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를 위하여 (시50:10-12)
본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라는 말씀이 내 생활 가운데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다. 예배와 찬송, 기도의 분위기에만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성경은 단지 "한권의 책"에 불과했고 그것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어려운 책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기 싫어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살았던 모습에서 방향을 돌이키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은 대학 1학년때에 한 학생 선교 단체에서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마치 국민학교 교과서 제목처럼, 도덕 적으로 바른 생활을 하는 삶이 가장 옳은 것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을 영 접한 후에도 생활에 뚜렸한 변화가 없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심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아무런 실체도 없었고, 그리스도인의 "능력"도 나타 날 수 없었다. 그 해 겨울 어느 수양회에 참석했었다. 수양회 동안 선포되는 메시지 가운데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 들을 사랑하셨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았을 뿐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당연히 사랑할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것이 아니라 하찮은 나,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 죄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 서 오는 감사와 하늘을 날을 것같은 기쁨이 내게 있었다.
바로 그분의 놀라운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나는 새사람이 되었던 것이었다. 누구에게 나 똑같은 영향을 주는 사건이 이제 비로소 나 개인에게 연결된 것임을 깨달으며 죄의 깊이만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되 었다. 그리고 나서 나의 생활 가운데 차츰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첫번째가 바로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었다(그것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 야 내가 말씀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전에도 QT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 하는 방법 등을 수없이 많이 듣고 배웠으며, 말씀을 나누는 것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QT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생활의 한 형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히 알게 된 후 나에게 말씀은 마치 연애편지 와 같은 것이어서,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언어 , 똑같은 내용이지만,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의미도 알지 못하겠지만 (전 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즐거운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생활 구석구석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당신의 섬세 하고, 날카롭고, 풍성한 편지를 매일매일 전해주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게을러지고, 형식적이 되어 갔다. "꼭 아 침에 안해도 되잖아,오늘은 피곤한데." 등 여러가지 이유들이 생기 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말씀을 떠나고 있으면서도, 늘 말씀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생활의 여러 부분이 빡빡해지고 훈련되지 않았고,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티끌이 들보만하게 보이고, 불평이 늘고, 판단과 인내하지 못함, 감정의 품위없는 표현, 용서하지 못함, 그러한 강퍅한 모습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상적인 생활로, 나는 나의 강퍅함의 이유를 사람들에게로 돌렸다.
어느날 나는 이 말씀을 대했다.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 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6:3-5). 주님께서 나에게, 경건의 모양만 있으며 능력이 없었던 것을 책망하시는 말씀 이었다. 처음 사랑을 깨달았을 때 말씀은 말할 수 없이 단, 꿀보다 더한 그것이었다. 그 말씀은 내 생각, 내 감정, 내 생활을 사로 잡았었다. 시 간이 지나면서 나의 QT는 형식적으로 어떤땐 노트를 채우기 위한 것으로 때론 나누기 위한 것으로, 습관적이 되가는 것이었다. QT가 형식적이거 나 타성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조가, 마치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처럼 생각해 빼먹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감정이 언제나 가장 좋은 "최선"의 상태에서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에 때 론 습관적이 될지라도, 그러한 과정을 훈련을 통해 인내하지 않는다면 결국 매일 아침의 QT가 내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말씀으로부터 게을러질 때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 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51:10-12) 라는 기도가 매일 아침 나의 마음을 붙들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4년째 학생선교단체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매일매일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주시지 않으신다면, 절대로 나는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으며 내 안에서 아무것도 나눌 것이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하 지 않은 훈련이란 단지 내게 있는 교만과, 긍휼치 못함, 모난 부분들이 절제되고 있을 뿐이며, 근본적으로 성숙치 못한 부분들을 다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는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려 쪼개기까지 하는" 말씀에 의 뢰해야 함을 너무나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하루의 호흡을 허락하시는 아침마다, 다시 하루를 시작하고 싶 지 않을만큼 지치고 피곤하고 실망하고 낙심된 채 잠들었던 내 모습이 신기하게도 치료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문제를 감사로 아뢸 수 있는 용기, 잊혀져 오랜 기억 속으로 숨어버린 죄 의 고백, 그리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지혜와 힘, 주님은 내게 꼭 필 요한 것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셔서 내가 구할 때, 나를 하루의 아름다 운 시간과 그 사랑스런 손길 안에서 인도하신다. 오늘은 캠퍼스 지도자 훈련이 시작되는 날이다. 디모데전서 1장을 묵상했다. "너를 충성되이 여겨 네게 직분을 맡겼으니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으로 오늘 하루를 지내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오늘 대해야 할 모든 동역자들과 학생들을 향해 다시 기대감을 가지며, 여기 나를 있게 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바로 그분의 놀라운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나는 새사람이 되었던 것이었다. 누구에게 나 똑같은 영향을 주는 사건이 이제 비로소 나 개인에게 연결된 것임을 깨달으며 죄의 깊이만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되 었다. 그리고 나서 나의 생활 가운데 차츰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첫번째가 바로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었다(그것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 야 내가 말씀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전에도 QT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 하는 방법 등을 수없이 많이 듣고 배웠으며, 말씀을 나누는 것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QT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생활의 한 형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히 알게 된 후 나에게 말씀은 마치 연애편지 와 같은 것이어서,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언어 , 똑같은 내용이지만,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의미도 알지 못하겠지만 (전 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즐거운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생활 구석구석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당신의 섬세 하고, 날카롭고, 풍성한 편지를 매일매일 전해주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게을러지고, 형식적이 되어 갔다. "꼭 아 침에 안해도 되잖아,오늘은 피곤한데." 등 여러가지 이유들이 생기 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말씀을 떠나고 있으면서도, 늘 말씀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생활의 여러 부분이 빡빡해지고 훈련되지 않았고,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티끌이 들보만하게 보이고, 불평이 늘고, 판단과 인내하지 못함, 감정의 품위없는 표현, 용서하지 못함, 그러한 강퍅한 모습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상적인 생활로, 나는 나의 강퍅함의 이유를 사람들에게로 돌렸다.
어느날 나는 이 말씀을 대했다.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 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6:3-5). 주님께서 나에게, 경건의 모양만 있으며 능력이 없었던 것을 책망하시는 말씀 이었다. 처음 사랑을 깨달았을 때 말씀은 말할 수 없이 단, 꿀보다 더한 그것이었다. 그 말씀은 내 생각, 내 감정, 내 생활을 사로 잡았었다. 시 간이 지나면서 나의 QT는 형식적으로 어떤땐 노트를 채우기 위한 것으로 때론 나누기 위한 것으로, 습관적이 되가는 것이었다. QT가 형식적이거 나 타성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조가, 마치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처럼 생각해 빼먹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감정이 언제나 가장 좋은 "최선"의 상태에서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에 때 론 습관적이 될지라도, 그러한 과정을 훈련을 통해 인내하지 않는다면 결국 매일 아침의 QT가 내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말씀으로부터 게을러질 때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 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51:10-12) 라는 기도가 매일 아침 나의 마음을 붙들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4년째 학생선교단체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매일매일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주시지 않으신다면, 절대로 나는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으며 내 안에서 아무것도 나눌 것이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하 지 않은 훈련이란 단지 내게 있는 교만과, 긍휼치 못함, 모난 부분들이 절제되고 있을 뿐이며, 근본적으로 성숙치 못한 부분들을 다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는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려 쪼개기까지 하는" 말씀에 의 뢰해야 함을 너무나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하루의 호흡을 허락하시는 아침마다, 다시 하루를 시작하고 싶 지 않을만큼 지치고 피곤하고 실망하고 낙심된 채 잠들었던 내 모습이 신기하게도 치료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문제를 감사로 아뢸 수 있는 용기, 잊혀져 오랜 기억 속으로 숨어버린 죄 의 고백, 그리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지혜와 힘, 주님은 내게 꼭 필 요한 것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셔서 내가 구할 때, 나를 하루의 아름다 운 시간과 그 사랑스런 손길 안에서 인도하신다. 오늘은 캠퍼스 지도자 훈련이 시작되는 날이다. 디모데전서 1장을 묵상했다. "너를 충성되이 여겨 네게 직분을 맡겼으니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으로 오늘 하루를 지내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오늘 대해야 할 모든 동역자들과 학생들을 향해 다시 기대감을 가지며, 여기 나를 있게 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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