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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위의 동역 (잠8:22-31,롬5:1-5,요16:12-15,)

본문

잠언의 지혜를 기독론적으로 해성할 때 본문에 등장하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땅이 생기기 전부터,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잠8:22-23)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도 또한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잠 8:30)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삼위를 생각할 때 지혜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역시 지혜의 신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누가 따르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참 지혜, 참 인생의 질리를 찾지 못하고, 비진리와 어리석음의 길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에 대한 민망한 마음을 갖는 것은, 지혜로 그 공통점을 갖고 태초 이전부터 활동하신 삼위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로마서 5:1-5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5)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본문에서는 삼위의 사역이 세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화평을 누리도록 하는 평화의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인간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무너뜨릴 수 있고, 둘로 찢어진 휘장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우리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아온 인간을 향하여 그의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에게 소망이 부그럽지 않도록 성령님을 주시어 우리 마음에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선물로 인간에게 부어주신 바되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은혜 가운 데서 담대하게 살게 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살펴볼 때 우리는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게 됩니다.
또한 본문은 삼위의 사역에 대한 이해와, 삼위의 성품에 대한 이해가, 모든 인간과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 줍니다. 다시말하면, 모두 다 인간 문제에 관련되어 삼위의 사역과 성품이 진행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12-15 (요 16: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요 16:1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 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 시리라 (요 16: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무릇 아버지(하나님)께 있는 것은 다 내(예수)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 (성령님)가 내(예수)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요 16: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도 이를 것이 많은데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기에 하실 수 없는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삼위는 단순히 동일한 위격으로 묘사될 수 없습니다. 삼위는 서로를 향해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단순히 자신이 다 가르칠 수 없음을 인정하시고 성령님의 사역으로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그대로만 인간들에게 전달하십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께 있는 것은 모두 다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한 사람의 영웅적인 목회자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젠 한국 교회에도 동역의 의미가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의 동역은 서로의 성숙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목회 전문성을 최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선교 현장도 이젠 단독 선교사의 힘만으로는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함께 주의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나가는 동역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함께 하는 삶, 함께 사는 세계를 두 세기 전에 눈 뜨게 해준 "요한 웨슬리의 일기"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준 어떤 사람의 권면이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며 천국에 가기를 워하시죠 명심하세 요. 당신 혼자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동지를 찾으십시오. 없으면 동지를 만드십시오. 성경은 혼자서 고독하 게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런 고백도 하였습니다. "나는 마틴 루터의 생애 라는 작품의 번역을 마쳤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하나님의 붙잡으신 축복된 도구였다. 그러나 아! 얼마나 애석한 일인 가. 그는 충실한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어떤 위험을 무릎쓰 고라도 하나님의 일에 크게 방해가 되는 그의 거칠고 다루기 힘든 정신과 영혼에 대해서 지독하게 열정을 갖는 그런 것을 명백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꾸짖어줄 친구가 없다는 것이 정 말 애석하였다." 우리는 혼자서는 안됩니다. 모두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동역의 아름다움을 고양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의 동역의 아름다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부정적인 사례들보다, 긍정적인 사례들, 특별히 가장 이상적인 동역의 아름 다운 본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동역은 바로 삼위일체의 사역과 각각의 성품입니다. 삼위는 언제나 함께 사역에 동참합니다. 창조 시에 삼위는 함께 그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 라 (창 1: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역의 삼위는 함께 동참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님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5) 지금도 삼위는 아름답게동역하고 계십니다. 동기부여 많은 교회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하나됨이 깨어지는 데 연유합니다. 한국 땅의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남북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됨이 깨어진 지 벌써 오래 전입니다. 선교 현장에 서의 심각한 문제는 바로 선교사들의 분열입니다. 작게는 가정들도 깨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혼과 가정 파탄이 그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개개인의 마음이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자아 안에서의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장 인 것입니다. 동역하는 조화를 모든 분야에서 되찾는 사명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기러기들은 날아갈 때 한 줄 혹은 V자 형으로 무리를 이루 어 날아간다. 그것은 기러기가 혼자 날아갈 때보다 한줄로 날든지 V자 형으로 날면,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면서 내는 바람이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주고, 뒤에 있는 기러기가 날면서 내는 바람이 앞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주게 되어, 기 러기 한 마리가 날 때마다 힘이 71%나 줄어 든다고 한다. 그 때문에 기러기들은 혼자 날지 않고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고 한다.
방법론
1).자심의 한계성을 인정할 것을 말씀하십니다(요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요 16:12)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교만과 자기 과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후에 오실 성령님이 하실 일을 남겨두셨습니다. 시간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분명한 구별을 하신 분이시기에 삼위의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2).자신의 뜻보다 다른 이의 뜻을 먼저 생각할 것을 말씀하십니다(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항상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동역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국회의 여당과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의사를 존중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3).자심보다 다른 이를 영화롭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4) 함께 동역하면서 자신의 영광과 명예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동역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를 높이고 상대의 영광을 위해서 서로 봉사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결과 동역하는 아름다운 소식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기를 기다립니다. 마치 삼위일체의 아름다운 동역하심같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이루어진다면 깨어 지고 무너진 모든 관계와 공동체들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동역의 아름다움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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