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운 싹 (사4:2-6)
본문
그날에 여호와의 쒀이 아름답고 영화로을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을 것 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믈러 있는 자 곧 예루 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증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환하는 영 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은 외 딸들의 더러움을 으시며 애루살렘의 피를 그 증에서 청 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을 만드 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 서 낮에는 더위 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elttJ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 로 영접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이유가 무엇인가는 여러 가지 측 면에서 다양하게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 여러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스도가 믿올 만한 분이요, 신뢰할만한 분 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되지만 주는 일향 미쁘 십니다. 주가 미쁘신 분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우리 눈에 아무런 증거가 보이지 않올찌라도 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험한 시련을 만나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도 주께 대한 믿음을 포기하 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평생을 지나도 록 의지할 만한 미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본문 이사 th:2_6은 그리소도가 어떤 분이시기에 믿을만 하며, 그리스도 인들에게 어떤 일을 해 주시기에 믿을 만한가에 관하여 매우 훌 륭한 답변을 제시 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 여 어떤 정보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신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절은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 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 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 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그 날'은 신약시대 를 가 리킵니다. 그 다음 귀절은 히브리어법에서 같은 사상을 강 조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는 병행어법 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싹'과 '그 땅의 소산'은 같은 내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표현은 탈굼, 로젠찔러. 헹스텐베르크, 스튜델, 움브 라이트, 카스파리, 드레러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신약시대에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메시아라는 동일인 물을 가리키는 두 표현의 차이점에 주목해야 되=K습니다.
첫째 표현인 '여호와의 싹'은 이 싹이 하나님에서 온 것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로부터 온 자요, 하늘에서 온 자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 땅의 소산'은 이 소산 곧, 메시아의 기원 이 이 땅임을 보여 줍니다.예수 그리스도는 땅에 서 나셨고, 땅에서 자라셨으며 또한 땅에서 죽으 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이셨습니다. 메시아는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이 사실은 메시아의 이름에서도 입증됩니다. '예수'라는 명칭은 땅 위에 계 신 주님 을 강조하는 표현이요.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주님을 강조 하는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의미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의 미의 인간으로 고백하는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선결조건 입니다. 이 교리는 신비에 싸안 교리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를 이성으로 이해하 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교리는 믿음 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은 사람들이 이 교리를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다가 슬프게도 이 단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 느냐 이런 의문 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이요, 인간 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 을 양태론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정하면서 인성을 거부하게 되면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블완전한 인간이 어떻 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이 의문을 이 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예수는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 로 탁월한 인간일 뿐,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양자론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원래 인간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으로 승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 도 역시 중대한 오류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확고하고 건실한 교리의 기초위에 세워져야 답니다. 오늘날 교회연합운동을 강조 한 나머지 교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분열되 어 서로 적대시하는 행위는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 나라 사역에 방해가 됩니다. 그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랑 안에서 다른 교파가 하나로 연합하여 모이고 함께 예배드 리고 찬 양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경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연합이 아무리 중요한 명제라 하더라도 건실한 교리의 기초를 희생시키면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조만간에 무너질 수 밖 에 없는 것처럼 건실한 교리의 토대를 희생시키고 이루어지는 연합 운동은 미구에 그 허구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리의 토대위에 서 있지 않은 신앙생도 역시 허구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우리를 거룩하다고 칭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 을 얻으리니.' 본문에서 말하는 시온에 남은 자, 예루살렘에 떠물러 있는 자, 예루살렘에 있 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들은 그리스도인 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분에 있는 자들입니 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같은 정의는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로 부터 구별지어 주는, 대단히 중 요한 정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거 룩 하다고 자칭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오 직 은혜로 거룩하다고 인정해 준 자 들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3 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덕과 선행을 쌓아 거룩에 이 르기를 추구합니다. 블교도들이 작정을 하고 천일기도를 드리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직 은혜로써 거 룩하다고 선언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언에 의하여 거룩에 이르는 종교입니다. 그 것은 무죄석방을 받고 나오는 사형수의 경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재판장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죄수복을 벗어 버리고 대신 평복을 입고 섰습니다. 그러자 재판장 은 이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죄인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언합니다. 재판장은 이 사형수 의 전과의 기록이나 마음상태나 얼굴빚 등올 보고 그를 판단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가 입은 만 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합니다. 이 와갈은 판결방법은 세상법정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 입니다. 상 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 넘의 판결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 만을 보시고 우리를 판결하십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옷을 보고 우리를 거룩하다고 판결하십니다. 그 것은 은혜의 판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의 판결, 값없이 주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그 심판 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본문에서 말하는 심판하는 영이나 소멸하는 영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속에 찾아 오 셔서 죄로 인하여 더러 워진 심령을 정결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은 원죄믐 소시켜 주심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부터 모든 인간의 심령 깊은 곳 에는 크고 무거운 죄의 덩어리, 죄의 뿌리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원죄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 안에서 태어납니다. 이 원죄의 그늘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구체적인 죄 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로 이 원죄 때문에 이미 죄인 입니다. 이 사실을 다윗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밧세바사건이 있은 후, 자기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그는 자 신이 이 세상에 탄생 하기 이전부터 죄의 뿌리를 간직하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절감했 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떻게 부르짖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 나이다(시 51:5).'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 께서 우리의 심 령 깊은 곳에 찾아 오셔서 바로 이와같은 원죄의 뿌리를 제거해 주십니다. 놀라운 성령님의 작용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에서 원칙적으로 정결한 존재로 서게 되는 것 입니다.
2. 성령님은 자범죄도 정결케 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의 뿌리를 제거해 주심으로써 인간 을 사탄의 지배와 죽음의 왕노릇으 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이후에도 인간의 사람의 세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잔여죄의 세 력때문에 계속해서 범죄하게 됩니다. 잔여하는 죄의 세력이 그리스도인을 다시 정죄로 끌어 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권능이 그만큼 크고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와갈이 말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 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 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 39). 그러나 잔여하는 죄의 세력 곧, 신자의 의식 과 생활 속에 여전 히 남아 영향을 끼치는 이 죄의 세력은 신자들의 경건한 생활을 교란시킬 만 큼의 능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세력의 영향을 받아서 신자들도 계속해서 범죄합니다. 성령께서는 이처 럼 신자들이 또다시 범죄하고 스스로의 영혼을 더럽힐 때, 신자 들의 심령속에 찾아 오셔서 신자들의 양심을 찌르시고, 회개하 도록 자극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회개하면 지 체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이와같이 성령님께서는 신자들을 그 무서운 원죄로 부터 그리고 자범죄로 부터 깨끗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넷째, 그리스도케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인생길을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본문 5, 6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거 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 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우리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여행하는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 로 보호하시고 인도 하셨던 사컨을 연상하면서 신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구름과 연기', '화염의 '입니다. ' 구름과 연기'라는 표현은 구름과 연기로 구성되었다는 이 아니라 형체는 구 름인데 실체는 연 기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름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척 다 른 것입니다. '화염의 '도 저녁 하늘의 노을처럼 어설프게 하늘에 머무르는 과 같은 자연 안에 있는 빛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폭발할 때 발 생하는 채, 실제로 살아있는 과 갈은 것입니다. 구 름과 연기, 화염의 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초자연 현상으 로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 거하는 자 곧 신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두신 것입니다. 그것은 신자들만을 위한 것이요 신자들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상 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 들이 험한 광야의 길 을 가는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 행로를 인도하시고 보 호해 주신 것처럼. 신자들의 길도 오직 신자들만이 그 영안을 열 어서 볼 수 있는 신령한 구름과 연기, 화염 의 을 통해 안전하 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곧 신자들만이 가지는 믿음의 비밀이요 특권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보잘 것 없고 부서지기 쉬우며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 속에 보배가 있습니다. 그 보배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참 보배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 의 사정을 체하여 아십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권능으로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는 그를 믿는 자를 거룩하다 칭하시며, 정결하게 하시며, 삶 의 길을 안전 하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이처럼 미쁘신 그리스도를 믿고 더욱 가까이하고 날마다 의지하 면, 아사야 4장 2 절에서 6절까지 약속된 축복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 요, 현생과 내 생에서의 우리의 운명은 안전하게 보장될 것이요, 우리의 삶은 기쁨과 평화가 있는 삶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영화로운 싹되신 그리스도를 소망합시다. 우리를 거룩하다 칭 해주시며 의의 옷을 입혀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해 주시는 그리스도 를 따라갑 시다. 이제 우리의 험난한 인생길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합 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신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절은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 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 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 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그 날'은 신약시대 를 가 리킵니다. 그 다음 귀절은 히브리어법에서 같은 사상을 강 조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는 병행어법 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싹'과 '그 땅의 소산'은 같은 내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표현은 탈굼, 로젠찔러. 헹스텐베르크, 스튜델, 움브 라이트, 카스파리, 드레러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신약시대에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메시아라는 동일인 물을 가리키는 두 표현의 차이점에 주목해야 되=K습니다.
첫째 표현인 '여호와의 싹'은 이 싹이 하나님에서 온 것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로부터 온 자요, 하늘에서 온 자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 땅의 소산'은 이 소산 곧, 메시아의 기원 이 이 땅임을 보여 줍니다.예수 그리스도는 땅에 서 나셨고, 땅에서 자라셨으며 또한 땅에서 죽으 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이셨습니다. 메시아는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이 사실은 메시아의 이름에서도 입증됩니다. '예수'라는 명칭은 땅 위에 계 신 주님 을 강조하는 표현이요.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주님을 강조 하는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의미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의 미의 인간으로 고백하는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선결조건 입니다. 이 교리는 신비에 싸안 교리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를 이성으로 이해하 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교리는 믿음 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은 사람들이 이 교리를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다가 슬프게도 이 단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 느냐 이런 의문 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이요, 인간 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 을 양태론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정하면서 인성을 거부하게 되면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블완전한 인간이 어떻 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이 의문을 이 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예수는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 로 탁월한 인간일 뿐,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양자론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원래 인간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으로 승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 도 역시 중대한 오류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확고하고 건실한 교리의 기초위에 세워져야 답니다. 오늘날 교회연합운동을 강조 한 나머지 교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분열되 어 서로 적대시하는 행위는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 나라 사역에 방해가 됩니다. 그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랑 안에서 다른 교파가 하나로 연합하여 모이고 함께 예배드 리고 찬 양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경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연합이 아무리 중요한 명제라 하더라도 건실한 교리의 기초를 희생시키면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조만간에 무너질 수 밖 에 없는 것처럼 건실한 교리의 토대를 희생시키고 이루어지는 연합 운동은 미구에 그 허구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리의 토대위에 서 있지 않은 신앙생도 역시 허구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우리를 거룩하다고 칭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 을 얻으리니.' 본문에서 말하는 시온에 남은 자, 예루살렘에 떠물러 있는 자, 예루살렘에 있 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들은 그리스도인 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분에 있는 자들입니 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같은 정의는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로 부터 구별지어 주는, 대단히 중 요한 정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거 룩 하다고 자칭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오 직 은혜로 거룩하다고 인정해 준 자 들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3 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덕과 선행을 쌓아 거룩에 이 르기를 추구합니다. 블교도들이 작정을 하고 천일기도를 드리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직 은혜로써 거 룩하다고 선언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언에 의하여 거룩에 이르는 종교입니다. 그 것은 무죄석방을 받고 나오는 사형수의 경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재판장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죄수복을 벗어 버리고 대신 평복을 입고 섰습니다. 그러자 재판장 은 이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죄인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언합니다. 재판장은 이 사형수 의 전과의 기록이나 마음상태나 얼굴빚 등올 보고 그를 판단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가 입은 만 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합니다. 이 와갈은 판결방법은 세상법정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 입니다. 상 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 넘의 판결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 만을 보시고 우리를 판결하십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옷을 보고 우리를 거룩하다고 판결하십니다. 그 것은 은혜의 판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의 판결, 값없이 주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그 심판 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본문에서 말하는 심판하는 영이나 소멸하는 영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속에 찾아 오 셔서 죄로 인하여 더러 워진 심령을 정결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은 원죄믐 소시켜 주심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부터 모든 인간의 심령 깊은 곳 에는 크고 무거운 죄의 덩어리, 죄의 뿌리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원죄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 안에서 태어납니다. 이 원죄의 그늘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구체적인 죄 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로 이 원죄 때문에 이미 죄인 입니다. 이 사실을 다윗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밧세바사건이 있은 후, 자기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그는 자 신이 이 세상에 탄생 하기 이전부터 죄의 뿌리를 간직하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절감했 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떻게 부르짖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 나이다(시 51:5).'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 께서 우리의 심 령 깊은 곳에 찾아 오셔서 바로 이와같은 원죄의 뿌리를 제거해 주십니다. 놀라운 성령님의 작용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에서 원칙적으로 정결한 존재로 서게 되는 것 입니다.
2. 성령님은 자범죄도 정결케 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의 뿌리를 제거해 주심으로써 인간 을 사탄의 지배와 죽음의 왕노릇으 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이후에도 인간의 사람의 세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잔여죄의 세 력때문에 계속해서 범죄하게 됩니다. 잔여하는 죄의 세력이 그리스도인을 다시 정죄로 끌어 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권능이 그만큼 크고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와갈이 말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 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 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 39). 그러나 잔여하는 죄의 세력 곧, 신자의 의식 과 생활 속에 여전 히 남아 영향을 끼치는 이 죄의 세력은 신자들의 경건한 생활을 교란시킬 만 큼의 능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세력의 영향을 받아서 신자들도 계속해서 범죄합니다. 성령께서는 이처 럼 신자들이 또다시 범죄하고 스스로의 영혼을 더럽힐 때, 신자 들의 심령속에 찾아 오셔서 신자들의 양심을 찌르시고, 회개하 도록 자극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회개하면 지 체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이와같이 성령님께서는 신자들을 그 무서운 원죄로 부터 그리고 자범죄로 부터 깨끗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넷째, 그리스도케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인생길을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본문 5, 6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거 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 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우리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여행하는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 로 보호하시고 인도 하셨던 사컨을 연상하면서 신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구름과 연기', '화염의 '입니다. ' 구름과 연기'라는 표현은 구름과 연기로 구성되었다는 이 아니라 형체는 구 름인데 실체는 연 기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름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척 다 른 것입니다. '화염의 '도 저녁 하늘의 노을처럼 어설프게 하늘에 머무르는 과 같은 자연 안에 있는 빛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폭발할 때 발 생하는 채, 실제로 살아있는 과 갈은 것입니다. 구 름과 연기, 화염의 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초자연 현상으 로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 거하는 자 곧 신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두신 것입니다. 그것은 신자들만을 위한 것이요 신자들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상 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 들이 험한 광야의 길 을 가는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 행로를 인도하시고 보 호해 주신 것처럼. 신자들의 길도 오직 신자들만이 그 영안을 열 어서 볼 수 있는 신령한 구름과 연기, 화염 의 을 통해 안전하 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곧 신자들만이 가지는 믿음의 비밀이요 특권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보잘 것 없고 부서지기 쉬우며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 속에 보배가 있습니다. 그 보배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참 보배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 의 사정을 체하여 아십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권능으로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는 그를 믿는 자를 거룩하다 칭하시며, 정결하게 하시며, 삶 의 길을 안전 하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이처럼 미쁘신 그리스도를 믿고 더욱 가까이하고 날마다 의지하 면, 아사야 4장 2 절에서 6절까지 약속된 축복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 요, 현생과 내 생에서의 우리의 운명은 안전하게 보장될 것이요, 우리의 삶은 기쁨과 평화가 있는 삶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영화로운 싹되신 그리스도를 소망합시다. 우리를 거룩하다 칭 해주시며 의의 옷을 입혀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해 주시는 그리스도 를 따라갑 시다. 이제 우리의 험난한 인생길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합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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