, 고난을 피해 가려는 마음이 다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스스로 신앙의 박약아가 되겠 다는 말과 같습니다. 신앙은 점차로 성숙되어야 합니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단계에 서 걸음마 단계로, 그리고 걸음마 단계에서 뜀박질 하는 단계로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뜀박질 하는 단계에서 꽃을 피고 열매맺는 증인의 단계로 반드시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질 때에 모든 고난과 고통이 놀라운 다가오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고난 속에 소망을, 믿음을 연단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성도를 홀로 그 꼴짜기에 밀어 넣지 않습니다. 함께 하십니다. (시23: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과정에서 다가오는 크고 작은 고난을 볼때, '아하,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사, 영육 간에 더욱 귀한 축복의 자리로 인도하시나 보다!'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난의 과정을 통과합시다. 그리할 때, 원망의 입은 찬송의 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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