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베푸소서 (사33:1-6)
본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아 나가려면 필요한 게 많습니다. 적당한 환경과 알맞 은 조건 그리고 건강과 명예와 안정된 경제여 건 등 꼭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란 내가 원한다 고 해서 반드시 내 것이 되고 쌔게로 와 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 나오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이 '인생의 내리막 길' 이었다고 했습니다. 뜻대로 안 되는 세상, 을라가고 싶은데 내려가야 하고 성공하고 싶 은데 실패하고 잘 되고 싶은데 안되고 행복하고 싶은데 불행에 빠지 게 되는 것이 이 세상 삶입니다. 세상 떠난 미국의 대통령 슨이 재직 당시 기자회견을 하면서 차 기 대통령 출마를 포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눈물을 보였대서 화 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포기해야 되는 일도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특히 요즘은 대학입학 시즌이어서 희비가 엇갈리는 때입니다. 합격 한 가정과 당사자들에게는 축하와 치하를 드럽니다. 합격은 시작이지 끝은 아닙니다. 그대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흑 실패 하신 분들은 낙 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회는 다시 있습니다. 반드시 일류대학을 나와야만 인 류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일류병은 고치기 어렵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대학입학 시즌이어서 희비가 엇갈리는 때입니다. 합격 한 가정과 당사자들에게는 축하와 치하를 드럽니다. 합격은 시작이지 끝은 아닙니다. 그대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흑 실패 하신 분들은 낙 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회는 다시 있습니다. 반드시 일류대학을 나와야만 인 류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일류병은 고치기 어렵게 됩니다. 집도 일류, 옷치장도 일류, 가구도 일류, 음식도 일류, 장가도 시집 도 일류 일류일류하다 보면 병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층족시키지 못 하는 현실과 욕구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정신 적 질환이 일 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없어서는 안될 것을 발견하였읍니다. 그것은 옷이 아닙니다. 밥도 아닙니다. 대 학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없어선 안 될 것들입니다. 우 린 이 시간 그것들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습니다.
1. 평화입니다. 표현은 다릅니다만 나라마다 평화를 원하고 바라는 언어가 있읍니다. 일찍이 유대인들은 '샬 롬'이라는 인사를 통하여 저들의 평화기원 을 표현했습니다. 유대인의 인사말은 평화 즉, 샬롬입니다. 지금도 저들은 펑화가 그 리운 민족입니다. 날마다 긴장하고 살아야 하는 국가 운명이었기 때문에 평화가 그리웠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가십 시요 등의 인사말은 평안 을 비는 인사 말입니다. 우리 역시 평화를 갈망하며 살아 나왔습니다. 아니 우리 뿐 만이 아 니고 모든 인간은 평화 가 필요합니다. 평화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평화입니다. 전쟁이 없고 살기가 편하고 세상이 안정 되었을 때 밖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평화가 있읍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같 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항상 불안합니다. 살얼음을 밟고 지나 가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깨질지 모릅니다. 불안한 평화 깨질지도 모 르는 평화 그래서 그런 평화는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들째는 내적인 평화가 있습니다. 이 평화는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평화입니다. 어떻게 이 평화는 가능할까요 평화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화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국민학교 선생이 교장과 불화하고 마음이 편 할 리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펀과 싸우고 그 가정이 펀할 리가 없읍니다. 담임선생과 학생이 싸우고 그 교실이 평안할 리 가 없습니다. 지휘 관과 싸우고 그 병사가 핀안할 리가 없습니다. 대통령과 싸우고난 각 료가 편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하는 문화, 역사, 개인, 가정에 평화 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대주 제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역사가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하십니다. 주님 친히 말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에 주는 것과는 다르다n고 말하셨 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세상 평화는 일시적이지만 주님의 평화는 영원합니다. 세상 평화은 빼앗깁니다만 주님의 평화는 빼앗기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불만족합니다만 주님의 평화는 만족한 평 화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자 라나고 열매맺는 평화인 것입니다. 바로 이 평화가 필요합니다. 이 평화, 주님의 평화가 내 심령속에,내 가정에, 내 나라에 임해야 됩니다. 주여, 평화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2. 구원입니다. 본래 구원이란 말은 '건져낸다'눈 뜻을 가진 말입니다. 죄에서 컨져 내고 불행으로부터 건져 내고 슬픔과 절망으로부터 건져내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건져내 주시는 분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내가 나의 죄를 해결하고 슬픔과 절망을 해결하고 질병과 고통을 해결하고 인생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친히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잃어버 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 다'고 말했습니다. 요게벳이라는 여자가 애굽에 살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히 브리 여인이 낳는 사내아 이는 모조리 나일강에 버리라는 바로의 명령 때문에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상자를 만들어 철없는 아 이를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아기의 어머 니는 멀리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바로의 딸이 나일강가에 나왔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아이 를 물에서 건져 낸 후 자기 아들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모세라 고 블렀습니다. 그 뜻은 '물에서 건져 냈다'는 뜻입니다. 떠내려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눈물짓고 발을 동동구를 뿐 건져낼 수 없는 모세의 친어머니 처럼 사건과 문제를 바라보면서 눈물짓고 한 숨쉬고 발을 동동구르고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샐 뿐 어떻게 할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했습니다. 길만 알면 갈 수가 있습니다. 건져 낼 길만 알면 건져 낼 수가 있습니다. 해결의 길만 있으면 해 결이 됩니다. 블란서의 영웅 나폴레옹은 나는 예수를 알고 있다. 그는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지금까 지 생존했던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였기 때 문이다'고 했읍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절망과 슬픔과 좌절 가운 데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간구했던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십시다. 배타고 가다가 랑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 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라 고 외쳤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바로 우리가 외치고 내가 외쳐야 할 기도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삼대 왕이었던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지 혜를 구하여 지혜를 얻은 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어려운 난국을 대처해 나가려면, 이 어려운 시 기를 극복해 나 가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정문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혜가 필 요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면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 히 주신다'고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셨 습니다. 지혜를 구하십시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위에 있는 사람도 지혜가 필요하고 백성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4. 지식입니다. 잠언 1장 7절을 보면 '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 를 멸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것이 가장 위대한 지식입니다. 고려말 년 송도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드려다 볼 수 있는 이상한 안 경을 가진 도인이 있었 다고 합니다. 하루는 중앙통에 서서 퇴청하는 벼슬아치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니 사람으로 보이는 분은 정몽주 한 사람뿐 그 나머지는 모두가 짐승으로 보일 뿐이더라는 얘기가 있읍니다. 우리 시대는 어떨까요. 만일 그런 안경이 있다면 과연 사람으로 보 이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 까요 신사숙녀 문화인의 그 베일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참된 지식은 하나님 을 알고 내가 양심적으로 죄인인 것을 알고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참지식입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이 지식이 고갈 된 데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 경외입니다. 시편 144펀 15절을 보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 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흥사 빌리 그레함은 '우리들의 세계나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불공평또 아니요 교육의 부족도 아니요 신체적인 기 아도 아니다. 우리들은 교육을 이 받은 사람들과 배 불리 먹고 사는 사람들이 교육으로는 제거되지 않는 탐욕과 증오와 시기와 정욕을 품 고 있음을 본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뿌리는 깊으며 이것이 세계 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이 고 있는 이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은 얘깁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영흔은 다시 살고 문제는 해결되고 잃었던 평화를 다시 찾 게 되는 것입니다. 시핀 145펀
I8-19절을 보면 '넉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 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저희들의 부르짖 음을 들으사 구원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무릎고 절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께 우리가 무릎을 을 때 겸 손하게 항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 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잃었던 평화 안녕 기쁨을 다시 찾읍시다
1. 평화입니다. 표현은 다릅니다만 나라마다 평화를 원하고 바라는 언어가 있읍니다. 일찍이 유대인들은 '샬 롬'이라는 인사를 통하여 저들의 평화기원 을 표현했습니다. 유대인의 인사말은 평화 즉, 샬롬입니다. 지금도 저들은 펑화가 그 리운 민족입니다. 날마다 긴장하고 살아야 하는 국가 운명이었기 때문에 평화가 그리웠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가십 시요 등의 인사말은 평안 을 비는 인사 말입니다. 우리 역시 평화를 갈망하며 살아 나왔습니다. 아니 우리 뿐 만이 아 니고 모든 인간은 평화 가 필요합니다. 평화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평화입니다. 전쟁이 없고 살기가 편하고 세상이 안정 되었을 때 밖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평화가 있읍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같 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항상 불안합니다. 살얼음을 밟고 지나 가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깨질지 모릅니다. 불안한 평화 깨질지도 모 르는 평화 그래서 그런 평화는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들째는 내적인 평화가 있습니다. 이 평화는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평화입니다. 어떻게 이 평화는 가능할까요 평화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화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국민학교 선생이 교장과 불화하고 마음이 편 할 리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펀과 싸우고 그 가정이 펀할 리가 없읍니다. 담임선생과 학생이 싸우고 그 교실이 평안할 리 가 없습니다. 지휘 관과 싸우고 그 병사가 핀안할 리가 없습니다. 대통령과 싸우고난 각 료가 편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하는 문화, 역사, 개인, 가정에 평화 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대주 제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역사가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하십니다. 주님 친히 말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에 주는 것과는 다르다n고 말하셨 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세상 평화는 일시적이지만 주님의 평화는 영원합니다. 세상 평화은 빼앗깁니다만 주님의 평화는 빼앗기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불만족합니다만 주님의 평화는 만족한 평 화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자 라나고 열매맺는 평화인 것입니다. 바로 이 평화가 필요합니다. 이 평화, 주님의 평화가 내 심령속에,내 가정에, 내 나라에 임해야 됩니다. 주여, 평화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2. 구원입니다. 본래 구원이란 말은 '건져낸다'눈 뜻을 가진 말입니다. 죄에서 컨져 내고 불행으로부터 건져 내고 슬픔과 절망으로부터 건져내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건져내 주시는 분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내가 나의 죄를 해결하고 슬픔과 절망을 해결하고 질병과 고통을 해결하고 인생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친히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잃어버 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 다'고 말했습니다. 요게벳이라는 여자가 애굽에 살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히 브리 여인이 낳는 사내아 이는 모조리 나일강에 버리라는 바로의 명령 때문에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상자를 만들어 철없는 아 이를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아기의 어머 니는 멀리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바로의 딸이 나일강가에 나왔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아이 를 물에서 건져 낸 후 자기 아들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모세라 고 블렀습니다. 그 뜻은 '물에서 건져 냈다'는 뜻입니다. 떠내려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눈물짓고 발을 동동구를 뿐 건져낼 수 없는 모세의 친어머니 처럼 사건과 문제를 바라보면서 눈물짓고 한 숨쉬고 발을 동동구르고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샐 뿐 어떻게 할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했습니다. 길만 알면 갈 수가 있습니다. 건져 낼 길만 알면 건져 낼 수가 있습니다. 해결의 길만 있으면 해 결이 됩니다. 블란서의 영웅 나폴레옹은 나는 예수를 알고 있다. 그는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지금까 지 생존했던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였기 때 문이다'고 했읍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절망과 슬픔과 좌절 가운 데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간구했던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십시다. 배타고 가다가 랑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 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라 고 외쳤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바로 우리가 외치고 내가 외쳐야 할 기도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삼대 왕이었던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지 혜를 구하여 지혜를 얻은 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어려운 난국을 대처해 나가려면, 이 어려운 시 기를 극복해 나 가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정문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혜가 필 요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면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 히 주신다'고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셨 습니다. 지혜를 구하십시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위에 있는 사람도 지혜가 필요하고 백성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4. 지식입니다. 잠언 1장 7절을 보면 '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 를 멸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것이 가장 위대한 지식입니다. 고려말 년 송도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드려다 볼 수 있는 이상한 안 경을 가진 도인이 있었 다고 합니다. 하루는 중앙통에 서서 퇴청하는 벼슬아치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니 사람으로 보이는 분은 정몽주 한 사람뿐 그 나머지는 모두가 짐승으로 보일 뿐이더라는 얘기가 있읍니다. 우리 시대는 어떨까요. 만일 그런 안경이 있다면 과연 사람으로 보 이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 까요 신사숙녀 문화인의 그 베일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참된 지식은 하나님 을 알고 내가 양심적으로 죄인인 것을 알고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참지식입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이 지식이 고갈 된 데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 경외입니다. 시편 144펀 15절을 보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 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흥사 빌리 그레함은 '우리들의 세계나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불공평또 아니요 교육의 부족도 아니요 신체적인 기 아도 아니다. 우리들은 교육을 이 받은 사람들과 배 불리 먹고 사는 사람들이 교육으로는 제거되지 않는 탐욕과 증오와 시기와 정욕을 품 고 있음을 본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뿌리는 깊으며 이것이 세계 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이 고 있는 이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은 얘깁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영흔은 다시 살고 문제는 해결되고 잃었던 평화를 다시 찾 게 되는 것입니다. 시핀 145펀
I8-19절을 보면 '넉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 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저희들의 부르짖 음을 들으사 구원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무릎고 절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께 우리가 무릎을 을 때 겸 손하게 항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 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잃었던 평화 안녕 기쁨을 다시 찾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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