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임자를 아는 소 (사1:2-6)

본문

성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룩한 제물로 성별한 짐승이 세 가지 소 와 양과 비둘기가 있읍니다. '사람이 존귀하지만 깨닫지 못하면 멸 망하는 짐승 같다'고 시편 49편 2o절에 말한 것처럼 들에서 일하는 소나 묵묵히 땀흘리며 짐을 나르는 소를 볼 때마다 우리는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읍니다. 우리는 소에게서 많은 것 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교회의 이싱 적인 교인상을 소에게서 발견합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압니다 이사야 선지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 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 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도다'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타락한 백성을 향하여 탄식하고 있읍L=
I.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 가 부패 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 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 러갔도다'하였습니다. 소는 임자 를 압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은 임자되시는 하나님을 몰라 보 고 그 은혜를 만흘히 여길까요 아사야 선지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때 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히 여기시리라.'라고 하였 습니다. 소도 자기에게 여물을 먹이는 주인을 알아봅니다. 나귀는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알고 제 구유를 찾아 먹습니다. 이 즈라엘 백성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주인 으로 섬겼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을 향하여 '내 백성이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퍼 곧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말하고 있읍니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석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 어나 우리를 구원하소 서 하리라'(렘2:27)한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살이에 분주하고 할 일 많아도 주일에는 분명히 교인의 구유인 교회를 찾아 신령한 말을 먹어야 합니다. 교회는 아무 교회나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 제단을 찾아 갈 줄 알아야 합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도록 자기 교회 를 찾아야 합니다. 주인의 구유를 압시다. 진실한 성도는 주님의 구유를 알고 구유에 담겨진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첫째, 소는 주인을 위하여 가장 유익한 동믈입니다 소는 먹이에 구애되지 않고 아무 것이나 잘 먹고 아무 데서나 잠 을 잡니다. 병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큰 재산이 됩니다. 농촌에서는 자녀들을 낳을 때 송아지 한 마리만 사서 몫을 지으면 장래 학비 문제와 결혼 문제까지 해결이 됩니다. 언제고 소 시장에 팔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는 큰 재산입니다. 소는 자기를 위해 산다든가 죽은 일이 없고 오직 주인을 위해 살 고 죽습니다. 소는 일 해도 주인을 위해 일합니다. 밭 갈고 농사를 지어도 오두를 주인의 것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좋은 것은 모두 주 인에게 주고 소는 부스러기와 볏짚과 콩깍지 고구마순으로 만족합니다. 소는 죽어도 주인을 위해 죽습니다. 소는 참으로 짐승 중에 왕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안 은 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국가적으로 없어서는 암될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l0장1s절을 보면, '그런 즉 너희가 먹든 지 마시든 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 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쎄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같이 모 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않고 많은 사람 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하였읍니다. 소같은 신자가 됩시다. 소같은 신자는 교회의 큰 재산이며 보배 입니다. 소같은 성도는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부스퍼기를 먹 습니다. 성도는 어디에 가든지 유익을 주는 사람 이 되어야 합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소같은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은 열심히 일하며 봉사와 헌신을 겸비한 사람이된다는 말입니다. 소는 일하는 동물입니다. 소는 쉬지 않고 일 해도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 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퍼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햐i 시니라'(마9:56-s8) 하였습니다. 오늘 주님께저는 소같이 일하는 일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로 여길지더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고 했읍니다.
둘째, 소는 주인에게 층성스런 동믈입니다 충성은 오직 주인만을 위하여 바치는 희생입니다. 소는 충성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소는 충성하되 죽을 때까지 충성합니다. 한결같이 충성합니다.소는 충성하되 게으름이 없습니다. 변덕을 부리지 않습니다. 소는 충 성하되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다만 종으로 겸손하게 오 직 주인 만을 위해 충성할 뿐입니다 사무엘상 6장1절 -6절을 보면,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충성스런 소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엘리제사장 때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이 uut 앗은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네들의 신당 곁에 두었습니다. 이튿날 아스돗 사람이 일찍일어나 본 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 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 이만 남게 되고 독종 재앙이 계속 내려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방백들을 모 아 법궤를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 보내는 것이 좋다하여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메어보 지 않은 젖나는 소 두 마리를 택하여 수레를 소에 메우고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 고 벳세메스로 향하여 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암소가 벳세메스 길로 바로 향하여 대로로 가며, 갈때울 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소는 벳세메스 경계에까지 가서 법궤를 이스 라엘 땅에 옮기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멘 소는 바로 갔습니다.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도 아니했으며 먹을 것이나 산이나 사람을 구경하 지도 않았습니다. 뒤돌아 보지도 않고 갔습니다. 어린 송아지를 떼 어 놓고 눈물이 앞을 가려 울면서 갔습니다. 험난 한 길 중도에 포기도 없이 갔습니다. 법궤를 멘 소 ! 이 얼마나 충직한 짐승입니까 이 소를 보았기 에 수 많은 종들이 죽으면서도 기쁨으로 소망으로 거룩한교회를 지 켰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뒤돌아 보지 않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이 우리를 몰라 주고 멀리해도 주t1 뜻 가운데 살 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의 사명을 법궤를 메고 가는 소같은 신자입니까 아니면 세상 죄짐에 메어 있는 소 입니까 스스로 반성해 봅시다.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 못가는 길 영문밖에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골고다의 험한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 오늘 이 시간 신령한 눈을 뜨고 벳세메스로 눈물을 흘리며 묵묵 히 걸어가는 소를 봅시다. 여기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의 모 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충성을 한다는 것은 죽음 을 각오한 것입니다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 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s) 고 하셨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있었던 일인데 목사님 한 분이 종교 탄압으로 인하 여 구속당하셨습니다. 그 가,구속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믿고 전도 하는 죄목이었습니다.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는 신앙을 지켰읍니다. 루마니아 공산당은 최후의 방법으로 목사님이 갇혀 있는 감 방 곁 에서 어린 자식을 고문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들의 비명소리에 아버지는 가슴이 녹아내렸읍니다. 사님은 큰 소 리로 외쳤습니다. '내 아들에게 고문을 중단하라. 너희의 요구대로 다 하겠다.죄없는 내 어린 아들에게 손 대 지 마라' 하였습니다. 저들의 고문은 중단되고 아버지의 입에서 예수가 부인되려는 순 간이 었습니다. 그때 어린 아들은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읍니다. '아버지 저는 살아서 예수를 부인한 목사의 아들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신앙을 지키다가 예수님 품에 안기는 아버지 아 들이 되기를 원합니다'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퍼분 ! 우리는 믿음을 지킵시다. 충성스런 종이 됩시다. 죽음도 주님을 위해 죽읍시다.
셋째,소는 주인을 위해 성별된 동믈입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짐승을 이렇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육지의 모든 짐승 중에 너회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 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 고 새 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새김질하는 것은 소화를 잘 시킨다는 것이요 발의 굽이 갈라진 것은 어느 곳이든 강하게 디디고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 가 소처럼 강한 힘을 내고 또 크게 일할 수 있을까요 소처럼 소 화를 잘 시킬줄 알아야 합니다. 소는 영양있고 좋은 음식을 먹어서 힘이 센 것이 아닙니다. 무엇 을 먹든지 소화를 잘 시키므로 힘을 얻은 것입니다. 성도는 강단예 서의 말씀을 '아멘'으로 소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를 비판이나 하고 이러룽 저러쿵 하는 사람은 신앙적으 로 성장하기 어 렵고 또한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몸에 병이 걸리면 진수 성찬도 맛이 었습니다. 목사 님 설교에 은혜가 없다 하는 것은 내 심령이 병든 증거입니다. 신앙쎄 병이 들면 아무리 귀한 말씀을 주어도 소화는커녕 먹지 도 못합니다. 병든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심 령이 건강치 못한 자신을 회개합시다. 신실한 성도는 모두 말씀을 듣고 자기의 취향이나 자 기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아멘'으로 받아 들여 소화하는 성도입니다. 소화를 시 키되 되새김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등고 묵상하고 그 깊은 뜻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음미 하면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면서 새김질하면 반드시 해답이 나올 것입니다. 저희 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 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로다' (히브리서4:2)하였습니다. 듣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들은 바 말씀을 믿음으로 새김질 할 줄 알아야 묵상 중에 은혜 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성도는 은혜를 받고 갈 지언정 시험 받고 가지 말 아야 합니다. 승리하여 축복 받은 사람은 새김질 하면서 말씀을 교 훈삼아 넘어지지 않고 빼앗기지 않고 더 받는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잘 갈라져 구별된 생황을 하지만 새김질을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을 받 았습니다. 뱀은 새김질을 않고 통채로 삼켜 버럽니다. 그들은 뱀같 은 생활을 하였습니다. 자기들은 세리같은 죄인이 아님을 말할 뿐 자신이 죄인됨을 묵상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가증한 자들이었읍니다. 소는 새김질하므로 큰 덩치의 몸이 지탱이 되고 힘을 냅니다. 저는 가끔 소를 볼 때 마다 입쎄 서 침 흘리며 새김질하는 소리가 이렇 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입에서는 '아멘, 아멘'하는 것 같고 위장 에서는 '할렐루야, 할렐루야'라고 하는 것 같슘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 저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강단에서 외치는 말씀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으로 설교하기에 교회마다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성도들이 소화를 잘 시키면 큰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내가 주의 법을 어찌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 을 종일 묵상하리로다.'(시편119:97) 하였습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 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 이다'하는 묵상의 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묵상 하고 '아멘'하며 감사로 받아 들일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축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소가 밭을 갈고 짐을 나르는 큰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굽이 있 기 때문입니다 소는 발에 굽 이 있기에 밭을 갈고 먼 길도 걸을 수 있습니다. 소 의 발에 굽이 있듯이 성도는 하나님 앞 에 구별하여 행동 할줄 알아 야 합니다. 성도는 주일을 세상 날에서 갈라서 예배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 고 안식일 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즐거운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하여 존귀히 여기고 네 길을 행치 아니하고 네 오락 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 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58:ls)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천성을 향해 가는 데 발병이 나지 않도록 발 걸음마다 굽 이 갈라져 있어야 합니다. 아무데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신 앙생활이 시험되는 것은 가서는 안될 곳에 가기 때문입니다.
앉을 자리를 구별하여 앉고,누울 자리를 구별하여 누워야 합니다.삼손이 가서는 안될 곳에 갔고 누워서는 안될 드릴라의 무릎에 누웠다가 신 세 망친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고 십리도 못가서 발병 이 납니까 e발걸음에 구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성일을 구별하여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 의 것으로 성별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써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소가 굽이 있는 발로 디디고 서듯이 성도는 선 자리를 구별하여 설 줄 알아야 합니다. '복 있는 성도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한 다'고 하였 습니다. 및과 어둠이 갈라지고 기름과 물이 갈라지듯이 성도는 세상에서구 별하 여 살아야 합니다. 태초에 빛이 들어오면서 흑암이 갈라지듯이 성령님이 임하면 할 일 못할 일이 구별되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 나라 할 때 지체 않고 떠 났습니다.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할 때 내어 쫓았읍니다. 자식을 바 치라 할 때 바쳤습니다. 성도는 불의한 것과 타떱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려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손과 두 발 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 를 범죄케 하거든 uHt 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 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결단 하십시오.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발 걸음이 있습니까 완전히 돌아 서십시오 마지막으로, 소는 하나님 앞에 번제물로 바쳐지는 제물로 쓰 여집니다. 소는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거룩한 제물이었습니다. 송아지의 피뿌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상씽이올시다. 또한 송아지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로 성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성도는 하나님 에 드려야 할 제물이올시다. 구약에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은 깨 끗한 동물이요, 그 중에서도 홈 없는 것으로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 하심으로 너회를 권하노니 너회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장)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짐승을 잡아 제물로 삼았지만 이제는 짐승의 제물이 필 요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산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제사장이 칼로 송아지를 잡아 제물로 드리듯이 오늘 교회에서는 성도가 제물이 되어 말씀의 칼로 죽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검, 말씀의 칼(6:17)로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 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잘못된 1J 각을 죽여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 대로 머리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하는 일과 발로 걷는 걸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에 들어 을 때는 제물로 들어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 절에 성전에 들어가 보 니 소와 양과 비둘기가 산 채로 우글거렸읍니다. 장사꾼들이 장사하러 끌고 들어 왔기 때 문입니다. 예수님은 채찍으로 몰아내시고 내어 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마땅히 들어 와야 할 제물이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짐승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께 묻 습니다. 여러분은 제물로 이 자리에 왔습니까 산 짐승으로 들어 왔습니까 성도가 제물이 되려면 반 드시 장작더미에 불살라져야 합니다. 불살라야 향기가 납니다. 성도는 시간 지간 말씀의 칼로 죽고 성령님 의 불로 태워져야 향기로운 제물이 될 것이요,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지는 아름다운 향기가 될 것입러다. 소는 성도의 상징입니다 소는 주인을 알아보고 열심히 일합니다. 유익을 주며 죽을 때까 지 충성합니다. 소는 간소하게 먹고 소화를 잘 시키 며, 굽이 있는 발로 걸으며 일생 동안 선한 싸움을 다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주 인을 위해 죽습니다. 이것이 소의 일생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기 일생을 기록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갔다.' 그는 그의 죽음을 관제와 같 이 마지막 부음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는 땅에서 충성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소 같은 목사, 소 같은 장로, 권사, 집사, 교인이 됩시다. 오늘 이 시간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 하시길 빕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5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