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와 안전 (시91:1-16)
본문
본시는 46편과 유사한 시로서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근거로 한 기쁨과 소망을 노래한 시이다. 특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누리게 될 안전과 평안함에 대한 시편 기자의 신앙고백이다. 선한 목자 곁에 있는 양은 언제나 안전하기 마련이다.
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에게 안전이 있다(1-7). 시인은 절대로 실족하거나 절망할 수 없는 존재임을 노래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자기의 능력과 지혜가 출중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총으로써만 가능했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세력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 평안과 안전을 보장해 주시는 분이다(1-2). 세상의 악랄하고 집요한 미혹과 사단의 기만적인 공격에서 능히 이기게 하시는 분이다(3-4). 끊임없이 도전받고 위협받는다고 할지라도(5-7) 하나님은 지존자시요 전능자시다. 이분을 신뢰할 때에 결코 실족치 않고 낙망치 않도록 안전히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사랑의 깃으로, 진실함으로 성도를 보호하시니 이것이 가장 아전한 길이다.
2. 여호와를 멀리하는 악인은 멸망한다. 신자건 불신자건 모두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강한 분을 의지할 때 약한 자는 강해진다. 악인이란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그들을 심판하게 되니 그들은 오래 가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죄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는 자는 악인이 되고 멸망케 되니 그 책임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다.
3. 여호와를 사랑할 때 안전이 있다(14-16)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914). 따라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단이나 불신자들은 결코 하나님께로 아는 자이다(14). 단지 이름 석자 정도만 안다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관계와 교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과 깊은 말씀의 교제와 순종이 있는 자는 환난 날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이다(15).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 환난에서 건져주실 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과 교제와 기도로써 하나님께 피하는 자, 하나님으로 자신의 방패와 피난처로 삼는 자는 많은 복을 누린다. 영육간에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된다(14-16). 무엇보다, 환난에서 건짐받는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된다. 새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사자의 이빨에서, 독사의 독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또한 대적들에게 높이 들림받는 영화의 축복을 누린다. 그래서 더 이상 사단에게서 좇기는 신세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로서 받은 신령 한 힘으로 사자를 밟고 독사를 누르는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13). 또한 장수의 축복을 누린다. 하나님께 보호받아 그 피난처에서 안전하게 거처하니, 그 목숨을 누가 해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 피난처를 삼는 자는 각종 영육간의 축복을 누린다. 정녕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으로서 그 날개 품속에 온갖 복들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론' 여러분의 인생의 방패와 요새는 무엇인가 무엇으로써 당신의 피난처로 삼는가 재물인가 권세인가 학벌인가 이것들은 환난 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결코 새사냥꾼의 올무에서, 사자의 이빨에서, 독사의 독에서 당신을 안전하게 해줄 수 없다. 잠시 도움이 되는 듯하나, 곧 썩어지고 또 사라지고 만다. 그것은 폭풍이 불어대는 사막에서 모래성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것들을 의지 하지 말고, 그것으로 내 인생의 피난처로 삼지말고, 하나님으로 내 인생의 피난처로 삼으시기 바란다. 그리하면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잠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 난처가 있으리라 (사 25:4)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렘17: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 처시니 이다
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에게 안전이 있다(1-7). 시인은 절대로 실족하거나 절망할 수 없는 존재임을 노래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자기의 능력과 지혜가 출중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총으로써만 가능했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세력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 평안과 안전을 보장해 주시는 분이다(1-2). 세상의 악랄하고 집요한 미혹과 사단의 기만적인 공격에서 능히 이기게 하시는 분이다(3-4). 끊임없이 도전받고 위협받는다고 할지라도(5-7) 하나님은 지존자시요 전능자시다. 이분을 신뢰할 때에 결코 실족치 않고 낙망치 않도록 안전히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사랑의 깃으로, 진실함으로 성도를 보호하시니 이것이 가장 아전한 길이다.
2. 여호와를 멀리하는 악인은 멸망한다. 신자건 불신자건 모두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강한 분을 의지할 때 약한 자는 강해진다. 악인이란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그들을 심판하게 되니 그들은 오래 가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죄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는 자는 악인이 되고 멸망케 되니 그 책임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다.
3. 여호와를 사랑할 때 안전이 있다(14-16)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914). 따라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단이나 불신자들은 결코 하나님께로 아는 자이다(14). 단지 이름 석자 정도만 안다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관계와 교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과 깊은 말씀의 교제와 순종이 있는 자는 환난 날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이다(15).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 환난에서 건져주실 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과 교제와 기도로써 하나님께 피하는 자, 하나님으로 자신의 방패와 피난처로 삼는 자는 많은 복을 누린다. 영육간에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된다(14-16). 무엇보다, 환난에서 건짐받는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된다. 새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사자의 이빨에서, 독사의 독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또한 대적들에게 높이 들림받는 영화의 축복을 누린다. 그래서 더 이상 사단에게서 좇기는 신세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로서 받은 신령 한 힘으로 사자를 밟고 독사를 누르는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13). 또한 장수의 축복을 누린다. 하나님께 보호받아 그 피난처에서 안전하게 거처하니, 그 목숨을 누가 해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 피난처를 삼는 자는 각종 영육간의 축복을 누린다. 정녕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으로서 그 날개 품속에 온갖 복들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론' 여러분의 인생의 방패와 요새는 무엇인가 무엇으로써 당신의 피난처로 삼는가 재물인가 권세인가 학벌인가 이것들은 환난 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결코 새사냥꾼의 올무에서, 사자의 이빨에서, 독사의 독에서 당신을 안전하게 해줄 수 없다. 잠시 도움이 되는 듯하나, 곧 썩어지고 또 사라지고 만다. 그것은 폭풍이 불어대는 사막에서 모래성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것들을 의지 하지 말고, 그것으로 내 인생의 피난처로 삼지말고, 하나님으로 내 인생의 피난처로 삼으시기 바란다. 그리하면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잠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 난처가 있으리라 (사 25:4)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렘17: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 처시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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