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지혜의 열렬한 호소2 (잠9:1)

본문

지혜가 집을 짓고 있음을 본다. 여기서 일곱기둥의 의미는 무엇인 가 그녀의 집이 초청을 받아들이는 사람 전부를 식탁에 앉힐 수 있을만큼 넓은 공간이 있는 다소 멋진 집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1) 귀부인 지혜의 초대(1-6) 1:20, 21과 8:1-3에서 귀부인 지혜는 선지자의 본을 따서 옥외 설 교자가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여주인이 된다. 호화로운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리고서 여종들을 보내어 사람들 을 연회에 초대한다(2,3절). 지혜가 손님들을 위해 준비하는데 보 여주는 근면과 배려는 어리석은 여자가 지나가는 손님들을 붙잡고 졸라대는(13-15) 성의없고 뻔뻔스런 태도와 잘 대조된다. 귀부인 지혜는 향료가 첨가되고 포도주로 씻어낸 고기 음식을 내놓는다. 지혜의 가르침에 대해 먹고 마신다는 비유적인 표현은 벤시락이 집회서에서 채택해 사용한 것 바보에게 하지 말라고 해보라. 그러면 바보는 곧장 가서 그 일을 저지른다는 옛 속담이 있다. 어리석은 여자는 속담을 잘 알고서 이를 아주 유리하게 이용한다. 지혜가 차린 음식은 생명을 살지게 하는 음식이고 반면에 어리석은 여자의 음식은 죽음을 가져오는 음식이다(6, 18절; 8:32-35; 7:24-27). 생명을 주는 음식에 대한 주제는 요한복음 6 장에서 가장 잘 해석되고 있다. 어리석음 자체가 지혜에 대항하여 의인화되었다. 이 여인은 온 갖 어리석고 미련한 짓을 받아들이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두 연회 를 대비시키는 것은 두길(4:10-19)에 대한 가르침을 강화하기 위 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지혜로운 길이냐, 우매자의 길이냐 생 명의 길이냐 사망의 길이냐하는 문제를 매우 날카롭고 극적인 방 식으로 직면하며 선택해야 한다.
2)지혜자와 거만한 자(7-9) 지혜가 그물을 넓게 치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교훈에서 유익을얻 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지혜의 초대에 응한 손님들은 자신의 사 고, 말, 행동 습관에 거슬리는 진리에 대해서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자신의 습관을 기꺼이 바꾸려고 해야함 거만한 자는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운 자이다. 자만심이 강하고 남을 깔본다. 그의 문제의 원인은 교만이다(21:24). 어려운 길을 배우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임 그러나 지혜있는 자는 가르치기가 매우 쉬운 사람이다. 항상 겸손히 책망을 받 고 책망하는 자에게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지혜라 자랐다는 표시 이다. 12절-'책망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은 인격에 대한 테 스트이며 우리가 귀부인 지혜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어리석은 여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지혜를 배우는 겸손이 냐, 스스로를 높이 여기는 교만이냐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 정하며 우리를 일으키거나 넘어뜨릴 것이다.
3) 지혜학교의 배움의 표어-10절은 중심부이다. 그 의미는 귀부인 지혜의 식탁에서 먹느냐, 아니면 어리석은 여자의 식탁에서 먹느 냐, 생명의 음식을 먹느냐, 아니면 사망의 음식을 먹느냐는 선택 은 최종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반응에 달 려 있다. 이것은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이다. 하나님을 경외 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아무도 지혜의 길을 걸을 수 없다. 하나님 을 경외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바로 궁극적인 어리석음이다. (1:29-31).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5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