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시46:1)
본문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고통을 겪어 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만일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 럼, 정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당하는 것을 왜 그대로 보고만 계시는가 "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을 품게 되 었습니다. 더구나 욥과 같이 의로운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을 지켜보게 되면, 고통의 이유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욥 은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재산과 가족과 건강을 잃어야 하는 고통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생기겠어 욥이 저렇게 고통 당하는 것은, 욥이 회개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야. 욥의 친 구들은, 욥의 고통이 욥이 저지른 어떤 잘못 때문에 주어진 형벌이라고 단 정지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의 인은 반드시 복을 받고 악인은 징계를 받는다"는 단순한 흑백논리를 철 저히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욥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의로운 사람이고자 했고, 또 의로운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도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주를 주관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왜 고난당했는 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욥의 경험은 우리가 고통 가운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고통 중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의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권자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 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과 질투 때문에, 애굽의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내야 했지만, 이것은 결국 요 셉이 애굽의 2인자가 되어, 훗날 어려운 시기에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기 반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요셉에게 일어난 일은 분명, 고통스럽고 나쁜 일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시기에 이 일은 미래의 선을 위해 예비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리들의 제한된 지혜로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묻기 보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의지하여,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고백이 우리의 삶에서 진실로 경험되기를 소망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 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도 주 를 의지하는 가운데, 고통 가운데 참으로 인내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 합니다. 새로운 마음, 곧 변화된 삶 롬 12장 세계적인 수치로 따지면, 한국 사람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크리스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매일 말씀 을 읽고 묵상하면서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매주 주 일을 지켜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이들 은 아마, 이전까지의 삶으로부터 크게 변화되지 못한, 미숙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미숙한 그리스도인,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 생명으 로 인해 삶이 변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향해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바라 시는 바가 아닙니다. 왜냐면 주님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영적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표시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12 장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 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와 순간 순간 교제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숙함에 이르기 원하는 우리들에게 로마서 12장 11절로 1 6절에 있는 바울 사도의 권면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 충실 히 따르기만 하면, 어느새 성숙한 그리스도인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가해 보십시오. 우리의 작은 변화가 결국 어떤 결과 를 가져오는지 아십니까 우리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함으로써, 우리가 속 한 세상의 한 귀퉁이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시면, 우리는 분명 변화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전보다 나은 사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가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바르게 행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하는 마음 사 59:17 "경건을 향한 추구(A Quest for Godliness)"라는 제목의 책에서, 신학자 팩 커(J.
I. Packer)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얼마나 주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했는 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팩커의 말에 따르면, "영국의 청교도들은 조금도 자만심없이 십자군 운동을 벌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에 의지했던 일군들"이었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칭찬이 돌아오는 것이 당연스러워 보이는 경우에도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다는 겁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있는 재능과 능력을 사용하시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원했던 이유는, 이루어진 일 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20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모양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옛날 청교도 들이 보여준 것과 똑같은 신실한 신앙 생활을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 유는, 우리의 신앙이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의 삶은, 다름아닌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본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그들이 도달한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로마 서 12장에 있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 말씀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어디 에, 무엇에 열심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로 인해 얻은 새 생명의 불씨를 조금 남긴 채 연기만 겨우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믿음의 불길이 그렇게 잦아들어서 결국 새까만 잿더 미로 변할 때까지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한번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십시오. 바울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피운 믿음의 불길을 꺼뜨리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님을 섬긴다면, 우리의 믿음은 다시 불꽃을 피우고 다른 이들에게 빛과 열기를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주님을 섬기는 일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교회 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일 을 택해서, 그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일을 통해 주님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구체적인 섬김의 행동은 우리 믿음의 불꽃을 새롭게 피우지만, 헌신과 섬김이 없는 믿음은 곧 남아 있는 믿음의 불씨마저 꺼뜨리는 일입니다. 오늘도 섬김의 불길이 만든 불 씨로 인해, 영적으로 성숙함에 이르는 힘을 얻으며 생활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재산과 가족과 건강을 잃어야 하는 고통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생기겠어 욥이 저렇게 고통 당하는 것은, 욥이 회개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야. 욥의 친 구들은, 욥의 고통이 욥이 저지른 어떤 잘못 때문에 주어진 형벌이라고 단 정지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의 인은 반드시 복을 받고 악인은 징계를 받는다"는 단순한 흑백논리를 철 저히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욥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의로운 사람이고자 했고, 또 의로운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도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주를 주관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왜 고난당했는 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욥의 경험은 우리가 고통 가운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고통 중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의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권자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 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과 질투 때문에, 애굽의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내야 했지만, 이것은 결국 요 셉이 애굽의 2인자가 되어, 훗날 어려운 시기에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기 반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요셉에게 일어난 일은 분명, 고통스럽고 나쁜 일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시기에 이 일은 미래의 선을 위해 예비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리들의 제한된 지혜로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묻기 보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의지하여,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고백이 우리의 삶에서 진실로 경험되기를 소망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 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도 주 를 의지하는 가운데, 고통 가운데 참으로 인내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 합니다. 새로운 마음, 곧 변화된 삶 롬 12장 세계적인 수치로 따지면, 한국 사람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크리스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매일 말씀 을 읽고 묵상하면서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매주 주 일을 지켜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이들 은 아마, 이전까지의 삶으로부터 크게 변화되지 못한, 미숙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미숙한 그리스도인,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 생명으 로 인해 삶이 변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향해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바라 시는 바가 아닙니다. 왜냐면 주님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영적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표시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12 장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 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와 순간 순간 교제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숙함에 이르기 원하는 우리들에게 로마서 12장 11절로 1 6절에 있는 바울 사도의 권면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 충실 히 따르기만 하면, 어느새 성숙한 그리스도인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가해 보십시오. 우리의 작은 변화가 결국 어떤 결과 를 가져오는지 아십니까 우리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함으로써, 우리가 속 한 세상의 한 귀퉁이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시면, 우리는 분명 변화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전보다 나은 사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가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바르게 행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하는 마음 사 59:17 "경건을 향한 추구(A Quest for Godliness)"라는 제목의 책에서, 신학자 팩 커(J.
I. Packer)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얼마나 주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했는 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팩커의 말에 따르면, "영국의 청교도들은 조금도 자만심없이 십자군 운동을 벌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에 의지했던 일군들"이었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칭찬이 돌아오는 것이 당연스러워 보이는 경우에도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다는 겁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있는 재능과 능력을 사용하시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원했던 이유는, 이루어진 일 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20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모양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옛날 청교도 들이 보여준 것과 똑같은 신실한 신앙 생활을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 유는, 우리의 신앙이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의 삶은, 다름아닌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본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그들이 도달한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로마 서 12장에 있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 말씀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어디 에, 무엇에 열심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로 인해 얻은 새 생명의 불씨를 조금 남긴 채 연기만 겨우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믿음의 불길이 그렇게 잦아들어서 결국 새까만 잿더 미로 변할 때까지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한번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십시오. 바울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피운 믿음의 불길을 꺼뜨리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님을 섬긴다면, 우리의 믿음은 다시 불꽃을 피우고 다른 이들에게 빛과 열기를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주님을 섬기는 일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교회 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일 을 택해서, 그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일을 통해 주님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구체적인 섬김의 행동은 우리 믿음의 불꽃을 새롭게 피우지만, 헌신과 섬김이 없는 믿음은 곧 남아 있는 믿음의 불씨마저 꺼뜨리는 일입니다. 오늘도 섬김의 불길이 만든 불 씨로 인해, 영적으로 성숙함에 이르는 힘을 얻으며 생활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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