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란 (시91:14-16)
본문
세상의 기준에서 행복의 조건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 적인 것으로는 재물, 건강, 명예, 지식, 좋은 직장 등이 이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의 말씀을 보면 재물과 명예와 지식이 행복의 절대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재물과 건 강 명예, 지식등이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이러한 것들이 충족된다면 이는 정말로 축복이며 행복한 삶 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때문에 예수님을 버린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행복의 조건이 충족되 면 예수님을 떠나고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병이 나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해서 병이 나은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등진 경 우가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나오는 문둥병을 고침 받은 경우 단 한 사람만이 예수께로 와서 감사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참 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병이 나았지만 예수님을 떠 나버려서 불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면 행복할 수 있다 던 사람들이 좀 여유가 생기니까 하나님을 등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결과는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 가운데 빠져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종말을 맞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의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카솩'인데 [딱 붙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딱 붙어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말은 다 른 것은 모두 내버리다시피 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행위를 말 합니다. 이런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모습) 그래서 이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을 한다면 다음 과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행복하다." 한번 따라서 해보시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데는 몇 가지 신앙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를 살펴 보면 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나를 건져주는 자가 있을 때 행복한 사람입니다. 14절 말씀에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길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진흙탕에 뒹구러 버린 그 아이 가 고아라서 아무도 그를 일으켜 주지 않는 다면 그 아이만큼 불행한 사람 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진흙탕에 넘어져 뒹구러버린 아이를 부모가 와 서 불쌍해 하며 일으켜 준다면 이 어린아이는 넘어져서 불행한 사람이 아 니라 일으켜 주시는 사랑이 많으신 부모님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떠나면 영적인 고아 상태가 됩니다. 아무도 나를 건져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 품에 거하면 우리는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내미시는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억만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죄에서 살다가, 죄속에 떠내 려 가면서 죄속에 파묻혀 멸망해 버린다면 그 억만장자를 그 누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다 죄를 짓고 죽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도 헤어 나올자가 없습니다. 절망과 파멸을 향하여 떠내려 가고 있습니다. 그 인간을 하나님 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누가 나를 건져낼 수 있으며, 누가 나에게 소망의 밧줄을 던져줄 수 있습니까 누가 나를 절망과 고독 속에서 건져줄 것입니까 나를 건져 줄 자를 모를 때, 나를 건져 줄 자가 없다고 느껴질 때, 인간은 불안합나다. 불행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건지리라." 하나님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죄에서 건져 내시고. 절망에서 건져 내시고. 질병에서 건져 내시고. 고통과 시험에서 건져내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은 저와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천하에 가장 위대한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더구나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영광중의 영광입니다. 이름은 친해 야 부를 수 있고, 친구라야 부를 수 있습니다. 아무나 부르면 실례가 됩니다. 예의에 벗어납니다. 요15:14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했고, 15절에는 "너희는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 입니다. 세상에서 대통령의 친구, 높은 사람의 친 구라고만 하여도 굉장할 것입니다. 이사야41:8에 "나의 종, 너 이스라엘, 나의 택한 야곱, [나의 친구 아 브라함의 자손아!]"라고 했습니다. 내 친구가 되신 예수님은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셨습니다. 내 죄를 대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멸망받을 자에서 축복을 받 을 백성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째, 부르면 대답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한 자입니다.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부르짖음 을 내가 들었노라"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 한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출애굽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난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아무리 목청터져라 불러도 대답이 없는 죽은 신 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가끔 인간은 기도를 드렸는데 응답이 없다고 불만을 가지는 자도 있습니다. [바클레이]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을 사모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 입슬의 기도소리 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대화의 내용이 꾸밈없는 대화, 솔직한 대화, 진실한 대화, 겸손한 대화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꾸밈없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솔직한 기도를 들여야 합니다.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도의 응답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네째, 환란을 당했을 때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15절에 "저희 환란날에 내가 저와 함께 하며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 리라"고 했습니다. 동행자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외롭지가 않습니다. 힘이 되며 용기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성공했을 때의 동반자, 잔치집의 동행자, 출 세길의 동행자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성공했을 때, 잔치집에서, 출세길에서는 세상의 동반자에게 예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고난과 환란과 역경을 당했을 때 동행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니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초상집이 가난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자원해서 "네가 고생(실패, 고통, 어려움을 당하는데)하는데 내가 네 곁에서 동행자가 되어 주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15절의 말씀은 그와는 다름니다. "네가 환란을 당할 때 내가 너의 곁 에서 너를 도와주고 승리할 수 있도록 건져주겠다"고 선듯 나서는 친구 를 소개 합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누가 나를 건져주며, 누가 나를 위로 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의지할 것 없을 때 내 힘이 되어 주겠다고 하겠습니까 우리 주님 한분 밖에 없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동행자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한즉 내가 너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 하노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의 환란의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이 다 이루어 지기를 믿으시고 이 약속의 은혜가 우리의 것이 되 도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겠습니다.-기도 드리겠습니다.-
첫째, 나를 건져주는 자가 있을 때 행복한 사람입니다. 14절 말씀에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길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진흙탕에 뒹구러 버린 그 아이 가 고아라서 아무도 그를 일으켜 주지 않는 다면 그 아이만큼 불행한 사람 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진흙탕에 넘어져 뒹구러버린 아이를 부모가 와 서 불쌍해 하며 일으켜 준다면 이 어린아이는 넘어져서 불행한 사람이 아 니라 일으켜 주시는 사랑이 많으신 부모님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떠나면 영적인 고아 상태가 됩니다. 아무도 나를 건져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 품에 거하면 우리는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내미시는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억만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죄에서 살다가, 죄속에 떠내 려 가면서 죄속에 파묻혀 멸망해 버린다면 그 억만장자를 그 누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다 죄를 짓고 죽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도 헤어 나올자가 없습니다. 절망과 파멸을 향하여 떠내려 가고 있습니다. 그 인간을 하나님 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누가 나를 건져낼 수 있으며, 누가 나에게 소망의 밧줄을 던져줄 수 있습니까 누가 나를 절망과 고독 속에서 건져줄 것입니까 나를 건져 줄 자를 모를 때, 나를 건져 줄 자가 없다고 느껴질 때, 인간은 불안합나다. 불행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건지리라." 하나님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죄에서 건져 내시고. 절망에서 건져 내시고. 질병에서 건져 내시고. 고통과 시험에서 건져내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은 저와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천하에 가장 위대한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더구나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영광중의 영광입니다. 이름은 친해 야 부를 수 있고, 친구라야 부를 수 있습니다. 아무나 부르면 실례가 됩니다. 예의에 벗어납니다. 요15:14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했고, 15절에는 "너희는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 입니다. 세상에서 대통령의 친구, 높은 사람의 친 구라고만 하여도 굉장할 것입니다. 이사야41:8에 "나의 종, 너 이스라엘, 나의 택한 야곱, [나의 친구 아 브라함의 자손아!]"라고 했습니다. 내 친구가 되신 예수님은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셨습니다. 내 죄를 대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멸망받을 자에서 축복을 받 을 백성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째, 부르면 대답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한 자입니다.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부르짖음 을 내가 들었노라"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 한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출애굽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난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아무리 목청터져라 불러도 대답이 없는 죽은 신 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가끔 인간은 기도를 드렸는데 응답이 없다고 불만을 가지는 자도 있습니다. [바클레이]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을 사모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 입슬의 기도소리 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대화의 내용이 꾸밈없는 대화, 솔직한 대화, 진실한 대화, 겸손한 대화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꾸밈없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솔직한 기도를 들여야 합니다.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도의 응답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네째, 환란을 당했을 때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15절에 "저희 환란날에 내가 저와 함께 하며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 리라"고 했습니다. 동행자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외롭지가 않습니다. 힘이 되며 용기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성공했을 때의 동반자, 잔치집의 동행자, 출 세길의 동행자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성공했을 때, 잔치집에서, 출세길에서는 세상의 동반자에게 예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고난과 환란과 역경을 당했을 때 동행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니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초상집이 가난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자원해서 "네가 고생(실패, 고통, 어려움을 당하는데)하는데 내가 네 곁에서 동행자가 되어 주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15절의 말씀은 그와는 다름니다. "네가 환란을 당할 때 내가 너의 곁 에서 너를 도와주고 승리할 수 있도록 건져주겠다"고 선듯 나서는 친구 를 소개 합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누가 나를 건져주며, 누가 나를 위로 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의지할 것 없을 때 내 힘이 되어 주겠다고 하겠습니까 우리 주님 한분 밖에 없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동행자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한즉 내가 너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 하노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의 환란의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이 다 이루어 지기를 믿으시고 이 약속의 은혜가 우리의 것이 되 도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겠습니다.-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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