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영원성 (시90:1-17)
본문
제4권은 106편 까지이다. 그 중 본시는 모세가 남긴 유일한 시이다. 여기서 영원한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을 비교하여 인간의 실상을 파악케하고 인간의 참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1-12), 하나님께 긍휼과 은총을 간구한다(13-17). 인생은 무력한 존재이다. 더 이상 자신에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1. 하나님은 초월하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1-4) 하나님께 인자와 긍휼로 간구하기 전에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원성 을 노래했다. 만약에 간구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인생들과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제한적이라면 그는 인생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의 우상들이 그렇다. 그것들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형상화 되었기 때문에, 인생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나무덩어리요 돌조각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것들은 인생들에게 결코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유한한 인생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전능자 요, 초월자이시다. 참으로 하나님은 천지가 조성되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분으로 서(2, 출3;14) 그 분에 의해서 만물과 천지가 복스럽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된 사람이 하나님을 거스리고 배반하자 하나님께서는 인생들 로 하여금 그 근원된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3, 창3:19).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따라서 모든 인생들은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인생은 보잘것 없는 존재이다. 이 사실을 무엇보다 인생들이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겸손한 신앙고백이 나와야 한다. 바로 여기에 인생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잇는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2. 인간의 나약한 유한성을 깨닫자(5-12). 초월적인 영원성을 지닌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아울러 나약하고 유한한 인생들을 돌이켜 보았다. 참으로 천년이 밤의 한 경점 같으신 하나님이시다
(5). 이같이 초월적인 하나님에 비해 인간은 잠간 자는 것 과 같고, 들의 풀과 같음을 보았다. (시90: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 다시말해, 한숨자고 나면 인생은 끝나고, 낮에 잠깐 피었다가 저녁이면 벤 바 되는 풀과 같은 것이 인생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한숨 자는 것같고, 들의 꽃과 같은 인생의 70-80세의 날들은 그나마 행복 한가 그렇지 않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인생들은 온갖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를 사며, 그 결과 수고와 슬픔만이 찾아들 따름이다(7-11).
그러므로 참행복과 참평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런고로 이같은 인생을 의지하고, 인생을 자랑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나약한 유한성을 철저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의 마음 을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나약성과 유한성을 철저하 게 깨닫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3. 오직 하나님만으로 소망을 삼자!(13-17). 시인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원성을 노래하였고(1-4), 이어 인생의 유한성을 고백하였다(5-12).
그렇다면 그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3) 한숨 자는 것같고 들의 꽃과 같은(5-6) 인생들에게 있어서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저 그렇게 잠시 살다가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 뒤에 있는 그 인자와 은총을 믿고, 바로 거기 에 의지하여 구원을 호소했다(14,17). 하나님의 진노대로 한다면 인생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그저 죽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진노를 극복할 수 있는 인자와 긍휼이 있다. 주의 백성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풍성한 은총이 있다. 그런고로 나약한 인생들은 특별히 주의 백성들은 본문의 시인처럼(13-17) 하나님 의 그 변치 않는 인자하심에 매달려야 한다. 그 풍성한 은총에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 만으로 인생의 유일한 소망을 삼아야 한다. 인생을 죽음으로 돌려보낸 분은 또한 그 죽음에서 능히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인간은 유한하다. 이 사실을 마음 속에 깊이 깨닫고 그것으 로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삼을 때, 그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을 소망으로 삼는 자에게 복이 있다.
1. 하나님은 초월하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1-4) 하나님께 인자와 긍휼로 간구하기 전에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원성 을 노래했다. 만약에 간구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인생들과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제한적이라면 그는 인생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의 우상들이 그렇다. 그것들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형상화 되었기 때문에, 인생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나무덩어리요 돌조각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것들은 인생들에게 결코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유한한 인생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전능자 요, 초월자이시다. 참으로 하나님은 천지가 조성되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분으로 서(2, 출3;14) 그 분에 의해서 만물과 천지가 복스럽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된 사람이 하나님을 거스리고 배반하자 하나님께서는 인생들 로 하여금 그 근원된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3, 창3:19).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따라서 모든 인생들은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인생은 보잘것 없는 존재이다. 이 사실을 무엇보다 인생들이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겸손한 신앙고백이 나와야 한다. 바로 여기에 인생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잇는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2. 인간의 나약한 유한성을 깨닫자(5-12). 초월적인 영원성을 지닌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아울러 나약하고 유한한 인생들을 돌이켜 보았다. 참으로 천년이 밤의 한 경점 같으신 하나님이시다
(5). 이같이 초월적인 하나님에 비해 인간은 잠간 자는 것 과 같고, 들의 풀과 같음을 보았다. (시90: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 다시말해, 한숨자고 나면 인생은 끝나고, 낮에 잠깐 피었다가 저녁이면 벤 바 되는 풀과 같은 것이 인생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한숨 자는 것같고, 들의 꽃과 같은 인생의 70-80세의 날들은 그나마 행복 한가 그렇지 않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인생들은 온갖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를 사며, 그 결과 수고와 슬픔만이 찾아들 따름이다(7-11).
그러므로 참행복과 참평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런고로 이같은 인생을 의지하고, 인생을 자랑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나약한 유한성을 철저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의 마음 을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나약성과 유한성을 철저하 게 깨닫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3. 오직 하나님만으로 소망을 삼자!(13-17). 시인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원성을 노래하였고(1-4), 이어 인생의 유한성을 고백하였다(5-12).
그렇다면 그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3) 한숨 자는 것같고 들의 꽃과 같은(5-6) 인생들에게 있어서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저 그렇게 잠시 살다가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 뒤에 있는 그 인자와 은총을 믿고, 바로 거기 에 의지하여 구원을 호소했다(14,17). 하나님의 진노대로 한다면 인생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그저 죽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진노를 극복할 수 있는 인자와 긍휼이 있다. 주의 백성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풍성한 은총이 있다. 그런고로 나약한 인생들은 특별히 주의 백성들은 본문의 시인처럼(13-17) 하나님 의 그 변치 않는 인자하심에 매달려야 한다. 그 풍성한 은총에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 만으로 인생의 유일한 소망을 삼아야 한다. 인생을 죽음으로 돌려보낸 분은 또한 그 죽음에서 능히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인간은 유한하다. 이 사실을 마음 속에 깊이 깨닫고 그것으 로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삼을 때, 그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을 소망으로 삼는 자에게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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