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아리엘이여 (사29:1-24)
본문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연부 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 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내가 너를 사면으로 들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 대를 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 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 에서 날 것이리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 이사야서29장을 보면 우리에게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것은 '아리엘'이라는 단어힘니다. 아리엘은 예루살 렘의 별명입니다. 야곱을 이스라앨 이라고도 하고 여수룬이라고 도 하이 예루살렘을 시온이라고도 하고 아리엘이라고도 합니다. 아 리엘은 세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버 은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곧, 에루살렘은 하나님 의 거룩한 도성으로서 다윗이 진올 친 곳이요. 하나님의 법궤를 모 신 곳이요, 솔로몬왕이 하나님 의 이름을 두는 전을 건축한 곳입니다. 두번째 은 하나떰의 사자입니다. 사자는 동믈들 중에서 왕 중의 왈이요, 무적의 짐승입니다. 사자가 백수의 왕으로서 모든 다른 동믈들의 왕으로 군림하 이 모든 세상 백성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경배하리라는 써서 예루살램을 아리엘이라고 명명한 것 입니다 세번째 뜻은 하나님의 제단입니다. 제단 가운데서도 특히 화로를 뜻합니다. 제사를 드릴 때 그 제 물을 번제로 사르는 화로는 성전의 가장 중심적인 부분입니다. 화로에 번제물이 올라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블 이 제물을 사르는 광경을 아리엘이라는 단어가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특별히 위와 같은 세가지 뜻을 가진 아리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신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첫번째 의미)으로서 하나님의 축복 을 보장받 은 강한 성읍이었습니다 (두번째 의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도성에서 절기가 되면 하나님 앞 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축복받은 강한 도성 예루살렘이 불이 이글이 글 타오르는 화로와 같은 상태 곧 무서운 심판과 재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세번째 의미). 제 단에서 제물이 뜨 거운 불에 타는 것과도 같은 괴로운 환란이 예루살렘에 찾아오 게 되러라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술을 통 하여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친 성읍이여 연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 니 네가 슬퍼하고 애 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사 29:12)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처럼 예루살렘에 임할 재난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를 살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마련하신 진노의 채찍은 외적 의 침 입이라는 형태로 찾아오게 됩니다. 이방군대가 아리엘을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대를 쌓아 공격할 것이라고 3절이 예 언합니다. 예루살렘성곽은 북쪽을 제외한 다른 편 성곽들은 쉽 게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방 군대는 예루살렘 공격 을 단념하지 않고 수은 병력을 동원하여 성 사면을 모두 포위 해 버림으 로써 예루살렘 성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고 예 루살렘 성벽 에 인공언덕을 만들어 예루살 렘 성벽과 높이를 같 게 한 다음 성을 타넘고 들어가 공격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 리고 그 인 공언덕 위에는 또 다시 높은 대를 세우고 성안의 동정 을 살피며 성안을 교란시켰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성 안에 있던 백성들은 크게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예루 살렘의 상태 를 t절은 신접한 자의 목소리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불분명하고 부자연스 러운 소리요, 새들 이 내는 재잘거리는 소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4절은 이렇 게 말합니다. '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 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 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 곧 아리엘에게 이같은 재난이 찾아와야 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아리엘에게 재난이 임하게 된 이유를 본문9 16절에서 네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리엘이 영적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아리엘에게 재난이 찾아 오리라고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9 절 ). 아브라함 링컨은 인간에게 주어 진 최대의 선물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닫혀졌을 때 비극 은 초 래된다고 예언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성경이 들리워져 있고 주일낮 및 저녁 예배와 수요 예배를 통해서 말씀 이 선포되고 있으나 우리의 영적인 귀가 닫척져 있어서 말씀을 듣지 못 할 때 우리는 재난을 당한 아리엘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소경과도 같습니다. 소경은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합니다. 소경은 해가 떴는지 졌는지, 밤인지 낮인지 전혀 구분을 못합니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어떻게 떠서 돌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꽃의 아름다움도 자연의 신비로운 변 화도 모릅니다. 이처 럼 영적인 소경은 하나님이 계시지만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느 끼지 못하고, 그의 지시를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세상으로 향한 그의 육신의 눈은 잘 발달되어 있으나 영적인 눈은 닫혀 있는 것니다. 성경을 액세서리처럼 들고 다니고 장식용으로 책장에 꽂아 두기만 하고 펴서 읽지 않는 자는 말씀에 대하여 닫힌 자입니다. 영적인 귀가 열리고 영안이 열려야만 아리엘 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둘째로, 아리엘이 술에 취한 자처럼 세상에 취했기 때문에 재난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케 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 회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9절하, 10절 ). 술에 취하 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방향감각을 잃게 됩니다. 운전할 때 절대 금주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 열락에 취하면 영적 감각 이 무디어지고 마침내는 영적인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그가 옮기는 발걸음은 천 국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지옥을 향한 발걸음이 되고 맙니다. 세상 열락에 취한 사람이 가는 길 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갈증이 해갈되지 않으며,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길이 요, 꿈 꾸는 것과 같은 헛된 길입니다. 이런 자들의 길을 이사야는 7절과 8절에서 이렇게 한탄하고 있습니다.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보장을 쳐서 곤고케 하는 모 든 자는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되리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 지라도 깨면 그 속이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 에 마셨을지 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 와 같으리라'. 술에 취했다가 깨어난 사람은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고는 또 술을 마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술이 깬 뒤에 또다시 심한 갈증 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옛날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황당몽(줌) 이라는 고사 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주막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어가 게 되 었습니다. 저녁을 주문해 놓은 이 길손이 목침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 길손은 꿈속에서 높은 벼슬을 하는 어 느 부호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행복에 젖어들어 가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흔들어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주막 주인이 저녁을 먹으라고 흔들 어 캐웠던 것 입니다. 세상 열락에 취한 사람의 한평생이 바 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지나간다' (요일 2:17)고 말했으며 솔로몬은 '내 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 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전 22)고 고백했 던 것 입니다. 우리가 헛되고 꿈같은 세상 열락의 술에서 깨어나 우리 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돌이키지 아니하면 아리엘의 재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봉하여졌기 때문에 예루살렘성에 재난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 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 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11 절 ).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소경이 되었고 세상 열락에 심 취해 있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심 지어 선지자와 선견자들의 눈까지 감겼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보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과 귀가. 어떤 사업이 인기가 있고 전망이 좋은 지, 어떤 학교가 좋다든지, 우리 몸에 좋은 보약이나 음식물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세속적인 일들 에 대해서는 밝고 환하게 트어져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이 무엇을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는가 에 대해서는 아주 무관심하 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문은 우리에게는 닫혀 있는 것입니다. 세속적 인 일에 눈과 귀가 밝은 것을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 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아울러 영의 눈과 귀도 밝게 열려 있어야 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의 영의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과 생명의 길이 어 느 길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 이 사실을 신명기 28장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 으로 하는 모든 일 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게 복을 주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 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 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 도 너는 꾸지 아 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 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 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 고 지켜 행하 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을 떠나 좌 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 라 섬기지 아니하 면 이와 같으리라'(신 28:1. 8, 12_14). 그러나 우리가 말씀에 대하먹 우러의 영 의 눈파 귀블 열지 압음으로써 하나님의 말 이 우리를 향해 닫혀져 있으면 아리엘의 재난이 우리에게 찾아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8장58, 59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 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 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 니 그 제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 하고 오랠 것이라.
넷째로, 아리엘의 패망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외식적이며 형식적인 신앙생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본문13절에서 16절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 엘 백성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 한다고 했으나 그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13절에 나 타나 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 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 은 내게서 멀리 떠났 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사람의 가르침을 더 높이는 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증히 여기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올 때, 목사님이 전화걸고 구역장이 전화하니까 체 면을 봐서 나가주는 것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이요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태도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라고 하는 신앙생 ! 사람 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신앙생 ! 마음은 바치지 않고 몸만 나온 신앙생활 ! 이러한 신앙생활은 하나님 을 업신 여기는 태도 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 시는 것은 과연 그 마음으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은 멀리 두고 형식만 지키는 예 배를 드렸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시고 이제 한 번 뒤집어 엎으 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두운데 서, 사람이 보지않는 은밀한 곳에서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눈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므로 15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 를 보랴 누 가 우리를 알랴하니' 그리하여 16절에 계속 서술되어 있는 것처 럼 그들의 행위의 패 리함이 심해졌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을 진흙처럼 업신여겼으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었음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짓지 않았다고 했으며, 하나님을 총명함 딤 이 없는 미련한 자라고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어줍잖은 인간의 지혜를 의지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 길은 재난으로 향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 인간의 가르침을 더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 겠다'고 본문 14절이 말합니다. 그 기이한 일이 무엇입니까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 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능가하려던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 의 심판을 불러들였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무엇 때문에 지 혜를 짜냅니까 제난을 피하기 위해 서 입니다.
그런데 재난을 피하기 위해 지혜를 짜냈는데. 그것이 오히려 재난을 초래했으 니 기이 한 일 아닙니까 이 말은 또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재 난이 임했을 때 인간의 그 콧대 높던 지 혜가 어디로 갔는지 흔적 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재난의 날에 얼 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평범하고 순조롭게 되어 갈때에는 인간의 지혜가 을 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만나면 그 지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거두어 가시고 총명을 가리우 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 지혜는 단순히 세상적인 지혜만이 아니라 지 식 가운데서도 가장 고 상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 식, 천국을 아는 지식, 말을 아는 지식까지도 포함하여 거두 어 가십니다. 신앙생활이 형식으로 흐르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 이 나타나면 세상적인 의미의 지혜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영적인 지혜까지도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는 재난 중의 재난이요, 가장 절망적인 재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명기 6장4절에서 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주를 사랑하며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 리엘의 재난을 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론으로, 그러나 이사야는 아리엘의 재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엘의 회복도 아 울러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는 징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 닙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 여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실 때는 징계만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나 놀라운 회복의 때를 같이 선포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징계는 회복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 로 소경이 되었던 아리엘 의 영안이 열릴 때가 올 것입니다. 세상 열락에 취했던 자들이 세상 열 락의 허무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취할 날이 을 것 입니다. 봉하여졌던 계시의 말씀이 열리는 날이 을 것입니다. 형식주의에 빠져 은밀히 악을 도모하던 자들이 마음으로 깊이 하나님께 예 배하는 날이 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본문 17-24절 이 말하는 요지입니다 이 날은 역사적인 의미 와 개인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역사적 으로 볼 때 이 날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오시면 귀머거리가 듣고, 소경이 보며, 겸손한 자는 기쁨을 누 리고 즐거워하나 강포한 자는 소멸 되는 회복의 은혜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부J
I러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혼미하던 자가 총명해지며 원망하던 자가 교훈 을 받는 때가 그리스도와 더블어 시작됩니다. 슬픔의 아리엘이 기쁨의 아리엘로 바뀌는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보면 이 날 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 열락에 빠져있던 생을 청산하고 회개 하고 돌아와 영안이 열리는 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때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마음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세상 열락에 빠져서 아직도 영적 으로 소경이 된 상태 에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말씀이 여러분에게 닫혀 있지 않 습니까 아 직도 형식적인 신앙생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빨리 그 상태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언제 아리엘에 게 임했던 재난이 여러분에게 임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일어나서 나오면, 여러분은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맛볼 것 입니다. 여러분의 탄식과 절망이 바뀌어 찬송과 소망이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합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 하여 가라사 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 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여호와께서 시온 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사14:24, 27, 32).
그런데 이렇게 축복받은 강한 도성 예루살렘이 불이 이글이 글 타오르는 화로와 같은 상태 곧 무서운 심판과 재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세번째 의미). 제 단에서 제물이 뜨 거운 불에 타는 것과도 같은 괴로운 환란이 예루살렘에 찾아오 게 되러라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술을 통 하여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친 성읍이여 연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 니 네가 슬퍼하고 애 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사 29:12)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처럼 예루살렘에 임할 재난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를 살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마련하신 진노의 채찍은 외적 의 침 입이라는 형태로 찾아오게 됩니다. 이방군대가 아리엘을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대를 쌓아 공격할 것이라고 3절이 예 언합니다. 예루살렘성곽은 북쪽을 제외한 다른 편 성곽들은 쉽 게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방 군대는 예루살렘 공격 을 단념하지 않고 수은 병력을 동원하여 성 사면을 모두 포위 해 버림으 로써 예루살렘 성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고 예 루살렘 성벽 에 인공언덕을 만들어 예루살 렘 성벽과 높이를 같 게 한 다음 성을 타넘고 들어가 공격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 리고 그 인 공언덕 위에는 또 다시 높은 대를 세우고 성안의 동정 을 살피며 성안을 교란시켰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성 안에 있던 백성들은 크게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예루 살렘의 상태 를 t절은 신접한 자의 목소리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불분명하고 부자연스 러운 소리요, 새들 이 내는 재잘거리는 소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4절은 이렇 게 말합니다. '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 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 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 곧 아리엘에게 이같은 재난이 찾아와야 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아리엘에게 재난이 임하게 된 이유를 본문9 16절에서 네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리엘이 영적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아리엘에게 재난이 찾아 오리라고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9 절 ). 아브라함 링컨은 인간에게 주어 진 최대의 선물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닫혀졌을 때 비극 은 초 래된다고 예언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성경이 들리워져 있고 주일낮 및 저녁 예배와 수요 예배를 통해서 말씀 이 선포되고 있으나 우리의 영적인 귀가 닫척져 있어서 말씀을 듣지 못 할 때 우리는 재난을 당한 아리엘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소경과도 같습니다. 소경은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합니다. 소경은 해가 떴는지 졌는지, 밤인지 낮인지 전혀 구분을 못합니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어떻게 떠서 돌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꽃의 아름다움도 자연의 신비로운 변 화도 모릅니다. 이처 럼 영적인 소경은 하나님이 계시지만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느 끼지 못하고, 그의 지시를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세상으로 향한 그의 육신의 눈은 잘 발달되어 있으나 영적인 눈은 닫혀 있는 것니다. 성경을 액세서리처럼 들고 다니고 장식용으로 책장에 꽂아 두기만 하고 펴서 읽지 않는 자는 말씀에 대하여 닫힌 자입니다. 영적인 귀가 열리고 영안이 열려야만 아리엘 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둘째로, 아리엘이 술에 취한 자처럼 세상에 취했기 때문에 재난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케 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 회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9절하, 10절 ). 술에 취하 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방향감각을 잃게 됩니다. 운전할 때 절대 금주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 열락에 취하면 영적 감각 이 무디어지고 마침내는 영적인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그가 옮기는 발걸음은 천 국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지옥을 향한 발걸음이 되고 맙니다. 세상 열락에 취한 사람이 가는 길 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갈증이 해갈되지 않으며,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길이 요, 꿈 꾸는 것과 같은 헛된 길입니다. 이런 자들의 길을 이사야는 7절과 8절에서 이렇게 한탄하고 있습니다.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보장을 쳐서 곤고케 하는 모 든 자는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되리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 지라도 깨면 그 속이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 에 마셨을지 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 와 같으리라'. 술에 취했다가 깨어난 사람은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고는 또 술을 마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술이 깬 뒤에 또다시 심한 갈증 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옛날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황당몽(줌) 이라는 고사 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주막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어가 게 되 었습니다. 저녁을 주문해 놓은 이 길손이 목침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 길손은 꿈속에서 높은 벼슬을 하는 어 느 부호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행복에 젖어들어 가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흔들어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주막 주인이 저녁을 먹으라고 흔들 어 캐웠던 것 입니다. 세상 열락에 취한 사람의 한평생이 바 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지나간다' (요일 2:17)고 말했으며 솔로몬은 '내 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 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전 22)고 고백했 던 것 입니다. 우리가 헛되고 꿈같은 세상 열락의 술에서 깨어나 우리 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돌이키지 아니하면 아리엘의 재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봉하여졌기 때문에 예루살렘성에 재난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 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 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11 절 ).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소경이 되었고 세상 열락에 심 취해 있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심 지어 선지자와 선견자들의 눈까지 감겼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보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과 귀가. 어떤 사업이 인기가 있고 전망이 좋은 지, 어떤 학교가 좋다든지, 우리 몸에 좋은 보약이나 음식물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세속적인 일들 에 대해서는 밝고 환하게 트어져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이 무엇을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는가 에 대해서는 아주 무관심하 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문은 우리에게는 닫혀 있는 것입니다. 세속적 인 일에 눈과 귀가 밝은 것을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 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아울러 영의 눈과 귀도 밝게 열려 있어야 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의 영의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과 생명의 길이 어 느 길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 이 사실을 신명기 28장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 으로 하는 모든 일 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게 복을 주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 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 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 도 너는 꾸지 아 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 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 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 고 지켜 행하 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을 떠나 좌 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 라 섬기지 아니하 면 이와 같으리라'(신 28:1. 8, 12_14). 그러나 우리가 말씀에 대하먹 우러의 영 의 눈파 귀블 열지 압음으로써 하나님의 말 이 우리를 향해 닫혀져 있으면 아리엘의 재난이 우리에게 찾아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8장58, 59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 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 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 니 그 제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 하고 오랠 것이라.
넷째로, 아리엘의 패망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외식적이며 형식적인 신앙생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본문13절에서 16절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 엘 백성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 한다고 했으나 그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13절에 나 타나 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 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 은 내게서 멀리 떠났 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사람의 가르침을 더 높이는 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증히 여기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올 때, 목사님이 전화걸고 구역장이 전화하니까 체 면을 봐서 나가주는 것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이요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태도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라고 하는 신앙생 ! 사람 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신앙생 ! 마음은 바치지 않고 몸만 나온 신앙생활 ! 이러한 신앙생활은 하나님 을 업신 여기는 태도 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 시는 것은 과연 그 마음으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은 멀리 두고 형식만 지키는 예 배를 드렸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시고 이제 한 번 뒤집어 엎으 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두운데 서, 사람이 보지않는 은밀한 곳에서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눈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므로 15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 를 보랴 누 가 우리를 알랴하니' 그리하여 16절에 계속 서술되어 있는 것처 럼 그들의 행위의 패 리함이 심해졌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을 진흙처럼 업신여겼으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었음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짓지 않았다고 했으며, 하나님을 총명함 딤 이 없는 미련한 자라고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어줍잖은 인간의 지혜를 의지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 길은 재난으로 향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 인간의 가르침을 더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 겠다'고 본문 14절이 말합니다. 그 기이한 일이 무엇입니까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 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능가하려던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 의 심판을 불러들였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무엇 때문에 지 혜를 짜냅니까 제난을 피하기 위해 서 입니다.
그런데 재난을 피하기 위해 지혜를 짜냈는데. 그것이 오히려 재난을 초래했으 니 기이 한 일 아닙니까 이 말은 또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재 난이 임했을 때 인간의 그 콧대 높던 지 혜가 어디로 갔는지 흔적 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재난의 날에 얼 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평범하고 순조롭게 되어 갈때에는 인간의 지혜가 을 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만나면 그 지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거두어 가시고 총명을 가리우 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 지혜는 단순히 세상적인 지혜만이 아니라 지 식 가운데서도 가장 고 상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 식, 천국을 아는 지식, 말을 아는 지식까지도 포함하여 거두 어 가십니다. 신앙생활이 형식으로 흐르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 이 나타나면 세상적인 의미의 지혜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영적인 지혜까지도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는 재난 중의 재난이요, 가장 절망적인 재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명기 6장4절에서 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주를 사랑하며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 리엘의 재난을 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론으로, 그러나 이사야는 아리엘의 재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엘의 회복도 아 울러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는 징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 닙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 여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실 때는 징계만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나 놀라운 회복의 때를 같이 선포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징계는 회복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 로 소경이 되었던 아리엘 의 영안이 열릴 때가 올 것입니다. 세상 열락에 취했던 자들이 세상 열 락의 허무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취할 날이 을 것 입니다. 봉하여졌던 계시의 말씀이 열리는 날이 을 것입니다. 형식주의에 빠져 은밀히 악을 도모하던 자들이 마음으로 깊이 하나님께 예 배하는 날이 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본문 17-24절 이 말하는 요지입니다 이 날은 역사적인 의미 와 개인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역사적 으로 볼 때 이 날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오시면 귀머거리가 듣고, 소경이 보며, 겸손한 자는 기쁨을 누 리고 즐거워하나 강포한 자는 소멸 되는 회복의 은혜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부J
I러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혼미하던 자가 총명해지며 원망하던 자가 교훈 을 받는 때가 그리스도와 더블어 시작됩니다. 슬픔의 아리엘이 기쁨의 아리엘로 바뀌는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보면 이 날 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 열락에 빠져있던 생을 청산하고 회개 하고 돌아와 영안이 열리는 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때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마음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세상 열락에 빠져서 아직도 영적 으로 소경이 된 상태 에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말씀이 여러분에게 닫혀 있지 않 습니까 아 직도 형식적인 신앙생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빨리 그 상태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언제 아리엘에 게 임했던 재난이 여러분에게 임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일어나서 나오면, 여러분은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맛볼 것 입니다. 여러분의 탄식과 절망이 바뀌어 찬송과 소망이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합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 하여 가라사 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 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여호와께서 시온 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사14:24, 27,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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