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세상 (계13:15-18)
본문
1절로부터 10절까지에 있는 짐승은 세상을 가리킨 것입니다. 또 11절로 부터 18절까지에 있는 짐승은 거짓 기독교를 가리킨 것입니다, 거짓 기독교! 세상과 싸울 두 가지 준비 처음에 나온 짐승에게 대해서는 우리 할 일이 무엇인고 하니 그 짐승에 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짐승을 제일로 삼아서 섬기지 않는 것 이 우리 할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그 짐승을 섬기 지 아니하려고 하면 두 가지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아무것도 내가 잡고 있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생사도 주님에 게 다 맡겨놓고, 빈부 귀천도 주님에게 맡겨놓고, 모든 성패도 다 주님에게 맡겨놓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자라야 짐승에게 경배를 아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써 참 성도의 믿음이 결정됩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성도들은 자기가 가지고 자기가 하려는 것 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 마지막에는 무엇이든지 주님에게 다 맡겨놓지 않고 자기가 하려는 그것이 하나라도 있는 자는 이 짐승에게 경 배해야 됩니다. 짐승을 높이 섬겨 그에게 속해 그에게 경배하는 자가 됩니다. 그걸 가리켜서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라 했습니다. 또 하나는 성경 가르침대로 영감과 진리로 싸워, 여호와 하나님과 진리와 참사람만 손해보지 않고 이것만 보수하려고 해야 되지 그 외에 딴것을 생각하 면 안 되고, 다른 방편이나 힘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다 칼입니다. 칼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하나님과 진리와 참사람만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이 세 가지만 보수하 기 위한 전투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보수는 성령님의 인도와 진리 외에는 다른 전법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전법 외에 다른 전법을 가진 자는 제가 아무리 명철하고 수단이 좋아도 저는 벌써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새끼가 됐습니다. 거기에 속했습니다. 그것을 1절로부터 10절까지에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잡고 있으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을 기억 하시고, 또 세상 전법 쓰는 자는 그로 인해서 다 망합니다. 실패합니다. 고기덩어리야 얼마든지 살찌게 살고 장수도 하고 죽을 때도 아무 고통 없 이 죽지만,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말하는 것인데 구원은 다 실패입니다. 다른 것은 있어도 구원은 실패요. 거짓 기독교는
1. 도덕적 기독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 고 용처럼 말하더라 또 두번째, 땅에서 올라온 두 뿔 가진 양의 새끼같은 그것은 거짓 기독교입니다. 거짓 기독교인데, 땅에서 나왔다 하는 그 땅은 도덕을 말합니다. 바다와 정반대로 도덕을 말하는데, 인간들이 세워놓은 법, 인간들이 조직해 놓은 모든 사회성, 윤리성 그것을 가리켜서 도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도덕을 근거해 가지고 나온 기독교, 이것은 기독교 도덕주의요, 기독교 사회주의요, 기독교 정치주의요, 기독교 윤리주의요, 기독교인본주의요, 기독교 세상 정화주의인데 이것이 벌써 나와서 세상을 거의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양인데 여기에는 새끼양이라 했습니다. 어린양보 다 새끼양은 더 아주 순진하고 어립니다. 예수님보다 더 선하게, 착하게, 인자하게 보입니다.
2. 세상권세를 사용 그러나 용처럼 말하더라 여기에서 이제 구별합니다. 용처럼 말하 더라 그 말하는 것이 영감대로 말하지 아니하고 성경대로 말하지 아니하 고, 인간 말을 하면서 성경 말씀은 이용만 합니다. 말하는 것이 무엇을 위 주로 하느냐 하나님보다 인간 위주, 천국보다 세상 위주로 말하는데 거기 에서만 구별 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꾀울 때에 하와야 하나님보다 네가 낫지 않느냐 너 위주로 너 중심으로 살아라. 하는 거기에서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그래, 하나님보다 내가 하나님 되는 것이 낫지. 그래서 넘어갔습니다. 그러기에, 참 승리에 나아갈려고 하면 정신차려서 바로 믿어야 됩니다. 용처럼 말하더라 아무리 세상이 떠들고 위대하다고 몇백만 명이 모 였다 해도, 말씀 증거하는 것이 용의 말인지 봐야 합니다. 성경이야 다 쓰지요. 뱀 사탄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성경 말씀 가지고 유혹 했습니다. 돌로 떡되게 하라,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겠다. 그것 다 성경 말씀이오. 성경 말씀을 이용은 하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 들으면 그것이 하나님 을 중심으로, 인간이야 어찌 됐든지 하나님을 위주로, 하나님 좋게,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인지, 인간 중심으로 하나님은 이용을 당하게 인간 중심으 로 하는 것인지 요걸로 구별하면 딱 알아집니다. 요걸로 구별하면 환하게 알아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도 몇 번 그렇지만 하고 성 신의 감화를 소멸하고 나면 그 뒤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지를 않 습니다 . 용처럼 말하더라 용처럼 말해요. 용은 내나 사탄입니다. 세상 임 금입니다. 성경 말씀 가지고 하기는 하는데 용처럼 말하더라 용의 말 같이 하는 여기에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 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자 니라 먼저 나온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바다에서 나왔지요. 그 짐승 머리 가 몇입니까 일곱. 뿔이 몇 개입니까 열개. 머리에는 무엇이 있습니 까 참람된 이름들. 뿔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면류관 있지요.
그런데 처음 짐승의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그러면 아주 도덕이 나 예의나 윤리나 그것 위주로,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님보다도 그것 위주로 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은 쭉쭉 따릅니다.
그런데 그가 권세를 쓰고 있는 것이 진리의 권세를 쓰는 것이 아니고, 영감의 권세를 쓰는 것이 아니고 누구 권세 쓴다고 했습니까 짐승 권세 씁니다, 짐승 권세. 여러분들이 거짓 기독교를 여기에서 찾아야 되지 여기에서 찾지 아니하면 모릅니다. 거짓 기독교. 예배당 잘 짓는다고, 사람 많이 모인다고 참 기독교 아니오. 우리 서부 교회도 사람 많이 모이는 이것 가지고 참 기독교 되는 것 아닙니다. 예배 당 크다고 참 기독교 아니오.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이 용의 말을 가르치면 거짓 기독교입니다. 또 그 교회가 권세는 진리의 권세 영감의 권세를 쓰지 아니하고, 세상 권세를 사용 해 가지고 세상 권세 가지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거짓 기독교입니다. 그전 짐승의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여러분들이 이 말을 듣고 이 러면, 세상 권세를 배경으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가지고 살고 일하는 교회가 있고, 그것은 있어도 안 쓸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이 일해 주고 진리가 일해 주기를 기다리는, 하나님과 진리에 옳다 해야 그것이 배경이고 힘이지 진리에 삐뚤어지면 세상 권세가 다 옹호해도 그것은 망할 것인 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힘으로 삼지 않는 그런 교회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짐승의 권세를 쓰는 교회가 있습니다. 용처럼 말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 기독교입니다.
3. 짐승을 섬기는 기독교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처음 짐승 이 무엇입니까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합니다. 경 배하게 한다는 말은 그 짐승 위주로,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짐승 섬기고 있어요. 그 짐승을 섬기고 있다 말입니다. 그 사람은 신앙 생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사람이 제일 섬기고 높이고 바라보는 것은 짐승입니다. 처음 짐승. 이만하면 거짓 기독교 알 수 있습니다. 이만해도 거짓 기독교 환하게 알 수가 있어요. 두 짐승의 정체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지금 짐승은 내나 죽게 된 상처가 나은 그 처음 짐승입니다. 세상은 철통같이 된다 하는데 그것이 순 간적으로 퍼뜩 절단이 납니다. 절단이 나면 그것을 보고 아이고, 절단났다. 하는데 좀 있으면 그것이 즉시 복구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두 종류로 나타납니다. 퍼뜩 절단나는 것을 보고, 절단 나는 그것 보고 저런 것은 다 저렇게 절단날 수 있는 것들이구나. 그렇 게 평가하고 그것으로 그치는 사람 있고, 저렇게 절단나도 다시 복구됐 네. 복구된 것 보고 사는자 있는데 그것 보고 사는 자는 멸망할 자요. 조금 절단나도 절단날 종류라는 것은 그만하면 알지 않습니까 세상을 없애 버리면 하나님의 구속이 이루어지지를 아니해요. 요거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던 것이 나은 자라 이 진리는 얼마나 알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것은 깨닫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육체가 건강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잠깐 몸살을 앓아 가지고 병이 들었습니다. 몸살을 합니다. 그것 보고 저 육 체는 암만 건강해도 병들 수 있는 몸뚱이요 마지막에 죽을 수 있는 몸뚱이 라. 그리 연상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금방 병들었다가 건강하네. 건강 한 몸뚱이라. 그래 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할 몸으로만 보고 사는 사람, 그것도 병들고 상하고 죽을 수 있는 몸뚱이로 그래 상대해 가지고 평가하고 사는 사람 그 두 종류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에 속했고, 하나는 사망에 속했습니다. 짐승의 과시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 말은, 그 운동이 어떻게 맹렬한지, 불 을 말하는 것은 맹렬한 것을 말합니다. 그 운동이 어떻게 맹렬하고 어떻게 큰지 사람들이 그 힘있게 운동하고 크게 운동하는 거기에 그만 쏠립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끌려요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 상을 만들라 하더라 이러니까, 짐승을 하나님 대신으로, 이제 하나님보다 그 짐승을 크게, 높이, 귀하게 위하는 그런 자들을 다 만듭니다. 예수교인으로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세상하고 하나님하고 비중이 될 때에 세상을 버렸으면 버렸지 하나님 버리지 않을 수 있는 그 사람이라야 구원 이룹니다. 세상과 천국과 둘이 있을 때에 어찌 되느냐 어느 것을 놓겠느냐 할 그때에 세상을 놓고 천국을 놓지 아니할 수 있는 그 사람이라야 그에게 줍니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싸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천국 가는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해 봤자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을 했지, 하늘나라가 싸고 허무하고 그래서 그런 것 아닙니다. 절대 어림도 없어요!
세상보다 천국을 낫게 여기는 거기에 천국의 것을 주고, 모든 피조물보다 자기보다 하나님을 높이는 거기에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 되어서 구원 주지 그전에는 안 줍니다. 이렇게 웅성웅성 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그렇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우상에게 생 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그 짐승이 뭐이냐 세상의 대표, 말하는 짐승. 말하는 짐승 이것은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세상을 주름잡아서 한 손에 거머쥔 사람들, 이제 그자가 세상을 타고 그것이 이제 하나님보다 높습니다. 하나님보다 위에 있어요. 그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보다 위에 있습니다. 거짓기독교가 하는 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 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한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제 이것입니다. 이것을 이길려면,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하더라 그러면 이 짐승 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려면 몇이든지 죽이게 하더라 처음에 나온 짐승, 처음에 나온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합니다.
그러면 둘째 나온 짐승은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까! 둘째 나온 짐승은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무슨 앞잡이로, 무엇에 이용물이 되어 서, 무엇을 높이고, 무엇을 위하고,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까!
첫째 짐승 그것의 권세 받아 가지고, 그것 섬기고, 그것 위하고, 그것의 앞잡이입니다. 이것이 거짓 기독교입니다. 이 거짓 기독교. 알고 믿어야 됩니다. 예수교는 그렇게 쉬운 것 아니오. 이렇게 많지만, 참 으로 성화된 것은 하늘과 땅을 통치할 수 있습니다. 영계와 물질계를 통치 하고 발 아래 밟고 호령칠 수 있습니다. 실력 있소. 없는 것 아닙니다. 천 군 천사를 호령칠 수 있고 발 아래 종으로 잡아 부릴 수 있습니다. 왜 그는 하나님으로 속에 가득 찼지,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그는 피조물이지만 피조물에게는 하나님과 꼭 같습니다. 하나님과 다 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속에 들어가 보면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하나님 인데 이제 밖에 나타나 보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 나타나고 결합됐기 때문에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 처음에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라 해도 경배하지 않아요. 경배 를 하지 않고 어떻게 견디는가 있는 것 다 내놨습니다. 이놈 죽인다 생명도 주님에게 딱 맡겨요. 생사도 맡기고, 빈부 귀천도 맡기고, 승패도 맡기고, 다 맡기고, 다 맡겨 놓고 나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 사랑하고 섬기는 것 외에 나 할일이 없어요. 그것만 하지 딴것은 없습니다. 그것 하는 것을 못 하도록 하는데 못 하도록 할려고 해 봤자, 죽인다 해 봤자 그 생사를 다 주님에게 맡겨 놓았으니까 죽인다 하는 것이 효력이 납니까, 가난하게 한다는 것이 효력이 납니까, 배를 곯린다는 것이 효력이 납니까 아무 효력이 없어요. 잡을 건더기가 있어야지! 이 자가 아니면 첫째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데 둘째 나온 짐승 간사한 요것이 처음 짐승의 권세를 입어 가지고 처음 짐승의 그 용의 말을 하면서, 껍데기는 두 뿔 가진 새끼양이오. 껍데 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교요. 아주 참 모든 사람이 존경할 만한 참 자비 의 예수교, 사랑의 예수교, 도덕의 예수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양 그리스도는 아니고 그것은 거짓 그리스도인데 먼저 나온 짐승의 새끼요. 말은 용처럼 말하더라. 먼저 나온 짐승의 권세를 쓰더라.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해서 섬기라 높이라 우상을 만들라 이러는데 그 우상은 말하더라. 그럭저럭 하다 보니까 이제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거짓 기독교, 말하는 우상, 사람 그것이 지금 왕이 되어 가지고 주장을 합니다 성도의 박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오른손은 행위를 말합니다. 이마는 사상을 말합니다. 그 사상을 받든지 그 행위를 가져야 되지 … 누구든지 이 표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 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매매를 못 하게 한다 말은 물물 상통을 못 하게 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땅 위에 살 수 없도록 만든다는 말입니다. 못 살게 만들어요. 이러니까, 잘 살 수 있는 그 길 가지 무엇 할려고, 핍박, 조롱, 천대, 모 든 사람에게 멸시 천대받는 예수를 꼭 짊어지고, 예수를 꼭 모시고 못 살게 하는, 매매도 못 하게 하는 그 길 갈 필요가 뭐 있어요 또 몇이든지 죽이는데. 뭣 때문에 예수를 따라가겠어요 몇이든지 죽이고 매매도 못 하게 하는데. 그때에 주를 따라가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가 릴려고 이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영계를 만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손해보지 않습니다. 속지 않아요. 이러니까 이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여지고 구원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여져요. 그러니까 바울이 다니는 자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그의 마침은 멸망이니라. 했습니다. 좋으 면 얼마 가겠소 좋은 사람을 봅니다. 아주 세상에 좋은 사람 봅니다. 그것이 좋은 것 가지고 주님 믿어서 주님과 연결이 되어서, 그 좋은 것 가지고 주님을 기쁘 시게 하고, 그 좋은 것을 주님이 주셨고 주님이 기뻐하셔서 더 좋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면 참 좋지만, 주님 팔고 진리 팔고 영원한 구원 팔아 가지고 땅위에 좋은 것 있다 하는 그것이면 불쌍하고 가련하지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 이 표는 어떤 표냐 이 표는 어떤 표냐 짐승의 이름이나 짐승 이름이라. 짐승 이름이라는 말 이 무슨 말입니까 세상 이름이라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이든 지 저 세상이든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라 그말이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자기 정신에나 자기 행위에, 그 경배하는 것,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들을 주님과 진리보다 천국보다 구원보다 앞세 우지 아니한 자는 다 죽여. 생활 못 하게 만들어. 이렇게 마구 쫄아재낍니다. 쫄아재끼니까 누가 필요 없고 백해무익으로 고생만 되는 예수를 걸머지 고 다닐 필요가 뭐 있겠소, 있기를 진리를 거머쥐고 다닐 필요가 무엇이 있겠어요 성경 다 불태워 버려요. 다 집어 던져버려요. 예수 욕하고 집 어던져 버려요. 에, 더럽고 징그러운 예수! 그럴 때에, 그럴 때에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 경배하지 않는 그자가, 그자가 주님 믿는 자이지, 그자에게 하나님은 다 맡길 수 있지. 조금 어려워도 변 하는 그자에게 하나님이 맡겨 가지고 어쩔려고 짐승의 실체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그것이 내나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세상을 근본 으로 삼는, 이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돈 세상을 근본으 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권세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행락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예술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또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쨌든지, 차지는 하나님 차지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차지를 줬든지 세상 어떤 것에게 차지를 줬든지, 그에게 있는 보좌에는 세상이든지 인간이든지 그런 것이 다 앉고 주님이 앉아 있지 않는, 보좌 다툼인데 주님이 앉아 계시지 못하고 주님은 다 뺏기고, 그 사람의 제일 상상 보좌, 제일 높은 보좌, 제일 귀한 보좌 이것을 세상과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세어보라. 곧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 라. 그것이 좋기야 좋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수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러기에 이 표를 받지 아니할려고 하면 자기의 생명을 빼앗길 각오 해야 됩니다.
생명을 빼앗겨도 이 표를 안 받아야 되지 생명 가지고 이 표 안 받을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이 세상 생애를 살지 못해도 이 표 안 받겠다 해야 되지 세상에 살면서 안 받겠다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짓 기독교가 세력을 얻어 가지고 참 기독교를 거짓 기독교화시킬려고 할 때에 몇이든지 죽여요. 그들은 다 아니까. 이러기 때문에 아예 생명을 내놓은 자, 제단 위에 올려 놓은 자, 이 자 가 거짓 기독교를 이길 수 있고, 또 매매를 못 하게 하니까 아예 매매 그걸 다 내어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매매 못 하고 굶어 죽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감옥에 갇혀 죽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거지 되면 그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어쨌든지 세상 생활을 못 하게 하든지 뭐 목숨을 붙어 있지 못하게 하 든지 어쨌든지 그에게만 경배하고, 그에게만 경배하고 그의 법도만 지키려 고 하는 이 사람만 이 경배를 안 하고 지나 갈 수 있습니다. 결론 그런고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 이 짐승 두 마리. 하나는 두 뿔 가진 양의 새끼 같은 것, 어린양보다 새끼양은 더 어리고 더 순진 하지 않습니까 땅에서 나왔고, 하나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입니다. 이러니까, 표범같고 곰같고 사자같은 그것도 뭐이냐 하나도 제가 가지 고 있는 것이 없으면 됐어요. 암만 표범같고 사자같이 와 봤자 내 생사를 주님에게 맡겨 놓았으니까 그것이 나에게 협박 줄 수가 없어요. 표범이 협 박 줄 수가 없고 사자가 오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종결입니다. 그런고로, 두 짐승을 기억하고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 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 그다음에 승리가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과 인내가 여기 있어요. 성도의 지혜가 여게 있어요. 지혜가 있어도 중간에 가다가 떨어지 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밀고 나가는 그 지혜가 성령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을 때에 귀가 있어 듣는 자는 들을 것이고, 아예 내 생명이고 몸이고 소유고 온 내 세상 모든 것 다 주님에게 맡겨 놓고 주님 께 일임을 해놓고 나는 하나님 섬기는데 그 법칙대로 섬길 것. 하나님 법칙대로 섬기는 사람, 하나님을 하나님의 법칙대로 섬기는 이 사람으로 사는 것 이것 하나만 제 힘인 줄 아는 그자가 이기고, 그자 가리 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자가 하늘나라에 필요합니다. 그자가 하 늘나라의 일꾼이오. 그 외에는 소용이 없어요, 지저분한 거는. 다 거기 가 있어도 일거리지요. 하나님 섬기는 것, 또 하나는 뭐이요 하나님 섬기는 법칙, 또 하나는 뭐이요 이렇게 사는 자기. 이 세 가지만 우리가 가지고 갈 사람들이 요, 이것만 가지고 가는 거기에서 최종의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데 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지만 다 죽었습니다.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뭐 어때서 행위의 온전함이 없거든. 이러니까 이 절정 을 넘은 데에서 이제 확정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모든 신앙 생활 보면 절정이 있습니다. 고개 넘는, 마지막 고개 넘는 것이 있어요.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해서 하신 것은 요 절정 넘기 위해서, 지성과 지공법을, 당신의 세포 하나라도 혹은 원치 안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지공에 걸려 버려요. 생명의 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라도 가지고는 못 갑니다.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에누리가 없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 전인류가 뭐 똘똘 뭉쳐서 그 앞에 다 복종하는데. 예수 믿는 것은 이렇게 외로와지는데. 또 땅에서 나온 짐승도 그것의 앞잡이 가 되어 가지고 다 되고 … 어린양으로 도피한 자는, 이제 진실한 자는 이 렇게 고독해서 몇이든지 죽이는데. 죽어도 그러면 당신이 왜 이렇게 하는가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죽을 것이기 때문에 죽는 죽음 당신과 진리와 세상 위해 죽었으면 그러면 예수님의 승리지요. 다른 것 뭐 있습니까 깨닫고, 에누리하지 말고 믿읍 시다.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1. 도덕적 기독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 고 용처럼 말하더라 또 두번째, 땅에서 올라온 두 뿔 가진 양의 새끼같은 그것은 거짓 기독교입니다. 거짓 기독교인데, 땅에서 나왔다 하는 그 땅은 도덕을 말합니다. 바다와 정반대로 도덕을 말하는데, 인간들이 세워놓은 법, 인간들이 조직해 놓은 모든 사회성, 윤리성 그것을 가리켜서 도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도덕을 근거해 가지고 나온 기독교, 이것은 기독교 도덕주의요, 기독교 사회주의요, 기독교 정치주의요, 기독교 윤리주의요, 기독교인본주의요, 기독교 세상 정화주의인데 이것이 벌써 나와서 세상을 거의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양인데 여기에는 새끼양이라 했습니다. 어린양보 다 새끼양은 더 아주 순진하고 어립니다. 예수님보다 더 선하게, 착하게, 인자하게 보입니다.
2. 세상권세를 사용 그러나 용처럼 말하더라 여기에서 이제 구별합니다. 용처럼 말하 더라 그 말하는 것이 영감대로 말하지 아니하고 성경대로 말하지 아니하 고, 인간 말을 하면서 성경 말씀은 이용만 합니다. 말하는 것이 무엇을 위 주로 하느냐 하나님보다 인간 위주, 천국보다 세상 위주로 말하는데 거기 에서만 구별 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꾀울 때에 하와야 하나님보다 네가 낫지 않느냐 너 위주로 너 중심으로 살아라. 하는 거기에서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그래, 하나님보다 내가 하나님 되는 것이 낫지. 그래서 넘어갔습니다. 그러기에, 참 승리에 나아갈려고 하면 정신차려서 바로 믿어야 됩니다. 용처럼 말하더라 아무리 세상이 떠들고 위대하다고 몇백만 명이 모 였다 해도, 말씀 증거하는 것이 용의 말인지 봐야 합니다. 성경이야 다 쓰지요. 뱀 사탄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성경 말씀 가지고 유혹 했습니다. 돌로 떡되게 하라,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겠다. 그것 다 성경 말씀이오. 성경 말씀을 이용은 하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 들으면 그것이 하나님 을 중심으로, 인간이야 어찌 됐든지 하나님을 위주로, 하나님 좋게,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인지, 인간 중심으로 하나님은 이용을 당하게 인간 중심으 로 하는 것인지 요걸로 구별하면 딱 알아집니다. 요걸로 구별하면 환하게 알아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도 몇 번 그렇지만 하고 성 신의 감화를 소멸하고 나면 그 뒤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지를 않 습니다 . 용처럼 말하더라 용처럼 말해요. 용은 내나 사탄입니다. 세상 임 금입니다. 성경 말씀 가지고 하기는 하는데 용처럼 말하더라 용의 말 같이 하는 여기에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 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자 니라 먼저 나온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바다에서 나왔지요. 그 짐승 머리 가 몇입니까 일곱. 뿔이 몇 개입니까 열개. 머리에는 무엇이 있습니 까 참람된 이름들. 뿔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면류관 있지요.
그런데 처음 짐승의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그러면 아주 도덕이 나 예의나 윤리나 그것 위주로,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님보다도 그것 위주로 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은 쭉쭉 따릅니다.
그런데 그가 권세를 쓰고 있는 것이 진리의 권세를 쓰는 것이 아니고, 영감의 권세를 쓰는 것이 아니고 누구 권세 쓴다고 했습니까 짐승 권세 씁니다, 짐승 권세. 여러분들이 거짓 기독교를 여기에서 찾아야 되지 여기에서 찾지 아니하면 모릅니다. 거짓 기독교. 예배당 잘 짓는다고, 사람 많이 모인다고 참 기독교 아니오. 우리 서부 교회도 사람 많이 모이는 이것 가지고 참 기독교 되는 것 아닙니다. 예배 당 크다고 참 기독교 아니오.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이 용의 말을 가르치면 거짓 기독교입니다. 또 그 교회가 권세는 진리의 권세 영감의 권세를 쓰지 아니하고, 세상 권세를 사용 해 가지고 세상 권세 가지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거짓 기독교입니다. 그전 짐승의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여러분들이 이 말을 듣고 이 러면, 세상 권세를 배경으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가지고 살고 일하는 교회가 있고, 그것은 있어도 안 쓸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이 일해 주고 진리가 일해 주기를 기다리는, 하나님과 진리에 옳다 해야 그것이 배경이고 힘이지 진리에 삐뚤어지면 세상 권세가 다 옹호해도 그것은 망할 것인 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힘으로 삼지 않는 그런 교회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짐승의 권세를 쓰는 교회가 있습니다. 용처럼 말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 기독교입니다.
3. 짐승을 섬기는 기독교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처음 짐승 이 무엇입니까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합니다. 경 배하게 한다는 말은 그 짐승 위주로,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짐승 섬기고 있어요. 그 짐승을 섬기고 있다 말입니다. 그 사람은 신앙 생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사람이 제일 섬기고 높이고 바라보는 것은 짐승입니다. 처음 짐승. 이만하면 거짓 기독교 알 수 있습니다. 이만해도 거짓 기독교 환하게 알 수가 있어요. 두 짐승의 정체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지금 짐승은 내나 죽게 된 상처가 나은 그 처음 짐승입니다. 세상은 철통같이 된다 하는데 그것이 순 간적으로 퍼뜩 절단이 납니다. 절단이 나면 그것을 보고 아이고, 절단났다. 하는데 좀 있으면 그것이 즉시 복구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두 종류로 나타납니다. 퍼뜩 절단나는 것을 보고, 절단 나는 그것 보고 저런 것은 다 저렇게 절단날 수 있는 것들이구나. 그렇 게 평가하고 그것으로 그치는 사람 있고, 저렇게 절단나도 다시 복구됐 네. 복구된 것 보고 사는자 있는데 그것 보고 사는 자는 멸망할 자요. 조금 절단나도 절단날 종류라는 것은 그만하면 알지 않습니까 세상을 없애 버리면 하나님의 구속이 이루어지지를 아니해요. 요거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던 것이 나은 자라 이 진리는 얼마나 알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것은 깨닫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육체가 건강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잠깐 몸살을 앓아 가지고 병이 들었습니다. 몸살을 합니다. 그것 보고 저 육 체는 암만 건강해도 병들 수 있는 몸뚱이요 마지막에 죽을 수 있는 몸뚱이 라. 그리 연상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금방 병들었다가 건강하네. 건강 한 몸뚱이라. 그래 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할 몸으로만 보고 사는 사람, 그것도 병들고 상하고 죽을 수 있는 몸뚱이로 그래 상대해 가지고 평가하고 사는 사람 그 두 종류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에 속했고, 하나는 사망에 속했습니다. 짐승의 과시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 말은, 그 운동이 어떻게 맹렬한지, 불 을 말하는 것은 맹렬한 것을 말합니다. 그 운동이 어떻게 맹렬하고 어떻게 큰지 사람들이 그 힘있게 운동하고 크게 운동하는 거기에 그만 쏠립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끌려요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 상을 만들라 하더라 이러니까, 짐승을 하나님 대신으로, 이제 하나님보다 그 짐승을 크게, 높이, 귀하게 위하는 그런 자들을 다 만듭니다. 예수교인으로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세상하고 하나님하고 비중이 될 때에 세상을 버렸으면 버렸지 하나님 버리지 않을 수 있는 그 사람이라야 구원 이룹니다. 세상과 천국과 둘이 있을 때에 어찌 되느냐 어느 것을 놓겠느냐 할 그때에 세상을 놓고 천국을 놓지 아니할 수 있는 그 사람이라야 그에게 줍니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싸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천국 가는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해 봤자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을 했지, 하늘나라가 싸고 허무하고 그래서 그런 것 아닙니다. 절대 어림도 없어요!
세상보다 천국을 낫게 여기는 거기에 천국의 것을 주고, 모든 피조물보다 자기보다 하나님을 높이는 거기에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 되어서 구원 주지 그전에는 안 줍니다. 이렇게 웅성웅성 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그렇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우상에게 생 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그 짐승이 뭐이냐 세상의 대표, 말하는 짐승. 말하는 짐승 이것은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세상을 주름잡아서 한 손에 거머쥔 사람들, 이제 그자가 세상을 타고 그것이 이제 하나님보다 높습니다. 하나님보다 위에 있어요. 그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보다 위에 있습니다. 거짓기독교가 하는 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 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한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제 이것입니다. 이것을 이길려면,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하더라 그러면 이 짐승 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려면 몇이든지 죽이게 하더라 처음에 나온 짐승, 처음에 나온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합니다.
그러면 둘째 나온 짐승은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까! 둘째 나온 짐승은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무슨 앞잡이로, 무엇에 이용물이 되어 서, 무엇을 높이고, 무엇을 위하고,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까!
첫째 짐승 그것의 권세 받아 가지고, 그것 섬기고, 그것 위하고, 그것의 앞잡이입니다. 이것이 거짓 기독교입니다. 이 거짓 기독교. 알고 믿어야 됩니다. 예수교는 그렇게 쉬운 것 아니오. 이렇게 많지만, 참 으로 성화된 것은 하늘과 땅을 통치할 수 있습니다. 영계와 물질계를 통치 하고 발 아래 밟고 호령칠 수 있습니다. 실력 있소. 없는 것 아닙니다. 천 군 천사를 호령칠 수 있고 발 아래 종으로 잡아 부릴 수 있습니다. 왜 그는 하나님으로 속에 가득 찼지,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그는 피조물이지만 피조물에게는 하나님과 꼭 같습니다. 하나님과 다 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속에 들어가 보면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하나님 인데 이제 밖에 나타나 보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 나타나고 결합됐기 때문에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 처음에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라 해도 경배하지 않아요. 경배 를 하지 않고 어떻게 견디는가 있는 것 다 내놨습니다. 이놈 죽인다 생명도 주님에게 딱 맡겨요. 생사도 맡기고, 빈부 귀천도 맡기고, 승패도 맡기고, 다 맡기고, 다 맡겨 놓고 나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 사랑하고 섬기는 것 외에 나 할일이 없어요. 그것만 하지 딴것은 없습니다. 그것 하는 것을 못 하도록 하는데 못 하도록 할려고 해 봤자, 죽인다 해 봤자 그 생사를 다 주님에게 맡겨 놓았으니까 죽인다 하는 것이 효력이 납니까, 가난하게 한다는 것이 효력이 납니까, 배를 곯린다는 것이 효력이 납니까 아무 효력이 없어요. 잡을 건더기가 있어야지! 이 자가 아니면 첫째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데 둘째 나온 짐승 간사한 요것이 처음 짐승의 권세를 입어 가지고 처음 짐승의 그 용의 말을 하면서, 껍데기는 두 뿔 가진 새끼양이오. 껍데 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교요. 아주 참 모든 사람이 존경할 만한 참 자비 의 예수교, 사랑의 예수교, 도덕의 예수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양 그리스도는 아니고 그것은 거짓 그리스도인데 먼저 나온 짐승의 새끼요. 말은 용처럼 말하더라. 먼저 나온 짐승의 권세를 쓰더라.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해서 섬기라 높이라 우상을 만들라 이러는데 그 우상은 말하더라. 그럭저럭 하다 보니까 이제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거짓 기독교, 말하는 우상, 사람 그것이 지금 왕이 되어 가지고 주장을 합니다 성도의 박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오른손은 행위를 말합니다. 이마는 사상을 말합니다. 그 사상을 받든지 그 행위를 가져야 되지 … 누구든지 이 표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 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매매를 못 하게 한다 말은 물물 상통을 못 하게 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땅 위에 살 수 없도록 만든다는 말입니다. 못 살게 만들어요. 이러니까, 잘 살 수 있는 그 길 가지 무엇 할려고, 핍박, 조롱, 천대, 모 든 사람에게 멸시 천대받는 예수를 꼭 짊어지고, 예수를 꼭 모시고 못 살게 하는, 매매도 못 하게 하는 그 길 갈 필요가 뭐 있어요 또 몇이든지 죽이는데. 뭣 때문에 예수를 따라가겠어요 몇이든지 죽이고 매매도 못 하게 하는데. 그때에 주를 따라가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가 릴려고 이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영계를 만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손해보지 않습니다. 속지 않아요. 이러니까 이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여지고 구원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여져요. 그러니까 바울이 다니는 자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그의 마침은 멸망이니라. 했습니다. 좋으 면 얼마 가겠소 좋은 사람을 봅니다. 아주 세상에 좋은 사람 봅니다. 그것이 좋은 것 가지고 주님 믿어서 주님과 연결이 되어서, 그 좋은 것 가지고 주님을 기쁘 시게 하고, 그 좋은 것을 주님이 주셨고 주님이 기뻐하셔서 더 좋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면 참 좋지만, 주님 팔고 진리 팔고 영원한 구원 팔아 가지고 땅위에 좋은 것 있다 하는 그것이면 불쌍하고 가련하지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 이 표는 어떤 표냐 이 표는 어떤 표냐 짐승의 이름이나 짐승 이름이라. 짐승 이름이라는 말 이 무슨 말입니까 세상 이름이라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이든 지 저 세상이든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라 그말이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자기 정신에나 자기 행위에, 그 경배하는 것,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들을 주님과 진리보다 천국보다 구원보다 앞세 우지 아니한 자는 다 죽여. 생활 못 하게 만들어. 이렇게 마구 쫄아재낍니다. 쫄아재끼니까 누가 필요 없고 백해무익으로 고생만 되는 예수를 걸머지 고 다닐 필요가 뭐 있겠소, 있기를 진리를 거머쥐고 다닐 필요가 무엇이 있겠어요 성경 다 불태워 버려요. 다 집어 던져버려요. 예수 욕하고 집 어던져 버려요. 에, 더럽고 징그러운 예수! 그럴 때에, 그럴 때에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 경배하지 않는 그자가, 그자가 주님 믿는 자이지, 그자에게 하나님은 다 맡길 수 있지. 조금 어려워도 변 하는 그자에게 하나님이 맡겨 가지고 어쩔려고 짐승의 실체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그것이 내나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세상을 근본 으로 삼는, 이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돈 세상을 근본으 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권세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행락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예술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또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쨌든지, 차지는 하나님 차지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차지를 줬든지 세상 어떤 것에게 차지를 줬든지, 그에게 있는 보좌에는 세상이든지 인간이든지 그런 것이 다 앉고 주님이 앉아 있지 않는, 보좌 다툼인데 주님이 앉아 계시지 못하고 주님은 다 뺏기고, 그 사람의 제일 상상 보좌, 제일 높은 보좌, 제일 귀한 보좌 이것을 세상과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세어보라. 곧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 라. 그것이 좋기야 좋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수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러기에 이 표를 받지 아니할려고 하면 자기의 생명을 빼앗길 각오 해야 됩니다.
생명을 빼앗겨도 이 표를 안 받아야 되지 생명 가지고 이 표 안 받을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이 세상 생애를 살지 못해도 이 표 안 받겠다 해야 되지 세상에 살면서 안 받겠다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짓 기독교가 세력을 얻어 가지고 참 기독교를 거짓 기독교화시킬려고 할 때에 몇이든지 죽여요. 그들은 다 아니까. 이러기 때문에 아예 생명을 내놓은 자, 제단 위에 올려 놓은 자, 이 자 가 거짓 기독교를 이길 수 있고, 또 매매를 못 하게 하니까 아예 매매 그걸 다 내어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매매 못 하고 굶어 죽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감옥에 갇혀 죽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거지 되면 그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어쨌든지 세상 생활을 못 하게 하든지 뭐 목숨을 붙어 있지 못하게 하 든지 어쨌든지 그에게만 경배하고, 그에게만 경배하고 그의 법도만 지키려 고 하는 이 사람만 이 경배를 안 하고 지나 갈 수 있습니다. 결론 그런고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 이 짐승 두 마리. 하나는 두 뿔 가진 양의 새끼 같은 것, 어린양보다 새끼양은 더 어리고 더 순진 하지 않습니까 땅에서 나왔고, 하나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입니다. 이러니까, 표범같고 곰같고 사자같은 그것도 뭐이냐 하나도 제가 가지 고 있는 것이 없으면 됐어요. 암만 표범같고 사자같이 와 봤자 내 생사를 주님에게 맡겨 놓았으니까 그것이 나에게 협박 줄 수가 없어요. 표범이 협 박 줄 수가 없고 사자가 오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종결입니다. 그런고로, 두 짐승을 기억하고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 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 그다음에 승리가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과 인내가 여기 있어요. 성도의 지혜가 여게 있어요. 지혜가 있어도 중간에 가다가 떨어지 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밀고 나가는 그 지혜가 성령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을 때에 귀가 있어 듣는 자는 들을 것이고, 아예 내 생명이고 몸이고 소유고 온 내 세상 모든 것 다 주님에게 맡겨 놓고 주님 께 일임을 해놓고 나는 하나님 섬기는데 그 법칙대로 섬길 것. 하나님 법칙대로 섬기는 사람, 하나님을 하나님의 법칙대로 섬기는 이 사람으로 사는 것 이것 하나만 제 힘인 줄 아는 그자가 이기고, 그자 가리 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자가 하늘나라에 필요합니다. 그자가 하 늘나라의 일꾼이오. 그 외에는 소용이 없어요, 지저분한 거는. 다 거기 가 있어도 일거리지요. 하나님 섬기는 것, 또 하나는 뭐이요 하나님 섬기는 법칙, 또 하나는 뭐이요 이렇게 사는 자기. 이 세 가지만 우리가 가지고 갈 사람들이 요, 이것만 가지고 가는 거기에서 최종의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데 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지만 다 죽었습니다.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뭐 어때서 행위의 온전함이 없거든. 이러니까 이 절정 을 넘은 데에서 이제 확정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모든 신앙 생활 보면 절정이 있습니다. 고개 넘는, 마지막 고개 넘는 것이 있어요.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해서 하신 것은 요 절정 넘기 위해서, 지성과 지공법을, 당신의 세포 하나라도 혹은 원치 안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지공에 걸려 버려요. 생명의 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라도 가지고는 못 갑니다.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에누리가 없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 전인류가 뭐 똘똘 뭉쳐서 그 앞에 다 복종하는데. 예수 믿는 것은 이렇게 외로와지는데. 또 땅에서 나온 짐승도 그것의 앞잡이 가 되어 가지고 다 되고 … 어린양으로 도피한 자는, 이제 진실한 자는 이 렇게 고독해서 몇이든지 죽이는데. 죽어도 그러면 당신이 왜 이렇게 하는가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죽을 것이기 때문에 죽는 죽음 당신과 진리와 세상 위해 죽었으면 그러면 예수님의 승리지요. 다른 것 뭐 있습니까 깨닫고, 에누리하지 말고 믿읍 시다.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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