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아실까 (전1:1-11)
본문
전도서를 쓴 솔로몬이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에 보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커다란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서 최고의 왕이며 가장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아들' 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 크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가정 배경에서 그가 삶을 시작했다는 고백입니다.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거하고 싶어하던 평화의 도성인 예루살렘 도성,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으로 최고의 지위인 왕, 이와 같은 특권, 이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 솔로몬이 인생의 석양을 바라 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런데 이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고의 지위와 최대의 특권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고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최고의 지위와 특권과 지혜와 부를 가지고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 본 사람이 고백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창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솔로몬은 그 마지막에 이렇게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전도자' 왜 이 말을 붙였을까요 그는 다윗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전도자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라는 히브리어의 본래 뜻은 많은 사람을 불러놓은 자리에서 자기가 체험한 어떤 절실한 체험을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단순히 무엇을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 를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전도자라고 말했습니다. 공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 이것이 너무 심오하고, 진실하고 절박한 일이어서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오는 어느 날 사람들을 모 아 놓고 전도자의 입장에서 자기 의 절실한 체험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전도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신약시대에 사용하는 전도자라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여기서 '헛되다 하는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그것은 본래 '추운 겨울에 후-하고 불어 내는 입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가 한 말과 같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의미있는 표현입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말한 것입니다. '헛되다'는 말의 또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2절을 보세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여기서 말하는 헛되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잡으려 해도 잡혀지지를 않습니다. 텅 비어 버렸습니다. 그가 인생에 대해서 얻은 결론이 이것입니다. '잡아 보려고 무던히 애썼는데, 몸부림쳐 보았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첫째,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업니다. 이 질문을 던지면서 그는 이렇게 자문자답을 시작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여기서 말하는 '유익이란 말의 본래 은 '남는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계속 애써왔지만, 해 아래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며 땀을 홀리고, 장사하고. 공부하고, 내 모든 능력을 투자해서 힘써 보고 얻는 것도 같았고, 성취하는 것도 갈았고, 성공하는 것도 같았지 만 결국은 무엇이 남았는가,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또 다시 오는 것' 마치 무대 위에서 어느 배우가 등장해서 어떤 연기를 한 다음 무대 저편으로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똑같은 무대 위에 새로운 배우가 출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외국에 전도집회를 가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일예배 시간에 으레 갈보리 교회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제 언젠가는 저를 뒤이어 이 강단을 지킬 목사가 있을 것입니다. 갈보리 교회는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시설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우리와 전혀 다른 얼굴들이 이 교회를 이끌고 나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무개는 어떻게 지내시나 요' 하고 안부를 물으면 '아,모르십니까 그 분 이미 세상을 떠나셨는데요'라고 대답하는 말을 듣습니다. 여기 인간의 무상함이 있습니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 그것들은 마치 해처럼, 바람처럼,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 갑니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릅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또 다시 오는 것 그와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전도서 기자는 고백합니다. 그가 이 대답을 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
그렇다면 '무엇이 영원한가사라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도대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어느 사업가가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절정기에 전도서 기자와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영원한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가까이 하지만 그러나 무엇이 참으로 영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보아도 영원한 것은 세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그 하나님이 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론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다른 하나가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요한 1서 2장 I7절을 읽다가 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니님의 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도 지나갑니다. 그 정욕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다. 영원한 삶의 발자취를 남기려면 영원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영원한 말씀을 가지고 영원한 인간의 심령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렸다고 합니다. 무엇이 영원합니까 한 세대는 가고 또한 세대는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라져 갈 것입니다. 이렇게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둘째 '무잇이 정말 의미 있는 것입니까' 다른 말로 정말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줍니다. 8절에 보십시오 해 아래서 살고 있는 인생의 모습을 표면적으로 관찰하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물의 피곤합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이 눈이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이 귀는 결코 차지 아니합니다. 만족을 모르는 인생, 불만스러운 피곤, 요샛말로 스트레스가 누적됩니다. 여러분, 의미 있는 일을 해보셨습니까 보람된 일을 해 보셨습니까 그 일 후에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그 일이 의미가 없을 때 끝없는 불만 속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불만이 누적되면 우리는 더 피곤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습니까 많이 가져 보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한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실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가 심령 깊은 곳에서 원하고 찾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회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 으리로다 "나는 만족합니다' 내 속에 일어나는 욕망을 아무리 억제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으로는 이 욕망이 억제되지도 않고 부인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아 보세요 우리 인간이 그떻게 만족을 모르고 목마르게 무엇인가 찾고 있는 것, 그것은 내 영흔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까지는 세상의 무엇 가지고도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거스틴의 고백에 공감하고 동의할 수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내 영흔이 주님의 품에 돌아가 쉴 때까지는 내게 결코 평안함이 없습니다.' 내 영흔이 내 영혼을 지으신 그 하나님의 품에 돌아갈 때까지 결코 나에제 평안함, 만족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잠언 28장 25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분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자족하게 되느니라'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만족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어거스틴이 깊은 밤에 성경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주의 천사가 나타나며 주의 메시지를 이렇게 전합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깊은 꿈속에서지만 그의 의식과 그의 신앙을 지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 한 분이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까 전에 부흥성가 중에 이런 내용의 가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소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옵니다' 만일에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신앙고백이 없다면 우리는 전도서 기자처럼, 아니 전도서 기자가 살던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고백처럼. 이런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에콰도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한 선교사 엘리옷의 간증은 우리의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정말 붙들고 있을 수가 없는 것, 어차피 놓아 버릴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붙들려고 애쓰는 것 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 습니까 그러나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을 찾기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것, 이것은 절대로 어리석은 사람의 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태어날 때 예외없이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욕망이라는 인생 행로를 달려갑니다. 무엇이든지 손에 잡으려고 허우적거럽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사랑도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우리의 손을 다 펴야만 합니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숨을 거두면서도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며 악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보기에도 비참합니다. 어차피 놓아야 할 것인데 쥐고 있으면 얼마나 더 쥐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는데 내가 정말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뿐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그리고 내 가 주 안에 있으면 내 삶은 참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세상 것 중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다른 한 가지 질문을 더합니다.
셋째, 무엇이 새롭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신 유행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스타일을 따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무엇이 새롭습니까 전도서 기자의 대답을 들어보세요 9절말씀 '이미 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아주 예리한 통찰력에서 나온 말입니다. 굉장히 새로운 것 같지만 겉모양만 변했고, 색상만 변했고, 스타일만 변했을 따름입니다_ 그 본질에 있어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이 똑같은 삶이, 똑같은 형태가, 똑같은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는 인생입니다. 있는 것이 또 다시 있게 되는 짓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부조리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하는 것을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조반 먹고 직장에 가서 땀흘려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몸씻고 저녁 먹고 TV보고 '자자.' 하고 잡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조반먹고 또 직장에 나갑니다. 도대체 무엇이 새롭습니까 사람이 사는 것이 그저 그렇고 그런 것 입니까 인생이란 그렇게 재미가 없는 것입니까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으세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신약성경에서처럼 새것에 대한 담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책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새 이름을 부여 합니다. 그래서 그를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에게는 '새 성품'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이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늙음과 육체가 쇠해가는 인생의 황흔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겉사람은 후패해집니다. 그러나 내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은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되는 체험을 한 사람 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새로움의 근원을. 새로움의 요소를 밖에서, 육체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그의 영흔에서 찾았습니다. 영원히 있어야 할 영흔,그 영혼이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날마다 변화되는 것, 새로워지는 삶, 이 새로운 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날마다 뜨는 똑같은 해이지만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고, 저녁에 지는 해를 새로운 감격으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 안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감격으로 주님 앞에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감격이 우리에게 없다면. 증언 앞에 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참한 인생에 대한 비극적 오늘 주신 말씀 11절을 보시면 어떤 사람도, 어떤 인생도 직면하기 싫어하는 비극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에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 이 없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가장 고독하게 만드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몰라요'하는 말입니다.사실입니다. 10년, 20년,5O년후 우리가 세상을 떠난 다음 아무도 우리를 모릅니다. 이것이 인생의 실상입니다. 제가 그 동안 교회에서 분당에다 집을 마련해 주셔서 이사를 했습니다. 쾌적한 환경과 조건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저 감사한 것뿐입니다 분당에는 중앙 공원이라고 잘 꾸며 놓은 곳이 있는데 쉬는 시간에 손자 애들을 데리고 구경을 가 봤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공원인데 여기 저기 묘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돈의 여유가 있었기에 눈에 띄일 정도로 잘 가꾸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알아볼 마음도 없었습니다. 죽은 다음 묘를 크게 해 놓으면 알아줍니까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이것으로 끝납니까
그렇다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복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이 무엇입니까이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리는 날 30년 후, 50년 후, 100년 후에도 우리를 기억하실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아실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나를 지으시고, 나를 세상에 보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나를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기억하시지요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병도 고쳤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이적도 행했습니다.' 하며 주님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자기의 신분을 주님께로 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불법을 행 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것이 비극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아실까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이 나를 아실까요'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의 자녀로 아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거듭난 사실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 받은 체험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주님의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까 내 심장의 고동이 멎어도.내 몸의 피가 식어도,나를 아실 분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 때문에 인생의 모든 허무한 것이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 때문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향해서 의미 있게. 보람되게 알차게 살아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하나님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헛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면 우리의 삶은 날마다 새롭고 뜻있고 영원에 살아갈수 있을것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게서 아시는 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고의 지위와 최대의 특권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고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최고의 지위와 특권과 지혜와 부를 가지고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 본 사람이 고백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창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솔로몬은 그 마지막에 이렇게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전도자' 왜 이 말을 붙였을까요 그는 다윗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전도자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라는 히브리어의 본래 뜻은 많은 사람을 불러놓은 자리에서 자기가 체험한 어떤 절실한 체험을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단순히 무엇을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 를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전도자라고 말했습니다. 공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 이것이 너무 심오하고, 진실하고 절박한 일이어서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오는 어느 날 사람들을 모 아 놓고 전도자의 입장에서 자기 의 절실한 체험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전도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신약시대에 사용하는 전도자라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여기서 '헛되다 하는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그것은 본래 '추운 겨울에 후-하고 불어 내는 입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가 한 말과 같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의미있는 표현입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말한 것입니다. '헛되다'는 말의 또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2절을 보세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여기서 말하는 헛되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잡으려 해도 잡혀지지를 않습니다. 텅 비어 버렸습니다. 그가 인생에 대해서 얻은 결론이 이것입니다. '잡아 보려고 무던히 애썼는데, 몸부림쳐 보았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첫째,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업니다. 이 질문을 던지면서 그는 이렇게 자문자답을 시작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여기서 말하는 '유익이란 말의 본래 은 '남는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계속 애써왔지만, 해 아래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며 땀을 홀리고, 장사하고. 공부하고, 내 모든 능력을 투자해서 힘써 보고 얻는 것도 같았고, 성취하는 것도 갈았고, 성공하는 것도 같았지 만 결국은 무엇이 남았는가,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또 다시 오는 것' 마치 무대 위에서 어느 배우가 등장해서 어떤 연기를 한 다음 무대 저편으로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똑같은 무대 위에 새로운 배우가 출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외국에 전도집회를 가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일예배 시간에 으레 갈보리 교회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제 언젠가는 저를 뒤이어 이 강단을 지킬 목사가 있을 것입니다. 갈보리 교회는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시설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우리와 전혀 다른 얼굴들이 이 교회를 이끌고 나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무개는 어떻게 지내시나 요' 하고 안부를 물으면 '아,모르십니까 그 분 이미 세상을 떠나셨는데요'라고 대답하는 말을 듣습니다. 여기 인간의 무상함이 있습니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 그것들은 마치 해처럼, 바람처럼,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 갑니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릅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또 다시 오는 것 그와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전도서 기자는 고백합니다. 그가 이 대답을 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
그렇다면 '무엇이 영원한가사라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도대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어느 사업가가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절정기에 전도서 기자와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영원한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가까이 하지만 그러나 무엇이 참으로 영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보아도 영원한 것은 세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그 하나님이 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론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다른 하나가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요한 1서 2장 I7절을 읽다가 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니님의 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도 지나갑니다. 그 정욕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다. 영원한 삶의 발자취를 남기려면 영원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영원한 말씀을 가지고 영원한 인간의 심령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렸다고 합니다. 무엇이 영원합니까 한 세대는 가고 또한 세대는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라져 갈 것입니다. 이렇게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둘째 '무잇이 정말 의미 있는 것입니까' 다른 말로 정말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줍니다. 8절에 보십시오 해 아래서 살고 있는 인생의 모습을 표면적으로 관찰하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물의 피곤합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이 눈이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이 귀는 결코 차지 아니합니다. 만족을 모르는 인생, 불만스러운 피곤, 요샛말로 스트레스가 누적됩니다. 여러분, 의미 있는 일을 해보셨습니까 보람된 일을 해 보셨습니까 그 일 후에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그 일이 의미가 없을 때 끝없는 불만 속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불만이 누적되면 우리는 더 피곤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습니까 많이 가져 보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한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실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가 심령 깊은 곳에서 원하고 찾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회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 으리로다 "나는 만족합니다' 내 속에 일어나는 욕망을 아무리 억제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으로는 이 욕망이 억제되지도 않고 부인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아 보세요 우리 인간이 그떻게 만족을 모르고 목마르게 무엇인가 찾고 있는 것, 그것은 내 영흔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까지는 세상의 무엇 가지고도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거스틴의 고백에 공감하고 동의할 수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내 영흔이 주님의 품에 돌아가 쉴 때까지는 내게 결코 평안함이 없습니다.' 내 영흔이 내 영혼을 지으신 그 하나님의 품에 돌아갈 때까지 결코 나에제 평안함, 만족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잠언 28장 25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분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자족하게 되느니라'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만족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어거스틴이 깊은 밤에 성경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주의 천사가 나타나며 주의 메시지를 이렇게 전합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깊은 꿈속에서지만 그의 의식과 그의 신앙을 지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 한 분이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까 전에 부흥성가 중에 이런 내용의 가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소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옵니다' 만일에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신앙고백이 없다면 우리는 전도서 기자처럼, 아니 전도서 기자가 살던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고백처럼. 이런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에콰도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한 선교사 엘리옷의 간증은 우리의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정말 붙들고 있을 수가 없는 것, 어차피 놓아 버릴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붙들려고 애쓰는 것 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 습니까 그러나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을 찾기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것, 이것은 절대로 어리석은 사람의 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태어날 때 예외없이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욕망이라는 인생 행로를 달려갑니다. 무엇이든지 손에 잡으려고 허우적거럽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사랑도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우리의 손을 다 펴야만 합니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숨을 거두면서도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며 악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보기에도 비참합니다. 어차피 놓아야 할 것인데 쥐고 있으면 얼마나 더 쥐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는데 내가 정말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뿐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그리고 내 가 주 안에 있으면 내 삶은 참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세상 것 중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다른 한 가지 질문을 더합니다.
셋째, 무엇이 새롭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신 유행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스타일을 따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무엇이 새롭습니까 전도서 기자의 대답을 들어보세요 9절말씀 '이미 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아주 예리한 통찰력에서 나온 말입니다. 굉장히 새로운 것 같지만 겉모양만 변했고, 색상만 변했고, 스타일만 변했을 따름입니다_ 그 본질에 있어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이 똑같은 삶이, 똑같은 형태가, 똑같은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는 인생입니다. 있는 것이 또 다시 있게 되는 짓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부조리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하는 것을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조반 먹고 직장에 가서 땀흘려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몸씻고 저녁 먹고 TV보고 '자자.' 하고 잡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조반먹고 또 직장에 나갑니다. 도대체 무엇이 새롭습니까 사람이 사는 것이 그저 그렇고 그런 것 입니까 인생이란 그렇게 재미가 없는 것입니까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으세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신약성경에서처럼 새것에 대한 담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책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새 이름을 부여 합니다. 그래서 그를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에게는 '새 성품'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이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늙음과 육체가 쇠해가는 인생의 황흔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겉사람은 후패해집니다. 그러나 내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은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되는 체험을 한 사람 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새로움의 근원을. 새로움의 요소를 밖에서, 육체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그의 영흔에서 찾았습니다. 영원히 있어야 할 영흔,그 영혼이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날마다 변화되는 것, 새로워지는 삶, 이 새로운 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날마다 뜨는 똑같은 해이지만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고, 저녁에 지는 해를 새로운 감격으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 안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감격으로 주님 앞에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감격이 우리에게 없다면. 증언 앞에 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참한 인생에 대한 비극적 오늘 주신 말씀 11절을 보시면 어떤 사람도, 어떤 인생도 직면하기 싫어하는 비극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에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 이 없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가장 고독하게 만드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몰라요'하는 말입니다.사실입니다. 10년, 20년,5O년후 우리가 세상을 떠난 다음 아무도 우리를 모릅니다. 이것이 인생의 실상입니다. 제가 그 동안 교회에서 분당에다 집을 마련해 주셔서 이사를 했습니다. 쾌적한 환경과 조건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저 감사한 것뿐입니다 분당에는 중앙 공원이라고 잘 꾸며 놓은 곳이 있는데 쉬는 시간에 손자 애들을 데리고 구경을 가 봤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공원인데 여기 저기 묘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돈의 여유가 있었기에 눈에 띄일 정도로 잘 가꾸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알아볼 마음도 없었습니다. 죽은 다음 묘를 크게 해 놓으면 알아줍니까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이것으로 끝납니까
그렇다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복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이 무엇입니까이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리는 날 30년 후, 50년 후, 100년 후에도 우리를 기억하실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아실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나를 지으시고, 나를 세상에 보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나를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기억하시지요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병도 고쳤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이적도 행했습니다.' 하며 주님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자기의 신분을 주님께로 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불법을 행 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것이 비극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아실까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이 나를 아실까요'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의 자녀로 아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거듭난 사실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 받은 체험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주님의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까 내 심장의 고동이 멎어도.내 몸의 피가 식어도,나를 아실 분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 때문에 인생의 모든 허무한 것이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 때문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향해서 의미 있게. 보람되게 알차게 살아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하나님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헛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면 우리의 삶은 날마다 새롭고 뜻있고 영원에 살아갈수 있을것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게서 아시는 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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