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에서 번영으로 가는 길 (시85:1-13)
본문
본시는 바벨론 포로 귀환을 배경으로 한 시로서, 스룹바벨 귀환시(스3-4장)나 에슬 또는 느헤미야의 귀환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3절은 포로애서 귀환케 해주심에 대한 감사, 4-7절은 거칠어진 이스라엘의 심령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 8-13절은 그 간구에 대한 응답 확신등으로 구성되 어 있다.
1. 항폐한 자리에서 회복하는 길은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잊지말고 감사하는 것이 다(1-3). 시인은 바벨론 포로에서 되돌아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순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였다
(1). 이스라엘이 힘이있고 능력이 있어서 바사 군대를 물리치고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 마음에 감동을 받은 바사 왕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이 귀환토록 칙령을 선언한 것이다(대하36:22, 스1:1-4).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저지런 죄악대로 다 보응하신다면 영원토록 그 노예 에서 해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그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사하시고….덮으셨으며
(2), 그 백성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며. 돌이켰습니다
(3). 그런즉 이스라엘은 무엇보다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했다. 이같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 어떤 처지 가운데서도 불평과 원망 대신에 감사의 찬송이 저절로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2.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 회복하는 지름길이다(4-7). 비록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였지만, 시인은 이제부터 첩첩 산중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국 땅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고, 백성들의 심령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시인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고자 동분서주하지 않았다. 군사적인 보강에 서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이 민족과 이 땅위에 남아있는 모든 진노를 완전히 돌이키고.그치기를 간구했다
(4). 그리고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였다
(7). 주의 백성을 다시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6). 곧 시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로 부터 임하는 도움과 인자를 무엇보다 갈망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가장 나약한 방법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개인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3. 망령된 데서 돌이켜 이제는 주의 종적(발자취)으로 길을 삼는 것이 회복하는 것이다(8-13). 이스라엘이 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좇겨나 머나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겠는가 이 부분에 대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이스라엘은 냉철하게 돌이 켜보아야 하였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이 망령된 일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8). 여기서 망령 된 일이란 비게 덩어리 라는 뜻에서 비롯된 말로서 둔하고 멍청하여 말귀를 못알 아 듣고 제고집대로 행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말귀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해 거듭거둡 훈계하고 경고했는데도 이스라엘 은 목을 뻣뻣이 세운채 고집대로만 행했다. 결국 어리석음이 이스라엘을 황폐의 길로 끌어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다시 망령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8). 망령된 데서 돌이켜 야 한다. 돌이켜 이제는 하나님의 종적을 좇아야 한다(13). 곧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일러주신 말씀의 도를 좇아 살아야 한다. 그 도는 곧 의의 길로 인도된다. 시인은 기도하는 중에 믿음으로 그 땅에 임할 회복과 번영의 그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를 만나(10) 온전히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주의 종적을 따라 살아갈 때에 그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의, 곧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에게 임하고 그 결과 그 백성의 심령 속에서는 화평이 솟아나는 것이다(10). 이때 비로소 피폐해 심령의 밭에 희락의 꽃이 활짝피고, 황폐해진 토지에 기쁨의 산물이 주렁주렁 맺힐 것이다(12). 영육간에 진정한 회복과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망령된 데(어리석 음)에서 떠나 주의 종적(발자취)를 따라갔을 때 성취되는 것이다.
<결론>
구원받은 백성은 얼마든지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 그러나, 불신으로 치달으면 노예와 포로된 생활로 비참해질 수 밖에 없다. 원수 마귀는 지금도 우리가 그 밥이 되도록 미혹하고 공격하고 있다. 오직 주의 은혜를 바라보 고, 구원과 복음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의 은혜를 거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면 놀라운 번영과 승리가 올 것이다.
1. 항폐한 자리에서 회복하는 길은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잊지말고 감사하는 것이 다(1-3). 시인은 바벨론 포로에서 되돌아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순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였다
(1). 이스라엘이 힘이있고 능력이 있어서 바사 군대를 물리치고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 마음에 감동을 받은 바사 왕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이 귀환토록 칙령을 선언한 것이다(대하36:22, 스1:1-4).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저지런 죄악대로 다 보응하신다면 영원토록 그 노예 에서 해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그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사하시고….덮으셨으며
(2), 그 백성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며. 돌이켰습니다
(3). 그런즉 이스라엘은 무엇보다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했다. 이같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 어떤 처지 가운데서도 불평과 원망 대신에 감사의 찬송이 저절로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2.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 회복하는 지름길이다(4-7). 비록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였지만, 시인은 이제부터 첩첩 산중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국 땅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고, 백성들의 심령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시인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고자 동분서주하지 않았다. 군사적인 보강에 서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이 민족과 이 땅위에 남아있는 모든 진노를 완전히 돌이키고.그치기를 간구했다
(4). 그리고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였다
(7). 주의 백성을 다시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6). 곧 시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로 부터 임하는 도움과 인자를 무엇보다 갈망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가장 나약한 방법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개인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3. 망령된 데서 돌이켜 이제는 주의 종적(발자취)으로 길을 삼는 것이 회복하는 것이다(8-13). 이스라엘이 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좇겨나 머나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겠는가 이 부분에 대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이스라엘은 냉철하게 돌이 켜보아야 하였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이 망령된 일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8). 여기서 망령 된 일이란 비게 덩어리 라는 뜻에서 비롯된 말로서 둔하고 멍청하여 말귀를 못알 아 듣고 제고집대로 행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말귀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해 거듭거둡 훈계하고 경고했는데도 이스라엘 은 목을 뻣뻣이 세운채 고집대로만 행했다. 결국 어리석음이 이스라엘을 황폐의 길로 끌어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다시 망령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8). 망령된 데서 돌이켜 야 한다. 돌이켜 이제는 하나님의 종적을 좇아야 한다(13). 곧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일러주신 말씀의 도를 좇아 살아야 한다. 그 도는 곧 의의 길로 인도된다. 시인은 기도하는 중에 믿음으로 그 땅에 임할 회복과 번영의 그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를 만나(10) 온전히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주의 종적을 따라 살아갈 때에 그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의, 곧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에게 임하고 그 결과 그 백성의 심령 속에서는 화평이 솟아나는 것이다(10). 이때 비로소 피폐해 심령의 밭에 희락의 꽃이 활짝피고, 황폐해진 토지에 기쁨의 산물이 주렁주렁 맺힐 것이다(12). 영육간에 진정한 회복과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망령된 데(어리석 음)에서 떠나 주의 종적(발자취)를 따라갔을 때 성취되는 것이다.
<결론>
구원받은 백성은 얼마든지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 그러나, 불신으로 치달으면 노예와 포로된 생활로 비참해질 수 밖에 없다. 원수 마귀는 지금도 우리가 그 밥이 되도록 미혹하고 공격하고 있다. 오직 주의 은혜를 바라보 고, 구원과 복음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의 은혜를 거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면 놀라운 번영과 승리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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