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조를 구하라 (사7:1-25)
본문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데서 든지 은데서든지 구하라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 여 청컨대 들을찌어다 너회가 사람을 괴 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휘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 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 누이라 하리라' 하나떰은 자기 백성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여 러가지 방법으로 찾 아와 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원하실 때를 민감하게 간파하는 영안 이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로 기록된 말을 통 하여 우리에게 찾아 오십니다. 우리들이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말을 읽올 때, 그룹으로 모여서 주의 말을 같이 공부할 때, 강단을 통하여 선포되는 설교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 넘은 우리 간에 우리에게 찾아 오시기도 합니다. 서 찾아 오시기도 하고, 신비한 환상을 가 간절 하게 기도하는 시 하나님은 또한 꿈을 통해 통해서 우리의 길을 지시 환경을 통해서 찾아 오기도 하기도 하시며, 때로는 하나텀은 인칸을 통해서 의 훈계를 통해저, 친구 고를 통해서. 목사나 상담 자의 권고를 통해다. 이 하십니다. 찻아 오기도 하십니다. 부모님과 스숭 의 권고를 해서, 남편이나 아내의 충 서 찾아 오기도 합니 처럼 다양한 길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하실 때, 그 그 말에 순종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이 처럼 찾아와 말하실 때는 대개 비
I 많습니다. 이때 우리들이 주넘의 말 말을 재빨리 간파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떰께서 상(쌈)한 상황일 경우 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으면,니다.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수가 있읍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7장의 내용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 이사야를 통해 찾아 오셔서 말하신 일올 하스왕에게 선지자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상 기록하고 있습니다. 황에 처해 `있는 아하스왕에게 찾아 오셨으며. 하나님이 아하스 이며,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 에게 찾아오셔서 주신 말은 무엇 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하나떰이 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 의지하지 않는 마지막으로 취한 조치는 어 은 심령이 완악하여 하나님을 자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샘맴WMM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믿음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말하신 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맞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완악하고 완고 한 심령 을 떨쳐 버리지 않고 있을 때도 특별히 찾아 오십니다. 그젓은 자녀가 악한 일을 계속할 때 그를 꾸짖어 돌이키도록 하 기 위해 블러 세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긴박한 부르심이 요, 책망의 성격이 있는 부르심이요. 어떤 의미에서는 비극의 부르심이라코 할 수 있겠습니다. 아하스가 유다의 왕으로 등극한 731년 무렵, 유다왕국은 국력 이 심히 약해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북방에서는 다메섹과 이스 라엘의 압력이 계속되었고, 서쪽과 남쪽에서는 돌래과 에돔의 공격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아하스는 하나님 께 매달릴 생각을 하지 않고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 의 힘을 의지하여 유다의 안전을 지키려고 생각했습니다. 아하 스는 친앗수 르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친앗수르정책은 유다를 보호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유다의 멸 망을 앞당기는 길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 에게 찾아가서 친앗수르정을 의지하지 말 고, 여호와 하나님만 을 의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다메섹이 나 블레셋이 나 에돔은 형편없이 허약한 나라들이므로 조금도 두 려워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사야 선지 자는 이 나라들의 유다공략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고 예언함으로써, '삼림이 바 람에 혼들리는' (사7:2) 것처럼 블안해 하는 아하스와 유다백성 들을 안심시키고자 했습니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이렇게 권고 합니다. f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 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 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 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 엘의 아들을 그 증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 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 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 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내 에 에 브라임이 패하며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 회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 라' (사7:4-9),
그런데 아하스는 이와갈은 이사야의 권고를 듣고 어떻게 반응 했습니까 친앗수르정책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까 아닙니다., 아하스는 이사야의 권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완고하 고 강팍한 마음을 가진 아하스는 미결한 소처럼 여전히 친앗수 르정책을 밀고 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말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하시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처럼 완고한 마음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마지막 경고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찾아 오시지 않을 수 없게 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다참다 못해 마침내 경고의 말을 들 고 찾아 오실 때 까지 우리의 완악한 심령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평범하게 들 려오는 주의 음 성을 듣지 않다가, 매주일 목사님이 설교시간을 통해서 들려주는 권고의 말은 컨성으로 홀러 보 내다가, 마침 내 무서운 질병과 실패의 채쩍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에야 잘못을 깨닫고 겸손해진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찾아 오시기 전에. 심령의 완고함을 버 리십시 요.,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포기하십시요.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 하기를 포기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요.
둘째, 완고한 아하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징조를 구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본문 10절과 1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되 깊은데서든지 높은데서든지 구하라. "깊은데' 라는 말은 바다 깊은 속 을 가리킵니다. '높은데'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하늘과 땅 어느 영에서든지 마음대로 한번 징조를 구해보라는 것입니다. '징조를 구하라'는 명령은 아하스에게 매우 적합한 명령입니다. 징조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베푸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뜻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이 명령을 주셨 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권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 기 위한 것입니다. 아하스와 유다왕국은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하스가 휘하 에 거느리고 있는 군대를 가지고 대응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상황입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모략을 지닌 지휘 관이 있어도 세력이 너무나 크게 차이나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금 아하스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아무 리 계산해 봐야 승산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스는 앗 수르 군대의 힘을 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앗수르군을 의지하 지 말라. 불가능한 상황속에서도 가능하도록 초자연적 기적을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J 그러면, 하나님이 능히 너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능력을 베풀어서 아하스와 유다 왕국을 보호해 줄 만반의 준비 를 하고, 아하스가 마음을 돌이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징조를 구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으로 계산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자 신의 얄팍한 꾀를 의지하여 인생을 설계하려 하지 말고, 기도함 으로써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위기상황을 맞이할 때, 세상의 지혜에 먼저 의지하여 그 상황을 극복하려 하지 말 고, 먼저 하나님께 의지하여 극복하라는 명령입니다. 불가능한 상황속에서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그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것이 아 브라함의 삶의 특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죽은 자 를 살 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고 로마서 4장 1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 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컨능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은 합 리적인 인간의 세계에서는 절대 블가능한 일입니다. 없는 것을 어떻게 있게 합니까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살리시 고.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껀능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아브 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계속 해서 로마서 4장 19절-22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묘사합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 하여지지 아니 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 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이 되려면, 불가능을 가능 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 경고로서 찾아 오시는 하나님의 음성마저도 거부하면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아하스에게 찾아 오 셔서 아하스가 하나님의 권능을 의 지하여 보호받기를 바라셨습니다. 1러나 아하스는 어떤 반응를 보였습니까 본문 12절에 아하스 의 반응이 나타나 있습니다.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 지 아니하=K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 하지 아니하=K나이다. ' 이와같은 아하스의 반응은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면 훌륭한 신 앙처럼 보 입니다.
왜냐하면 아하스는 지금 감히 하나님을 시험 하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 16절에 보면. 맛 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 같이 너회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엄위한 명명 이 있습니다. 아하스는 이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도 인용하신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 말을 인 용하여 마귀의 유흑울 믈리쳤습니다.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은 중대한 죄임은 틀 림없슘니다.
1. 위선에 빠진 아하스
그런데 문제는 아하스가 신명기 6장 16절을 인층한 동기가 정 직하지 뭇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 선,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데 성경을 인용하신 반면 아하스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 역하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 하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심정도 없었고 하나님 을 시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아하스의 마음 깊 은 곳에는 자기가 계획했던 친앗수르정책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생각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완고 한 마음입니다. 회개하 지는 마음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자기자신의 계략과 앗수르의 군대가 더 믿음직했습니다. 차라리 아하스가 이와같은 자기의 불산앙을 솔직하게 드러냈 으면 좋았을 뻔 했 습니다. 아하스가 자기자신의 불신앙에서 돌 이키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같이 하나님깨 자기 심 정을 토로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도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JK습니다. 저는 여전히 앗수르군의 힘을 빌어서 이 위 기를 극복하고 싶습니다.'그러나 아하스는 이 마음을 교묘 하게 숨기고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에 층실하는 한 태도로 위장했 습니다. 아하스는 끝까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하스의 위선적인 태도가 더 가증스럽고 하나님의 마음을 탄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하스는 회칠한 무덤과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7장13절에서 자 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 셨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
I 하려느냐.'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말을 위장된 경건의 도구로 악용 해서는 안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컨 의 능력은 없는 자 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관에서도 그 태도가 진실해야 합니다.
2. 아하스의 운명 그러면, 아하스가 끝까지 완고한 마음을 꺾지 않고 불신앙에 서 돌이키지 않았을 때.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한마 디로 말해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하스와 유다왕국의 운명이 이사야 7장 17절에서 25절에 예언되어 있는데, 그 예언의 내용을 요 약하자면, 아하스는 자기 가 의지하던 앗수르군에 의해 마침내 비참하게 멸망당할 것이 요, 이 멸 망은 이제 결단코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앗 수르 군대 뿐만 아니라 애굽 군대까지 합세 하여 아하스를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17절은 앗수르군이 오는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진노의 날임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 를 떠날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20절은 앗수르군을 하나님께서 돈을 주고 빌려온 삭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 도 곧 앗수 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 시리라.' 머리털과 발 털과 수염을 깎는다는 말씀은 유다 민족을 인체에 비유하여, 유다민족 전체를 철저하게 심판하=t 다는 의지 의 표현입니다. 앗수르군이 유다를 노략하면 유다민족들이 재산과 밭을 강탈 당하여 극 히 가난해진 나머지 한 사람이 겨우 '어껀 암소 한마리 와 두마리의 양을 소유한'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21절). 장정들은 모두 전사하여 집에는 노인들과 어런아이들과 부녀자 들만이 남아 농사짓는 것은 엄두조차 못내고, 황꽤한 초원에서 나는 버터와 꿀을 가지고 연명하게 되는데, 너 무나 인구가 적어 그것도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22절은 말합니다. 땅이 황폐되었 으므로 맹수들이 아 통행이 꼰란하게 되고, 천 주(햐에 은 일 천개에 달하는 가치가 나가는 비옥한 포도원에는 황폐되어 질려 와 형극이 나고, 사람들은 살과 활을 가지고 짐승들을 물리치면 서 다녀야 하게끔 되리라는 것입니다(23-25절 ). 하나덤이 마지막으로 한탄하시면서 찾아와 경고하실 때도 듣 지 않고 불신앙을 고집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 게 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영원허 계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참으심을 거두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참 으심을 거두기까지 불신앙을 고집 해서는 안됨니다. 참으심을 거 두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마지=
I으로 하나님은 가장 처절한 돠멸의 상황속에서 인류의 최대의 소망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라고 마지닥으로 탄원하는 하나님의 탄 왼을 거부함으로써 유다왕국에는 칠 혹과 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심 은 그들에 대한 심판의 칼을 가는 절망의 상황입니다. 사 탄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상 황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했으니, 사탄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택한 백성을 향하여 심판의 올 갈고 계시니 어찌 악마의 군단들이 기뻐 날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와같은 칠흑과도 같이 어두운 반역의 시간에 하나님이 인류 최대의 소망의 약속의 씨앗을 뿌리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 소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에 게 주실 것이라., 아하스는 징조 를 거부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이 친히 징조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징 조는 아하스가 기대하던 것도 아니요, 유다백성들이 기대하던 세속적인 기대도 아닙니다. 그들이 전혀 상상조차도 못했던 징조입니다. 그 징조가 무엇입니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 을 낳 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한 아들을 약 속하셨는데, 이 아들은 처녀의 몸에서 성령님으로 잉태하게 될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거할 메시야 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사탄과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올 약속하신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 칸에 가장 놀라운 은혜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의 신비 가운데 하나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 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 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에겐 지난날 어두웠 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괴로웠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기 부끄러운 순간 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한 순간들. 게을렀던 순간들이 우리 모두 의 지난 시간들속에 있습니다. 만일 이런 시간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쓰라린 회한만으로 남는다면, 그저 어둡기만 한 순간으 로 남는다면. 우리에게 해악을 끼쳤던 순간으로만 남는다면, 얼 마나 허무하 겠습니까 사탄이 그 순간들을 무기로 삼아, 기뻐 춤추며 우리를 자학(딥응)의 세계로 몰아넣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으려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대항하겠습 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들을 역이용하여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시간으로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주십니다. 지난날 그와같 은 순간들을 생각 할 때, 하나님은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 요에서 더욱 겸 손하게 하며, 더욱 하나님만을 의존하게 하며, 자신을 쳐 복종 시키기 위하여 더 깊은 회개의 눈물을 홀리게 하여,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서 3장 5절 말씀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 의 의를 드러나게 하 면 무슨 말 하리요.' 가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 힌 순간은 인류 최대의 반역의 순간이요 사탄이 승리의 개가를 부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 의 길을 여심으로써 당신 사역의 놀라운 비밀을 드러내시고, '여 자의 후손은 네 머 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 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 창세기 3장 15절의 말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말을 맺=t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경고의 말씀을 들고 찾아오시기 전에 나를 의지하는 불 신앙에서 돌이켜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경고의 말씀을 들고 찾아오시는 상황에 이르 렀더라 도 신속하게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마지막 파멸로 치닫는 길을 피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에 게 있는 어두운 순간을 우리 신앙에 유익한 순 간으로 승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찬양하고 감사 드려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휘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 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 누이라 하리라' 하나떰은 자기 백성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여 러가지 방법으로 찾 아와 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원하실 때를 민감하게 간파하는 영안 이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로 기록된 말을 통 하여 우리에게 찾아 오십니다. 우리들이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말을 읽올 때, 그룹으로 모여서 주의 말을 같이 공부할 때, 강단을 통하여 선포되는 설교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 넘은 우리 간에 우리에게 찾아 오시기도 합니다. 서 찾아 오시기도 하고, 신비한 환상을 가 간절 하게 기도하는 시 하나님은 또한 꿈을 통해 통해서 우리의 길을 지시 환경을 통해서 찾아 오기도 하기도 하시며, 때로는 하나텀은 인칸을 통해서 의 훈계를 통해저, 친구 고를 통해서. 목사나 상담 자의 권고를 통해다. 이 하십니다. 찻아 오기도 하십니다. 부모님과 스숭 의 권고를 해서, 남편이나 아내의 충 서 찾아 오기도 합니 처럼 다양한 길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하실 때, 그 그 말에 순종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이 처럼 찾아와 말하실 때는 대개 비
I 많습니다. 이때 우리들이 주넘의 말 말을 재빨리 간파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떰께서 상(쌈)한 상황일 경우 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으면,니다.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수가 있읍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7장의 내용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 이사야를 통해 찾아 오셔서 말하신 일올 하스왕에게 선지자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상 기록하고 있습니다. 황에 처해 `있는 아하스왕에게 찾아 오셨으며. 하나님이 아하스 이며,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 에게 찾아오셔서 주신 말은 무엇 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하나떰이 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 의지하지 않는 마지막으로 취한 조치는 어 은 심령이 완악하여 하나님을 자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샘맴WMM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믿음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말하신 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맞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완악하고 완고 한 심령 을 떨쳐 버리지 않고 있을 때도 특별히 찾아 오십니다. 그젓은 자녀가 악한 일을 계속할 때 그를 꾸짖어 돌이키도록 하 기 위해 블러 세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긴박한 부르심이 요, 책망의 성격이 있는 부르심이요. 어떤 의미에서는 비극의 부르심이라코 할 수 있겠습니다. 아하스가 유다의 왕으로 등극한 731년 무렵, 유다왕국은 국력 이 심히 약해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북방에서는 다메섹과 이스 라엘의 압력이 계속되었고, 서쪽과 남쪽에서는 돌래과 에돔의 공격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아하스는 하나님 께 매달릴 생각을 하지 않고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 의 힘을 의지하여 유다의 안전을 지키려고 생각했습니다. 아하 스는 친앗수 르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친앗수르정책은 유다를 보호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유다의 멸 망을 앞당기는 길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 에게 찾아가서 친앗수르정을 의지하지 말 고, 여호와 하나님만 을 의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다메섹이 나 블레셋이 나 에돔은 형편없이 허약한 나라들이므로 조금도 두 려워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사야 선지 자는 이 나라들의 유다공략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고 예언함으로써, '삼림이 바 람에 혼들리는' (사7:2) 것처럼 블안해 하는 아하스와 유다백성 들을 안심시키고자 했습니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이렇게 권고 합니다. f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 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 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 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 엘의 아들을 그 증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 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 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 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내 에 에 브라임이 패하며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 회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 라' (사7:4-9),
그런데 아하스는 이와갈은 이사야의 권고를 듣고 어떻게 반응 했습니까 친앗수르정책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까 아닙니다., 아하스는 이사야의 권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완고하 고 강팍한 마음을 가진 아하스는 미결한 소처럼 여전히 친앗수 르정책을 밀고 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말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하시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처럼 완고한 마음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마지막 경고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찾아 오시지 않을 수 없게 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다참다 못해 마침내 경고의 말을 들 고 찾아 오실 때 까지 우리의 완악한 심령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평범하게 들 려오는 주의 음 성을 듣지 않다가, 매주일 목사님이 설교시간을 통해서 들려주는 권고의 말은 컨성으로 홀러 보 내다가, 마침 내 무서운 질병과 실패의 채쩍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에야 잘못을 깨닫고 겸손해진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찾아 오시기 전에. 심령의 완고함을 버 리십시 요.,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포기하십시요.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 하기를 포기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요.
둘째, 완고한 아하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징조를 구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본문 10절과 1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되 깊은데서든지 높은데서든지 구하라. "깊은데' 라는 말은 바다 깊은 속 을 가리킵니다. '높은데'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하늘과 땅 어느 영에서든지 마음대로 한번 징조를 구해보라는 것입니다. '징조를 구하라'는 명령은 아하스에게 매우 적합한 명령입니다. 징조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베푸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뜻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이 명령을 주셨 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권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 기 위한 것입니다. 아하스와 유다왕국은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하스가 휘하 에 거느리고 있는 군대를 가지고 대응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상황입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모략을 지닌 지휘 관이 있어도 세력이 너무나 크게 차이나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금 아하스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아무 리 계산해 봐야 승산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스는 앗 수르 군대의 힘을 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앗수르군을 의지하 지 말라. 불가능한 상황속에서도 가능하도록 초자연적 기적을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J 그러면, 하나님이 능히 너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능력을 베풀어서 아하스와 유다 왕국을 보호해 줄 만반의 준비 를 하고, 아하스가 마음을 돌이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징조를 구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으로 계산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자 신의 얄팍한 꾀를 의지하여 인생을 설계하려 하지 말고, 기도함 으로써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위기상황을 맞이할 때, 세상의 지혜에 먼저 의지하여 그 상황을 극복하려 하지 말 고, 먼저 하나님께 의지하여 극복하라는 명령입니다. 불가능한 상황속에서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그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것이 아 브라함의 삶의 특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죽은 자 를 살 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고 로마서 4장 1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 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컨능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은 합 리적인 인간의 세계에서는 절대 블가능한 일입니다. 없는 것을 어떻게 있게 합니까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살리시 고.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껀능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아브 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계속 해서 로마서 4장 19절-22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묘사합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 하여지지 아니 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 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이 되려면, 불가능을 가능 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 경고로서 찾아 오시는 하나님의 음성마저도 거부하면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아하스에게 찾아 오 셔서 아하스가 하나님의 권능을 의 지하여 보호받기를 바라셨습니다. 1러나 아하스는 어떤 반응를 보였습니까 본문 12절에 아하스 의 반응이 나타나 있습니다.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 지 아니하=K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 하지 아니하=K나이다. ' 이와같은 아하스의 반응은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면 훌륭한 신 앙처럼 보 입니다.
왜냐하면 아하스는 지금 감히 하나님을 시험 하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 16절에 보면. 맛 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 같이 너회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엄위한 명명 이 있습니다. 아하스는 이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도 인용하신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 말을 인 용하여 마귀의 유흑울 믈리쳤습니다.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은 중대한 죄임은 틀 림없슘니다.
1. 위선에 빠진 아하스
그런데 문제는 아하스가 신명기 6장 16절을 인층한 동기가 정 직하지 뭇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 선,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데 성경을 인용하신 반면 아하스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 역하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 하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심정도 없었고 하나님 을 시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아하스의 마음 깊 은 곳에는 자기가 계획했던 친앗수르정책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생각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완고 한 마음입니다. 회개하 지는 마음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자기자신의 계략과 앗수르의 군대가 더 믿음직했습니다. 차라리 아하스가 이와같은 자기의 불산앙을 솔직하게 드러냈 으면 좋았을 뻔 했 습니다. 아하스가 자기자신의 불신앙에서 돌 이키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같이 하나님깨 자기 심 정을 토로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도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JK습니다. 저는 여전히 앗수르군의 힘을 빌어서 이 위 기를 극복하고 싶습니다.'그러나 아하스는 이 마음을 교묘 하게 숨기고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에 층실하는 한 태도로 위장했 습니다. 아하스는 끝까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하스의 위선적인 태도가 더 가증스럽고 하나님의 마음을 탄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하스는 회칠한 무덤과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7장13절에서 자 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 셨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
I 하려느냐.'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말을 위장된 경건의 도구로 악용 해서는 안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컨 의 능력은 없는 자 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관에서도 그 태도가 진실해야 합니다.
2. 아하스의 운명 그러면, 아하스가 끝까지 완고한 마음을 꺾지 않고 불신앙에 서 돌이키지 않았을 때.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한마 디로 말해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하스와 유다왕국의 운명이 이사야 7장 17절에서 25절에 예언되어 있는데, 그 예언의 내용을 요 약하자면, 아하스는 자기 가 의지하던 앗수르군에 의해 마침내 비참하게 멸망당할 것이 요, 이 멸 망은 이제 결단코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앗 수르 군대 뿐만 아니라 애굽 군대까지 합세 하여 아하스를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17절은 앗수르군이 오는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진노의 날임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 를 떠날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20절은 앗수르군을 하나님께서 돈을 주고 빌려온 삭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 도 곧 앗수 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 시리라.' 머리털과 발 털과 수염을 깎는다는 말씀은 유다 민족을 인체에 비유하여, 유다민족 전체를 철저하게 심판하=t 다는 의지 의 표현입니다. 앗수르군이 유다를 노략하면 유다민족들이 재산과 밭을 강탈 당하여 극 히 가난해진 나머지 한 사람이 겨우 '어껀 암소 한마리 와 두마리의 양을 소유한'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21절). 장정들은 모두 전사하여 집에는 노인들과 어런아이들과 부녀자 들만이 남아 농사짓는 것은 엄두조차 못내고, 황꽤한 초원에서 나는 버터와 꿀을 가지고 연명하게 되는데, 너 무나 인구가 적어 그것도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22절은 말합니다. 땅이 황폐되었 으므로 맹수들이 아 통행이 꼰란하게 되고, 천 주(햐에 은 일 천개에 달하는 가치가 나가는 비옥한 포도원에는 황폐되어 질려 와 형극이 나고, 사람들은 살과 활을 가지고 짐승들을 물리치면 서 다녀야 하게끔 되리라는 것입니다(23-25절 ). 하나덤이 마지막으로 한탄하시면서 찾아와 경고하실 때도 듣 지 않고 불신앙을 고집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 게 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영원허 계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참으심을 거두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참 으심을 거두기까지 불신앙을 고집 해서는 안됨니다. 참으심을 거 두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마지=
I으로 하나님은 가장 처절한 돠멸의 상황속에서 인류의 최대의 소망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라고 마지닥으로 탄원하는 하나님의 탄 왼을 거부함으로써 유다왕국에는 칠 혹과 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심 은 그들에 대한 심판의 칼을 가는 절망의 상황입니다. 사 탄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상 황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했으니, 사탄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택한 백성을 향하여 심판의 올 갈고 계시니 어찌 악마의 군단들이 기뻐 날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와같은 칠흑과도 같이 어두운 반역의 시간에 하나님이 인류 최대의 소망의 약속의 씨앗을 뿌리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 소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에 게 주실 것이라., 아하스는 징조 를 거부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이 친히 징조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징 조는 아하스가 기대하던 것도 아니요, 유다백성들이 기대하던 세속적인 기대도 아닙니다. 그들이 전혀 상상조차도 못했던 징조입니다. 그 징조가 무엇입니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 을 낳 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한 아들을 약 속하셨는데, 이 아들은 처녀의 몸에서 성령님으로 잉태하게 될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거할 메시야 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사탄과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올 약속하신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 칸에 가장 놀라운 은혜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의 신비 가운데 하나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 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 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에겐 지난날 어두웠 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괴로웠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기 부끄러운 순간 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한 순간들. 게을렀던 순간들이 우리 모두 의 지난 시간들속에 있습니다. 만일 이런 시간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쓰라린 회한만으로 남는다면, 그저 어둡기만 한 순간으 로 남는다면. 우리에게 해악을 끼쳤던 순간으로만 남는다면, 얼 마나 허무하 겠습니까 사탄이 그 순간들을 무기로 삼아, 기뻐 춤추며 우리를 자학(딥응)의 세계로 몰아넣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으려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대항하겠습 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들을 역이용하여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시간으로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주십니다. 지난날 그와같 은 순간들을 생각 할 때, 하나님은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 요에서 더욱 겸 손하게 하며, 더욱 하나님만을 의존하게 하며, 자신을 쳐 복종 시키기 위하여 더 깊은 회개의 눈물을 홀리게 하여,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서 3장 5절 말씀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 의 의를 드러나게 하 면 무슨 말 하리요.' 가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 힌 순간은 인류 최대의 반역의 순간이요 사탄이 승리의 개가를 부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 의 길을 여심으로써 당신 사역의 놀라운 비밀을 드러내시고, '여 자의 후손은 네 머 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 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 창세기 3장 15절의 말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말을 맺=t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경고의 말씀을 들고 찾아오시기 전에 나를 의지하는 불 신앙에서 돌이켜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경고의 말씀을 들고 찾아오시는 상황에 이르 렀더라 도 신속하게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마지막 파멸로 치닫는 길을 피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에 게 있는 어두운 순간을 우리 신앙에 유익한 순 간으로 승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찬양하고 감사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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