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 위협에서 해방 간구 (시44:1-26)
본문
본시는 저작 시기가 모호하나, 대략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 마카비 통치 (B.C166-160) 훨씬 이전 시대에 한 경건한 신앙인이 이방인으로 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패배하고 치욕을 당한 사실을 배경삼아 작시한 것으로 보인다. 1-8절까지는 옛 조상들이 가나안 정복이라는 벅찬 감격을 순간을 회고하고, 9-22 절 까지는 그와 대조적으로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고 있는 뼈저린 패배의 고통 과 자기의 순전함을 말한 시인의 고백이 소개된다. 23-26절까지는 절망의 심연에 있는 당신의 백성을 기어코 구원해내어 주십사고 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그 간구의 방법은
1. 과거의 구원을 회상했다(1-8)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과거에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지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열조의 하나님은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번성케 하시며 계속적인 행복과 축복을 주셨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수난과 고난의 역사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은 변함없이 따랐다. 현재 처한 상황과 환경과 여건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구원은 마땅히 나타났다.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의 특권이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를 주셨으니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를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확인해야 된다. 이 신분 자체가 모든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죄와 저주의 손길에서 해방되게 하신다. 사단의 모든 억압에서 당연히 벗어나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이다. 거저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이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감사치 못한다면 어리석은 신자이다.
2. 현재 고난을 호소했다(9-22) 과거의 구원과 그 축복을 회상하던 시인이 갑자기 돌변하여 마치 욥의 탄식과 같은 분위기로 하나님께 현재의 고난을 탄원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께 따지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고난 당함으로 무 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한다. 사실 이방인에게 수치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유익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을 가져다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더 나은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인 것이다. 단지 고통이 그냥 고통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다. 시련은 성숙을 위한 연단인 것이다. 그야말로 인본주의가 다 깨어지고 새로운 형상으로 빚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마음을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시키기 위 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 체질로 가는 지름길이다. 인간인지라, 현재의 고난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호소하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습니다만, 인내와 순종으로 새로운 형상으로 빚어져야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있고, 꿈이 있으면 요셉과 같이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하면서 이길 수 있다.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주를 앙망하고 찾는 심령을 하나님께서는 멸시치 않으신다. 반드시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으신다. 아브라함은 25년의 연단이 필요했고, 요셉은 20년의 연단이 필요했으며, 모세는 80년의 연단이 필요했다. 오늘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순간순간 말씀과 기도와 훈련 되어지는데, 본격적으 로 말씀을 적용하고 간절한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때때로 기가 막히는 웅덩이 속에도 넣으시며,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두시기도 하시며, 오해의 부담을 당하게 하신다. 이때 인본주의나 인간의 수단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기다리면 놀라운 증거를 주실 것이다.
3. 마래 구원을 확신하며 간구했다(23-26) 과거와 현재를 말한 시인은 마침내 미래의 하나님 구원에 대하여 노래한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속히 임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 외에는 이 절박한 상황을 해결해 주실 분이 없다는 사실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종종 사람은 절박한 위기 의식이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구원은 필연적이다. 그것이 구원자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오늘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것을 바로 깨닫는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더 큰 소원을 우리를 통하여 거침없이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릇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너무 추하고 시원챦다면 반드시 그릇을 망치로 부수고, 불소게 집어넣어 녹이고, 다시 깍아서 새롭게 사실 것이다. 문제는 날마다 코너로 몰려서 떠밀려 갈것이냐 기쁨으로 말씀이 주시는 축복과 은총을 만끽하며 찬송하며 힘을 얻으며 갈것이냐인 것이다. 경건히 살고자 하는 성도는 고난과 시련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고난 때문에 신앙 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지금 그러한 신자들이 너무 많다. 쉽게 천국에 들어가려고만 하고 있다. 상처투성이로 천국에 간신히 들어갈 것이냐 영육 간에 능력을 얻어서 영광의 면류 관과 별과같이 빛나는 열매를 가지고 천국에 입성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모든 시련과 시험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승리하시기를 바란다.
1. 과거의 구원을 회상했다(1-8)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과거에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지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열조의 하나님은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번성케 하시며 계속적인 행복과 축복을 주셨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수난과 고난의 역사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은 변함없이 따랐다. 현재 처한 상황과 환경과 여건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구원은 마땅히 나타났다.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의 특권이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를 주셨으니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를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확인해야 된다. 이 신분 자체가 모든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죄와 저주의 손길에서 해방되게 하신다. 사단의 모든 억압에서 당연히 벗어나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이다. 거저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이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감사치 못한다면 어리석은 신자이다.
2. 현재 고난을 호소했다(9-22) 과거의 구원과 그 축복을 회상하던 시인이 갑자기 돌변하여 마치 욥의 탄식과 같은 분위기로 하나님께 현재의 고난을 탄원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께 따지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고난 당함으로 무 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한다. 사실 이방인에게 수치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유익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을 가져다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더 나은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인 것이다. 단지 고통이 그냥 고통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다. 시련은 성숙을 위한 연단인 것이다. 그야말로 인본주의가 다 깨어지고 새로운 형상으로 빚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마음을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시키기 위 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 체질로 가는 지름길이다. 인간인지라, 현재의 고난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호소하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습니다만, 인내와 순종으로 새로운 형상으로 빚어져야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있고, 꿈이 있으면 요셉과 같이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하면서 이길 수 있다.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주를 앙망하고 찾는 심령을 하나님께서는 멸시치 않으신다. 반드시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으신다. 아브라함은 25년의 연단이 필요했고, 요셉은 20년의 연단이 필요했으며, 모세는 80년의 연단이 필요했다. 오늘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순간순간 말씀과 기도와 훈련 되어지는데, 본격적으 로 말씀을 적용하고 간절한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때때로 기가 막히는 웅덩이 속에도 넣으시며,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두시기도 하시며, 오해의 부담을 당하게 하신다. 이때 인본주의나 인간의 수단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기다리면 놀라운 증거를 주실 것이다.
3. 마래 구원을 확신하며 간구했다(23-26) 과거와 현재를 말한 시인은 마침내 미래의 하나님 구원에 대하여 노래한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속히 임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 외에는 이 절박한 상황을 해결해 주실 분이 없다는 사실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종종 사람은 절박한 위기 의식이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구원은 필연적이다. 그것이 구원자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오늘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것을 바로 깨닫는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더 큰 소원을 우리를 통하여 거침없이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릇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너무 추하고 시원챦다면 반드시 그릇을 망치로 부수고, 불소게 집어넣어 녹이고, 다시 깍아서 새롭게 사실 것이다. 문제는 날마다 코너로 몰려서 떠밀려 갈것이냐 기쁨으로 말씀이 주시는 축복과 은총을 만끽하며 찬송하며 힘을 얻으며 갈것이냐인 것이다. 경건히 살고자 하는 성도는 고난과 시련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고난 때문에 신앙 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지금 그러한 신자들이 너무 많다. 쉽게 천국에 들어가려고만 하고 있다. 상처투성이로 천국에 간신히 들어갈 것이냐 영육 간에 능력을 얻어서 영광의 면류 관과 별과같이 빛나는 열매를 가지고 천국에 입성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모든 시련과 시험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승리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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