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 구주와 오실 심판 (사9:6-7,눅2:11)
본문
교회력의 시작은 대강절(Advent)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교회력으로는 신년이 되며 따라서 대강절 첫째주일이 신년 정월 초하루가 되는 셈이다. 대강절 첫째주일은 해마다 11월 27일에서 12월 3일 사이의 어느 한 날에 온다. 그리고 대강절은 늘 4주일을 지키게 되는데 대강절절기는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22 일에서 28일간의 길이를 가진다. 대강절이란 뜻은 "도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공항에서 혹은 기차역에서 오시기 로 약속이 되어있는 식구들이나 손님을 가다리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가 대강절(대림절)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대강절을 지키는 의미는 이미 2천년전에 이땅에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구주탄일을 회상하면서 또다시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말씀과 영으로 새롭게 임재해 주실 것을 기다리며 또한 아직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는 불신의 세계와 역사 속에 임재해 주실 것을 간절 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그리고 앞으로 마지막때에 영광의 주님으로 다시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계절로 지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감격과 기쁨이다. 말구유같은 우리의 더러운 마음에 구세주께서 탄생하신 것이다. 구주성탄절은 사망과 어두운 그늘 밑에 앉아있던 우리들에게 빛을 비춰 주시고 찾아오신 주님으로 인하여 벅찬 가슴으로 살 것을 새롭게 다짐하는 계절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뜻을 깨닫고 어려운 이 시대를 용기와 기쁨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메시지를 선포하는 계절입니다. 말씀의 선포뿐만 아니라 말씀이 성육신 하신 것처럼 우리들의 눈길을 소외된 자들에게 돌리고 아직도 어두움의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일을 하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처음 예수님 오심은 그리스도로, 구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고 하셨다.
그러므로 처음 예수님의 오심은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일로 3가지 유형의 맞는자를 볼 수 있다.
1) 예수님을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한자가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렸다. 메시야 대망사상은 구약의 중심을 이루었다. 4대 선지자들과 12 소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온 이스라엘 땅에 전파 되었던 것이다. 그후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으나 만나지 못하고만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것은 그들의 메시야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없는 시골 목수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30세가 될때까지 나사렛에서 목수 노릇이 나 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기는 너무나 억울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대제사장, 서기관, 바래새인, 장로들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분이 오셨 음에도 불구하고 영접은 커녕 박대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다.
2)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만난자가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탄생하신지 여드레가 되자 할례를 받고 결례의 날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때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가 있었으니 곧 시므온이란 사람입니다(눅2:25).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을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당시 백성들은 메시야가 올때만이 이스라엘이 위로를 받게 되리라 확신 하였던 것이다.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실때 받는 위로를 가르킨다. (사40:1,49:13). '나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보게 하소서'란 내용으로 유대인들이 매일 기도하였다고 한다. 시므온은 이와같은 기도를 성전에서 계속해 왔던 것이다. 이 기도가 성취되어 결례의 날이 찼을때 그의 부모와 함께 성전에 오신 아기 메시 야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누가는 2장26절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그가 생전에 메시야를 만나기를 소원하면서 기도하며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나 감격하였던 것이다. 이 시므온은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만난 자들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눅2:36-38)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 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37 과부 된 지 팔십사년이 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 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3)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았으나 만난자가 있습니다. 오시리라 한 메시야가 예언된 구약을 믿지 못한 이방인이야 기다릴 줄 모르는 입장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메시야를 보내주시고 그들을 만나 주 셨다. 사도행전은 주로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된 기사를 기록해 놓은 역사서이다. 안디옥교회에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간데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들이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리라'(행15:3)고 기록하고 있다. 메시야를 대망하지도 아니한 이방인들이지만 복음을 통해 메시야를 만난 역사 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처음오신 그리스도는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장차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한다. 초림의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로 오셨으나 재림의 그리스도는 심판의 주로 오시게 된다. 초림의 주님의 초라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주의 당당한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재림하실 주님은 심판이 주업무임을 말하고 있다. 심판을 통해 상받을 자와 벌받을 자를 갈라놓게 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땅의 것 보다는 하늘의 것을 귀중히 여길줄 알아 야 한다. 이미 오신 그리스도의 구주탄일을 앞두고 장차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인간들은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불안과 불신 그리고 불확실성이라는 세가지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고통과 사망으로부터 해탈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소원해 왔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으로의 복귀, 즉 하나님께 나이가기를 바라며 구해 온 것이다. 이러한 인간 구원의을 바라고 노력한 것이 바로 종교의 형태를 지니고 나타났고, 갖가지의 종교가 이땅에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불안의 시대'라는 것을 핵문제를 세계의 문제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폴틸리히(P. Tillich)는 '존재의 불안, 양심의 불안, 죽음의 불안'이 그 불안 자체이 며 더우기 종말의 때가 가깝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인구의 폭발, 환경의 오염, 자원의 고갈, 그리고 핵무기의 공포에 위협을 느낀 과학자들을 비롯해서 현대 지성인들이 '앞으로 100년을 존속하기 어려우리라'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염려를 갖는다. 그래서 EC당국은 이에 '아이는 둘만 낳고, 기술대신에 예술을 숭상하고, 개발 대신에 자원을 아끼고, 그리고난 다음 역사의 종말을 잊지말라'고 했다. 딤후 3:1에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야기될 인간사회의 도덕적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자기사랑, 돈사랑, 교만, 부모거역, 무절제, 배반, 쾌락사랑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역적상태를 말하고 있다. 마태 24:5에 말세의 특징을 거짓 선지자 횡행, 기근과 지진등 재난이 심하고 나라와 나라사이에 전쟁의 소식 그리고 서로 미워하고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의 식어짐을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지금이 종말의 때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긴급한 때이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며 주님의 재림에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24:44) 고 경고의 말씀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므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불변의 진리이다. 악한자가 받는 형벌은 이땅에서도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을 통해 주어지는 심판 때는 인간의 상상을 넘을 것이다. 이런자는 모든 '무서운 마음으로 삼판을 기다리고'(히10:27)있는 자들이다. 심판은 결코 형벌을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한자에게 상을 주시기 위해 심판은 있습니다. 오늘 주일은 대강절 셋째 주일이다. 주님의 구주탄일을 앞두고 2천년전에 이미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는 축복을 받아야 하고 또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절기로 삼아야 한다. 대강절을 맞으며 오신 주님을 구주로 믿는 현재의 경험과,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미래의 경험될 것을 신앙화 하여야 한다. 년말의 들뜬 기분과 상혼에(장사에 심혈을 기울여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는 상인 의 정신)이 지배되던 정신과 습관에서 벗어나, 작고, 조용한 베들레헴 마을에서 소박 한 말구유에 탄생하신 주님을 맞기 위하여 결정적이고도 필수적인 준비기간을 살아 야합니다. 이제 대강절의 메시지는 예언의 성취와, 준비와, 기다림에 초점을 맞추고 재림을 대망하는 자에게 회개와 참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사순절과 함께 참회의 절기로 지키는 의미를 오늘의 교회가 다시 구현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교회력으로는 신년이 되며 따라서 대강절 첫째주일이 신년 정월 초하루가 되는 셈이다. 대강절 첫째주일은 해마다 11월 27일에서 12월 3일 사이의 어느 한 날에 온다. 그리고 대강절은 늘 4주일을 지키게 되는데 대강절절기는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22 일에서 28일간의 길이를 가진다. 대강절이란 뜻은 "도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공항에서 혹은 기차역에서 오시기 로 약속이 되어있는 식구들이나 손님을 가다리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가 대강절(대림절)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대강절을 지키는 의미는 이미 2천년전에 이땅에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구주탄일을 회상하면서 또다시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말씀과 영으로 새롭게 임재해 주실 것을 기다리며 또한 아직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는 불신의 세계와 역사 속에 임재해 주실 것을 간절 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그리고 앞으로 마지막때에 영광의 주님으로 다시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계절로 지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감격과 기쁨이다. 말구유같은 우리의 더러운 마음에 구세주께서 탄생하신 것이다. 구주성탄절은 사망과 어두운 그늘 밑에 앉아있던 우리들에게 빛을 비춰 주시고 찾아오신 주님으로 인하여 벅찬 가슴으로 살 것을 새롭게 다짐하는 계절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뜻을 깨닫고 어려운 이 시대를 용기와 기쁨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메시지를 선포하는 계절입니다. 말씀의 선포뿐만 아니라 말씀이 성육신 하신 것처럼 우리들의 눈길을 소외된 자들에게 돌리고 아직도 어두움의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일을 하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처음 예수님 오심은 그리스도로, 구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고 하셨다.
그러므로 처음 예수님의 오심은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일로 3가지 유형의 맞는자를 볼 수 있다.
1) 예수님을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한자가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렸다. 메시야 대망사상은 구약의 중심을 이루었다. 4대 선지자들과 12 소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온 이스라엘 땅에 전파 되었던 것이다. 그후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으나 만나지 못하고만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것은 그들의 메시야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없는 시골 목수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30세가 될때까지 나사렛에서 목수 노릇이 나 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기는 너무나 억울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대제사장, 서기관, 바래새인, 장로들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분이 오셨 음에도 불구하고 영접은 커녕 박대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다.
2)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만난자가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탄생하신지 여드레가 되자 할례를 받고 결례의 날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때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가 있었으니 곧 시므온이란 사람입니다(눅2:25).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을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당시 백성들은 메시야가 올때만이 이스라엘이 위로를 받게 되리라 확신 하였던 것이다.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실때 받는 위로를 가르킨다. (사40:1,49:13). '나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보게 하소서'란 내용으로 유대인들이 매일 기도하였다고 한다. 시므온은 이와같은 기도를 성전에서 계속해 왔던 것이다. 이 기도가 성취되어 결례의 날이 찼을때 그의 부모와 함께 성전에 오신 아기 메시 야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누가는 2장26절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그가 생전에 메시야를 만나기를 소원하면서 기도하며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나 감격하였던 것이다. 이 시므온은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만난 자들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눅2:36-38)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 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37 과부 된 지 팔십사년이 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 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3)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았으나 만난자가 있습니다. 오시리라 한 메시야가 예언된 구약을 믿지 못한 이방인이야 기다릴 줄 모르는 입장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메시야를 보내주시고 그들을 만나 주 셨다. 사도행전은 주로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된 기사를 기록해 놓은 역사서이다. 안디옥교회에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간데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들이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리라'(행15:3)고 기록하고 있다. 메시야를 대망하지도 아니한 이방인들이지만 복음을 통해 메시야를 만난 역사 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처음오신 그리스도는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장차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한다. 초림의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로 오셨으나 재림의 그리스도는 심판의 주로 오시게 된다. 초림의 주님의 초라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주의 당당한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재림하실 주님은 심판이 주업무임을 말하고 있다. 심판을 통해 상받을 자와 벌받을 자를 갈라놓게 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땅의 것 보다는 하늘의 것을 귀중히 여길줄 알아 야 한다. 이미 오신 그리스도의 구주탄일을 앞두고 장차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인간들은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불안과 불신 그리고 불확실성이라는 세가지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고통과 사망으로부터 해탈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소원해 왔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으로의 복귀, 즉 하나님께 나이가기를 바라며 구해 온 것이다. 이러한 인간 구원의을 바라고 노력한 것이 바로 종교의 형태를 지니고 나타났고, 갖가지의 종교가 이땅에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불안의 시대'라는 것을 핵문제를 세계의 문제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폴틸리히(P. Tillich)는 '존재의 불안, 양심의 불안, 죽음의 불안'이 그 불안 자체이 며 더우기 종말의 때가 가깝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인구의 폭발, 환경의 오염, 자원의 고갈, 그리고 핵무기의 공포에 위협을 느낀 과학자들을 비롯해서 현대 지성인들이 '앞으로 100년을 존속하기 어려우리라'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염려를 갖는다. 그래서 EC당국은 이에 '아이는 둘만 낳고, 기술대신에 예술을 숭상하고, 개발 대신에 자원을 아끼고, 그리고난 다음 역사의 종말을 잊지말라'고 했다. 딤후 3:1에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야기될 인간사회의 도덕적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자기사랑, 돈사랑, 교만, 부모거역, 무절제, 배반, 쾌락사랑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역적상태를 말하고 있다. 마태 24:5에 말세의 특징을 거짓 선지자 횡행, 기근과 지진등 재난이 심하고 나라와 나라사이에 전쟁의 소식 그리고 서로 미워하고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의 식어짐을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지금이 종말의 때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긴급한 때이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며 주님의 재림에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24:44) 고 경고의 말씀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므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불변의 진리이다. 악한자가 받는 형벌은 이땅에서도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을 통해 주어지는 심판 때는 인간의 상상을 넘을 것이다. 이런자는 모든 '무서운 마음으로 삼판을 기다리고'(히10:27)있는 자들이다. 심판은 결코 형벌을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한자에게 상을 주시기 위해 심판은 있습니다. 오늘 주일은 대강절 셋째 주일이다. 주님의 구주탄일을 앞두고 2천년전에 이미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는 축복을 받아야 하고 또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절기로 삼아야 한다. 대강절을 맞으며 오신 주님을 구주로 믿는 현재의 경험과,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미래의 경험될 것을 신앙화 하여야 한다. 년말의 들뜬 기분과 상혼에(장사에 심혈을 기울여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는 상인 의 정신)이 지배되던 정신과 습관에서 벗어나, 작고, 조용한 베들레헴 마을에서 소박 한 말구유에 탄생하신 주님을 맞기 위하여 결정적이고도 필수적인 준비기간을 살아 야합니다. 이제 대강절의 메시지는 예언의 성취와, 준비와, 기다림에 초점을 맞추고 재림을 대망하는 자에게 회개와 참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사순절과 함께 참회의 절기로 지키는 의미를 오늘의 교회가 다시 구현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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