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간증 (시34:1-22)
본문
다윗은 넘쳐나오는 감사의 분위기 속에서 일반성도들을 향한 감사의 간증교훈을 들려줍니다. 1-7은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감사의 서원과 그 체험적 이유를, 8-14은 성도들이 시인 자신 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고 경배할 것에 대한 직접적 권유,15-22은 악인과 의인사이의 날카롭게 대조되는 운명을 보여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간이 나면 때때로 하나님을 기억하고,기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생애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찬양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합니까 어린아이들은 별난것을 다 자랑하지만 그런것들이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어른이 되면 압니다. 우리집엔 너희집에 없는거 있다. 우리 아버지 수염이 하나도 없이 매끈매끈하다 아무런 자랑할 가치가 없는 것들을 자랑합니다. 하나님 앞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용모나 직함,문벌,건강,부,권력,지식등을 자랑하지만 이런 것들도 다 무익한 것입니다. 마치 어른들 앞에서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자랑하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진정한 자랑은 하나님 아버지 이십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곤고한 자가 여호와의 이름을 듣고 기뻐합니다. 그가 응답하시며,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십니다. 주를 앙망하는 자는 얼굴에 광채를 얻습니다. 우리가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는 것은 관계가 바르지 않을 때입니다.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해결을 미루면 우울합니다. 그러나 모든것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으면 하나님은 돌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마음에 구름이 걷혀 그 얼굴이 빛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일생을 통하여 고생과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숱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 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고합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미각적인 언어를 동원하여,구체적이고도 생생한 체험을 권유하는 것입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 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을 통하여 목자를 의뢰하는 양들의 풍족함을 이야기한 바 있는 다윗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의 풍족함을 강력하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백수의 왕인 젊은 사자는 마음만 먹으면 동물이 멸종하지 않는 한 쉽게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사자는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단서입니다. 젊은 사자가 주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귀절을 통하여 진리의 절대성과 불변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생각할 때 우리 성도들은 마음든든한 확신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교육의 원리를 말씀합니다. 시편34편은 알파벳노래의 하나로써 잠엄류의 지혜문학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고심하는 문제중의 하나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까입니다. 물질이 풍요하므로 빈곤이 겁나지 않고, 질병도 겁나지 않으며 부모와 선생과 고용주가 두렵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지, 자기욕망을 추구하면 되는 세상,규범도 모범도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고하고 철저하게 <여호와 경외함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다윗의 가르침은 신앙의 지혜요,영적인 지혜입니다. 교육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써,하나님을 제일로 하여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아이에게는 무엇하나 물려주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떤일이 일어나도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직한 자가 바보취급을 받고,엉터리 악당이 활개를 치고 사기꾼이 돈을 법니다. 정도를 벗어난 것 같이 보이는 인생 중에서도 불변의 원칙이 있습니다.그것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물이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 은혜,위로는 마음이 상한 영혼에게 뻗칩니다. 하나님은 잘난 사람이나 선행을 쌓은 자가 아니라 참으로 회개하는 자를 구원 하십니다. 인본주의적 종교는 해탈이나 수행을 가르치지만,인생은 모두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그 죄는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로만 원칙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악인의 번영은 신자들을 혼란으로 몰아 넣습니다. 교만한 자의 포악과 잔교의 처세술은 잠시 동안 이 세상에서 낙을 누리는 것 같지만 그들은 그 악 때문에 심판을 당할 것이며, 육체적 행복은 누릴지 모르나,영적 정신적 행복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살아 숨쉬되 실상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반면에 의인은 죄의 댓가를 받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 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 들어가고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귀절을 통하여 진리의 절대성과 불변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생각할 때 우리 성도들은 마음든든한 확신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교육의 원리를 말씀합니다. 시편34편은 알파벳노래의 하나로써 잠엄류의 지혜문학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고심하는 문제중의 하나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까입니다. 물질이 풍요하므로 빈곤이 겁나지 않고, 질병도 겁나지 않으며 부모와 선생과 고용주가 두렵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지, 자기욕망을 추구하면 되는 세상,규범도 모범도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고하고 철저하게 <여호와 경외함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다윗의 가르침은 신앙의 지혜요,영적인 지혜입니다. 교육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써,하나님을 제일로 하여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아이에게는 무엇하나 물려주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떤일이 일어나도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직한 자가 바보취급을 받고,엉터리 악당이 활개를 치고 사기꾼이 돈을 법니다. 정도를 벗어난 것 같이 보이는 인생 중에서도 불변의 원칙이 있습니다.그것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물이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 은혜,위로는 마음이 상한 영혼에게 뻗칩니다. 하나님은 잘난 사람이나 선행을 쌓은 자가 아니라 참으로 회개하는 자를 구원 하십니다. 인본주의적 종교는 해탈이나 수행을 가르치지만,인생은 모두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그 죄는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로만 원칙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악인의 번영은 신자들을 혼란으로 몰아 넣습니다. 교만한 자의 포악과 잔교의 처세술은 잠시 동안 이 세상에서 낙을 누리는 것 같지만 그들은 그 악 때문에 심판을 당할 것이며, 육체적 행복은 누릴지 모르나,영적 정신적 행복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살아 숨쉬되 실상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반면에 의인은 죄의 댓가를 받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 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 들어가고 부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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