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목회(2) (살전2:7-13)
본문
오늘은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심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진한 감동을 줄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 은 목회 방침을 부드러운 어머니의 심정으로 하는가 하면, 보수적인 아버지 의 입장으로 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자식을 양육 하는 심정을 가지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심장이요, 목회자의 심장이라는 것입니다.
I. 모성적인 목회. 살전2:7입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 녀를 기름같이 하였으니"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목회 할 때에 유모와 같은 심정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유모"라는 말은 삯을 받 고 젖을 먹이는 그런 유모를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영아의 어머니를 가르칩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친자식을 양육하기 위하여 온갖 관심과 심혈을 다 기울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인간의 사랑 중에 가장 감동적인 사랑을 예로 들었습니다. 자기 자녀를 품에 안고 기르는 어머 니처럼 바울 사도는 그의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같이 유순하게 대하였습니다. 갈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 연약한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모성애적인 관심을 잘 말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역자와 성도는 부모와 자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아버지로 성경은 표현하는 것입니다. 고후6:13에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딤전1:2에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딛1:4에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나니 하나님 아버 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몬1:10에도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요삼1:4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바울은 영의 아버지로써! 그리고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인 자녀로 생각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목회 하였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제일 뜨거울 때는 어린아이를 안고 젖을 먹일 때라고 합니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젖을 통해 육체가 살이 찌고 눈과 눈 이 마주치는 순간 정서가 살이 찐다고 합니다. 교역자는 젖을 내서 먹이는 어머니요, 교인들은 영적 어머니가 되는 교역자 의 영의 젖을 받아먹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바로 발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젖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벧전2:2을 봅니다. "갓난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 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신앙이 성장되기 위해서 갓난아이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기 위함 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신앙 인격은 이 신령한 젖을 잘 먹는 대로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역자는 젖을 내어 먹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가정 주부가 식구들을 위하여 요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부가 이제 장을 보러 갑니다. 가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면 그 무거운 것을 이 손에 들었다, 저 손에 들었다 하면서 집에 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 풀어놓고 지질 것은 지지고, 볶을 것은 볶고, 무칠 것은 무치고, 끌일 것은 끌이고 해 서 상을 차려 들여갑니다. 그러면 그것을 온 식구가 즐겁게 먹습니다. 또 그 냥이나 먹습니까! 질기다느니! 간이 안 맞는다느니, 싱겁다느니 하면서 다 먹 습니다. 애써 장만한 사람 먹어 보라 소리도 없이 말입니다. 그래도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 것을 보면 그저 즐겁고 힘든 줄을 모릅니다. 목회자의 심정 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젖을 잘 내서 먹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건강해 야 합니다.
둘째는 과로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잘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 풍성한 젖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역자도 신 령한 젖을 내어 먹이려면
첫째는 심령이 건강해야 합니다.
둘째는 과로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히13:17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 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 교회의 건강을 위하여! 여러분의 건강한 영혼을 위하여 이 말씀을 기억 해야 할 것입니다.
Ⅱ. 교인들을 사모하였다고 했습니다. 8a절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낳 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처럼! 성도들을 순전하게 사랑하였다고 했습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붙들어 두고 싶고, 무엇이나 주고 싶고, 도와주 고 싶고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양육했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우리 온 교우들이 서로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만나고 싶 고, 만나면 헤어지기가 아쉽고, 헤어지면 다시 만날 때가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Ⅲ. 복음을 줄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려고 하였습니다. 8b절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 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은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즐겨 주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목회 하였다고 했습니다. 목숨까지 주려고 했다는 것은 전제를! 전 인생을 다 주 었다는 것입니다. 양들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후11:23-29을 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 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맡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 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 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 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에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 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 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그는 고난의 용사였습니다. 그의 앞에는 영광보다는 욕이 기다리고 있었고, 평안보다는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일생에 한번 있을 까 말까한 일들을 바울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 하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고난이 바울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위한 염려 때문이었 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해하여 하지 않더냐!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바울의 모든 생각이 성도 들에게 있고, 교회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이요, 주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주의 것! 주의 양이 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히 기억할 것은 바울 사도가 이렇게 보고싶고 목숨까지 주고싶은 심정으로 목회할수 있었던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교우들은 목회 자를 사모하고 귀히 여길 줄 아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Ⅳ. 부성적인 목회를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유순하고 아버지는 엄격하 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 대하여 어머니의 사랑은 뜨겁고 아버지의 사랑은 차갑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집에 외아들 이 병을 앓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 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립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아버지는 말없이 물끄 러미 쳐다만 보고 있는데 그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눈에서는 뻘건 핏방울이 떨어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깊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살펴 볼 본문은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유 념해야 할 사항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성적인 목회! 아버지의 심정으로 가 정의 자녀들을 이끌어 양육하려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0절입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아버지의 태도는 거룩한 태도, 옳은 태도, 흠 없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태도라고 하는 것은 "죄에서 분리된 성별 된 자세"를 말합니다. 마치 요셉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경건한 사람이요, 성결한 삶입니다. 그리고 옳은 태도라고 하는 것은 "정직하고 진실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앞에서 옳은 생활! 인정받는 생활을 말합니다. 이 런 것이 아버지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흠이 없는 태도입니다. 이 말은 "책잡힐 것이나 책망 받는 일이 없는 자세"를 말합니다. 사실은 이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보면 이 시 대의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영성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거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이 거울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부족을 느 낍니다. 허물이 많고, 흠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필요 한 종입니다. 이것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사도 바울을 온갖 말로 험담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을 여러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심지어는 "네가 사도냐!"라고까지 심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의 관계요, 나의 양심의 문제입니다. 늘 성결된 자세와 바른 삶과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성적인 목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11절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녀에게 하 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권면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무지할 때에 불러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불의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권면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딤후 3:16,17절 말씀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말씀을 가지고 권면합니다. 교훈 합니다. 책망합니다. 교육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올바른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권면하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딤전1:10, 딤후4:2, 딛1:9, 2:1)
둘째는 위로하는 일입니다. 위로한다는 말은 "용기를 북돋는다, 낙망되고 상심된 자를 위로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자녀가 연약하였을 때에! 상심하였을 때에 부드러운 말로 격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위로를 통해서 마음에 결심한 바를 기쁘게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경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두렵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게으르거나, 인색하거나, 방종하거나, 덕이 되지 못하는 자들을 엄히 훈계하고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계를 통 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의 뜻을 받들어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성적인 목회의 필요성입니다. 그 이유를 12절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합 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이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어떠한 행위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연약하고 허물 많은 나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감격이요, 감사 제목입니다. 왜 그 렇게 하셨습니까!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려고!"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러면 그것을 끝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할 의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빛이 되게 하셨으니 빛같이 살아야 합니다. 소금같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그 어떤 사람 보다 더 아름답고, 인정받고, 하나님께 합당히 여김을 받는 온전한 사람되게 하려고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책망으로 목회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 르고 원망하고 불만을 품고 교역자를 근심하게 하는 철없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천국의 시민이 된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날마다 자 신의 행실을 돌아보아 천국 시민의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때로는 책 망을 받고, 교육을 받는 일을 은혜로 받아서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 가는, 아름다운 성도! 건강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I. 모성적인 목회. 살전2:7입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 녀를 기름같이 하였으니"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목회 할 때에 유모와 같은 심정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유모"라는 말은 삯을 받 고 젖을 먹이는 그런 유모를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영아의 어머니를 가르칩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친자식을 양육하기 위하여 온갖 관심과 심혈을 다 기울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인간의 사랑 중에 가장 감동적인 사랑을 예로 들었습니다. 자기 자녀를 품에 안고 기르는 어머 니처럼 바울 사도는 그의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같이 유순하게 대하였습니다. 갈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 연약한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모성애적인 관심을 잘 말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역자와 성도는 부모와 자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아버지로 성경은 표현하는 것입니다. 고후6:13에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딤전1:2에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딛1:4에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나니 하나님 아버 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몬1:10에도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요삼1:4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바울은 영의 아버지로써! 그리고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인 자녀로 생각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목회 하였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제일 뜨거울 때는 어린아이를 안고 젖을 먹일 때라고 합니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젖을 통해 육체가 살이 찌고 눈과 눈 이 마주치는 순간 정서가 살이 찐다고 합니다. 교역자는 젖을 내서 먹이는 어머니요, 교인들은 영적 어머니가 되는 교역자 의 영의 젖을 받아먹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바로 발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젖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벧전2:2을 봅니다. "갓난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 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신앙이 성장되기 위해서 갓난아이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기 위함 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신앙 인격은 이 신령한 젖을 잘 먹는 대로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역자는 젖을 내어 먹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가정 주부가 식구들을 위하여 요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부가 이제 장을 보러 갑니다. 가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면 그 무거운 것을 이 손에 들었다, 저 손에 들었다 하면서 집에 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 풀어놓고 지질 것은 지지고, 볶을 것은 볶고, 무칠 것은 무치고, 끌일 것은 끌이고 해 서 상을 차려 들여갑니다. 그러면 그것을 온 식구가 즐겁게 먹습니다. 또 그 냥이나 먹습니까! 질기다느니! 간이 안 맞는다느니, 싱겁다느니 하면서 다 먹 습니다. 애써 장만한 사람 먹어 보라 소리도 없이 말입니다. 그래도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 것을 보면 그저 즐겁고 힘든 줄을 모릅니다. 목회자의 심정 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젖을 잘 내서 먹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건강해 야 합니다.
둘째는 과로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잘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 풍성한 젖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역자도 신 령한 젖을 내어 먹이려면
첫째는 심령이 건강해야 합니다.
둘째는 과로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히13:17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 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 교회의 건강을 위하여! 여러분의 건강한 영혼을 위하여 이 말씀을 기억 해야 할 것입니다.
Ⅱ. 교인들을 사모하였다고 했습니다. 8a절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낳 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처럼! 성도들을 순전하게 사랑하였다고 했습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붙들어 두고 싶고, 무엇이나 주고 싶고, 도와주 고 싶고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양육했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우리 온 교우들이 서로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만나고 싶 고, 만나면 헤어지기가 아쉽고, 헤어지면 다시 만날 때가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Ⅲ. 복음을 줄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려고 하였습니다. 8b절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 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은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즐겨 주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목회 하였다고 했습니다. 목숨까지 주려고 했다는 것은 전제를! 전 인생을 다 주 었다는 것입니다. 양들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후11:23-29을 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 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맡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 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 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 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에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 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 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그는 고난의 용사였습니다. 그의 앞에는 영광보다는 욕이 기다리고 있었고, 평안보다는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일생에 한번 있을 까 말까한 일들을 바울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 하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고난이 바울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위한 염려 때문이었 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해하여 하지 않더냐!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바울의 모든 생각이 성도 들에게 있고, 교회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이요, 주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주의 것! 주의 양이 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히 기억할 것은 바울 사도가 이렇게 보고싶고 목숨까지 주고싶은 심정으로 목회할수 있었던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교우들은 목회 자를 사모하고 귀히 여길 줄 아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Ⅳ. 부성적인 목회를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유순하고 아버지는 엄격하 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 대하여 어머니의 사랑은 뜨겁고 아버지의 사랑은 차갑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집에 외아들 이 병을 앓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 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립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아버지는 말없이 물끄 러미 쳐다만 보고 있는데 그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눈에서는 뻘건 핏방울이 떨어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깊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살펴 볼 본문은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유 념해야 할 사항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성적인 목회! 아버지의 심정으로 가 정의 자녀들을 이끌어 양육하려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0절입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아버지의 태도는 거룩한 태도, 옳은 태도, 흠 없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태도라고 하는 것은 "죄에서 분리된 성별 된 자세"를 말합니다. 마치 요셉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경건한 사람이요, 성결한 삶입니다. 그리고 옳은 태도라고 하는 것은 "정직하고 진실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앞에서 옳은 생활! 인정받는 생활을 말합니다. 이 런 것이 아버지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흠이 없는 태도입니다. 이 말은 "책잡힐 것이나 책망 받는 일이 없는 자세"를 말합니다. 사실은 이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보면 이 시 대의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영성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거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이 거울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부족을 느 낍니다. 허물이 많고, 흠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필요 한 종입니다. 이것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사도 바울을 온갖 말로 험담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을 여러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심지어는 "네가 사도냐!"라고까지 심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의 관계요, 나의 양심의 문제입니다. 늘 성결된 자세와 바른 삶과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성적인 목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11절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녀에게 하 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권면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무지할 때에 불러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불의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권면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딤후 3:16,17절 말씀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말씀을 가지고 권면합니다. 교훈 합니다. 책망합니다. 교육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올바른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권면하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딤전1:10, 딤후4:2, 딛1:9, 2:1)
둘째는 위로하는 일입니다. 위로한다는 말은 "용기를 북돋는다, 낙망되고 상심된 자를 위로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자녀가 연약하였을 때에! 상심하였을 때에 부드러운 말로 격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위로를 통해서 마음에 결심한 바를 기쁘게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경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두렵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게으르거나, 인색하거나, 방종하거나, 덕이 되지 못하는 자들을 엄히 훈계하고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계를 통 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의 뜻을 받들어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성적인 목회의 필요성입니다. 그 이유를 12절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합 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이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어떠한 행위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연약하고 허물 많은 나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감격이요, 감사 제목입니다. 왜 그 렇게 하셨습니까!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려고!"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러면 그것을 끝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할 의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빛이 되게 하셨으니 빛같이 살아야 합니다. 소금같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그 어떤 사람 보다 더 아름답고, 인정받고, 하나님께 합당히 여김을 받는 온전한 사람되게 하려고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책망으로 목회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 르고 원망하고 불만을 품고 교역자를 근심하게 하는 철없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천국의 시민이 된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날마다 자 신의 행실을 돌아보아 천국 시민의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때로는 책 망을 받고, 교육을 받는 일을 은혜로 받아서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 가는, 아름다운 성도! 건강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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