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싸움터에서 (욥1:8-12)
본문
지난번 연합남전도회 헌신예배 때 두가지 기억:
(1)"뻥-충구야"
(2)남전도회 임원님들 특송.찬송가에 있는 노래입니까 이층에 있었더래서 못봤는데 지휘까지 했다고-노규리집사님 대단한 실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받은 분들 있단다/비슷하게 노래만 되면 은혜받는 은혜파들. 각 파트별로 따로 듣기도,둘씩 듀엣을 만들어보기도,악기와 어울려 보기도,호흡을 맞춰보기도,한데 모두 어울려 들어보기도,세기,여리기,박자와 표정,지휘 동작 등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그 모두가 맘에 들때 감동을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그러면 정작 그 찬양을 직접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감상하실까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시다. 하나님은 노래 소리가 어떠한가,그 부르는 표정이 어떠한가-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는 볼 수 없는 그 마음 중심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다. 거기에다 그 찬양대의 노래를 들어줌으로써 그 찬양에 동참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믿음과 정성도 동시에 보신다.꾸벅 꾸벅 졸거나,속으로 딴생각하거나,찬양대원 흉보고 있거나 하지 말아야 된다.하나님은 노래를 부름으로 찬양하는 찬양대원과,그 자리서 들어줌으로써 찬양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동시에 감상하신다. 송영시간에 기도하지 말아라.잘들음으로써 그 송영에 참여해라. 그러나 하나님의 찬양감상은 절대로 지금 여기서의 그것만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노랠 부르는 자와 들음으로 찬양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또한 동시에 보신다. 하나님은 찬양 소리만 감상하시는 법이 없다.그 노랠 부르는 사람 자체를 동시에 감상하신다. 지금 여기와,그 때 거기를 동시에 보신다. 예배도 마찬가지.지금 여기서의 예배와 그 예배자가 그 때 거기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동시에 심사하신다. 절대로 그 둘을 따로 따로 받으시는 적이 없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피의 제사" 보다는 가인의 삶 자체 문제임을 암시 그래서 오늘 저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 열납되느냐 안되느냐를 실제적으로 결정하는 우리 삶의 그 자리로 눈을 돌려보려는 것이다. 욥기서를 읽으면서 잘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욥의 친구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다. 그들의 말을 읽어보라.구구절절이 얼마나 바르고 좋은 말씀들인가-
그런데 왜 하나님은 "무지하여 이치를 어둡게 하는자가 누구냐","너희가 나를 가르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처럼 정당치 못하도다","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너희 그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그들의 말 자체는 흠 잡을 것이 없다. 그러면 무엇이 틀렸단 말인가 무엇때문에 그들은 어리석다고 정죄 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저들이 욥의 고난에 접근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계속 그 고난의 원인이 무었인가에 관심을 두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아니겠느냐하나님은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니냐고난이 홀연히 네게 덮친것을 보니 네가 은밀한 중에 고아를 학대,과부를 엎신여기며 범죄하였음이 분명하지 않느냐" 그것이 저들의 우매하고 어리석은 죄였다.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한 접근이 잘못되있었다.사실 욥기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고난 자체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러한 고난에 인간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고난의 원인이 아니라,고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문제이다. "부부 싸움 합니까" 전에는 가끔 들었다.요즘은 잘 못든는다.아마 잘싸우게 보이나 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어리석은 접근이라 한다.바른 질문이 될려면-"부부싸움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이다. 사실 우리가 문제라고 불평하는 많은 것들은 실상은 문제가 아니다.진짜 문제는 그런 것들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 욥이 당한 그 엄청난 고난은 다만 싸움터에 불과 했다. 그 싸움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었다. 어느날 하나님 앞에 천사들이 집합해 섰다.거기에 사탄도 끼여 들었다.아마 업무 보고회와 하나님의 지시를 전달 받는 회의 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싸움을 거신다."내 종 욥은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나를 경외한다" 사탄이 반격한다. "아닙니다.그의 사랑은 가짜이다.욥의 순종은 거짓이다-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럴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그 까닭이란 하나님이 그에게 재물을 주고,건강을 주고,자식을 주고,명예를 주고 그것들을 울타리로 두루고 보호해 주시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래주지 않으면 욥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이 싸움은 참 종교와 거짓종교와의 싸움이다.참종교는 아무 까닭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종교,거짓종교는 무슨 까닭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종교이다. 욥의 그 엄청난 고난은 그것을 가리는 싸움이다.욥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고난이 왔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욥의 종교가 까닭 있는 종교인가,까닭 없는 종교인가 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중대한 문제를 가리는 싸움이다.하나님도 자신이 있었다.그러나 사탄도 자신만만 하였다.이제 그 승패는 인간 욥에게 달려 있게 된다. 여러분,지금 여러분이 바로 그런 싸움터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싸워야 하는 싸움이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인지 아십니까 그 하나님의 싸움의 승패가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렸다는 것도 아십니까 인천의 어떤 부자 아버지의 후회:자녀들이 뻔질나게 아버지 집에 드나들며 인사하고 잘 섬겼다. 재산을 자식들에게 미리 나눠주지 마십시요-무시했다가,발길 끊어진 자식들. 아버지가 진 싸움. 까닭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종교를 다른 말로하면 "현세주의적 종교"라 한다.기독교는 현세를 무시하지 않는다.그러나 그 현세를 극복한다.새로운 눈으로,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현세주의적 종교는 현세를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현세의 그 여러가지 복들 때문에 신앙을 갖고,하나님을 찾는다. 사탄은 지금 욥의 종교를 "현세주의적 종교"로 만들고 싶어한다.이런 현세주의적 종교는 사탄 종교의 한 자식이다. 따라서 현세주의적 종교는 기독교의 원수이다. 욥은 지금 그 두종교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한쪽에 자기 손을 들어야 하는 처지에 처한 것이다.욥의 친구들은 어리석게도 그 싸움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욥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지하다고 정죄된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가나안 이방종교와의 싸움도 바로 그런 싸움이다.이스라엘의 종교는 현세의 그런 까닭들이 없이도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종교이다.그러나 가나안의 종교는 현세의 그런 까닭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신을 찾고 섬기는 종교다.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의 신이다. 그 싸움을 지금 우리 한국으로 옮겨 본다면 그것은 기독교와 무교와의 싸움이다.기독교는 아무 까닭 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한국민족을 수천년간 지배해온 전통 민간 신앙인 무교는 철저히 현세주의적 종교이다. 현세의 재물,건강,자식,무사,평안 때문에 신을 찾고,신에게 제사하고,신을 즐겁게 해주는 종교이다. 무교는 한국 종교의 주인노릇하는 신앙이다.원래 인도의 종교인 불교는 철저히 내세적이다.현세의 모든 것을 그저 하나라도 더 얻를려는 것이 아니라 "불을 훅 불어 끄듯 부인해버리는"것을 최고의 도로 생각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우상조차 만드는 것을 금지한다.눈에 보이는 것을 아예 허상일 뿐이라고 제쳐놓는다.그러나 이런 불교도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한국 무교에 굴복하고 만다.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한국불교는 철저히 현세주의적이고 그 우상들도 웅장하고 수도 없는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한국 무교는 불교를 한방에 넉아웃 시키고 자기 종으로 삼아버렸다. 이렇게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우리 민족은 무교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아예 민족성이 현세주의적이 되어버렸다.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다른 민족들보다 아주 짧고 내세에 대해서는 거의 감도 못잡을 정도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을 내세로 아주 떠나 보내지 못한다.위패로 만들어 놓고 눈으로 그것을 보아야 속이 풀린다.그래서 제사도 지내는 것이다.그 혼들이 이승에 아직 떠돌아다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죽은 영혼 까지도 내세처리를 못하고 현세에서 처릴 해야만 하는 딱한 몸부림이다.신도 현세의 복락을 제공해주고 지켜주어야 신이다.그리고 복도 현세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주머니에 무게를 느낄 수 있어야 복이다. 행여 앞에 딸랑 딸랑 나가는 향도가의 가사 대부분도 현세에서 못다 누리고 가는 재물,처자식,집에 대한 집요한 미련을 담고 있다.극락에 가서도 그 최고의 상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의 체질이 현세적이다. 이런 한국의 무교가 100여년전에 기독교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치열한 싸움이 낫죠. 이 둘의 싸움에서 누가 유리했겠습니까 홈그라운드의 잇점이란말 아시죠 한국무교가 역시 기독교를 강타했습니다. 기독교가 어떤 모양이 되었는지 불신자들도 다 압니다 사탄의 종교를 "까닭" 종교라 한다면 기독교는 "찌라도 종교"이다. 풀무불 속으로 내던져지는 다니엘의 세친구의 고백, 하박국 선지자의 마지막 노래,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라. 골고다 언덕에 들려졌던 십자가는 하나님의 종교와 사탄의 이 종교가 맞부딪친 가장 치열한 싸움터였다.하나님의 자랑:네가 내 아들을 보았느냐 그는 아무 까닭 없어도 나를 순전히 사랑하고 죄와 손잡지 않는다. 사탄의 도전:까닭 없이 섬기겠습니까 아마 제자들을 빼앗으면 저도 포기할 것입니다. 아마 친구들이 조롱하고,채칙으로 위협하면 포기할 것입니다. 아 마 십자가 앞에선 포기 할 것입니다.아마 십자가 위에선 하나님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당신이 아무 손도 써주지 않으면 아마 몇시간 안되서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렸습니까 아버지여 내게서 이 잔을 옮기지 않으실 찌라도 순종하겠나이다.아버지여 모두가,제자들까지도 나를 버리고 도망할 찌라도 저는 당신께 순종하겠습니다.아버지여 모든 명예를 잃을찌라도,부귀영화를 포기할 찌라도,살과 뼈를 찢을 찌라도,물과 피를 다 흘려낼 찌라도 당신께 순종하겠나이다. 사탄이 졌습니다.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거기에서 아들의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가 재물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습니까 십자가가 건강한 육체를 얻기 위한 싸움이었습니까 십자가가 한자리 더 승진하기 위한 싸움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 놓고 사탄과 싸우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거기가 하나님의 싸움터 입니다.사탄이 끼지 못할 자리는 없습니다.하늘의 회의에도 끼어들었던 원수는 오늘 여러분의 가장 은밀한 곳,가장 아픈 곳에서 여러분을 시험할 것입니다."네가 아무 까닭 없이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겟느냐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 하십시요.환난을 당하지 않기 위해 기도 하십시요.그러나 그렇게 아니해주실 찌라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지금 고백하십시요.그리아니하실 찌라도 죄와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여기서 다짐하십시요. 바로 거기가 지금 하나님이 사탄과 싸우고 있는 싸움터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승리한자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이제 하나님께 입술로 찬양을 드리기 전에 먼저 기도로 우리 찬양의 문을 엽시다.
1.주님 지금까지 분주 한 삶 속에서 순간 순간,하나님의 싸움터에서 하나님께 승리의영광을 돌리지 못한부끄러움을 용서하십시요.
2.주님 이제부터는 내 삶의 조건과 상황이 어떨찌라도 주님께 순종과 사랑을 바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1)"뻥-충구야"
(2)남전도회 임원님들 특송.찬송가에 있는 노래입니까 이층에 있었더래서 못봤는데 지휘까지 했다고-노규리집사님 대단한 실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받은 분들 있단다/비슷하게 노래만 되면 은혜받는 은혜파들. 각 파트별로 따로 듣기도,둘씩 듀엣을 만들어보기도,악기와 어울려 보기도,호흡을 맞춰보기도,한데 모두 어울려 들어보기도,세기,여리기,박자와 표정,지휘 동작 등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그 모두가 맘에 들때 감동을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그러면 정작 그 찬양을 직접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감상하실까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시다. 하나님은 노래 소리가 어떠한가,그 부르는 표정이 어떠한가-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는 볼 수 없는 그 마음 중심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다. 거기에다 그 찬양대의 노래를 들어줌으로써 그 찬양에 동참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믿음과 정성도 동시에 보신다.꾸벅 꾸벅 졸거나,속으로 딴생각하거나,찬양대원 흉보고 있거나 하지 말아야 된다.하나님은 노래를 부름으로 찬양하는 찬양대원과,그 자리서 들어줌으로써 찬양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동시에 감상하신다. 송영시간에 기도하지 말아라.잘들음으로써 그 송영에 참여해라. 그러나 하나님의 찬양감상은 절대로 지금 여기서의 그것만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노랠 부르는 자와 들음으로 찬양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또한 동시에 보신다. 하나님은 찬양 소리만 감상하시는 법이 없다.그 노랠 부르는 사람 자체를 동시에 감상하신다. 지금 여기와,그 때 거기를 동시에 보신다. 예배도 마찬가지.지금 여기서의 예배와 그 예배자가 그 때 거기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동시에 심사하신다. 절대로 그 둘을 따로 따로 받으시는 적이 없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피의 제사" 보다는 가인의 삶 자체 문제임을 암시 그래서 오늘 저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 열납되느냐 안되느냐를 실제적으로 결정하는 우리 삶의 그 자리로 눈을 돌려보려는 것이다. 욥기서를 읽으면서 잘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욥의 친구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다. 그들의 말을 읽어보라.구구절절이 얼마나 바르고 좋은 말씀들인가-
그런데 왜 하나님은 "무지하여 이치를 어둡게 하는자가 누구냐","너희가 나를 가르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처럼 정당치 못하도다","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너희 그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그들의 말 자체는 흠 잡을 것이 없다. 그러면 무엇이 틀렸단 말인가 무엇때문에 그들은 어리석다고 정죄 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저들이 욥의 고난에 접근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계속 그 고난의 원인이 무었인가에 관심을 두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아니겠느냐하나님은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니냐고난이 홀연히 네게 덮친것을 보니 네가 은밀한 중에 고아를 학대,과부를 엎신여기며 범죄하였음이 분명하지 않느냐" 그것이 저들의 우매하고 어리석은 죄였다.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한 접근이 잘못되있었다.사실 욥기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고난 자체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러한 고난에 인간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고난의 원인이 아니라,고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문제이다. "부부 싸움 합니까" 전에는 가끔 들었다.요즘은 잘 못든는다.아마 잘싸우게 보이나 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어리석은 접근이라 한다.바른 질문이 될려면-"부부싸움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이다. 사실 우리가 문제라고 불평하는 많은 것들은 실상은 문제가 아니다.진짜 문제는 그런 것들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 욥이 당한 그 엄청난 고난은 다만 싸움터에 불과 했다. 그 싸움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었다. 어느날 하나님 앞에 천사들이 집합해 섰다.거기에 사탄도 끼여 들었다.아마 업무 보고회와 하나님의 지시를 전달 받는 회의 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싸움을 거신다."내 종 욥은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나를 경외한다" 사탄이 반격한다. "아닙니다.그의 사랑은 가짜이다.욥의 순종은 거짓이다-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럴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그 까닭이란 하나님이 그에게 재물을 주고,건강을 주고,자식을 주고,명예를 주고 그것들을 울타리로 두루고 보호해 주시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래주지 않으면 욥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이 싸움은 참 종교와 거짓종교와의 싸움이다.참종교는 아무 까닭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종교,거짓종교는 무슨 까닭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종교이다. 욥의 그 엄청난 고난은 그것을 가리는 싸움이다.욥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고난이 왔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욥의 종교가 까닭 있는 종교인가,까닭 없는 종교인가 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중대한 문제를 가리는 싸움이다.하나님도 자신이 있었다.그러나 사탄도 자신만만 하였다.이제 그 승패는 인간 욥에게 달려 있게 된다. 여러분,지금 여러분이 바로 그런 싸움터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싸워야 하는 싸움이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인지 아십니까 그 하나님의 싸움의 승패가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렸다는 것도 아십니까 인천의 어떤 부자 아버지의 후회:자녀들이 뻔질나게 아버지 집에 드나들며 인사하고 잘 섬겼다. 재산을 자식들에게 미리 나눠주지 마십시요-무시했다가,발길 끊어진 자식들. 아버지가 진 싸움. 까닭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종교를 다른 말로하면 "현세주의적 종교"라 한다.기독교는 현세를 무시하지 않는다.그러나 그 현세를 극복한다.새로운 눈으로,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현세주의적 종교는 현세를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현세의 그 여러가지 복들 때문에 신앙을 갖고,하나님을 찾는다. 사탄은 지금 욥의 종교를 "현세주의적 종교"로 만들고 싶어한다.이런 현세주의적 종교는 사탄 종교의 한 자식이다. 따라서 현세주의적 종교는 기독교의 원수이다. 욥은 지금 그 두종교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한쪽에 자기 손을 들어야 하는 처지에 처한 것이다.욥의 친구들은 어리석게도 그 싸움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욥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지하다고 정죄된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가나안 이방종교와의 싸움도 바로 그런 싸움이다.이스라엘의 종교는 현세의 그런 까닭들이 없이도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종교이다.그러나 가나안의 종교는 현세의 그런 까닭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신을 찾고 섬기는 종교다.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의 신이다. 그 싸움을 지금 우리 한국으로 옮겨 본다면 그것은 기독교와 무교와의 싸움이다.기독교는 아무 까닭 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한국민족을 수천년간 지배해온 전통 민간 신앙인 무교는 철저히 현세주의적 종교이다. 현세의 재물,건강,자식,무사,평안 때문에 신을 찾고,신에게 제사하고,신을 즐겁게 해주는 종교이다. 무교는 한국 종교의 주인노릇하는 신앙이다.원래 인도의 종교인 불교는 철저히 내세적이다.현세의 모든 것을 그저 하나라도 더 얻를려는 것이 아니라 "불을 훅 불어 끄듯 부인해버리는"것을 최고의 도로 생각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우상조차 만드는 것을 금지한다.눈에 보이는 것을 아예 허상일 뿐이라고 제쳐놓는다.그러나 이런 불교도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한국 무교에 굴복하고 만다.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한국불교는 철저히 현세주의적이고 그 우상들도 웅장하고 수도 없는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한국 무교는 불교를 한방에 넉아웃 시키고 자기 종으로 삼아버렸다. 이렇게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우리 민족은 무교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아예 민족성이 현세주의적이 되어버렸다.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다른 민족들보다 아주 짧고 내세에 대해서는 거의 감도 못잡을 정도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을 내세로 아주 떠나 보내지 못한다.위패로 만들어 놓고 눈으로 그것을 보아야 속이 풀린다.그래서 제사도 지내는 것이다.그 혼들이 이승에 아직 떠돌아다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죽은 영혼 까지도 내세처리를 못하고 현세에서 처릴 해야만 하는 딱한 몸부림이다.신도 현세의 복락을 제공해주고 지켜주어야 신이다.그리고 복도 현세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주머니에 무게를 느낄 수 있어야 복이다. 행여 앞에 딸랑 딸랑 나가는 향도가의 가사 대부분도 현세에서 못다 누리고 가는 재물,처자식,집에 대한 집요한 미련을 담고 있다.극락에 가서도 그 최고의 상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의 체질이 현세적이다. 이런 한국의 무교가 100여년전에 기독교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치열한 싸움이 낫죠. 이 둘의 싸움에서 누가 유리했겠습니까 홈그라운드의 잇점이란말 아시죠 한국무교가 역시 기독교를 강타했습니다. 기독교가 어떤 모양이 되었는지 불신자들도 다 압니다 사탄의 종교를 "까닭" 종교라 한다면 기독교는 "찌라도 종교"이다. 풀무불 속으로 내던져지는 다니엘의 세친구의 고백, 하박국 선지자의 마지막 노래,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라. 골고다 언덕에 들려졌던 십자가는 하나님의 종교와 사탄의 이 종교가 맞부딪친 가장 치열한 싸움터였다.하나님의 자랑:네가 내 아들을 보았느냐 그는 아무 까닭 없어도 나를 순전히 사랑하고 죄와 손잡지 않는다. 사탄의 도전:까닭 없이 섬기겠습니까 아마 제자들을 빼앗으면 저도 포기할 것입니다. 아마 친구들이 조롱하고,채칙으로 위협하면 포기할 것입니다. 아 마 십자가 앞에선 포기 할 것입니다.아마 십자가 위에선 하나님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당신이 아무 손도 써주지 않으면 아마 몇시간 안되서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렸습니까 아버지여 내게서 이 잔을 옮기지 않으실 찌라도 순종하겠나이다.아버지여 모두가,제자들까지도 나를 버리고 도망할 찌라도 저는 당신께 순종하겠습니다.아버지여 모든 명예를 잃을찌라도,부귀영화를 포기할 찌라도,살과 뼈를 찢을 찌라도,물과 피를 다 흘려낼 찌라도 당신께 순종하겠나이다. 사탄이 졌습니다.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거기에서 아들의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가 재물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습니까 십자가가 건강한 육체를 얻기 위한 싸움이었습니까 십자가가 한자리 더 승진하기 위한 싸움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 놓고 사탄과 싸우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거기가 하나님의 싸움터 입니다.사탄이 끼지 못할 자리는 없습니다.하늘의 회의에도 끼어들었던 원수는 오늘 여러분의 가장 은밀한 곳,가장 아픈 곳에서 여러분을 시험할 것입니다."네가 아무 까닭 없이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겟느냐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 하십시요.환난을 당하지 않기 위해 기도 하십시요.그러나 그렇게 아니해주실 찌라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지금 고백하십시요.그리아니하실 찌라도 죄와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여기서 다짐하십시요. 바로 거기가 지금 하나님이 사탄과 싸우고 있는 싸움터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승리한자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이제 하나님께 입술로 찬양을 드리기 전에 먼저 기도로 우리 찬양의 문을 엽시다.
1.주님 지금까지 분주 한 삶 속에서 순간 순간,하나님의 싸움터에서 하나님께 승리의영광을 돌리지 못한부끄러움을 용서하십시요.
2.주님 이제부터는 내 삶의 조건과 상황이 어떨찌라도 주님께 순종과 사랑을 바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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