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떳떳하게 살아라 (잠19:1-7)
본문
(1) 더럽게 재산을 모으느니 가난해도 떳떳하게 살아라 (19:1) 우리나라 속담에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성서는 정당하게 벌어야 된다고 가르친다. 성서는 언제나 좋은 일일수록 정당한 방법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삭개오의 경우는 우리나라 속담에 어울리는 것처럼 여 겨진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청산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서는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경우를 더 옳게 여긴다. 우리나라는 신흥공업국가로 모두의 부러움과 찬양을 받아오다가 지금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유수한 주간잡지뉴스위크 지는한국은 너 무 일찍 부자가 되었다 라는 특집을 게재하여 한국경제를 비웃기까지 했다. 심지어 한국의 근대교육의 요람인 모여자대학생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돈의 노예들 이 라고까지 매도했다. 왜 이런 꼴이 되었는가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개의치 않는 물신주의(物神主義) 때문이다. 우리들은 구약성서의바알 신을 경멸하고 저주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바알신앙의 노예가 되고 있다.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다. 엘리아 시대 의 바알신은 저주하면서 오늘의 바알주의에는 모두가 앞다투어 심취하고 있다. 정직하고 착하게 살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 (잠언 20:7) 그 의로운 행실은 영원히 기억되고, 사람들이 그 영광스런 모습을 우러르리라 (시 112:9)
(2) 집과 재산은 선조에게서 물려받지만 현명한 아내는 야훼에게서 받는다 (잠언 19:14)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어 살게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한 남자는 여자 를 잘 만나야 하고 한 여자 또한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성경이 씌어질 때는 아버 지 중심시대였으므로현명한 아내는 야훼에게서 받는다 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아내는 재산보다 귀하고 신성한 존재이다. 하나님에게서 받는다는 말의 뜻이 바 로 이것을 의미한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재산이나 물려 줄 수 있지만 아내를 짝지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자신들 의 힘으로, 욕심으로 며느리감을 찾는다. 그래서 왕왕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 되지만 주착없는 아내는 등뼈 갉아 먹는 벌레와 같다 (잠언 12:4)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 것은 장마철에 지붕이 새는 것과 같다 (잠언 27:15) 아내는 남자의 면류관이 되기도 하고 등뼈를 갉아 먹는 벌레 또는 장마철에 지붕 이 새는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내를 잘 맞이해야 한다. 하나님으로 부터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 미모나 학벌, 문벌 같은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하며 그 뜻대로 사는 여인이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노년에 아내를 여의고 슬픔에 잠겨 이렇게 말한다.그는 천사였다.아내들은 남편에게 천사이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잠언의 말씀은 진리이다. 잠언서는 계속 말한다.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 보다 움막에서 혼 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9) 부부관계는 3대요소가 갖추어져야 원만해진다. 자손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재산 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금실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이 세가지 가운데서 제일은 금 실(평화)이 좋아야 한다. 금실이 나쁜 부부 사이에선 자손이 무거운 멍에가 된다. 버릴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는 고통이 되는 것이다. 금실이 깨어진 부부 사이에선 재물이 죄악의 덫이 된다. 딴 살림을 차린다든지 아니면 외간남자들과 춤바람을 몰 고 다니게 된다. 불행한 일이다.
(3) 없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야훼께 빚을 주는 셈, 야훼께서 그 은혜를 갚아 주신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도와 주는 사람은 아쉬운 것 없겠지만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잠언 28:27)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문제를 종말론적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서(마태 25:31-)하나님 나라의 오른 편에 들어가는 사람, 왼편에 들 어가는 사람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 하나님 나라의 오른 편에는 가난한 사람에 게 선을 베푼 사람,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영생을 얻고저 하는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면 된다고 가르치셨다. 삭개 오에게도 가난한 사람과의 연관 속에서오늘 이 집이 구원받았다는 복음을 들려 주셨다. 잠언 기자도 구제는 불쌍한 사람에게 준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보 상을 받는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세상인들은 교회의 비대화, 물량주의에 대해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한다. 그 크기에 비해 사회적 관심에 너무도 인색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구제할 때나 선 교할 때 반드시 자기 이름이나 교회 이름을 나타내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서의 정신에 어긋난다. 예수께서는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6:3-4)라고 말씀하셨다. 잠언 19장은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의 가 이미 공부한 것이었으므로 생략하기로 했다. 아직 다루지 못한 부분은 다음기회 에 다시 연구하게 될 것이다.
(2) 집과 재산은 선조에게서 물려받지만 현명한 아내는 야훼에게서 받는다 (잠언 19:14)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어 살게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한 남자는 여자 를 잘 만나야 하고 한 여자 또한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성경이 씌어질 때는 아버 지 중심시대였으므로현명한 아내는 야훼에게서 받는다 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아내는 재산보다 귀하고 신성한 존재이다. 하나님에게서 받는다는 말의 뜻이 바 로 이것을 의미한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재산이나 물려 줄 수 있지만 아내를 짝지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자신들 의 힘으로, 욕심으로 며느리감을 찾는다. 그래서 왕왕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 되지만 주착없는 아내는 등뼈 갉아 먹는 벌레와 같다 (잠언 12:4)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 것은 장마철에 지붕이 새는 것과 같다 (잠언 27:15) 아내는 남자의 면류관이 되기도 하고 등뼈를 갉아 먹는 벌레 또는 장마철에 지붕 이 새는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내를 잘 맞이해야 한다. 하나님으로 부터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 미모나 학벌, 문벌 같은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하며 그 뜻대로 사는 여인이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노년에 아내를 여의고 슬픔에 잠겨 이렇게 말한다.그는 천사였다.아내들은 남편에게 천사이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잠언의 말씀은 진리이다. 잠언서는 계속 말한다.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 보다 움막에서 혼 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9) 부부관계는 3대요소가 갖추어져야 원만해진다. 자손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재산 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금실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이 세가지 가운데서 제일은 금 실(평화)이 좋아야 한다. 금실이 나쁜 부부 사이에선 자손이 무거운 멍에가 된다. 버릴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는 고통이 되는 것이다. 금실이 깨어진 부부 사이에선 재물이 죄악의 덫이 된다. 딴 살림을 차린다든지 아니면 외간남자들과 춤바람을 몰 고 다니게 된다. 불행한 일이다.
(3) 없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야훼께 빚을 주는 셈, 야훼께서 그 은혜를 갚아 주신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도와 주는 사람은 아쉬운 것 없겠지만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잠언 28:27)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문제를 종말론적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서(마태 25:31-)하나님 나라의 오른 편에 들어가는 사람, 왼편에 들 어가는 사람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 하나님 나라의 오른 편에는 가난한 사람에 게 선을 베푼 사람,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영생을 얻고저 하는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면 된다고 가르치셨다. 삭개 오에게도 가난한 사람과의 연관 속에서오늘 이 집이 구원받았다는 복음을 들려 주셨다. 잠언 기자도 구제는 불쌍한 사람에게 준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보 상을 받는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세상인들은 교회의 비대화, 물량주의에 대해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한다. 그 크기에 비해 사회적 관심에 너무도 인색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구제할 때나 선 교할 때 반드시 자기 이름이나 교회 이름을 나타내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서의 정신에 어긋난다. 예수께서는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6:3-4)라고 말씀하셨다. 잠언 19장은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의 가 이미 공부한 것이었으므로 생략하기로 했다. 아직 다루지 못한 부분은 다음기회 에 다시 연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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