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 (잠27:20)
본문
오늘 본문 말씀에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족함이 없는 눈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눈을 말합니다. 그러한 만족함이 없는 눈을 가리켜서 음부와 유명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옥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범죄한 54억의 영혼들이 한사람 빠짐없이 다 지옥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이제 됐으 니 죄인들아 그만 지옥에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족할 줄 모 르는 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잠언 30장 15절 이하에 보면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와 아이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1장 8절에 보니까 "눈 은 보아도 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새것을 보아도 만족하지 않는 것이 바로 눈입니다. 그런 만족이 없는 곳에 마귀가 역사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6절에 이하에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 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눈이 있기는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5장 21절에 보니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쩡하여 현상 적인 것을 잘 바라볼 수는 있지만 영의 눈은 닫혀 있어서 진짜로 보아야할 것 을 보지 못하는 눈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눈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 절에 보니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이새의 장자 엘리압이나 차자 아비나답이나 삼자 삼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 라엘 왕을 삼을뻔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막으시고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 노릇을 하고 있던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선택하여 그에게 기름을 주어 이스라엘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겉모양을 보는 육신의 눈보다 속을 들여다보는 영의 눈이 중요함을 깨닫고 영안이 밝아지 시기를 축원합니다.
속을 못보고 겉만 보다가는 그 사람은 불행해지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옛 날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모양만 바라보다가 영력을 상실하고 두눈 뽑히고 맷돌질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두눈이 뽑힌 다음에 비로서 영의 눈이 열려져 자기가 범 한 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눈물흘리며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으며, 하나님 께 부르짖어 영력의 재충만을 받고 마지막에 다곤신전을 무너뜨리면서 블레셋 사람을 많이 죽이고 자신도 최후를 맞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와도 겉만 바라보는 육신의 눈이 밝아있었을뿐 속을 들여다보는 영안이 어 두워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적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겉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자신도 불행해지고 후손들에게까지 불행을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겉만 보는 눈대신 속을 보는 영안이 활짝 열려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 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눈도 어두워지면 안경을 끼어야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하 물며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행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우편에 못박힌 강도는 영안이 밝아져서 주 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시거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렸는 데, 왼편에 못박힌 강도는 육신의 눈만 뜨고 영의 눈이 감겨져 있었기 때문에 바로 우편에 못박히신 분이 메시야 구세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조롱하 고 비웃다가 멸망당하여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성령님충만한 스데반은 영안이 밝아져서 하나님이 보였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치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영안이 닫혀 있는 장님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영광 도 바라볼 수 없었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스데반에세 달려들어 돌을 던져서 스데반을 쳐죽이는 끔찍한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3백만명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열두 정 탐꾼이었습니다. 요즈음 서울대학교 입학시험 경쟁률은 1.2대 1, 혹은 2대 1 도 안되지만 그런 경쟁을 뚫고 합격하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런데 12명 의 정탐꾼은 3대 1정도가 아니라 30만대 1의 경쟁을 뚫고 선택되었으니 그 얼 마나 영광스럽고 값있는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부분 육신의 눈만 열려 있었지 영의 눈은 닫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40일동안 정찰하고 다니는 동안 육신의 눈으로 현상적인 것만 바라보고 육신의 눈과 볼신앙의눈으로 본 것들만 보고하다가 자신들도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불행을 안겨다 주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열두 정 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영의 눈이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열명 의 정탐꾼들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보고 하기를 "그들의 신은 그들을 떠났고 우리의 보호자는 우리와 함께 하시니 올 라가기만 하면 그들을 정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라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사실을 믿음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영안이 밝아야 하지 만 특히 역사의 전환기에는 영안이 더욱 밝아져야 합니다. 도단성이 아람군대 에게 포위되어 있을 적에 게하시가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사실을 알고 엘리사 에게 달려가 두려움에 떨며 그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게하시 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이렇게 이야 기 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아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두려워하지 말게. 우리와 함께 하는 천군천사가 더 많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시니 두려워할 것 없네. 사람이나 환경이나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위를 바라보게." 여러분 지금 위를 쳐다보십시요. 무엇이 보이십니까 천장과 불빛만 보입니 까 영의 눈이 닫혀진 사람과 열려진 사람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장 밖에 안보이는 사람은 육신의 눈만 열려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장을 뚫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여지는 사람은 영안이 밝아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게하시처럼 아람군대만 바라보고 두려워 떠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아람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천군천사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보 여지는 영안을 가진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번 아프리카 선교여행을 갔을 때 말라위에서 나흘째 되던 날이엇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버클랜드선교사의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약 2시간 정도 달려갔는데 차로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차를 세워두고 30분쯤 걸어가자 마타케냐라는 교회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다섯교회가 연합하여 에배를 드리는데 많은 교인들이 모여 예배당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어서 노천에서 에배를 드리게 되 었습니다. 기뻐하며 춤추고 찬양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30평 정도되는 예배당 안에 다 들어가게 되었는데 처마 밑에 서있는 사람들도 있었 고 예배당 안에는 사람들이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놓은 것처럼 들어가서 예배 를 드렸습니다. 그 예배당은 벽은 흙벽돌로 쌓아올리고 갈대로 지붕을 덮은 건물인데 비가 쏟아지니까 벽은 완전히 젖어내렸고 지붕에서는 빗방울이 새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꼼짝하지 않고 몇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마쳤는데도 비가 계속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교인들 중에 우산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들 일행이 비를 맞으 면서 차있는 데까지 달려가 타를 탔는데 비에 온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차를 몰고 갔는데 팥죽이 된 비포장도로를 흙탕물을 튀기며 한시간쯤 달려갔습니다. 왼쪽에 산이 병풍처럼 서있는데 그 산에서 급류가 흘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대개 다리가 나무로 건축되어 있었는데 그 다리만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 었습니다.
그런데 급류가 다리 위로 넘어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건 널 수가 없어서 차를 세워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차안에 타고 있던 원주민 목사님이 한달 전에도 홍수가 나서 산안에 있던 호수가 터 지는 바람에 이 유역이 완전히 범람하여 2천명 이상이 떠내려가 죽었다는 이 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왼쪽에 있는 산을 바라보니까 산 중턱에서 폭포수처럼 하얀 물기둥 거품을 쏟아붓는 곳이 6개 이상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물이 모여서 다리를 넘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산 위에 있는 호수가 터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차안에서 하나님께 매어달려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라위라는 나라는 참으로 불 행한 나라입니다. 말라리아, 콜레라, 황열병의 위험과 악어, 맹수, 독사, 구 렁이의 위험을 항상 느끼고 있는데 또 홍수의 위험이 겹치고 있으니 굶주리고 헐벗은 이 나라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 이역만리 머나먼 땅 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홍수에 떠내려가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교회에 돌아 가 성도들을 만날 수도 없고 가족들도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 니까 하나님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제 생각에는 차를 빼서 안전지대로 갔으면 좋겠는데 선교사는 가만히 기다리 고 있어서 믿음이 없이 뒤로 물러가자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한 시간쯤 기도했더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한시간쯤 더 기다리며 기도했더니다 리 위로 흘러가는 물살이 조금 약해진 것 같았습니다. 빨리 물이 줄어야 다리 를 건너서 오늘 브란타이어에 가서 그곳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을 자 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루에 한대 밖에 없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비행기를 놓치면 하루를 기다려야 하는데 예정대로 일정이 진행되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얼마쯤 지나면 물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럭 한대가 성급하게도 건너편에서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짐 을 실은 트럭도 다리 중간쯤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위험해서 마음 졸 이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무사하게 건너오는 것을 보고 박수를 쳤습니다. 또한참 기다리다가 선교사가 용감하게 한번 가보자고 해서 우리는 주 여 도와주소서 하고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하게 그 다리를 건너가고 나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는데 그 순간 우리 교회 성도들 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건너가게 해주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에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일 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렵고 위험한 일이 다가올 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로보며 하나님 앞에 매어달려 부르짖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위기 의 순간에 환경이나 사람 바라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 바라보고 부르 짖어야 될 줄모 믿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육신의 눈은 먼지나 세균같이 너무 작은 것을 볼 수 없고 너무 큰 것도 일부분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우리가 지은 아주 작은 죄를 보고서 회개하게 되고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은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밝으면 볼 수 없기 때문에 캄캄한 밤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태양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아 주 어두운 죄악도 깨달아 회개하게 하고 아주 밝으신 하나님도 볼 수 있게 합니다. 육신의 눈은 너무 가까운 것도, 너무 먼것도 안보입니다. 아주 가까이 있는 눈썹을 볼 수 없으며, 20리, 30리, 천리 밖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여러분 곁에 가까이 계신 성령님도 볼 수 있고 우주 창천에 보좌 위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의 눈이 얼마나 소중 한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져서 살 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날 아침 여러분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져 영의 눈이 열려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축원드 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눈의 변화를 체험해야 되겠습니다. 만족함을 모르는 눈이 만족할줄 아는 눈으로 바꾸어져서 범사에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 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육신의 눈이 영의 눈으로 바꾸어져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눈이 있어도 볼 것을 보지 못하고 현실적인 것만 바라보았 다할지라도 이제는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속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았던 눈이 변화되어져서 겉을 보지 말고 속을 보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땅만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만 보았던 눈이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신령한 눈으로 바꾸 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너희 마음과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기업 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 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 라"는 사도 바울의 기도와 같이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이 밝아져서 이러한 신령 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겉모양을 보는 육신의 눈보다 속을 들여다보는 영의 눈이 중요함을 깨닫고 영안이 밝아지 시기를 축원합니다.
속을 못보고 겉만 보다가는 그 사람은 불행해지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옛 날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모양만 바라보다가 영력을 상실하고 두눈 뽑히고 맷돌질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두눈이 뽑힌 다음에 비로서 영의 눈이 열려져 자기가 범 한 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눈물흘리며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으며, 하나님 께 부르짖어 영력의 재충만을 받고 마지막에 다곤신전을 무너뜨리면서 블레셋 사람을 많이 죽이고 자신도 최후를 맞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와도 겉만 바라보는 육신의 눈이 밝아있었을뿐 속을 들여다보는 영안이 어 두워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적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겉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자신도 불행해지고 후손들에게까지 불행을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겉만 보는 눈대신 속을 보는 영안이 활짝 열려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 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눈도 어두워지면 안경을 끼어야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하 물며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행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우편에 못박힌 강도는 영안이 밝아져서 주 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시거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렸는 데, 왼편에 못박힌 강도는 육신의 눈만 뜨고 영의 눈이 감겨져 있었기 때문에 바로 우편에 못박히신 분이 메시야 구세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조롱하 고 비웃다가 멸망당하여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성령님충만한 스데반은 영안이 밝아져서 하나님이 보였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치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영안이 닫혀 있는 장님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영광 도 바라볼 수 없었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스데반에세 달려들어 돌을 던져서 스데반을 쳐죽이는 끔찍한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3백만명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열두 정 탐꾼이었습니다. 요즈음 서울대학교 입학시험 경쟁률은 1.2대 1, 혹은 2대 1 도 안되지만 그런 경쟁을 뚫고 합격하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런데 12명 의 정탐꾼은 3대 1정도가 아니라 30만대 1의 경쟁을 뚫고 선택되었으니 그 얼 마나 영광스럽고 값있는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부분 육신의 눈만 열려 있었지 영의 눈은 닫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40일동안 정찰하고 다니는 동안 육신의 눈으로 현상적인 것만 바라보고 육신의 눈과 볼신앙의눈으로 본 것들만 보고하다가 자신들도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불행을 안겨다 주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열두 정 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영의 눈이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열명 의 정탐꾼들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보고 하기를 "그들의 신은 그들을 떠났고 우리의 보호자는 우리와 함께 하시니 올 라가기만 하면 그들을 정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라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사실을 믿음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영안이 밝아야 하지 만 특히 역사의 전환기에는 영안이 더욱 밝아져야 합니다. 도단성이 아람군대 에게 포위되어 있을 적에 게하시가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사실을 알고 엘리사 에게 달려가 두려움에 떨며 그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게하시 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이렇게 이야 기 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아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두려워하지 말게. 우리와 함께 하는 천군천사가 더 많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시니 두려워할 것 없네. 사람이나 환경이나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위를 바라보게." 여러분 지금 위를 쳐다보십시요. 무엇이 보이십니까 천장과 불빛만 보입니 까 영의 눈이 닫혀진 사람과 열려진 사람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장 밖에 안보이는 사람은 육신의 눈만 열려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장을 뚫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여지는 사람은 영안이 밝아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게하시처럼 아람군대만 바라보고 두려워 떠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아람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천군천사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보 여지는 영안을 가진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번 아프리카 선교여행을 갔을 때 말라위에서 나흘째 되던 날이엇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버클랜드선교사의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약 2시간 정도 달려갔는데 차로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차를 세워두고 30분쯤 걸어가자 마타케냐라는 교회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다섯교회가 연합하여 에배를 드리는데 많은 교인들이 모여 예배당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어서 노천에서 에배를 드리게 되 었습니다. 기뻐하며 춤추고 찬양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30평 정도되는 예배당 안에 다 들어가게 되었는데 처마 밑에 서있는 사람들도 있었 고 예배당 안에는 사람들이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놓은 것처럼 들어가서 예배 를 드렸습니다. 그 예배당은 벽은 흙벽돌로 쌓아올리고 갈대로 지붕을 덮은 건물인데 비가 쏟아지니까 벽은 완전히 젖어내렸고 지붕에서는 빗방울이 새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꼼짝하지 않고 몇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마쳤는데도 비가 계속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교인들 중에 우산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들 일행이 비를 맞으 면서 차있는 데까지 달려가 타를 탔는데 비에 온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차를 몰고 갔는데 팥죽이 된 비포장도로를 흙탕물을 튀기며 한시간쯤 달려갔습니다. 왼쪽에 산이 병풍처럼 서있는데 그 산에서 급류가 흘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대개 다리가 나무로 건축되어 있었는데 그 다리만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 었습니다.
그런데 급류가 다리 위로 넘어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건 널 수가 없어서 차를 세워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차안에 타고 있던 원주민 목사님이 한달 전에도 홍수가 나서 산안에 있던 호수가 터 지는 바람에 이 유역이 완전히 범람하여 2천명 이상이 떠내려가 죽었다는 이 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왼쪽에 있는 산을 바라보니까 산 중턱에서 폭포수처럼 하얀 물기둥 거품을 쏟아붓는 곳이 6개 이상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물이 모여서 다리를 넘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산 위에 있는 호수가 터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차안에서 하나님께 매어달려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라위라는 나라는 참으로 불 행한 나라입니다. 말라리아, 콜레라, 황열병의 위험과 악어, 맹수, 독사, 구 렁이의 위험을 항상 느끼고 있는데 또 홍수의 위험이 겹치고 있으니 굶주리고 헐벗은 이 나라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 이역만리 머나먼 땅 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홍수에 떠내려가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교회에 돌아 가 성도들을 만날 수도 없고 가족들도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 니까 하나님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제 생각에는 차를 빼서 안전지대로 갔으면 좋겠는데 선교사는 가만히 기다리 고 있어서 믿음이 없이 뒤로 물러가자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한 시간쯤 기도했더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한시간쯤 더 기다리며 기도했더니다 리 위로 흘러가는 물살이 조금 약해진 것 같았습니다. 빨리 물이 줄어야 다리 를 건너서 오늘 브란타이어에 가서 그곳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을 자 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루에 한대 밖에 없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비행기를 놓치면 하루를 기다려야 하는데 예정대로 일정이 진행되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얼마쯤 지나면 물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럭 한대가 성급하게도 건너편에서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짐 을 실은 트럭도 다리 중간쯤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위험해서 마음 졸 이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무사하게 건너오는 것을 보고 박수를 쳤습니다. 또한참 기다리다가 선교사가 용감하게 한번 가보자고 해서 우리는 주 여 도와주소서 하고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하게 그 다리를 건너가고 나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는데 그 순간 우리 교회 성도들 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건너가게 해주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에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일 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렵고 위험한 일이 다가올 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로보며 하나님 앞에 매어달려 부르짖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위기 의 순간에 환경이나 사람 바라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 바라보고 부르 짖어야 될 줄모 믿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육신의 눈은 먼지나 세균같이 너무 작은 것을 볼 수 없고 너무 큰 것도 일부분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우리가 지은 아주 작은 죄를 보고서 회개하게 되고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은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밝으면 볼 수 없기 때문에 캄캄한 밤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태양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아 주 어두운 죄악도 깨달아 회개하게 하고 아주 밝으신 하나님도 볼 수 있게 합니다. 육신의 눈은 너무 가까운 것도, 너무 먼것도 안보입니다. 아주 가까이 있는 눈썹을 볼 수 없으며, 20리, 30리, 천리 밖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여러분 곁에 가까이 계신 성령님도 볼 수 있고 우주 창천에 보좌 위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의 눈이 얼마나 소중 한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져서 살 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날 아침 여러분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져 영의 눈이 열려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축원드 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눈의 변화를 체험해야 되겠습니다. 만족함을 모르는 눈이 만족할줄 아는 눈으로 바꾸어져서 범사에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 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육신의 눈이 영의 눈으로 바꾸어져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눈이 있어도 볼 것을 보지 못하고 현실적인 것만 바라보았 다할지라도 이제는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속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았던 눈이 변화되어져서 겉을 보지 말고 속을 보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땅만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만 보았던 눈이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신령한 눈으로 바꾸 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너희 마음과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기업 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 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 라"는 사도 바울의 기도와 같이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이 밝아져서 이러한 신령 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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