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사33:17-24)
본문
한 국가나 그 국가에 속한 백성들은 어떤 왕을 만나느냐에 따 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 셔서 친히 백성과 국권을 장악하고 통치하신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 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백성들이 강력한 왕조를 형성하여 일사분란한 국가조직을 갖추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부러운 나 머지 그와 같은 왕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썼습니다. 이 일 은 하나님의 마음을 불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H정 원한다면 너휘 소원대로 해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던 것과 부합하는 사울을 왕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왕들이 등장했습니다. 다윗왕과 같이 신앙과 능력이 겸비된 왕을 만났을 때는 태평과 번영을 구 가했으나 여로보암, 아합,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을 만났을 때는 백성들이 말로 할 수 없는 도탄에 빠져 고역과 착취를 당해야 했 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국권은 여러 차례 교체되어야 했고 이방 왕국들의 끊임없는 침공을 받아야 했 습니다. 특히 이사야 선지 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인접한 앗수르가 득세하며 산헤럽왕이 이 스라엘 을 멸시하면서 많은 조공을 받아갔고 히스기야왕과 방백 들과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히스기야왕 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사야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서 앗수르의 위협 에 대처하고 있었던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이사야서는 두 부 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 장부터 39장까지의 내용은 한 왕의 출현 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2장 1절을 보면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라' 했는데 이 본문에서 말하는 왕이 일차적으로 히스기야왕을 가리 키는 것입니다. 이 왕은 오늘의 본문 33장1절 이하에 서와 이사 야서 후반부인 40장 이하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히스기야 왕으로 상징된 메시야가 과연 어떤 왕이신가에 관하여 같이 생각해 보고 자 합니다.
첫째로, 이 왕은 영광중에 계신 영광의 왕이십니다. 본문 17절은 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리라.'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 중에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영중에 군림하여 즉위하였다가 부'I 럽게 되 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헤롯은 영광스럽게 즉위했으나 층이 먹고 름이 썩어서 죽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해야만 랬슬니다. 알 렉산더는 객사하였고.시이저는 부하에게 암살당했으 며,나폴레 옹은 섬에 유배되어 쓸쓸한 종말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워터게 이트 사건으로 눈물을 흘리며 퇴임해야 했던 닉슨의 모습은 참 으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 고 귀국 하여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이승만대통령의 슬픈 말로와, 부하의 반역의 권총에 졸지 에 목숨을 잃은 박정희대통령의 마지 막은 세상 왕의 종말이 처음과 같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 즉위하신 후 계속해서 영원토록 영광으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세상왕의 영광처럼 용두사미가 되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처음과 끝이 동일
둘째로, 예수님이 영광 가운데 다스리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능력으로 자기 백성의 안전을 보 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참으로 안전한 보장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이 17절 후반부에서 21 절까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광활한 땅을 목도하=K다'고 했습니다. 외적의 약탈과 침입이 두려워 예루살렘이라는 좁은 산성안에 갇혀 있어야 했던 하나님의 백성이 이제는 넓은 평원을 자유롭게 보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18절에는 '너희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 리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여호와의 영스러운 다 스림안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은 과 거의 추억이 되리 라는 뜻입니다.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앗수르의 침략군 이 유대인들 중 에서 전쟁에 끌고 갈 인원을 차출하기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하던 일을 가리키는데,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이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공세를 측량하던 자가 어 디 있느냐,_역시 종주국인 앗수르에 바칠 세금을 계산하기 위 해서 파견되어 있던 징세관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그처럼 서민 을 착취하는 징세관이 다시는 서민을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망대를 계수 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유대의 모든 성읍 에는 망대가 있었는데. 이 망대들의 숫자와 위치와 크 기와 높이 를 조사하여 앗수르의 군대관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조사는 일단 유사시에 유대의 성읍들을 보다 효을적으 로 공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 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찌하여 19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전 혀 다른 언어를 이야기하는 낮선 백성을 다시 보지 않게 되는 것 입니까 , 여호와께서 친히 영광의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기 때 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예루살렘에 안정이 찾아 와 서 다시 절기를 지킬 수 있게 되었드며 다시는 외적의 침입으로 국경에 변동이 생기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20절이 그 사실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 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 겨 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 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라 ' 뿐만 아니라 21절 에 보면 예루살렘이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으로 둘러싸인 요새처럼' 되리라고 했습니다. 요새를 둘러싸 흐르는 강이 너무나 넓어서 노질하는 군함이나 큰 배들 조차도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새의 안전함을 비 유적으로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늘의 왕국 백성은 앗 수르와 같은 대적과 방해세력이 횡 행하는 거친 세상속에서도 확 실하게 그 얀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환란이나 고난에 도 요동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막과 같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 켜주시는 바위 그늘이십니다. 인란의 삶의 모습이 사막을 여행 하는 나그네의 모습과 같습니다. 뜨거운 태 양열을 받으면서, 끝 없이 켤쳐져 있는 사막의 길, 모래바람이 몰아치고, 좀처럼 곳을 찾을 수 없는 사막을 낙타위에 앉아 지나가는 모습이 곧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막과 같 은 인생길에서 제 난의 태양열에 시달리고, 시련의 모래바람에 상처받고, 상처받 은 부위를 싸매 지도 뭇한 채, 영혼의 갈증으로 영혼의 샘물을 찾 아 혜매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우리 의 인생길을 맡기면, 주님은 우리 인생길의 큰 바위가 되어 우리가 넉넉하쎄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피난처요, 산성이요, 피할 바위라고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다스리기 위하여 법을 세우시고 친히 그 법에 따라 재판하시는 재 판장이십니다. 본문 22절 전반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우리의 왕이시니 ' 재판장에게는 사람의 무죄와 유죄 여부를 결 정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생사에 관한 결정까지도 내릴 수 있습니다. 닌런데 여호와께서는 우리 에게 그와같은 재판장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판장들은 다 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가지고 재 판에 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법의 정신을 모를 수도 있고, 법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재판장이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법을 제정하 신 입법자이시므로 여호와는 법의 정신을 정확하게 아실 뿐만 아니라 법을 오해하시는 일이 없 으며 법을 잘못 적용하시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결은 전적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히스기야, 다니엘과 같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의로운 재판관이 시며 입법자이신 여호와께 직접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직접 해결책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을 판결하는 규범인 율법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사외 모든 사건들은 우리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겨 처리할 때, 실수나 실패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왕이신 여호와는 율법의 집행자이십니다. 요서서 인용한 바 있는 22절 전반절은 여호와를 우리의 재 장과 입법자로 언명한 후에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가 입법자이신 동시에 왕으로서 율법을 친히 집행하 시는 자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왕은 국가의 법률을 필요에 따라서 권력으로 집행하도록 위임 받은 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은 행정수반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왕이라는 말은 곧 여호와가 법 을 집행하시는 최고 임자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법을 집행하신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 지 찾을 수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지 않자 하나님이 친히 그의 장차를 치는 벌을 집행하셨 으며, 바로에겐 문등병을 내려서 치셨습니다. 아간이 탐욕 에 눈 이 어두워 재물을 감추었을 때,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 드로를 속였을 때 하나님은 그 즉시 그들에게 벌을 시행하셨습니다. 고라자손이 하나님을 반역하자 땅이 갈라지게 함으로써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
I57 그 안에 매몰시켜 버리고 말았으며,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 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자 폭 풍과 큰 물고기를 준비하여 벌 을 내리셨습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법규를 어기고 법궤에 손올 대 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가차없는 벌올 주셨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이 곧 하나님이 직접 법을 집하셨음을 보여주는 은 사혜들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직접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십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망각할 때 인생 의 비극이 시작컵니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여호와께서 왕이 되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함에 있습니다. 본문 22절 후반부에 보면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왕이 되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구원함에 있습니다. 세상의 왕은 처음에는 천하를 집어삼킬 듯이 당당한 권세로 나타나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그 권세를 상실하거나 퇴 색해 버 럽니다.
그러므로 세상 왕의 구원의 약속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영광과 권능이 동일한 우리의 왕 여호와는 처음에 한 구원의 약속이 마지막까지 여일(tH-)합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 텀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므로, 여호와의 구원은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처럼 영광중에 계신 영광의 왕 여호와가 우리의 왕이십니다. 직접 법 을 세우시고, 재판하시며, 그 법을 몸소 집행하시는 입법자이자 재판장이며 집행자이신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의, 우리 모두의 왕이십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영광의 왕, 만왕 의 왕 우리의 왕되신 하나님을 찬양합 시다.
32장 1절을 보면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라' 했는데 이 본문에서 말하는 왕이 일차적으로 히스기야왕을 가리 키는 것입니다. 이 왕은 오늘의 본문 33장1절 이하에 서와 이사 야서 후반부인 40장 이하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히스기야 왕으로 상징된 메시야가 과연 어떤 왕이신가에 관하여 같이 생각해 보고 자 합니다.
첫째로, 이 왕은 영광중에 계신 영광의 왕이십니다. 본문 17절은 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리라.'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 중에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영중에 군림하여 즉위하였다가 부'I 럽게 되 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헤롯은 영광스럽게 즉위했으나 층이 먹고 름이 썩어서 죽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해야만 랬슬니다. 알 렉산더는 객사하였고.시이저는 부하에게 암살당했으 며,나폴레 옹은 섬에 유배되어 쓸쓸한 종말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워터게 이트 사건으로 눈물을 흘리며 퇴임해야 했던 닉슨의 모습은 참 으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 고 귀국 하여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이승만대통령의 슬픈 말로와, 부하의 반역의 권총에 졸지 에 목숨을 잃은 박정희대통령의 마지 막은 세상 왕의 종말이 처음과 같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 즉위하신 후 계속해서 영원토록 영광으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세상왕의 영광처럼 용두사미가 되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처음과 끝이 동일
둘째로, 예수님이 영광 가운데 다스리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능력으로 자기 백성의 안전을 보 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참으로 안전한 보장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이 17절 후반부에서 21 절까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광활한 땅을 목도하=K다'고 했습니다. 외적의 약탈과 침입이 두려워 예루살렘이라는 좁은 산성안에 갇혀 있어야 했던 하나님의 백성이 이제는 넓은 평원을 자유롭게 보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18절에는 '너희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 리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여호와의 영스러운 다 스림안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은 과 거의 추억이 되리 라는 뜻입니다.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앗수르의 침략군 이 유대인들 중 에서 전쟁에 끌고 갈 인원을 차출하기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하던 일을 가리키는데,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이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공세를 측량하던 자가 어 디 있느냐,_역시 종주국인 앗수르에 바칠 세금을 계산하기 위 해서 파견되어 있던 징세관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그처럼 서민 을 착취하는 징세관이 다시는 서민을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망대를 계수 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유대의 모든 성읍 에는 망대가 있었는데. 이 망대들의 숫자와 위치와 크 기와 높이 를 조사하여 앗수르의 군대관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조사는 일단 유사시에 유대의 성읍들을 보다 효을적으 로 공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 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찌하여 19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전 혀 다른 언어를 이야기하는 낮선 백성을 다시 보지 않게 되는 것 입니까 , 여호와께서 친히 영광의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기 때 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예루살렘에 안정이 찾아 와 서 다시 절기를 지킬 수 있게 되었드며 다시는 외적의 침입으로 국경에 변동이 생기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20절이 그 사실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 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 겨 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 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라 ' 뿐만 아니라 21절 에 보면 예루살렘이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으로 둘러싸인 요새처럼' 되리라고 했습니다. 요새를 둘러싸 흐르는 강이 너무나 넓어서 노질하는 군함이나 큰 배들 조차도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새의 안전함을 비 유적으로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늘의 왕국 백성은 앗 수르와 같은 대적과 방해세력이 횡 행하는 거친 세상속에서도 확 실하게 그 얀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환란이나 고난에 도 요동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막과 같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 켜주시는 바위 그늘이십니다. 인란의 삶의 모습이 사막을 여행 하는 나그네의 모습과 같습니다. 뜨거운 태 양열을 받으면서, 끝 없이 켤쳐져 있는 사막의 길, 모래바람이 몰아치고, 좀처럼 곳을 찾을 수 없는 사막을 낙타위에 앉아 지나가는 모습이 곧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막과 같 은 인생길에서 제 난의 태양열에 시달리고, 시련의 모래바람에 상처받고, 상처받 은 부위를 싸매 지도 뭇한 채, 영혼의 갈증으로 영혼의 샘물을 찾 아 혜매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우리 의 인생길을 맡기면, 주님은 우리 인생길의 큰 바위가 되어 우리가 넉넉하쎄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피난처요, 산성이요, 피할 바위라고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다스리기 위하여 법을 세우시고 친히 그 법에 따라 재판하시는 재 판장이십니다. 본문 22절 전반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우리의 왕이시니 ' 재판장에게는 사람의 무죄와 유죄 여부를 결 정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생사에 관한 결정까지도 내릴 수 있습니다. 닌런데 여호와께서는 우리 에게 그와같은 재판장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판장들은 다 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가지고 재 판에 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법의 정신을 모를 수도 있고, 법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재판장이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법을 제정하 신 입법자이시므로 여호와는 법의 정신을 정확하게 아실 뿐만 아니라 법을 오해하시는 일이 없 으며 법을 잘못 적용하시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결은 전적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히스기야, 다니엘과 같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의로운 재판관이 시며 입법자이신 여호와께 직접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직접 해결책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을 판결하는 규범인 율법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사외 모든 사건들은 우리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겨 처리할 때, 실수나 실패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왕이신 여호와는 율법의 집행자이십니다. 요서서 인용한 바 있는 22절 전반절은 여호와를 우리의 재 장과 입법자로 언명한 후에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가 입법자이신 동시에 왕으로서 율법을 친히 집행하 시는 자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왕은 국가의 법률을 필요에 따라서 권력으로 집행하도록 위임 받은 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은 행정수반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왕이라는 말은 곧 여호와가 법 을 집행하시는 최고 임자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법을 집행하신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 지 찾을 수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지 않자 하나님이 친히 그의 장차를 치는 벌을 집행하셨 으며, 바로에겐 문등병을 내려서 치셨습니다. 아간이 탐욕 에 눈 이 어두워 재물을 감추었을 때,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 드로를 속였을 때 하나님은 그 즉시 그들에게 벌을 시행하셨습니다. 고라자손이 하나님을 반역하자 땅이 갈라지게 함으로써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
I57 그 안에 매몰시켜 버리고 말았으며,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 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자 폭 풍과 큰 물고기를 준비하여 벌 을 내리셨습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법규를 어기고 법궤에 손올 대 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가차없는 벌올 주셨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이 곧 하나님이 직접 법을 집하셨음을 보여주는 은 사혜들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직접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십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망각할 때 인생 의 비극이 시작컵니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여호와께서 왕이 되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함에 있습니다. 본문 22절 후반부에 보면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왕이 되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구원함에 있습니다. 세상의 왕은 처음에는 천하를 집어삼킬 듯이 당당한 권세로 나타나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그 권세를 상실하거나 퇴 색해 버 럽니다.
그러므로 세상 왕의 구원의 약속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영광과 권능이 동일한 우리의 왕 여호와는 처음에 한 구원의 약속이 마지막까지 여일(tH-)합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 텀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므로, 여호와의 구원은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처럼 영광중에 계신 영광의 왕 여호와가 우리의 왕이십니다. 직접 법 을 세우시고, 재판하시며, 그 법을 몸소 집행하시는 입법자이자 재판장이며 집행자이신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의, 우리 모두의 왕이십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영광의 왕, 만왕 의 왕 우리의 왕되신 하나님을 찬양합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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