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을 위한 부탁 (잠22:17-29)
본문
잠언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효과적인 지혜를 주는 글들을 모아 엮어 놓은 지혜서이다. 특히 본문의 말씀은 심각한 경쟁의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심중 있는 교훈을 적절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오늘 이 시대의 특징은 한 마디로 치열한 경쟁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친구도, 이웃도, 심지어는 형제도 경쟁의 대상이고 또는 적일 수도 있다. 삭막한 세상인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폐해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지나친 경쟁심리, 견제심리, 강자와 약자의 출현, 갈등, 피해의식, 편법, 사기, 거짓 등 하구 많은 문제들이 현대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지혜자는 여기에서 하나의 부동의 가치관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가치관이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또한 지녀야 할 생활의 지혜를 말씀하고 있다. 살아가는 선한 삶의 방법이기도 하다.
1. 약자를 보호하라 (22) 성경의 중심사상은 약자 보호사상이다. 율법의 근본정신도 부약사상으로 압축된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말라" (출 22:22) "나는 고아와 과부의 부르짖음을 신원한다" (신 10:18). "나는 고아의 아버지이며 과부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시68:5)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가 있으리라"(사10:2) 이것이 하나님의 약자를 보호하시려는 의지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려 하실 때 그 심판의 기준을 고아와 과부의 압제에 두셨다 그래서 착취하고 빼앗고 압제하는 권세자를 하나님은 심판하셨다. 많은 소유한 사람이 범하기 쉬운 것은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경시하고 지배하려는 경향이다. 이것이 소위 가진자의 횡포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이같은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진자와 못 가진자 사이에는 주종관계가 성립이 되고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희년제도를 만드셨고 종의 윤리와 노예에 대한 규범, 그리고 흰자유사상과 희년제도에 주어지는 원상회복의 법을 제정하신 것이다. 희년이 되면 모든 종은 자유하게 된다. 즉 희년은 회복을 의미한다. 이같은 법의 제정은 모두 약자를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부약사상에서 기인된 것이다.그래서 하나님은 특히 약자를 보호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이 바로 약자보호사상이다.
2. 압제하지 말라 (22)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당시 재판은 주로 성문에서 이루어졌었다.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공개재판이었다.
그런데도 힘이 없는 자에게 불공평한 재판이 있어 왔다. 그래서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저울추를 속일 때와 말(斗)을 속일 때, 그리고 힘없는 자가 압제를 당하거나 무시될 때 그 사회를 하나님은 심판하셨다.
왜냐하면 정의를 지켜서 약한 자를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 때문이다.
3.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라 (24) 사람이 실수하기가 가장 좋을 때가 언제냐 하면 노를 품거나 분을 품고 있을 때다 이런 때는 대개 사람이 이성을 잃거나 분별력을 잃고 흥분에 있기 쉽다. 이때 순간적으로 사람은 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노를 품게 되면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안정된 심성이 깨지게 되고 판단이나 이해가 왜곡되어서 그릇행동을 하게 된다. 닭이 알이 품고 있으면 병아리를 부화시키듯 사람이 노를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노가 죄를 낳게 된다. 가인이 아벨을 향한 노를 오래 품고 있었다.그가 노를 풀지 못하고 오래 품고 있게 되니까 어느 시점에 가서 기회가 주어지니 죄를 짓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순간적인 범행이 아니다. 그 사건이 우연이나 돌발적인 것 같아도 그 범죄의 동기를 밝혀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노를 품어 있어 왔고 품어오던 그 노가 기회가 부여 되니까 터진 것 뿐이다.그래서 노를 품은 자와 함께 하다가 보면 그 노가 폭발하게 될 때 함께 화를 당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를 품은 자와는 함께 하지 말라는 것이다.이것은 지혜자의 부탁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같은 경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교훈에 속한다.
왜냐하면 오늘 같은 시대에는 이같은 사례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4. 울분자와도 동행하지 말라 (24) 불평이 많고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사귀지 말라는 말씀이다. 불평이나 불만은 전염된다. 혈기를 부리고 무례하고 불평을 많이 하는 그릇된 행동자의 모습은 전염된다. 그래서 나쁜 친구를 만나게 되면 물이 드는 이유가 그래서다 친구나 이웃의 영향이 그만큼 큰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 마음 속에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에게서는 소망적인 언어나 생각이나 판단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본 받아서 올무에 빠질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25) 또한 잘못된 교제는 마침내 영혼까지 파멸로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최면학에서는 힌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설교를 하되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설교를 하게 되면 성도들은 은연 중에 암시를 받고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신앙으로 가꾸어져 간다는 것이다.그러나 어둡고 잘못된 것만을 항상 들추어내고 비판만을 하는 부정적인 설교만을 하게되면 신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신앙인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이것이 힌트 즉 자기암시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정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 이야기나 비판하는 내용의 설교만 늘 하게되면 듣는 이들이 생각하기를 "나만이라도 그렇게 살면 안되겠구나"하고 생각을 고쳐먹는 것이 아니고 "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고 오히려 치유하기는 커녕 자신이 짓고 있는 죄와 행위에 대해서 위로를 받고 합리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부정을 저지르고 불평을 자주하면 자신도 모르게 은연 중에 암시를 받게 되어서 종국에 가서는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교제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피차 관심사가 일치하고 지향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같은 사악한 세상에서는 가까운 친구를 사귀고 이웃을 사귀는데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5. 경제생활에 근실하라 (26) 인간의 삶은 경제적인 구조나 환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사회의 구조 역시 경제적인 연대를 통해서 이루어져 나간다. 이 관계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게 마련이고 서로 상부상조하게 된다. 바로 이 관계에서 또한 오류가 발생되고 문제들이 돌출되게 마련이다.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경제적인 인간관계에서 바로 이같은 문제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빌리는 사람이나 다같이 근실하라는 말씀이다. 서로 이 문제에 대해서 근실하지 못하면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을 것이 말씀한대로 올무가 되고 화근이 되는 것이다. 오늘같은 경제적인 시대에 있어서 이같은 교훈은 더욱 절실하다. 사람과 사람과의 신뢰문제와 거래관계에 대한 근실한 자세,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실의 문제이고 지혜의 문제이다. 보증하는 것과 사람과 서로 손을 잡는 문제,무리하고 분에 넘치는 약속과 근신치 못한 경제적인 관념, 이것은 자칫 피차간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무리하고 신중하지 못하게 손을 잡거나 분에 넘치는 보증을 하는 행위는 삼가라는 교훈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근절되지 않고 자주 발생되고 있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경제생활에 근실해야 한다. 자신을 너무 과신하지 말고 타인을 경솔하게 무조건 신뢰하지 말고 수완이나 요행을 믿고 허황된 꿈이나 무모한 일에 뛰어들거나 분에 넘치는 과욕으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경제관념도 아니거니와 이것은 근실치 못한 지혜없는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6. 타인을 침해하지 말라 (28) "네 선조의 세운 지계석(地界石) 을 옮기지 말지니라" 지계석은 인접한 전답이나 지경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워 놓은 돌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는 전답의 경계를 표시할 때는 뚝을 만들어 피차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근동지방에서는 주로 말뚝을 박아 놓거나 돌기둥을 세워 놓음으므로써 경계를 표시했었다. 이것이 때로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돌이나 말뚝은 아주 손쉽게 옮겨 놓거나 이동시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상대방의 세워 놓은 지계석을 어느 정도 옮겨 놓으면 상대방에게 손쉽게 재산상의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이 말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는 말이다. 현대의 생활 가운데서 가장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남의 재산을 탐하거나 피해를 입히는 사례, 남을 침해하고 상대방을 속이고 해를 입히는 사례 등은 모두 타인을 침해하는 행위들이다.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뜻은 다른 의미로는 선조가 물려준 소중한 재산을 귀중하게 간직하라는 뜻도 있다. 값없이 다루거나 팔아버리거나 방종하여 폐기하므로 지경을 축소시키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두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해를 주는 일이나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유산을 값없이 다루는 것 등은 모두 오늘 사람들이 쉽게 범하기 쉬운 일들이다.
7. 자기 일에 근실하라 (29)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으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결론이다.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라는 말이다. 영광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근면은 곧 성공이다. 하나님은 곧 성공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근실하고 진실한 내용의 야망과 목적은 이루어 주신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실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땀을 흘린자에게는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된다고 하셨다. 이러한 사람이 왕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광된 날이 반드시 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최대의 신앙인은 자기 일에 신실한 사람이고 최대의 애국자도 바로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로부터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많이 가지고 싶은 유혹, 빨리 성공하고 싶은 욕망, 손쉽게 얻으려는 유혹, 여기에서 허황된 욕망이 자리잡게 되고 그것을 이루려는 마음에서 압제와 남을 침해하는 행위가 발생되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게되니까 노를 품게되고 불평불만이 자리잡게 되고 마침내는 자기 일에 근실치 못하고 남을 속이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실패자들의 모습이고 근실치 못한 사람들의 지혜없는 삶의 모습이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의식이나 뿌리지도 않고서 거두겠다는 의식은 모두 신앙인의 의식이 아니고 더구나 지혜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잠언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근실하고 신실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1. 약자를 보호하라 (22) 성경의 중심사상은 약자 보호사상이다. 율법의 근본정신도 부약사상으로 압축된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말라" (출 22:22) "나는 고아와 과부의 부르짖음을 신원한다" (신 10:18). "나는 고아의 아버지이며 과부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시68:5)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가 있으리라"(사10:2) 이것이 하나님의 약자를 보호하시려는 의지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려 하실 때 그 심판의 기준을 고아와 과부의 압제에 두셨다 그래서 착취하고 빼앗고 압제하는 권세자를 하나님은 심판하셨다. 많은 소유한 사람이 범하기 쉬운 것은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경시하고 지배하려는 경향이다. 이것이 소위 가진자의 횡포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이같은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진자와 못 가진자 사이에는 주종관계가 성립이 되고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희년제도를 만드셨고 종의 윤리와 노예에 대한 규범, 그리고 흰자유사상과 희년제도에 주어지는 원상회복의 법을 제정하신 것이다. 희년이 되면 모든 종은 자유하게 된다. 즉 희년은 회복을 의미한다. 이같은 법의 제정은 모두 약자를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부약사상에서 기인된 것이다.그래서 하나님은 특히 약자를 보호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이 바로 약자보호사상이다.
2. 압제하지 말라 (22)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당시 재판은 주로 성문에서 이루어졌었다.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공개재판이었다.
그런데도 힘이 없는 자에게 불공평한 재판이 있어 왔다. 그래서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저울추를 속일 때와 말(斗)을 속일 때, 그리고 힘없는 자가 압제를 당하거나 무시될 때 그 사회를 하나님은 심판하셨다.
왜냐하면 정의를 지켜서 약한 자를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 때문이다.
3.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라 (24) 사람이 실수하기가 가장 좋을 때가 언제냐 하면 노를 품거나 분을 품고 있을 때다 이런 때는 대개 사람이 이성을 잃거나 분별력을 잃고 흥분에 있기 쉽다. 이때 순간적으로 사람은 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노를 품게 되면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안정된 심성이 깨지게 되고 판단이나 이해가 왜곡되어서 그릇행동을 하게 된다. 닭이 알이 품고 있으면 병아리를 부화시키듯 사람이 노를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노가 죄를 낳게 된다. 가인이 아벨을 향한 노를 오래 품고 있었다.그가 노를 풀지 못하고 오래 품고 있게 되니까 어느 시점에 가서 기회가 주어지니 죄를 짓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순간적인 범행이 아니다. 그 사건이 우연이나 돌발적인 것 같아도 그 범죄의 동기를 밝혀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노를 품어 있어 왔고 품어오던 그 노가 기회가 부여 되니까 터진 것 뿐이다.그래서 노를 품은 자와 함께 하다가 보면 그 노가 폭발하게 될 때 함께 화를 당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를 품은 자와는 함께 하지 말라는 것이다.이것은 지혜자의 부탁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같은 경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교훈에 속한다.
왜냐하면 오늘 같은 시대에는 이같은 사례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4. 울분자와도 동행하지 말라 (24) 불평이 많고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사귀지 말라는 말씀이다. 불평이나 불만은 전염된다. 혈기를 부리고 무례하고 불평을 많이 하는 그릇된 행동자의 모습은 전염된다. 그래서 나쁜 친구를 만나게 되면 물이 드는 이유가 그래서다 친구나 이웃의 영향이 그만큼 큰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 마음 속에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에게서는 소망적인 언어나 생각이나 판단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본 받아서 올무에 빠질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25) 또한 잘못된 교제는 마침내 영혼까지 파멸로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최면학에서는 힌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설교를 하되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설교를 하게 되면 성도들은 은연 중에 암시를 받고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신앙으로 가꾸어져 간다는 것이다.그러나 어둡고 잘못된 것만을 항상 들추어내고 비판만을 하는 부정적인 설교만을 하게되면 신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신앙인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이것이 힌트 즉 자기암시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정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 이야기나 비판하는 내용의 설교만 늘 하게되면 듣는 이들이 생각하기를 "나만이라도 그렇게 살면 안되겠구나"하고 생각을 고쳐먹는 것이 아니고 "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고 오히려 치유하기는 커녕 자신이 짓고 있는 죄와 행위에 대해서 위로를 받고 합리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부정을 저지르고 불평을 자주하면 자신도 모르게 은연 중에 암시를 받게 되어서 종국에 가서는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교제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피차 관심사가 일치하고 지향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같은 사악한 세상에서는 가까운 친구를 사귀고 이웃을 사귀는데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5. 경제생활에 근실하라 (26) 인간의 삶은 경제적인 구조나 환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사회의 구조 역시 경제적인 연대를 통해서 이루어져 나간다. 이 관계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게 마련이고 서로 상부상조하게 된다. 바로 이 관계에서 또한 오류가 발생되고 문제들이 돌출되게 마련이다.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경제적인 인간관계에서 바로 이같은 문제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빌리는 사람이나 다같이 근실하라는 말씀이다. 서로 이 문제에 대해서 근실하지 못하면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을 것이 말씀한대로 올무가 되고 화근이 되는 것이다. 오늘같은 경제적인 시대에 있어서 이같은 교훈은 더욱 절실하다. 사람과 사람과의 신뢰문제와 거래관계에 대한 근실한 자세,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실의 문제이고 지혜의 문제이다. 보증하는 것과 사람과 서로 손을 잡는 문제,무리하고 분에 넘치는 약속과 근신치 못한 경제적인 관념, 이것은 자칫 피차간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무리하고 신중하지 못하게 손을 잡거나 분에 넘치는 보증을 하는 행위는 삼가라는 교훈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근절되지 않고 자주 발생되고 있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경제생활에 근실해야 한다. 자신을 너무 과신하지 말고 타인을 경솔하게 무조건 신뢰하지 말고 수완이나 요행을 믿고 허황된 꿈이나 무모한 일에 뛰어들거나 분에 넘치는 과욕으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경제관념도 아니거니와 이것은 근실치 못한 지혜없는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6. 타인을 침해하지 말라 (28) "네 선조의 세운 지계석(地界石) 을 옮기지 말지니라" 지계석은 인접한 전답이나 지경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워 놓은 돌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는 전답의 경계를 표시할 때는 뚝을 만들어 피차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근동지방에서는 주로 말뚝을 박아 놓거나 돌기둥을 세워 놓음으므로써 경계를 표시했었다. 이것이 때로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돌이나 말뚝은 아주 손쉽게 옮겨 놓거나 이동시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상대방의 세워 놓은 지계석을 어느 정도 옮겨 놓으면 상대방에게 손쉽게 재산상의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이 말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는 말이다. 현대의 생활 가운데서 가장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남의 재산을 탐하거나 피해를 입히는 사례, 남을 침해하고 상대방을 속이고 해를 입히는 사례 등은 모두 타인을 침해하는 행위들이다.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뜻은 다른 의미로는 선조가 물려준 소중한 재산을 귀중하게 간직하라는 뜻도 있다. 값없이 다루거나 팔아버리거나 방종하여 폐기하므로 지경을 축소시키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두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해를 주는 일이나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유산을 값없이 다루는 것 등은 모두 오늘 사람들이 쉽게 범하기 쉬운 일들이다.
7. 자기 일에 근실하라 (29)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으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결론이다.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라는 말이다. 영광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근면은 곧 성공이다. 하나님은 곧 성공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근실하고 진실한 내용의 야망과 목적은 이루어 주신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실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땀을 흘린자에게는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된다고 하셨다. 이러한 사람이 왕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광된 날이 반드시 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최대의 신앙인은 자기 일에 신실한 사람이고 최대의 애국자도 바로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로부터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많이 가지고 싶은 유혹, 빨리 성공하고 싶은 욕망, 손쉽게 얻으려는 유혹, 여기에서 허황된 욕망이 자리잡게 되고 그것을 이루려는 마음에서 압제와 남을 침해하는 행위가 발생되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게되니까 노를 품게되고 불평불만이 자리잡게 되고 마침내는 자기 일에 근실치 못하고 남을 속이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실패자들의 모습이고 근실치 못한 사람들의 지혜없는 삶의 모습이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의식이나 뿌리지도 않고서 거두겠다는 의식은 모두 신앙인의 의식이 아니고 더구나 지혜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잠언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근실하고 신실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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