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경건의 의미 (사1:21-23)
본문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층 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 s노;;;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믈이 섞였도다 u네 방백들은 패역 하며 도적과 짝하며 다 뇌믈을 사랑하며 사례 믈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 의 송사를 수 리치 아니하는도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탄의 권세와 죽음의 왕노릇과 죄의 형벌에 붙잡혀 9 짝못하고 있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통 하여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동 시에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인 우리들에게 경건한 삶을 살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경컨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이처 럽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우리를 크게 당황하게 만드는 사실 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넘 당시에 경건한 삶올 살려고 그 어떤 부류의 사람들보다 도 더 힘써 노력한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그들의 경건생활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준엄한 책망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은 경건생활에 힘을 쓰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책망하셨 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 어가지 않고 들어 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23 1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경건생활에 힘썼는데, 그것이 오히 려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원 인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면, 얼마나 경악 할만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경건생을 아주 포기해 버려야 되 겠습니까 그러나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 하라고 하신 또 다른 말을 생각할 때 어떻게 경건생활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며 침찬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경건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바 리새인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경건생활에 힘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은 커녕 무서운 심판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안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본문 이사 야서 1장21절-23절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에게 결여된 참된 경 건의 차원은 어떤 것 인지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면 본문 은 참된 의미의 경건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 까
첫째로, 참된 의미의 경건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을 그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본문 21절 전반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 본문에 있는 '신실하던 성 읍'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표현안에는 하나님이 이스 라엘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 언약이 유지되 . 기 위해서는 신실성이 딴드시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신실성온 언약의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신실을 지켜 주셨어도 이스 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여 신실함을 지키지 못하면 그 언약은 파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과 맺은 언약은 말하자면 부부관계의 언약이었습니다.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 내가 기본적으로 가져 야 할 태도는 서로의 순결성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남편 이든 아내 든, 일단 순결을 신실하게 지켜주지 못하면, 부부의 언약은 언제든지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겐 한때 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실하던 성읍 ! ' 과거 어느 땐가 신실성을 지키던 때가 있었음을 본문의 과거시제가 말해 줍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신실 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간음을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부 부의 언약이 깨졌습니다. 예배당에서, 목사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결흔서약을 했어도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여자,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면 그 서약은 깨지고 맙니다. 어떤 성도들은 자기 아내외에 다른 여자와 관계 를 가지면서도 별로 크게 죄의 식을 느끼지 못하고 두집 살림을 합니다. 이런 가정들이 의외로 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명백한 죄악임을 기억하지 않 으면 안됩니다. 인간적인 차원의 부 부관계든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부부언약이든지 순결을 지키는 신실성이 반드시 그 근 저에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참된 의미의 경건은 외적 형식 뿐만 아니라 내적심령의 차원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부부언약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그렇다 면 성도가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가령, 인간의 부부관계를 예로 들어서 생각할 때, 남 편이 또는 아내가 결흔서약을 의식하고 다른 남자, 또는 다른 여 자와 관계하는 것을 억제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마음 속으로는 언제나 자기 남핀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모 하고 그리워하고 상상속에서 그 상대방과 더불어 관계를 갖는다 면, 이 사람이 결혼의 서약을 바르게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R 습니까 아내나 남횐이 그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아는데, 아내나 남편으로부터 지극한 애정의 표현을 받게 될 때 얼 마나 가증스럽고 역겹겠습니까 그것은 위선입니다 ! 바리새인들의 경건생활이 그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적 으로 드러나는 행위 에 있어서는 경건의 모양을 나무랄 데 없이 갖추고 있었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외양은 갖추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온갖 불의 한 일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쇄인들을 보고 이렇게 비판하셨습니다. '잇.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 맘:_냉겠섭 동다 사람의 계명으드-훌을 삽야-가르치 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 15:8-9). 예수님의 비판은 계속텁니다.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 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 리되 율법의 더 증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마 23:23).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 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 다 소경된 바리새인들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 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이여 회칠한 무덤같으니 겉 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 회 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 득하도다'(마23:25-28).산상 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마음의 부정도 명백하게 간음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 주셨 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 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마5:27, 28). 이사야는 형식에만 치우친 종교생활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이 시는 반응이 어떤 것인가를 이사야 1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믈이 내게 무엇이 유익 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숭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 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 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나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 하겠노 라' (사
1.11-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 리며, 성가대원과 교사로서 봉사를 하는 일 들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표현입니댜. 다른 사람들과 좋은 인간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하고 착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가 를 받기 위해서 말과 행실을 절제하는 것 등도 그리스도인들이 무관심해서는 안되는 영역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행위들을 나타내기 이전에 우리의 심령의 상태 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에 먼저 관심 을 기울이지 않으면 딴됩니다. 모래위에 세운 집이 바람 한 번 불 면 힘없이 무너져 볼품없는 잔해가 되듯이.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종교와 윤 리는 허무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심령의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지 않 으면 안됩니다.
셋째로, 참된 의미의 경건은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수반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은은 찌끼가 되 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본문에서 말하는 은은 유대의 왕족들과 방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포도주는 예루살 렘을 다스리던 귀족들이 특히 좋아했던 순수하고 값비싼 술이었 습니다. 그러므로 은과 포도주는 모두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 키는 것입니다. 유대의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종교적 인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유대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을 특별히 은과 포도 주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실 때 순백의 은과 같 이 그리고 순수하고 강도 높고 비싼 포도주와 같이 관대함과 온 유함과 공평함과 뇌물에 대하여 초탈한 덕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종교적으로 지도하기를 기대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와같은 기대를 받은 유대의 관원들 과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되고 말았습니까 '은은 찌끼같이' 되었습니다. 정제하는 도중에 은에서 떨어져 나온 금속조각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포도주의 강도와 향기가 형편없이 약해지고 그 값 어치도 떨 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은이 찌끼로 변하고 포도주가 물섞인 포도주 가 되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 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비유의 의미를 23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 여 도 적과 짝하며 다 뇌믈을 사랑하며 사례믈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재에서 순결성을 잃었습니다. '패역 했다'는 말 은 하나님을 떠나 속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타락하자 타락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사회 적 차원의 타락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을 섬기고 하나님이 주신 원리에 따라 백성들을 사랑으로 다스 리는 것을 포기하고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돈을 탐하기 시작했 습니다. 돈은 만악의 뿌리입니다. 그들은 돈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라면 백성을 착 취하고 위협하여 재물을 빼앗은 도적들과 어 울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뇌 물을 긁어 모으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 이 마치 찌꺼기만 남은 은과 같고 물탄 포도주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본연의 직무인 고아들을 돌보는 일과 소외된 자들이 제기하는 소송을 정당하게 수리해 주는 일 을 소홀히 취급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송사는 돌보아줘봐야 아무 것도 생기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27 절은 이와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 아와 과부 를 그 환란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 라.' 본문 은 진정한 경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너무 나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은 경건의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외로운 자들을 돌 보는 일을 자신의 신앙생 의 필수적인 일부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인간은 어느 한쪽 극단으로 치우지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들 은 예배의식만을 극단적으로 중요시 하다가 예전주의에 빠져 버 리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행위와 윤리만을 강조하다가 율법 주의나 도덕주의에 빠져 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내적인 심령의 차원만을 중요시하다가 경건주의나 정숙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회정의만을 추구하다가 사회복음 주의나 마르크 시즘에 기울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의미의 경건은 이와같은 모든 차원들을 포함하지 않으 면 안됩니다. 심 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것을 예배형식과 윤리적 인 행위로서 나타 내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정의로운 통치를 실시하는 것으로 표현할 때 경건의 의미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세 차원 가운데 어느 한가지 차원이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신 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고, 은은 찌끼가 되며 포도주는 물탄 포 도주가 되고, 패역하고 도적과 짝하고 뇌물을 사랑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는다'는 주님의 책망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가 실천하는 경건 생활은 어떤 모양인지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나의 날마다의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경 건을 생활화합시다.
그렇다면 경건생을 아주 포기해 버려야 되 겠습니까 그러나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 하라고 하신 또 다른 말을 생각할 때 어떻게 경건생활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며 침찬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경건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바 리새인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경건생활에 힘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은 커녕 무서운 심판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안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본문 이사 야서 1장21절-23절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에게 결여된 참된 경 건의 차원은 어떤 것 인지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면 본문 은 참된 의미의 경건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 까
첫째로, 참된 의미의 경건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을 그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본문 21절 전반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 본문에 있는 '신실하던 성 읍'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표현안에는 하나님이 이스 라엘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 언약이 유지되 . 기 위해서는 신실성이 딴드시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신실성온 언약의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신실을 지켜 주셨어도 이스 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여 신실함을 지키지 못하면 그 언약은 파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과 맺은 언약은 말하자면 부부관계의 언약이었습니다.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 내가 기본적으로 가져 야 할 태도는 서로의 순결성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남편 이든 아내 든, 일단 순결을 신실하게 지켜주지 못하면, 부부의 언약은 언제든지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겐 한때 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실하던 성읍 ! ' 과거 어느 땐가 신실성을 지키던 때가 있었음을 본문의 과거시제가 말해 줍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신실 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간음을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부 부의 언약이 깨졌습니다. 예배당에서, 목사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결흔서약을 했어도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여자,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면 그 서약은 깨지고 맙니다. 어떤 성도들은 자기 아내외에 다른 여자와 관계 를 가지면서도 별로 크게 죄의 식을 느끼지 못하고 두집 살림을 합니다. 이런 가정들이 의외로 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명백한 죄악임을 기억하지 않 으면 안됩니다. 인간적인 차원의 부 부관계든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부부언약이든지 순결을 지키는 신실성이 반드시 그 근 저에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참된 의미의 경건은 외적 형식 뿐만 아니라 내적심령의 차원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부부언약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그렇다 면 성도가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가령, 인간의 부부관계를 예로 들어서 생각할 때, 남 편이 또는 아내가 결흔서약을 의식하고 다른 남자, 또는 다른 여 자와 관계하는 것을 억제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마음 속으로는 언제나 자기 남핀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모 하고 그리워하고 상상속에서 그 상대방과 더불어 관계를 갖는다 면, 이 사람이 결혼의 서약을 바르게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R 습니까 아내나 남횐이 그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아는데, 아내나 남편으로부터 지극한 애정의 표현을 받게 될 때 얼 마나 가증스럽고 역겹겠습니까 그것은 위선입니다 ! 바리새인들의 경건생활이 그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적 으로 드러나는 행위 에 있어서는 경건의 모양을 나무랄 데 없이 갖추고 있었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외양은 갖추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온갖 불의 한 일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쇄인들을 보고 이렇게 비판하셨습니다. '잇.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 맘:_냉겠섭 동다 사람의 계명으드-훌을 삽야-가르치 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 15:8-9). 예수님의 비판은 계속텁니다.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 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 리되 율법의 더 증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마 23:23).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 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 다 소경된 바리새인들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 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이여 회칠한 무덤같으니 겉 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 회 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 득하도다'(마23:25-28).산상 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마음의 부정도 명백하게 간음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 주셨 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 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마5:27, 28). 이사야는 형식에만 치우친 종교생활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이 시는 반응이 어떤 것인가를 이사야 1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믈이 내게 무엇이 유익 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숭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 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 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나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 하겠노 라' (사
1.11-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 리며, 성가대원과 교사로서 봉사를 하는 일 들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표현입니댜. 다른 사람들과 좋은 인간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하고 착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가 를 받기 위해서 말과 행실을 절제하는 것 등도 그리스도인들이 무관심해서는 안되는 영역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행위들을 나타내기 이전에 우리의 심령의 상태 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에 먼저 관심 을 기울이지 않으면 딴됩니다. 모래위에 세운 집이 바람 한 번 불 면 힘없이 무너져 볼품없는 잔해가 되듯이.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종교와 윤 리는 허무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심령의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지 않 으면 안됩니다.
셋째로, 참된 의미의 경건은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수반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은은 찌끼가 되 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본문에서 말하는 은은 유대의 왕족들과 방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포도주는 예루살 렘을 다스리던 귀족들이 특히 좋아했던 순수하고 값비싼 술이었 습니다. 그러므로 은과 포도주는 모두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 키는 것입니다. 유대의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종교적 인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유대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을 특별히 은과 포도 주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실 때 순백의 은과 같 이 그리고 순수하고 강도 높고 비싼 포도주와 같이 관대함과 온 유함과 공평함과 뇌물에 대하여 초탈한 덕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종교적으로 지도하기를 기대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와같은 기대를 받은 유대의 관원들 과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되고 말았습니까 '은은 찌끼같이' 되었습니다. 정제하는 도중에 은에서 떨어져 나온 금속조각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포도주의 강도와 향기가 형편없이 약해지고 그 값 어치도 떨 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은이 찌끼로 변하고 포도주가 물섞인 포도주 가 되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 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비유의 의미를 23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 여 도 적과 짝하며 다 뇌믈을 사랑하며 사례믈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재에서 순결성을 잃었습니다. '패역 했다'는 말 은 하나님을 떠나 속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타락하자 타락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사회 적 차원의 타락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을 섬기고 하나님이 주신 원리에 따라 백성들을 사랑으로 다스 리는 것을 포기하고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돈을 탐하기 시작했 습니다. 돈은 만악의 뿌리입니다. 그들은 돈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라면 백성을 착 취하고 위협하여 재물을 빼앗은 도적들과 어 울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뇌 물을 긁어 모으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 이 마치 찌꺼기만 남은 은과 같고 물탄 포도주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본연의 직무인 고아들을 돌보는 일과 소외된 자들이 제기하는 소송을 정당하게 수리해 주는 일 을 소홀히 취급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송사는 돌보아줘봐야 아무 것도 생기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27 절은 이와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 아와 과부 를 그 환란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 라.' 본문 은 진정한 경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너무 나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은 경건의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외로운 자들을 돌 보는 일을 자신의 신앙생 의 필수적인 일부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인간은 어느 한쪽 극단으로 치우지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들 은 예배의식만을 극단적으로 중요시 하다가 예전주의에 빠져 버 리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행위와 윤리만을 강조하다가 율법 주의나 도덕주의에 빠져 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내적인 심령의 차원만을 중요시하다가 경건주의나 정숙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회정의만을 추구하다가 사회복음 주의나 마르크 시즘에 기울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의미의 경건은 이와같은 모든 차원들을 포함하지 않으 면 안됩니다. 심 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것을 예배형식과 윤리적 인 행위로서 나타 내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정의로운 통치를 실시하는 것으로 표현할 때 경건의 의미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세 차원 가운데 어느 한가지 차원이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신 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고, 은은 찌끼가 되며 포도주는 물탄 포 도주가 되고, 패역하고 도적과 짝하고 뇌물을 사랑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는다'는 주님의 책망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가 실천하는 경건 생활은 어떤 모양인지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나의 날마다의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경 건을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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