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예비하라 (사40:1-5)
본문
주의 길을 예비하고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번 주 금요일은 주님이 초림하신 성탄절입니다. 한 주간 동안 성탄절 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기에 저는 오늘 성탄을 예비하라는 제 목으로 말씀을 드릴때 큰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래전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런던 교외의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단의 무리들이 그집 주인에게 우산 을 하나만 빌릴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주인은 아무런 생각없이 자 신 이 쓰던 우산 중에 다 부러진 낡은 우산 하나를 쓰도록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들의 주인인한 여인에게 그 우산을 씌여주고 그 곳을 떠떠났습니다. 다음날 어떤 편지가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 우산을 다시 가져왔는데 거기에는 ' "참 감사합니다." 라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우산을 빌렸던 여주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싸인에는 '엘 리자베스 여왕' 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농부는 가슴을 치며 후회 를 했니다. "그런줄 알았다면 내가 정성을다해 그분을 모셨을 것을, 내가 가진 우 산중에 가장 좋은 우산을 우산을 들릴것을 . " 여왕을 알지 못하고 대접하지 못했던 농부처럼 어리썩음이 우리에 게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성탄절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금년 성탄절은 연중행사 처럼 지나가는 것 보다는 주님을 맞이하고 주맞을 준비를 하는 자세로 성탄절을 맞이해야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광야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언적 의미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때에 그의 주시는 구원에 참예할 자들의 마음의 준비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탄절은 첫번째 주님을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로 맞이하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의 오심은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 받는 백성에게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부터는 이스라엘의 회복뿐 아니라, 구약에서 신약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됩니다. 이것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고난 받는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라하겠습니다. 1절:너희 하나님이 (장차)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 하라 위로라는 말이 두번 나오는데 이것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스라엘 이 돌아올 것을 말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이중적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을 죄악에서 구원하실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 디가 큰 힘이 된 것처럼,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위로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과 소망이 될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바랍니다. 눅 2:10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절:위로의 내용인즉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국경일이나 명절때가 되면 조시들을 가석방 하는 일이 많습니다. 죄수에게 있어서 석방이란 위로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수가 복역을 끝냈다면 더이상 죄수가 아니라 자유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복였 의 때가 끝났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직 형량이 많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형중지를 선포 하시고무죄를 선포하십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이 받은 징벌을 생각하 시고 배나 받았다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와 소망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받 을 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비한 자만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접할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줄로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외치는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사 40:3절: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외치는자의 소리는 원문에 '콜 코레' 어떤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뜻 으로 외치는 자의 모양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것은 자신은 나타내지 않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세례요한의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지금도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들려오고 있는 핀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첩경을 평탄게 하라 ' 고, 이러한 음성은 주님 이 오실 때 까지 외쳐야 하고, 또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종들을 통하여 이와같이 예비하라. 준비하라 고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정녕 우리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줌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준비하느냐, 그렇지 않는냐에 따라서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심판의 소식일 수가 있는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죄수가 있었습니다.합니다 그 죄수를 석방해 줄려고 주 지사가 죄수를 찾아갔습니다. 그 죄수는 세상을 원망만 하고 주지사의 예기를 들을려고 하지않았습니다. 주지사가 간 다음에 간수가 말합니다. 간수가 죄수 에게 말하기를 주지사가 자네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면담하러왔는데 잘되었는가 죄수는 그 사람이 주지사인줄 몰랐습니다. 목사님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주지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 았던 것입니다. 결국에 기회는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님을 세계 어느 도시 보다 환영하고 모실 준비를 해야할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가장 기뻐 했어야 할 예루살렘 이어야 했습니다만. 우리 주님을 모실수 있는 준비가 전연 되지 않음으로 해서 마태복음 2:3에-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왜그랬을 까요 주님을 맏이할 준비가 전연되 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 만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을 믿으시면 아멘하 시기 바랍니다.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타케 하라' 주님께서 오실때 아무런 거침이 없도록,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주님 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탄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 낼때도 보면 척량을 하고 토목공사를 하고 도로 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평탄케 하라는 것은 마음의 자세를 말 하는 것입니다. (사 40: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 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1 골짜기 마다 돋우워져야 합니다 골짜기 같은 마음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골짜기 음푹 패인 건을 말 합니다. 곧 상처입은 마음, 아픔과 슬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는 것입니다. "골짜기 마다 돋우워지며" 라는 말씀은 아픔과 스라린 슬픈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아픈 마음과 상처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시기 를 축원합니다.
원한과 슬픔과 괴로운 상처를 가지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외냐하면 주님의 기쁨의 근원이며 평화와 행복의 본질이 기때문인 것입니다.
2.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져야 합니다. 산은 무엇을 말합니까 교만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헤롯왕을 보세요 왕의 왕 주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왕이라는 신분 때문에 또는 왕위가 위태로워서 왕이라는 직위를 악용해서 그는 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으려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지 위 때문에 불행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3. 고르지 않은 곡과 험한 곳이 평탄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베들레헴에 오셨을때 서기관들은 동방박사가 유대인의 왕 으로 나시는 이가 어디 계시뇨 라고 질문했을 때 그들은 미가 5:2 의 말씀을 찾아 대답은 잘 했으면서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손관 발이 말을 듣 지 않았습니다. 현실주의자 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 아는것 때문에 주님 을 만나지 못했던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관주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역사의 주인공,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 신 주님 께서 이 땅에 오셔서 문밖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돈없고 초라 한 주님의 부모들을 거절했습니다. 외형적으 보고 주님을 소흘히 여 겼던것입니다. 호적때문에 오랜만에 호황을 누리고 장사가 잘 됨으로 해서 자신의삶에 도취되어 가장 중요한 것을 소흘히 여기는 사람들, 주님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탄의 기쁨을 누릴수가 없는것입니다. 우리는 땀흘려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려면 돈도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쳐버리는 사람, 순간의 일때문에 영원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어리썩은 사람인 것입니다. 롬멜장군 프랑스 남부해안을 지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1944 년 5월말에 안개가 자욱해서 작전개시가 불가능하다고 며칠간 쉬는 것 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침 6월 6일은 그의 아내의 생일이어서 베를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 다음날 연합군이 느르망디 상륙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롬멜이 아내를 축하하기 위해 서 베를린으로 돌아간 것이 독일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던 것 입니다. 작은 일 때문에 결정적인 중대한 실수를 했던 것입니다. 5절-결론 성탄절은 주님을 모시는 우리들에게는 감격과 기쁨과 환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탄의 종은 주님을 영접하는 겸손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하여 울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평탄한 길을 예비한 자를 위하립 비출것입니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을 얼마 앞두고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 며 예비하는 자세로 주님을 맞이합시다. 그리할때 주님의 영광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될줄 믿습니다.
오래전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런던 교외의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단의 무리들이 그집 주인에게 우산 을 하나만 빌릴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주인은 아무런 생각없이 자 신 이 쓰던 우산 중에 다 부러진 낡은 우산 하나를 쓰도록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들의 주인인한 여인에게 그 우산을 씌여주고 그 곳을 떠떠났습니다. 다음날 어떤 편지가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 우산을 다시 가져왔는데 거기에는 ' "참 감사합니다." 라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우산을 빌렸던 여주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싸인에는 '엘 리자베스 여왕' 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농부는 가슴을 치며 후회 를 했니다. "그런줄 알았다면 내가 정성을다해 그분을 모셨을 것을, 내가 가진 우 산중에 가장 좋은 우산을 우산을 들릴것을 . " 여왕을 알지 못하고 대접하지 못했던 농부처럼 어리썩음이 우리에 게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성탄절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금년 성탄절은 연중행사 처럼 지나가는 것 보다는 주님을 맞이하고 주맞을 준비를 하는 자세로 성탄절을 맞이해야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광야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언적 의미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때에 그의 주시는 구원에 참예할 자들의 마음의 준비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탄절은 첫번째 주님을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로 맞이하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의 오심은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 받는 백성에게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부터는 이스라엘의 회복뿐 아니라, 구약에서 신약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됩니다. 이것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고난 받는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라하겠습니다. 1절:너희 하나님이 (장차)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 하라 위로라는 말이 두번 나오는데 이것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스라엘 이 돌아올 것을 말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이중적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을 죄악에서 구원하실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 디가 큰 힘이 된 것처럼,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위로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과 소망이 될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바랍니다. 눅 2:10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절:위로의 내용인즉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국경일이나 명절때가 되면 조시들을 가석방 하는 일이 많습니다. 죄수에게 있어서 석방이란 위로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수가 복역을 끝냈다면 더이상 죄수가 아니라 자유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복였 의 때가 끝났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직 형량이 많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형중지를 선포 하시고무죄를 선포하십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이 받은 징벌을 생각하 시고 배나 받았다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와 소망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받 을 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비한 자만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접할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줄로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외치는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사 40:3절: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외치는자의 소리는 원문에 '콜 코레' 어떤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뜻 으로 외치는 자의 모양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것은 자신은 나타내지 않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세례요한의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지금도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들려오고 있는 핀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첩경을 평탄게 하라 ' 고, 이러한 음성은 주님 이 오실 때 까지 외쳐야 하고, 또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종들을 통하여 이와같이 예비하라. 준비하라 고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정녕 우리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줌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준비하느냐, 그렇지 않는냐에 따라서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심판의 소식일 수가 있는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죄수가 있었습니다.합니다 그 죄수를 석방해 줄려고 주 지사가 죄수를 찾아갔습니다. 그 죄수는 세상을 원망만 하고 주지사의 예기를 들을려고 하지않았습니다. 주지사가 간 다음에 간수가 말합니다. 간수가 죄수 에게 말하기를 주지사가 자네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면담하러왔는데 잘되었는가 죄수는 그 사람이 주지사인줄 몰랐습니다. 목사님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주지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 았던 것입니다. 결국에 기회는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님을 세계 어느 도시 보다 환영하고 모실 준비를 해야할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가장 기뻐 했어야 할 예루살렘 이어야 했습니다만. 우리 주님을 모실수 있는 준비가 전연 되지 않음으로 해서 마태복음 2:3에-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왜그랬을 까요 주님을 맏이할 준비가 전연되 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 만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을 믿으시면 아멘하 시기 바랍니다.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타케 하라' 주님께서 오실때 아무런 거침이 없도록,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주님 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탄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 낼때도 보면 척량을 하고 토목공사를 하고 도로 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평탄케 하라는 것은 마음의 자세를 말 하는 것입니다. (사 40: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 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1 골짜기 마다 돋우워져야 합니다 골짜기 같은 마음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골짜기 음푹 패인 건을 말 합니다. 곧 상처입은 마음, 아픔과 슬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는 것입니다. "골짜기 마다 돋우워지며" 라는 말씀은 아픔과 스라린 슬픈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아픈 마음과 상처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시기 를 축원합니다.
원한과 슬픔과 괴로운 상처를 가지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외냐하면 주님의 기쁨의 근원이며 평화와 행복의 본질이 기때문인 것입니다.
2.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져야 합니다. 산은 무엇을 말합니까 교만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헤롯왕을 보세요 왕의 왕 주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왕이라는 신분 때문에 또는 왕위가 위태로워서 왕이라는 직위를 악용해서 그는 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으려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지 위 때문에 불행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3. 고르지 않은 곡과 험한 곳이 평탄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베들레헴에 오셨을때 서기관들은 동방박사가 유대인의 왕 으로 나시는 이가 어디 계시뇨 라고 질문했을 때 그들은 미가 5:2 의 말씀을 찾아 대답은 잘 했으면서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손관 발이 말을 듣 지 않았습니다. 현실주의자 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 아는것 때문에 주님 을 만나지 못했던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관주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역사의 주인공,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 신 주님 께서 이 땅에 오셔서 문밖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돈없고 초라 한 주님의 부모들을 거절했습니다. 외형적으 보고 주님을 소흘히 여 겼던것입니다. 호적때문에 오랜만에 호황을 누리고 장사가 잘 됨으로 해서 자신의삶에 도취되어 가장 중요한 것을 소흘히 여기는 사람들, 주님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탄의 기쁨을 누릴수가 없는것입니다. 우리는 땀흘려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려면 돈도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쳐버리는 사람, 순간의 일때문에 영원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어리썩은 사람인 것입니다. 롬멜장군 프랑스 남부해안을 지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1944 년 5월말에 안개가 자욱해서 작전개시가 불가능하다고 며칠간 쉬는 것 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침 6월 6일은 그의 아내의 생일이어서 베를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 다음날 연합군이 느르망디 상륙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롬멜이 아내를 축하하기 위해 서 베를린으로 돌아간 것이 독일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던 것 입니다. 작은 일 때문에 결정적인 중대한 실수를 했던 것입니다. 5절-결론 성탄절은 주님을 모시는 우리들에게는 감격과 기쁨과 환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탄의 종은 주님을 영접하는 겸손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하여 울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평탄한 길을 예비한 자를 위하립 비출것입니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을 얼마 앞두고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 며 예비하는 자세로 주님을 맞이합시다. 그리할때 주님의 영광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될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