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탕자와 마음의 탕자 (눅15:25-32)
본문
할렐루야!! 여호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이 오늘 저녁에도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었다가 다시 찾는 세가지의 비유 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3절-7절까지의 목자가 한 마리의 양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을때의 기뻐하는 잃은양의 비유의 말씀이 있고
2 8절-10절까지는 한 여인이 은전 열 개 중에서 한 개를 잃어버렸다거 다시 찾은 기쁨을 나누는 말씀이고 3 11절 이하의 말씀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찾는 비유의 말씀 입니다. 이 세가지의 비유중에서 오늘 본문의 비유를 가르켜 우리는 보통 탕자의비 유 라고 합니다. 이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며 성경중에서도 참으로 흘륭한 말씀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의 말씀에서는 두 아들이 등장을 합니다. 하나는 잃었다가 다 시 찾은 즉 탕자인
둘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외면적으로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 잘하는 맏아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두 아들중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탕진을 하고 돌아오는 것에다가만 포커스(Focus)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기록된 첫째아들에 대해서는 그냥 흘려버리기가 일수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탕자는 재물을 탕진한 작은 아들만이 탕자가 아니라 집에서 아버지 밑에서 적어도 동생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도 않았고 가출을 하지도 않았고 또 아버지의 재산을 축낸일도 없이 그저 묵묵히 일만 한 맏아들 그도 결국은 탕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비록 도덕적으로는 결함이 없는 깨끗한 아들이지만 마음의 탕자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물려받아서 멀리떠나가 그 재산을 창기와 더불어 탕진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돈 떨어지니까 친구도 떨어지고 아 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당장 급한 것이 먹어야 사는 문제입니다. 돈떨어 지니까 누구하나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할수없어 돼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으나 그것도 여의치 못 하였습니다. 이 아들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 비로서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집이 소중 한 것과, 아버지의 집에서 만끽할 수 있는 평안과 평강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은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귀향을하여 아버지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아들의 명분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겉으로는 착실했으나 속으로는 탕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 그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집에서 풍류소리와 잔치하는 소 리가 들려왔습니다. 종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바로 자기 동생이 돌아와서 아 버지가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맏아들은 화 가 났습니다. 자기처럼 열심히 일하고 착하게 사는 아들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 리 잡아주지 않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허렁벙탕하여 탕진하고 거지 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에게는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 못내 못마 땅한 것입니다. 바로 맏아들은 마음의 탕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도들중에서도 혹시 이런 맏아들과 같은 탕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가졌다면 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 이시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맏아들이 왜 탕자였나 하는 것을 네가지로 말씀을 드리 므로 행여라도 오늘의 우리들이 그중에서 한가지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시 간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
1. 맏아 들은 몸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마음은 항상 소외된 삶 을 살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멀리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맏아 들은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아버지를 떠나 마음의 탕자가 된 것입니다. 어쩌먼 맏아들은 동생이 집을 나간 것을 은근히 좋와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마음놓고 아버지의 재산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좋와하였는데 그의 라 이벌인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동생이 요구하니까 선선히 재산을 나눠주신 아버지가 이번에도 또 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이 줄아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입니다. 사람은 겉으로는 안그런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경계하고 그리고 미워합니다. 그러니까 맏아들은 항상 소 외된 생활을 합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정이나 사회 속에서 소외된 마음을 갖기가 쉽습니다. <예> 미국의 휴스턴에 챨스알렌이란 목사님은 하도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걸려오는 전화도 많아서 몇 달이고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 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 사이를 날라 다니는 수많은 새들과 짐승들, 자연은 참으 로 아름다운 경관이었습니다. 좋왔습니다. 지금까지의 복잡하고 항상 쫏기는듯 한 것들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몇 달만 쉬었다 가자고 생각을 하였 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을 채 우고는 사람들이 그리워서 도로 산을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가정을 떠나고 사회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외된다는 것은 비극중의 비극입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Wlliam shakrspeare 1564-1616)는 말하기를 "지혜 로운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곳을 알지만 어리석은 살람은 자신이 어리 석다는 것을 모른다" 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맏아들은 집에서 일도 열심히 하고, 아버지의 일을 잘 돕는 열성도 보였지만 실상 그의 마음은 텅 비어 자기 자신을 상실한 탕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몸은 아버지와 같이 있으나 마음은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모습 이 오늘날 나의 모습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맏아들은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을 나갔던 동생이 돌아와 큰 잔치가 벌어졌는데 맏아들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서 겉으로만 돌면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출을 한 아들이 아닙니까' '그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같이 허랑방탕하여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나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았는 데 동생을 위해서 살찐 암소를 잡다니요 그럴수는 없습니다.' 하고 비판적이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중에 29절에는 "나" 라는 말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중심이 되는 마음과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는 마음이 바로 맏아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예>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디즈니랜드 라고 하는 어린이들이 좋와하는 꿈의 도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21세의 청년이었던 월트 디즈니 라는 청년이 남의 대문간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콩을 주워먹으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는 데 그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창조성을 발휘하여 미키마우스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디즈니랜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가 만일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 대해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였다면 그는 결코 성공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맏아들은 동생이 돌아왔을 때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탕자의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없애야만 은혜 와 평강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축복의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될줄 로 믿습니다.<아멘!>
3. 맏아들은 은혜에 감사할줄 모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가출을하여 돼지우리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31절 말씀에 아버지는 불평을 터뜨리고 있는 맏아들을 향해서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것이 다 네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아버지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마음이 바로 탕자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마음은 은혜에 감사할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경계하여야 할 것 두가지를 교훈하였습니다. 그 첫째가 율법주의를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이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얼마를 했으니까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실 것이다' 라고 생각 하고 바라는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입니다.
둘째로, 지식의 교만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지식만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의를 자랑하고 행 위를 자랑하다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가정의 은혜, 친구의 은혜, 교회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탕자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 여러분이 잘 아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밀레(Jean Francois Miiet 1814-1875)는 그림 공부를 하려고 파리로 갔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고향으 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밀레는 20년동안 농사를 짓는 중에서 틈 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밀레의 그림중에는 목가적(牧歌的)인 그림이 많습니다. 그중에 유명한 그림이 바로 만종(晩鐘)이라는 그림입니다. 두 부부 (夫婦)거 열심히 일을 하다가 석양이 지는 들녁으로 교회당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종소리에 손을 모으고 기도드리는 모습을 그린 아주 순박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 속에는 세가지의 신성(神聖)이 있는데 가정의 신성, 노동의 신성, 그리고 감사할줄 아는 종교의 신성입니다. 밀레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할줄 로 믿습니다.<아멘!>
4. 맏아들은 사랑과 동정심이 없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본문 32절 말씀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런 아버지의 말에도 맏아들은 동정심이나 사랑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긍휼을 베푼 다고 하셨습니다.(마5:7) 이와 같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없고 자비를 베푸는 마음도 없는 사람이 바로 마음의 탕자입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들의 마음에 사랑과 동정심이 없을 때 그 마음은 탕자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감사할줄 모르고, 사랑도 할줄 모르고, 용 서할 줄도 모르고, 동정심도 없이 지내는 소외된 마음, 비판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탕자의 모습이야 말로 그 모습이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스 스로 반성하고 회개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 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창정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지금까지는 '탕자의 비유' 라고 해서 집 나갔던
둘째아들에 대한 내용만을 주로 생각해 왔고 맏아들에 대한 내용은 소 홀히 취급하여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 진정 누가 탕자인가를 생각해 보 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패륜아입니다. 도덕적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 아들을 용서하고 아들의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하는 아들에게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작은 아들처럼 도덕적인 패륜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의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 부모님도 잘 섬 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탕자였습니다. 마음의 탕자는 도덕적 인 탕자보다 더 죄가 클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의 맏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보는것과 같 은 진실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은 1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도 우리들은 하나님이 나를 떠났다고 스스로 소외됨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2모든 일을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살아왔고 3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줄로 모르며
4사랑과 동정심이 메마른 중에 살아왔습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마음의 탕자' 입니다. 이제부터는 이와 같은 상태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 와 함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긍적적이고도 감사할줄 알고, 사랑할줄 아는 심령으로, 변화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은총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었다가 다시 찾는 세가지의 비유 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3절-7절까지의 목자가 한 마리의 양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을때의 기뻐하는 잃은양의 비유의 말씀이 있고
2 8절-10절까지는 한 여인이 은전 열 개 중에서 한 개를 잃어버렸다거 다시 찾은 기쁨을 나누는 말씀이고 3 11절 이하의 말씀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찾는 비유의 말씀 입니다. 이 세가지의 비유중에서 오늘 본문의 비유를 가르켜 우리는 보통 탕자의비 유 라고 합니다. 이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며 성경중에서도 참으로 흘륭한 말씀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의 말씀에서는 두 아들이 등장을 합니다. 하나는 잃었다가 다 시 찾은 즉 탕자인
둘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외면적으로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 잘하는 맏아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두 아들중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탕진을 하고 돌아오는 것에다가만 포커스(Focus)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기록된 첫째아들에 대해서는 그냥 흘려버리기가 일수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탕자는 재물을 탕진한 작은 아들만이 탕자가 아니라 집에서 아버지 밑에서 적어도 동생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도 않았고 가출을 하지도 않았고 또 아버지의 재산을 축낸일도 없이 그저 묵묵히 일만 한 맏아들 그도 결국은 탕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비록 도덕적으로는 결함이 없는 깨끗한 아들이지만 마음의 탕자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물려받아서 멀리떠나가 그 재산을 창기와 더불어 탕진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돈 떨어지니까 친구도 떨어지고 아 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당장 급한 것이 먹어야 사는 문제입니다. 돈떨어 지니까 누구하나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할수없어 돼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으나 그것도 여의치 못 하였습니다. 이 아들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 비로서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집이 소중 한 것과, 아버지의 집에서 만끽할 수 있는 평안과 평강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은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귀향을하여 아버지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아들의 명분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겉으로는 착실했으나 속으로는 탕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 그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집에서 풍류소리와 잔치하는 소 리가 들려왔습니다. 종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바로 자기 동생이 돌아와서 아 버지가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맏아들은 화 가 났습니다. 자기처럼 열심히 일하고 착하게 사는 아들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 리 잡아주지 않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허렁벙탕하여 탕진하고 거지 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에게는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 못내 못마 땅한 것입니다. 바로 맏아들은 마음의 탕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도들중에서도 혹시 이런 맏아들과 같은 탕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가졌다면 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 이시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맏아들이 왜 탕자였나 하는 것을 네가지로 말씀을 드리 므로 행여라도 오늘의 우리들이 그중에서 한가지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시 간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
1. 맏아 들은 몸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마음은 항상 소외된 삶 을 살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멀리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맏아 들은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아버지를 떠나 마음의 탕자가 된 것입니다. 어쩌먼 맏아들은 동생이 집을 나간 것을 은근히 좋와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마음놓고 아버지의 재산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좋와하였는데 그의 라 이벌인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동생이 요구하니까 선선히 재산을 나눠주신 아버지가 이번에도 또 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이 줄아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입니다. 사람은 겉으로는 안그런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경계하고 그리고 미워합니다. 그러니까 맏아들은 항상 소 외된 생활을 합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정이나 사회 속에서 소외된 마음을 갖기가 쉽습니다. <예> 미국의 휴스턴에 챨스알렌이란 목사님은 하도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걸려오는 전화도 많아서 몇 달이고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 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 사이를 날라 다니는 수많은 새들과 짐승들, 자연은 참으 로 아름다운 경관이었습니다. 좋왔습니다. 지금까지의 복잡하고 항상 쫏기는듯 한 것들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몇 달만 쉬었다 가자고 생각을 하였 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을 채 우고는 사람들이 그리워서 도로 산을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가정을 떠나고 사회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외된다는 것은 비극중의 비극입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Wlliam shakrspeare 1564-1616)는 말하기를 "지혜 로운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곳을 알지만 어리석은 살람은 자신이 어리 석다는 것을 모른다" 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맏아들은 집에서 일도 열심히 하고, 아버지의 일을 잘 돕는 열성도 보였지만 실상 그의 마음은 텅 비어 자기 자신을 상실한 탕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몸은 아버지와 같이 있으나 마음은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모습 이 오늘날 나의 모습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맏아들은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을 나갔던 동생이 돌아와 큰 잔치가 벌어졌는데 맏아들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서 겉으로만 돌면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출을 한 아들이 아닙니까' '그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같이 허랑방탕하여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나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았는 데 동생을 위해서 살찐 암소를 잡다니요 그럴수는 없습니다.' 하고 비판적이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중에 29절에는 "나" 라는 말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중심이 되는 마음과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는 마음이 바로 맏아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예>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디즈니랜드 라고 하는 어린이들이 좋와하는 꿈의 도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21세의 청년이었던 월트 디즈니 라는 청년이 남의 대문간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콩을 주워먹으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는 데 그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창조성을 발휘하여 미키마우스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디즈니랜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가 만일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 대해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였다면 그는 결코 성공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맏아들은 동생이 돌아왔을 때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탕자의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없애야만 은혜 와 평강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축복의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될줄 로 믿습니다.<아멘!>
3. 맏아들은 은혜에 감사할줄 모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가출을하여 돼지우리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31절 말씀에 아버지는 불평을 터뜨리고 있는 맏아들을 향해서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것이 다 네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아버지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마음이 바로 탕자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마음은 은혜에 감사할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경계하여야 할 것 두가지를 교훈하였습니다. 그 첫째가 율법주의를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이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얼마를 했으니까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실 것이다' 라고 생각 하고 바라는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입니다.
둘째로, 지식의 교만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지식만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의를 자랑하고 행 위를 자랑하다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가정의 은혜, 친구의 은혜, 교회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탕자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 여러분이 잘 아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밀레(Jean Francois Miiet 1814-1875)는 그림 공부를 하려고 파리로 갔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고향으 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밀레는 20년동안 농사를 짓는 중에서 틈 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밀레의 그림중에는 목가적(牧歌的)인 그림이 많습니다. 그중에 유명한 그림이 바로 만종(晩鐘)이라는 그림입니다. 두 부부 (夫婦)거 열심히 일을 하다가 석양이 지는 들녁으로 교회당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종소리에 손을 모으고 기도드리는 모습을 그린 아주 순박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 속에는 세가지의 신성(神聖)이 있는데 가정의 신성, 노동의 신성, 그리고 감사할줄 아는 종교의 신성입니다. 밀레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할줄 로 믿습니다.<아멘!>
4. 맏아들은 사랑과 동정심이 없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본문 32절 말씀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런 아버지의 말에도 맏아들은 동정심이나 사랑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긍휼을 베푼 다고 하셨습니다.(마5:7) 이와 같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없고 자비를 베푸는 마음도 없는 사람이 바로 마음의 탕자입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들의 마음에 사랑과 동정심이 없을 때 그 마음은 탕자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감사할줄 모르고, 사랑도 할줄 모르고, 용 서할 줄도 모르고, 동정심도 없이 지내는 소외된 마음, 비판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탕자의 모습이야 말로 그 모습이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스 스로 반성하고 회개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 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창정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지금까지는 '탕자의 비유' 라고 해서 집 나갔던
둘째아들에 대한 내용만을 주로 생각해 왔고 맏아들에 대한 내용은 소 홀히 취급하여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 진정 누가 탕자인가를 생각해 보 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패륜아입니다. 도덕적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 아들을 용서하고 아들의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하는 아들에게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작은 아들처럼 도덕적인 패륜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의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 부모님도 잘 섬 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탕자였습니다. 마음의 탕자는 도덕적 인 탕자보다 더 죄가 클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의 맏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보는것과 같 은 진실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은 1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도 우리들은 하나님이 나를 떠났다고 스스로 소외됨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2모든 일을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살아왔고 3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줄로 모르며
4사랑과 동정심이 메마른 중에 살아왔습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마음의 탕자' 입니다. 이제부터는 이와 같은 상태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 와 함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긍적적이고도 감사할줄 알고, 사랑할줄 아는 심령으로, 변화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은총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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