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게 가까이 (시73:22-28)
본문
본문 28절을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한 구절 속 에서 시인의 신앙과 그가 생각하고 있는 행복의 가치기준을 찾게 됩니다.
1. 시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입니다(21) 마음이 산란하다는 것은 집중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 이전의 인간은 단순한 사고와 삶 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부 가 서로 사랑하고 주신 세상 을 선하게 관리하떠 자연과 벗하는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그들의 삶은 변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 하고 전가하는 술수 를 써야했고 인간관계는 증오의 관계로 변모해 버 렸습니다. 편안했던 마음은 착란 증세를 일으킬만큼 복잡해졌고 안정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조사 연구기관에서 공장 소음 지역의 아이들과 안정된 주 거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장과 정서에 관한 조사를 한 일이 있 었습니다. 소음이 심한 공장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정서가 안정되어 있지 않고 놀이가 산민했습니다. 그리고 생활태도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이더라는 것입니다. 주거지역의 아이들은 정서나 놀이는 안정이 되어 있었지만. 반면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활환경은 정신환경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더 증요한 것은 정신환경이 생활 환경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정신 구조는 영적 건강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영 흔이 산란하면 정신이 산갈해지고 정신이 흔들리면 생활도 혼들 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산갈해질 때 재빨리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야 되겠다는 결단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산갈한 사람, 복잡한 사람. 잡념과 상념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 은 빨리 하나님께로 다가서야 합니다. 그래야 제 정신을 찾고 바른 삶을 회복하게 되는 것 입니다. 들째는 짐숭처럼 우매무지한 존재이기 바문입니다. 22절을 보면 '내가 이 같이 우매무지 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을 우매무지한 짐승 으로 하향평가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하고 짐승같은 인간이라는 혹평 속에는 그럴만한 이 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지혜로우면서 가장 미련한 존재 가장 우수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존재 가장 강하면서 가장 허약한 존재 그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지진이 나기 전 산짐승과 들짐승들은 떼를 지어 피신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자다가 술마시다가 드라이브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제주도 한라산 증턱에는 방목하는 소떼들이 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그 소떼들이 머리가 한라산 정상쪽을 향해 풀을 뜯 고 있으면 날씨가 고 산 아래 쪽을 향해 풀을 뜯고 있으면 비가 온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라산 기슭을 새들이 낮게 날면 비가 오 고 높이 날면 날씨가 좋다는 것입니다. 기상대가 한라산의 소 머리를 보고 일기예보를 한다면 틀림이 없을텐데, 자존심 때문에 못하는 모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지식도 별것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22장을 보면 발람 선지자가 돈에 팔려 모압을 축복하기 위해 길을 가 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타고 가던 나귀가 길가 밭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화가 난 발람이 나귀를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밭에서 나온 나귀가 길가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꼼짝 을 하지 않습니다. 화가 더욱 치민 발람이 다시 채찍질을 했습니다. 그 러자 나귀가 땅바닥 에 풀썩 엎드렸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발 람이 지이로 나귀를 후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기상천외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나귀가 입을 열더니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기에 나를 세번씩이나 때리느냐' 놀라운 것은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 았고 발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짐숭은 하나님을 보았고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짐승만도 못한 것이 아닙니까 시인의 고백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는 '우매무지하니 주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탈 윤리, 탈 가치, 탈 도덕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인간이 과 연 짐승보다 나을게 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토록 인간이 본성을 잃고 짐승처럼 전락하게 됐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크고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복증에 있는 생명은 모태와 연결된 생명체입니다. 모태를 떠나면 살지 못합니다. 마찬가 지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습니다 현대는 화려한 시체들의 행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잘 입고 잘 꾸 미고 잘 먹고 살지만 하나님 떠난 삶은 시체들의 무도회인 것입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대저 주를 멀리 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주를 떠 납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들째 간섭받고 싶지 않아서입니다.셋째 현재의 죄악된 삶에서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넷째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이 얼마나 은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다.
2.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하기를 힘쓰는 시인의 열망과 고백을 들어 보십시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23)" '하늘에서도 주, 땅에서도 주(25)" `'하나님께 가까이(28) . 시인은 시간적으로는 항상, 공간적으로는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 고 싶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영국행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 작하더니 이어 기내 방송으로 기류관계라며 안전 벨트를 매라는 것입니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방정스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이 비행 기가 기상 악조건에 굴복한 채 영국도 못가고 서울도 못가게 된다면 . 나도 끝장이 나=K구나라고.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지막 기도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순서상 기도를 하려면 성경을 한 절 읽어야 =R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 디를 읽을 까를 생각하다가 시편을 읽기로 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그 때 펴진 굿이 74편이었습니다. 1절을 읽어 내려가다가 깜짝놀랐 습니다. 그리고 이젠 끝장이구나라고 절망해 버렸습니다. 비행기는 더 세차게 금방 추락할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 습니다. 시편 74편 1절은 이떻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 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셨나이까',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비행기 를 추락시키시고 나를 버리시겠다는 장송곡처럼 제게로 다가왔습 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이 생각났습니다. 집에서 기다릴 어떤 여자(아내) 얼굴도 떠올랐고 층신교회도 떠올랐 고 아이들 얼굴도 어른 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죽더라도 한 절 더 읽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73 편 끝부분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제 눈동자가 커 졌습니다. 말씀들이 제게로 다가섰습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늘에서도 주, 땅에서도 주" '하나님께 가까이'라는 말씀들이 저에게 웅변을 토하듯 다가섰습니다. 저는 재빨리 빨간 연필을 꺼내 줄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동그란 원을 힘있게 그렸습니다. '하늘에서도 주. 땅에서도 주'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평화와 용기 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비 행기의 요동은 30분 지난 후 멈췄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장면이 부끄럽고 창피하고 그리고 감사로 떠오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3. 왜 복이 되는가를 생각해 봄시다. 첫째 내 오른손을 들어 주심니다. 23절을 보면 '내가 항상 주와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 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른손과 오른손의 만남은 꾀해. 교제, 약속, 보장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오른손을 내밀어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지키시고 보장 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왼손잡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왼손잡이에게는 왼손을 내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째 나를 영접해 주십니다. 24절을 보면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 를 영접하시리니'라 고 했습니다. 오른손으로 나를 드시고 인도하시고 나를 영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광으로 영접하신다는 것은 푸대접이 아니라 영스럽게 환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매하고 무지하고 짐승이나 다름없는 나를 영광으로 영접해 주신 다니 감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영원한 분깃이 되십니다. 26절을 보면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했습니다. 분깃이란 몫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몫이라는 이 고백은 엄청난 사컨 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 일하고 받는 돈을 일 당이라고 합니다. 한 달 일하고 받는 보수는 월급입니다. 한 주간의 노동 댓가는 주급입니다. 그리고 일년 동안 일하고 받는 보수를 연봉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영원한 분깃이 되어 주신다는 것 입니다. 월급이나 연봉으로 먹고 입고 배우고 치료하고 저축하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영원히 먹고 입고 배우고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이토록 엄청난 약속과 측복이 있음에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등돌리 고 산다면 그야말로 우매하고 무지하고 무식하고 짐승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좀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밀착하는 신앙, 그래서 하나님이 내미 시는 오른손을 붙잡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아멘.
1. 시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입니다(21) 마음이 산란하다는 것은 집중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 이전의 인간은 단순한 사고와 삶 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부 가 서로 사랑하고 주신 세상 을 선하게 관리하떠 자연과 벗하는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그들의 삶은 변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 하고 전가하는 술수 를 써야했고 인간관계는 증오의 관계로 변모해 버 렸습니다. 편안했던 마음은 착란 증세를 일으킬만큼 복잡해졌고 안정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조사 연구기관에서 공장 소음 지역의 아이들과 안정된 주 거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장과 정서에 관한 조사를 한 일이 있 었습니다. 소음이 심한 공장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정서가 안정되어 있지 않고 놀이가 산민했습니다. 그리고 생활태도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이더라는 것입니다. 주거지역의 아이들은 정서나 놀이는 안정이 되어 있었지만. 반면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활환경은 정신환경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더 증요한 것은 정신환경이 생활 환경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정신 구조는 영적 건강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영 흔이 산란하면 정신이 산갈해지고 정신이 흔들리면 생활도 혼들 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산갈해질 때 재빨리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야 되겠다는 결단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산갈한 사람, 복잡한 사람. 잡념과 상념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 은 빨리 하나님께로 다가서야 합니다. 그래야 제 정신을 찾고 바른 삶을 회복하게 되는 것 입니다. 들째는 짐숭처럼 우매무지한 존재이기 바문입니다. 22절을 보면 '내가 이 같이 우매무지 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을 우매무지한 짐승 으로 하향평가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하고 짐승같은 인간이라는 혹평 속에는 그럴만한 이 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지혜로우면서 가장 미련한 존재 가장 우수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존재 가장 강하면서 가장 허약한 존재 그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지진이 나기 전 산짐승과 들짐승들은 떼를 지어 피신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자다가 술마시다가 드라이브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제주도 한라산 증턱에는 방목하는 소떼들이 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그 소떼들이 머리가 한라산 정상쪽을 향해 풀을 뜯 고 있으면 날씨가 고 산 아래 쪽을 향해 풀을 뜯고 있으면 비가 온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라산 기슭을 새들이 낮게 날면 비가 오 고 높이 날면 날씨가 좋다는 것입니다. 기상대가 한라산의 소 머리를 보고 일기예보를 한다면 틀림이 없을텐데, 자존심 때문에 못하는 모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지식도 별것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22장을 보면 발람 선지자가 돈에 팔려 모압을 축복하기 위해 길을 가 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타고 가던 나귀가 길가 밭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화가 난 발람이 나귀를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밭에서 나온 나귀가 길가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꼼짝 을 하지 않습니다. 화가 더욱 치민 발람이 다시 채찍질을 했습니다. 그 러자 나귀가 땅바닥 에 풀썩 엎드렸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발 람이 지이로 나귀를 후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기상천외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나귀가 입을 열더니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기에 나를 세번씩이나 때리느냐' 놀라운 것은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 았고 발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짐숭은 하나님을 보았고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짐승만도 못한 것이 아닙니까 시인의 고백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는 '우매무지하니 주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탈 윤리, 탈 가치, 탈 도덕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인간이 과 연 짐승보다 나을게 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토록 인간이 본성을 잃고 짐승처럼 전락하게 됐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크고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복증에 있는 생명은 모태와 연결된 생명체입니다. 모태를 떠나면 살지 못합니다. 마찬가 지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습니다 현대는 화려한 시체들의 행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잘 입고 잘 꾸 미고 잘 먹고 살지만 하나님 떠난 삶은 시체들의 무도회인 것입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대저 주를 멀리 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주를 떠 납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들째 간섭받고 싶지 않아서입니다.셋째 현재의 죄악된 삶에서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넷째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이 얼마나 은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다.
2.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하기를 힘쓰는 시인의 열망과 고백을 들어 보십시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23)" '하늘에서도 주, 땅에서도 주(25)" `'하나님께 가까이(28) . 시인은 시간적으로는 항상, 공간적으로는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 고 싶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영국행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 작하더니 이어 기내 방송으로 기류관계라며 안전 벨트를 매라는 것입니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방정스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이 비행 기가 기상 악조건에 굴복한 채 영국도 못가고 서울도 못가게 된다면 . 나도 끝장이 나=K구나라고.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지막 기도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순서상 기도를 하려면 성경을 한 절 읽어야 =R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 디를 읽을 까를 생각하다가 시편을 읽기로 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그 때 펴진 굿이 74편이었습니다. 1절을 읽어 내려가다가 깜짝놀랐 습니다. 그리고 이젠 끝장이구나라고 절망해 버렸습니다. 비행기는 더 세차게 금방 추락할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 습니다. 시편 74편 1절은 이떻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 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셨나이까',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비행기 를 추락시키시고 나를 버리시겠다는 장송곡처럼 제게로 다가왔습 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이 생각났습니다. 집에서 기다릴 어떤 여자(아내) 얼굴도 떠올랐고 층신교회도 떠올랐 고 아이들 얼굴도 어른 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죽더라도 한 절 더 읽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73 편 끝부분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제 눈동자가 커 졌습니다. 말씀들이 제게로 다가섰습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늘에서도 주, 땅에서도 주" '하나님께 가까이'라는 말씀들이 저에게 웅변을 토하듯 다가섰습니다. 저는 재빨리 빨간 연필을 꺼내 줄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동그란 원을 힘있게 그렸습니다. '하늘에서도 주. 땅에서도 주'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평화와 용기 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비 행기의 요동은 30분 지난 후 멈췄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장면이 부끄럽고 창피하고 그리고 감사로 떠오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3. 왜 복이 되는가를 생각해 봄시다. 첫째 내 오른손을 들어 주심니다. 23절을 보면 '내가 항상 주와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 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른손과 오른손의 만남은 꾀해. 교제, 약속, 보장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오른손을 내밀어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지키시고 보장 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왼손잡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왼손잡이에게는 왼손을 내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째 나를 영접해 주십니다. 24절을 보면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 를 영접하시리니'라 고 했습니다. 오른손으로 나를 드시고 인도하시고 나를 영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광으로 영접하신다는 것은 푸대접이 아니라 영스럽게 환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매하고 무지하고 짐승이나 다름없는 나를 영광으로 영접해 주신 다니 감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영원한 분깃이 되십니다. 26절을 보면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했습니다. 분깃이란 몫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몫이라는 이 고백은 엄청난 사컨 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 일하고 받는 돈을 일 당이라고 합니다. 한 달 일하고 받는 보수는 월급입니다. 한 주간의 노동 댓가는 주급입니다. 그리고 일년 동안 일하고 받는 보수를 연봉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영원한 분깃이 되어 주신다는 것 입니다. 월급이나 연봉으로 먹고 입고 배우고 치료하고 저축하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영원히 먹고 입고 배우고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이토록 엄청난 약속과 측복이 있음에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등돌리 고 산다면 그야말로 우매하고 무지하고 무식하고 짐승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좀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밀착하는 신앙, 그래서 하나님이 내미 시는 오른손을 붙잡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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