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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뻐하는 자 (시61:1-8)

본문

하나님을 나의 주인 나의 보호자 인도자로 여기는 살링은 어던 삶입니까
첫째로, 주의 장막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본문 4절에서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라고 했는데 여기서 장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장막은 한곳에 고정된 장막이 아니라 이동하는 장막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장막을 옮기는데 따라 내가 그 장막에 항상 거한다는 것입니다. 구름기둥 불기둥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어디서든지 주의 장막을 발견합니다. 어디서든지 그는 주님의 궁전에서 살아갑니다. 깊은 수렁에서도, 깊은 감옥에서도, 사자굴 속에서도, 극렬하게 타오르는 풀무불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궁전안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눕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84:1-4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 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 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기에서 사랑스럽다라는 말은 내가 주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는 삶을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혼까지도 그와같은 일을 사모하여 육신의 도모가 쇠퇴함고 있음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썼습니다. 죄의 소원을 품고 있는 육신은, 그것을 끊임없이 만족시키고자 원하는 마음은, 자신의 하나님의 장막을 사모하는 마음때문에 이미 쇠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님과 항상 동행하므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교제란 인격인 교통,만남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등록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결혼식 하고난 후 부터 더욱 힘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집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계속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알아가지 아니하면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불가능해 집니다.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우선 그분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제가 없이 상투적인 말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거짓일 뿐이지요. 여러분과 주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주님과의 관계가 여러분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지가 꽤나 오래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단지 의무를 행하는 것으로 변질 되지는 않았습니까 생동감 대신에 권태감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따분한 것이 되었고 세상에서의 삶이 훨씬 더 신이 납니다. 하나님과의 피상적인 관계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앗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무관심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슬프게도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에게 현실적인 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영적 피부가 너무 무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많이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매우 무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게서는 우리의 발걸음을 지도해 주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장막에 거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기뻐하는 삶입니다. 지금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냉냉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지금 겸손하게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왕들의 장막에서 방탕함으로 쾌락을 즐기며 사는 왕자들보다는 여호와의 전에서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자들을 여러분은 부러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최상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바로, 주님의 날개아래 피하는 것입니다. 암탉의 날개아래 숨은 병아리의 마음이 어떻하리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안전하고,얼마나 포근하고, 얼마나 따뜻하겠습니까 또한 그 병아리들이 누리고 있는 그 행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랑을 듬뿍담은 어미닭의 날개는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포근하겠습니까 마음에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날개아래 피하는 것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리엄.O.커싱이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느날 뜻하지 않는 불행한 사태를 만나게됩니다. 그분의 성대가 고장이 나고 만 것입니다. 도무지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목사의 삶은 불행합니다. 그분은 그러한 처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사라져 버린 성대의 소리는 나오질 않습니다. 결국 그분은 성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평생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절망하고 비통해 해야할 그분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깊고 따뜻하고 포근한 날개아래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 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못위로해 주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주 날개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길 가는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찬송가 478장)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품안에 안길 수 있음을 인하여 이렇게 고난중에서도 노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그러한 우리가 숨을 곳은 완벽한 평안으로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뜻깊은 시간에 여러분을 그곳으로 초대하시고자 하십니다. 불안과 염려와 근심이 많았던 삶이었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가슴을 애태우기도 삶이며. 뜻하지 않았던 고통과 문제가 우리를 괴롭힐 때는 속수무책으로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이기도했지만.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피난처로 올해는 우리를 주님께서 초대하십니다.
여러분이 그 날개아래 거하게 된다면 지난 한해동안의 불안전한 삶은 결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훼밍웨이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참으로 우수한 작품을 남겼였으나 그는 인생을 자기 기분대로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날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아 자살을 하여 세계 지성인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고백하기를 "나는 전지약이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을래야 전원이 없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운 공허가운데 살고 있다." 고 할만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결국 자기의 생명을 자기가 끊지아니하면 사는 의미조차 발견할 수 없는 젯더미위의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너무 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또한 그의 유년시절도 교회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날개 밑이었습니다. 그곳이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곳인지. 얼마나 많은 위로가 넘치는 곳인지 그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그곳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비참한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초대받은 복된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즐거워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포근한 날개 밑에 거하시므로 다시는 갈등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심적인 고통으로 방황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어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 날개 그늘아래 여러분 거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이 올해만큼은 평안하고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바로,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을 좋게 여기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라고 고백하는데 여기에서 '주셨다'라는 표현은 '좋아한다'라는 의미가 더 짙다고 봅니다. 즉, 주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기업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속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 입니다. 또한 그것을 받을 수 있는 훈련과정도 성도의 유업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하늘에서 받을 유업과 땅에서 받을 유업을 결코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 함께 귀중한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을 더 기쁘게 여겼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결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유업으로 그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도 성도의 유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상속재산의 목록 중에는 궁핍 가운데 받는 시험과, 여러가지 핍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유업은 바로 우리의 유업입니다. 그 유업은 장성한 분량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고난앞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배신을 당하여도 끄떡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막대한 손해가 다가와도 원망과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이 평안해지고 부요해져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해도,흥해도,사람이 핍박해도,가난해져도,질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화려한 모습으로 유혹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장성한 분량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업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동일한 유업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이 세상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방황하고 요동하지 않도록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특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행하는 일들이 형통하게 풀려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특권은 그리스도의 유업을 인하여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상황에 지는 사람은 유업을 누리는 특권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내 삶의 형편에 지는 사람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사람은 성도의 특권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을 좋게 여기며 감사하는 자가 성도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유업을 받은 자 다운 삶을 표현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업입니다. 예수님은 검소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업입니다. 예수님은 불의를 용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유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부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순종을 표현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유업입니다. 받은 유업을 표현하면서 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만물이 모두 자기 표현을 하도록 섭리하신 채 삼라만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소가 개 흉내를 내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또한 자기 표현은 세상의 이러한 이치와 다를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은 자기 표현에서 다른 피조물과 아주 다른 면모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의도적인 자기표현이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의 지위나 계층또는 자기가 속한 특정집단 등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표현하게 마련이지요. 예를 들면 국회의원같이 자기의 신분을 금배찌라는 것으로 나타내는 경우, 돈많은 사람이 고급 외제차로 자기 표현을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은 유업을 표현하고 살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분이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표현하면서 살아야하는데 성경은 그것을 일컬어 향기라고 말합니다.
고후2:14-16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 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 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바로 성도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 생활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내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치지 않는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혼연일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업을 받은자의 삶이요 바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이 되십시오 그리고 끊임없는 교제를 나누 십시오. 주님의 장막에 거하는 삶입니다. 삶의 어려움이 다가오면 세상으로 피하지 마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아래로 피하십시오. 그곳은 안전하고 평안하며 따뜻한 위로가 넘치는 곳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평안이 가득합니다. 주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유업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시오. 그것을 좋게 여기십시오
그렇다면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여러분의 살아가는 삶이 바로 이와 같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쾌락의 장막이 아닌 주님의 장막에 거하는 삶,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날개아래 피하는 삶, 원망과 불평을 일삼지 않고 주님이 주신 유업을 좋게 여기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이 되셔서 오늘 이렇게 우리에게 인생위에 멋진 삶의 그림을 그려 넣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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