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이토록 낙심하는가 (시43:1-5)
본문
우리는 원하지 않는 결과나 염려했던 일 들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을 때 쉽사리 곤혹스로운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그것도 번번히 그러한 일들이 다가왔을 때 마음은 참담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래서 아주 신경질적으로 될대로 되버려라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우기 더이상 활 동할 만한 힘이라고는 남아있지 않는 듯이 여겨지는 상황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의 시작과 끝 을 가늠할 수 없는 실망스러운 상황들이 활개를 치고 걷잡을 수 없는 가슴앓이에 지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남았는지 조차 생각할 기력을 빼앗겨 버린 듯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가야한다 고 끊임없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아무것도 우리를 위하여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생각 지점에서 서로를 곱추 일으키고 큰 숨을 들이쉬면서 또 걷게하는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 다 고 해도 그 끝을 시작의 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또 다른 소리가 우리의 심지를 붙잡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땅에 발을 딛고 서있고 아직 우리에게 숨기가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산자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들에 우리의 할 바를 다할 따름 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애초 씨를 뿌리며 땀흘리기로 작정했을 때, 호미질하며 손이 부르트거나 상처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호미가 부러지거나 쟁기가 못쓰게 되었다해도 땀흘리기를 그만두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홍수가 나서 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뒤에도 다시 씨를 뿌릴 생각을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단련된 손이 있는한 이를 그만두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허탈함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아직 산자의 몫으로 남아있는 일을 저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그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정이 있었던 만큼 안타 까움도 컸던 것이고,실망의 폭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일에 대한 가슴앓이가 남아있 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정의로운 사랑의 숨기 가 남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다시금 서로을 일 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이고, 시작의 용기를 낼 수 있는 근거 이기도 합니다. 아파하지 않는 무감각은 어떠한 시작도 불가능하 게 합니다. 통증을 느끼는 것,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숨기가 있기 때문 입니다. 문제는 감각하지 못하는 것이며, 더 이상 아파하지 않겠다는, 아픔을 느끼지 않겠다는 자기 최면 속에서 스스로에게 속는 일입니다. 무감각은 또다른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습니다. 그에 게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나 될대로 되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 이상 다른 생각은 자리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에게 아파하는 숨기 가 남아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 저러 한 현실적인 결과 그 자체가 우리를 송두리째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파하며 눈물을 흘릴찌라도, 이렇게 함께 아파하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는 사실 에서 오히려 힘을 얻습니다. 저 만치에 있을법한 일들에 대해 막연하게 앉아 쳐다보기만 하거나, 싹수없는 일에 대해 생각만하는 것 에 희망 이라거나 가능성 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사람에 있습니다. 더우 기 함께하는 사람들에 우리의 가능성이 담겨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 언제나 규정이나 제도 가 아니라 사람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역시 사람에 대해서 이고, 구체적인 사람이 고려되지 않는 어떠한 논리도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결과에 실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람을 잃은 것에 아파하고 통증을 느껴야 합니다. 코라자손 중 어느 익명의 시인이 기록한 시 한수를 우리는 읽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당한 고난과 고독 그리고 절망의 내용을 알지는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조롱당하며 비웃음을 사는 상황 속 에 놓여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인하여 그가 무기력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아마도 억울한 삶의 위기에 봉착한 듯이 보입니다. 외적인 상황은 최악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눈에 띄는 말 한조각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 찌하여 이토록 불안해 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리라! 스스로를 향한 경고투의 말 한자락, 이것은 스스로를 여미면서 눈물이나 흘리며 감정을 옷자락에 닦아내는 일을 그만둘 것을 자신에게 다짐 하듯 말합니다. 이러한 일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낙심하고 있는 이유를 다시한번 묻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 해 하는가 그는 곰곰히 생각하며 외적인 상황에 자신이 매몰되어 더욱 중요한 것들을 잃고 있음 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리라!는 고백에서 우리는 그가 절망스러운 상황 한복 판에서 더욱 커다란 꿈을 향해 눈을 뜨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욱 확신에 찬 태도로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추스리며 새로운 시작을 해야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우리의 뜻 한 바와 다를찌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있고 이렇게 함께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데 한 숨이나 내쉬며 어리석은 선택을 한탄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하여 물어야 합니다.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해 하는가 를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리라!는 고백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합시다. 지금은 산자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 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곱추 곱추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땅에 발을 딛고 서있고 아직 우리에게 숨기가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산자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들에 우리의 할 바를 다할 따름 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애초 씨를 뿌리며 땀흘리기로 작정했을 때, 호미질하며 손이 부르트거나 상처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호미가 부러지거나 쟁기가 못쓰게 되었다해도 땀흘리기를 그만두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홍수가 나서 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뒤에도 다시 씨를 뿌릴 생각을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단련된 손이 있는한 이를 그만두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허탈함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아직 산자의 몫으로 남아있는 일을 저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그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정이 있었던 만큼 안타 까움도 컸던 것이고,실망의 폭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일에 대한 가슴앓이가 남아있 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정의로운 사랑의 숨기 가 남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다시금 서로을 일 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이고, 시작의 용기를 낼 수 있는 근거 이기도 합니다. 아파하지 않는 무감각은 어떠한 시작도 불가능하 게 합니다. 통증을 느끼는 것,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숨기가 있기 때문 입니다. 문제는 감각하지 못하는 것이며, 더 이상 아파하지 않겠다는, 아픔을 느끼지 않겠다는 자기 최면 속에서 스스로에게 속는 일입니다. 무감각은 또다른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습니다. 그에 게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나 될대로 되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 이상 다른 생각은 자리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에게 아파하는 숨기 가 남아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 저러 한 현실적인 결과 그 자체가 우리를 송두리째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파하며 눈물을 흘릴찌라도, 이렇게 함께 아파하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는 사실 에서 오히려 힘을 얻습니다. 저 만치에 있을법한 일들에 대해 막연하게 앉아 쳐다보기만 하거나, 싹수없는 일에 대해 생각만하는 것 에 희망 이라거나 가능성 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사람에 있습니다. 더우 기 함께하는 사람들에 우리의 가능성이 담겨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 언제나 규정이나 제도 가 아니라 사람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역시 사람에 대해서 이고, 구체적인 사람이 고려되지 않는 어떠한 논리도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결과에 실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람을 잃은 것에 아파하고 통증을 느껴야 합니다. 코라자손 중 어느 익명의 시인이 기록한 시 한수를 우리는 읽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당한 고난과 고독 그리고 절망의 내용을 알지는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조롱당하며 비웃음을 사는 상황 속 에 놓여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인하여 그가 무기력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아마도 억울한 삶의 위기에 봉착한 듯이 보입니다. 외적인 상황은 최악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눈에 띄는 말 한조각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 찌하여 이토록 불안해 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리라! 스스로를 향한 경고투의 말 한자락, 이것은 스스로를 여미면서 눈물이나 흘리며 감정을 옷자락에 닦아내는 일을 그만둘 것을 자신에게 다짐 하듯 말합니다. 이러한 일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낙심하고 있는 이유를 다시한번 묻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 해 하는가 그는 곰곰히 생각하며 외적인 상황에 자신이 매몰되어 더욱 중요한 것들을 잃고 있음 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리라!는 고백에서 우리는 그가 절망스러운 상황 한복 판에서 더욱 커다란 꿈을 향해 눈을 뜨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욱 확신에 찬 태도로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추스리며 새로운 시작을 해야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우리의 뜻 한 바와 다를찌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있고 이렇게 함께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데 한 숨이나 내쉬며 어리석은 선택을 한탄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하여 물어야 합니다.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해 하는가 를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리라!는 고백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합시다. 지금은 산자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 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곱추 곱추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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