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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은 성도의 생활 (전9:7-10)

본문

은혜 주옵소서. 성령님을 부어 주옵소서. 교인이라면 이런 기도와 간구를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은혜와 성령님을 부어 주신다. 이러한 은혜와 성령님을 받은 우리는 죄로 가득찬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자칫하면 받은 은혜를 쏟아버리기 일쑤이며, 갖은 시험에 빠져 낙심해 신앙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면서,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길을 달려가 의의 면류관을 얻는 방법이 희한하게도 허무주의의 대명사격인 전도서에 기록되어 있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전1:9) 전도자가 가로되 모든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전 1:2) 위의 성구는 전도서의 중심되는 말씀으로 해 아래의 것 보다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는 뜻 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헛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예수님을 닮으려는 성도들이 라면 그 헛된 것중에서 그래도 올바른 것을 가려내어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그 토록 인생은 허무하다며 한 문장에 헛되다는 단어를 5씩이나 넣어가며 통렬히 비판하던 저자 솔로몬은 전도서 9:7-10 에다가 기술해 놓았다. 즉, 주님께서는 은혜받은 성도는 이렇게 살라. 고 가르치신다.
1 항상 기뻐하라.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전 9:7) 인생의 허무에서 탈출하는 길은 주님이시다. 주님을 앞세울때는 모든 행사에 심지어 먹고 마시는데 까지도 기쁨으로 하게 된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고 기록하였다. 한때 이상구라는 의사가 즐겁게 살아가면 엔도르핀 이 분비되어 건강해진다며 엔돌핀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다. 기뻐하며 즐거 워 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내면으로 부터 솟구쳐 나올 때 가식이 없는 감격의 눈물로 표현된다. 그러한 은혜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계 2:17) 그러한 예로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오순절날 성령님을 받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새술에 취하였다 고 하면 서 조롱하였다.(행 2:13) 오늘날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보고 일주일에 하루 밖에 없는 휴일에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그 좋은 음식인 술, 담배도 삼가고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고 비꼬 지만, 그들이 무어라고 해도 교회에 가면 1주일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얼마나 좋은줄 그들은 모르는 게야. 하나님과 교제하며 느끼는 참 기쁨을 당신들은 모르지만 난 그 기쁨을 알지. 하면서 죽어가는 영 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들은 살아간다. 하기야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우리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일까 바울 사도는 그 심정을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 15:19)라며 토로하였다. 우리 가 할일은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르며, 음식을 먹을때 조차도 기쁘게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하나님과 교제하면 된다. (포도주 얘기가 나오니 음주도 되나 보다하시며 갑자기 눈이 확 뜨이는 분은 안 계시겠죠 필요하다면 주초문제도 다루어 드릴 수도 있지만, 성경연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 정도라면 대강은 아실것이므로 그 문제는 덮어 두겠어요.)
2. 죄와 결별하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전 9:8) 이 말씀에 대해 의복을 깨끗이 하라. 채색 옷은 입지 말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렇 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흰옷을 입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을 백의 민족 이라며 홍보하는 것을 자주 들어 왔다. 혹자는 우리 민족이 백의를 입어온 것은 염색 기술이 부족해서 목화솜 자체 그대로인 백의를 입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흰색은 깨끗함과 평화의 상징임에는 틀림없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계 3:4-5) 내가 너를 권하노니 . 흰옷을 사서 입어. (계 3:18) 성경 말씀에서 흰옷은 성결함을 상징하며, 죄와 결별함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는 철저 한 관리를 요구하신다. 만일 네손이나 네발이 너를 범죄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손과 두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8) 죄의 철저한 결별에 대하여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냐.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으 며,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서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등 아주 작은 죄까지도 안 짓고 살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하며 강변하거나 롬 3:10을 인용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하며 누구나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전에 교우들 앞에서 나는 의인입니다. 라고 했더니 농담으로 듣길래 정색을 하며 말했더니, 아주 교 만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뻔한 적이 있다. 왜들 그렇게 죄에 대하여 결별을 못하고 계속 죄인을 자처하 며 죄 가운데 남아 있기를 원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롬4:5, 5:18,)에 자신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약점을 틈타고 구원파 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나도 구원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확신을 늘 갖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 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1)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습니까 우리가 교인이 아닙니까 우리가 의인됨에 자신을 갖읍시다.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만 성민입니까 이방인이라도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인정한 이상 누가 부정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성경(행 10:15)은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의인이라고 누차 말씀하시는데(요 3:16) 여전히 계속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기도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되뇌이시는 성도님을 보면 참으로 겸손하다.는 생각보다는 답답함이 더든다. 은혜 받은 성도라면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죄 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기도보다는 주님,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의인으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계속 의인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의인이 됨은 우리가 선하고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들을 의인이라고 하 신 것이므로 의인임을 자랑하지 못한다는 말씀(엡 2:8-9)을 보고 우리가 의인됨을 자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할지는 모르나, 이것은 하나님께 자랑하거나 자기 자신의 행실이나 의로 인하여 의인인 것처럼 자 랑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지 않고 반석에서 물을 자신의 능 력으로 낸 것처럼 자랑했기 때문(민 20:12)에 벌을 받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은 것 이 그 예이다. 바울처럼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가진 것을 자랑함(갈 6:17)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믿어 의인이 됨을 떳떳하게 자랑합시다. 주님을 영접하였지만 지금도 죄를 짓고 살고 있는데 어찌 의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할 필요 가 없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 기노라. (롬 7:24-25) 바울사도도 죄 가운데 늘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데,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죄 가운데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죄를 막 지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 전에 올려드린 사망에 이르는 죄 를 참조하 세요.) 의인도 넘어질 수 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느라고 지금도 두루 헤매고 있음 을 알아야 한다.(벧전 5:8)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결코 작은 틈이라도 주어서는 안된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아 3:15)
3. 성령님 충만한 생활을 하라.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전 9:8) 성경을 보면 향은 기도(계 5:8)나 찬양(말 1:11)으로 해석되며,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것은 대제사장이 나 족장에게 행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지명이나 축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전 9:8의 말씀은 영적 은사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고후 1:21, 요일 2:20)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우리 주위의 성도님 중에 더러는 기도원 체질이신 분이 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결코 나 쁠 수는 없지만, 교회예배당이나 산속의 기도원이나 하나님이 주관하심은 마찬가지이므로 굳이 예배당 을 마다하고 기도원을 더 신성시 해서는 안된다. 혹시 이런 분이 있다면, 불교신자들이 어떤 절의 부처 님이 영험하다 며 몰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기도원을 찾는 목적이 주위의 친분있는 분들에게 알 리고 싶지 않은 사정에 대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라든가, 방해를 받지 않고 장시간 기도하기 위한 것이 라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갓 기도원에 다녀오신 성도님들 중에 성령님 충만, 은혜 충만함을 보게 되는데 참으로 보기가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은혜로서의 생활이 며칠 안가서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기도원을 찾아가야만 신앙이 유지되는 분, 속칭 밧데리 교인을 보면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 머리에 향기름이 늘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받은 성령님이 소멸되지 않게 해 야하는데 수시로 기도원을 찾아야하는 밧데리교인이 되는 방법은 적당치 못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방법을 제시해야 하겠는데, 무엇이 받은 은혜를 쏟게 하는가를 알아보아 은혜를 쏟지 않도록 하면 될 것이다. 받은 은혜를 쏟게 되는 이유로는
첫째, 혈기 때문에 요즘 청소년이 저지르는 범죄의 원인은 한마디로 욱 하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이성적으로 대처하 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혈기에 이끌려서 행동하기 때문에 보통때는 생각지도 못하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는 것이다. 하기야 베드로도 예수님이 잡히시자 앞뒤 안가리고 품에 넣고 다니던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 의 종의 귀를 잘라 버리지 않았던가.(요 18:1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19)
둘째, 물욕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기 못하리니 (딘전 6:7) 공수래 공수거는 동서양의 공통 진리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재물에 눈이 어둡고 결국은 사망에 이 르고 만다.(약 1:15) 즉, 물욕은 만악의 뿌리이다. 돈 많은 사람치고 정당하게 돈을 벌은 사람이 드물고, 돈이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돈 자체나 돈 많은게 죄라기 보다는 돈을 사랑함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성경상의 족장이나 욥, 아리마대 요셉 등은 돈 많은 부자였다. 그들을 죄인이라고 부를 수 없듯이 오늘날 부자들이 모두다 죄인은 아니다. 오히려 축복일 수 도 있다.(신 28:2-14) 그러나 부자들은 자칫하면 하나님보다도 부를 의지하게 될 가능성이 많으며 시험 과 올무가 될 가능성이 높다.(욥 31:24, 딤전 6:9) 그렇다고 너무 가난하면 범죄하거나 시험에 들게 되기도하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교인들 중에 더 러는 불교의 우상 숭배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뭐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우리에게 당면한 위험한 우 상은 부처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돈이라는 우상이다. 성공의 척도가 돈 많은 것이 된 우리 사 회가 문제이며, 그것을 부러워하는 나 자신이 문제이다. 불교의 부처야 멸망할 집단의 우상이므로 은혜 받은 성도들과는 별개지만, 물욕은 은혜 받은 성도들의 마음 속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성령님을 소멸하게 만든다.
셋째, 교만한 마음 때문에 목이 곧은 민족이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벧전 5:5)고 했다. 높은 지위에 있을 수록, 섬김을 받는 자일 수록, 학식 을 받는 자일 수록,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을 수록 겸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 김으로써 섬김의 도를 보여 주셨다.
넷째, 기도를 소홀히 하여서 기도는 성도들의 영적 호흡에 비유한다. 호흡이 그치면 죽듯이 기도를 그치면 더이상 신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고(눅 18:1), 쉬지말고 기도하고(딤전 2:8), 무시로 기도해야 한다.(엡 6:18) 다섯째,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기도 중에 우리와 대화하기도 하시지만, 성경 말씀으로 함께 하신다. 성경 말씀이 초신 자에게는 수면제 역할을 하여 성경책만 펴들면 조시는 분이 많다. 물론 잠을 잘 잘수 있는 것도 복이다. 불면증에 시달린 사람만이 그게 축복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도다. (시 127:2) 그러나 더 큰 축복은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꿀과 꿀송이 보다 더달은(시 19:10) 영적 양식이며(벧전 2:2)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다.(계 1:3) 또한 성령님의 검인 말씀으로 무장해야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고(엡 6:17), 개의 세력(시 22:20)을 물리칠 수 있다. 외부의 풍파와 시련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말씀을 의지하면 능히 견디어 낼 수 있다.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눅 22:36)
4. 부부가 화합하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 겁게 살지어다. (전 9:9) 바울 사도는 환난의 날이 임박하므로 독신을 권하였다. 그러나 결혼하는 것이 죄 짓는 것이 아니며, 절제할 수 없다면 혼인하라고 하였다.(고전 7:9, 7:26-28) 지금도 카톨릭 신부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독신으로 지내지만, 시대의 급변에 따라 신부를 지원하는 수가 점점 줄어들어 문제가 되고 있다. 바울이 독신을 권고한 것은 환난의 날이 임박한(고전 7:26)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 교인들은 요한 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죽지 않겠다(요 21:22-23)는 소문과 예수님의 승천 직후 천사의 재림에 대한 예언(행 1:11)에 따라 예수님이 수년 내로 늦어도 십수년 내에 재림하실 것으로 믿었다. 예수님이 2000년이 다되도록 재림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바울은 결코 독신을 권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난의 날이 임박한 순간에 혼인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혼인한 자들도 아내 없는 자 처 럼 행하여(고전 7:29) 전심전력으로 그 어려울 환난의 날을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로 그들은 로 마의 네로를 비롯한 많은 왕들에게 환난을 당했기 때문에 그것이 틀림없는 환난의 날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그 짧은 기다림 동안에도 정욕을 참을 수 없다면 그로 인하여 죄 짓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혼인 하고(딤전 5:14), 기도하기 위해 잠시 헤어져 있던 부부는 즉시 합하라고 하였다.(고전 7:5) 홀로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족을 이끌며 신앙 생활을 하는 것보다 수월할 것이며, 아내나 자녀에게 가제될 사랑마져도 주님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이다.(고전 7:32-34) 그러나 정서적이나 심리적 안정은 결 혼을 한 경우에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예로 봉사와 구제를 주로 담당하던 집사(딤전 3:12),장로 (딛 1:6), 감독(딤전 3:2)의 자격을 보면 결혼한 자로 한정되어 있다. 즉,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결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더러 우리 주위의 어떤 성도님 중에는 산 기도를 간다며 가정을 팽개치거 나, 자녀를 돌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극히 잘못된 것이다. 은혜 받은 자는 가정을 소중히 해야 한다. 아내를 얻은 자는 아내의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면을 돌보아야 한다. 너무 교회에만 매달리 다 보면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는 경우가 목회자의 경우에도 종종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며(골 3:18),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 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는 것이(엡 5:25)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엡 5:28)라는 것이 성경에서 부부 화합의 가르침이다.
5. 열심히 일하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 (전 9:10) 믿는 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은 받은 성령님을 가지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도하는 것이다. (행 1:8) 영으로 받은 은혜는 2배, 5배, 10배의 이익을 남기도록 힘써야 한다.(마 25:14-30) 그게 힘들다 면 애초에 은혜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일에 대하여도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할 정도로 강경한 것을 기억하 며, 육신의 상전에게도 순종하며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히 하듯 대하라(골 3:22)고 하였다. 또한 성경은 인간이 세운 제도에도 순복하며(벧전 2:13), 위정자나 세상의 권세에도 복종하라고(딛 3:1, 막 12:17) 가 르친다. 그 이유는 권세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롬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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