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4편 (시24:1)
본문
인간들은 소유권 때문에 싸우지만,성경은 모든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소유권이 다 하나님께 있다. 다만 그 사용권, 관리권이 사람에게 맡겨져 있을 뿐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토지,재산,돈 ,건물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무서운 생각입니다. 이 모든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용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좋은 관리와 사용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보유기간이 불안정한 소작인입니다. 언제라도 계약해제를 당할 수 있는 사용인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권놀음을 비웃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땅을 충만하게 창조하셨고,땅에 거하는 피조물들의 필요를 채우면서도 여전히 땅을 충만하게 유지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소유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에게 진정한 소유와 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 해도,인생의 최후에 하나님께 심판받아 버림받고 영원의 암흑에 굴러 떨어진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반면에 이 땅에서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면,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하늘의 무거운 영광에 비하면 지상의 고통은 가벼운 근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손이 깨끗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권력을 빙자하여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지위를 이용하여 남을 억압하고, 그 손을 피로 더럽힌 자는 안됩니다. 마음에 청결한 자만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 성소앞에 설 수 있습니다.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고,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습니다. 3-6절은 예배자의 자세를 밀도있게 표현하는 말씀인데, 특히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7-10은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법궤가 비로소 성막에 들어가는 감격스런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마음문을 열고,마음속에 영광의 주님을 영접해서 기쁨으로 춤추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법이 들어 있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것이요, 세상 재리와 더러운 육욕이 들어 있으면, 그런 삶을 살다가 죽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그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면 늘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에 모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여전히 내 인생에 내가 주인이 되고,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그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지 아니한다면 아버지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양심은 떳떳하지 못하며,여호와의 성소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골청년이 의과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는 아주 큰 재벌에 속하는 사람의 딸과 결혼을 하고,가난한 가운데 갖은 고생을 하며 자기를 대학에 보내고 길러준 주름투성이 가 된 어머니를 신부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청년은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 할 수록,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느날 아내 에게 말했습니다. '시골에 나를 자기 아들같이 생각하고,사랑해 주던 유모가 있소. 어려서 부터 어머니라고 불렀는데, 가서 데리고 오면 안되겠소' 아내는 두말않고 응낙해서, 실은 시어머니인 노파를 식모 취급해서 지붕 밑 다락방을 쓰게하고,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자 그 의사는 지난날 보다 더 큰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모든 것을 아내에게 고백하고,둘이서 다락방으로 올라가 사죄하고 제일 큰 방에 모셨습니다. 그날 부터 참 평화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구석진 다락방에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실상이 하나님을 다락방에 모시는지 모릅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입니까 곧 여호와께서 영광의 왕이로다. 이것이 단순히 우리가 입으로 부르는 노래입니까 그리스도는 영광의 왕입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삶에 관해서도 소유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의 삶을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문을 열면 그분은 승리하시는 충만한 권세와 더불어 우리 마음에 들어와 좌정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도 만물을 주장하시고 섭리하시며, 친히 주인이 되시는 분을 우리 심령 가운데 모시며, 그분의 소유권을 인정하고,우리의 처지 를 자각하고 청결한 마음과 여호와를 찾는 귀한 심령으로 나의 마음에 주님을 좌정 시키시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용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좋은 관리와 사용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보유기간이 불안정한 소작인입니다. 언제라도 계약해제를 당할 수 있는 사용인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권놀음을 비웃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땅을 충만하게 창조하셨고,땅에 거하는 피조물들의 필요를 채우면서도 여전히 땅을 충만하게 유지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소유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에게 진정한 소유와 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 해도,인생의 최후에 하나님께 심판받아 버림받고 영원의 암흑에 굴러 떨어진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반면에 이 땅에서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면,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하늘의 무거운 영광에 비하면 지상의 고통은 가벼운 근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손이 깨끗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권력을 빙자하여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지위를 이용하여 남을 억압하고, 그 손을 피로 더럽힌 자는 안됩니다. 마음에 청결한 자만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 성소앞에 설 수 있습니다.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고,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습니다. 3-6절은 예배자의 자세를 밀도있게 표현하는 말씀인데, 특히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7-10은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법궤가 비로소 성막에 들어가는 감격스런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마음문을 열고,마음속에 영광의 주님을 영접해서 기쁨으로 춤추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법이 들어 있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것이요, 세상 재리와 더러운 육욕이 들어 있으면, 그런 삶을 살다가 죽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그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면 늘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에 모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여전히 내 인생에 내가 주인이 되고,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그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지 아니한다면 아버지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양심은 떳떳하지 못하며,여호와의 성소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골청년이 의과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는 아주 큰 재벌에 속하는 사람의 딸과 결혼을 하고,가난한 가운데 갖은 고생을 하며 자기를 대학에 보내고 길러준 주름투성이 가 된 어머니를 신부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청년은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 할 수록,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느날 아내 에게 말했습니다. '시골에 나를 자기 아들같이 생각하고,사랑해 주던 유모가 있소. 어려서 부터 어머니라고 불렀는데, 가서 데리고 오면 안되겠소' 아내는 두말않고 응낙해서, 실은 시어머니인 노파를 식모 취급해서 지붕 밑 다락방을 쓰게하고,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자 그 의사는 지난날 보다 더 큰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모든 것을 아내에게 고백하고,둘이서 다락방으로 올라가 사죄하고 제일 큰 방에 모셨습니다. 그날 부터 참 평화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구석진 다락방에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실상이 하나님을 다락방에 모시는지 모릅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입니까 곧 여호와께서 영광의 왕이로다. 이것이 단순히 우리가 입으로 부르는 노래입니까 그리스도는 영광의 왕입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삶에 관해서도 소유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의 삶을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문을 열면 그분은 승리하시는 충만한 권세와 더불어 우리 마음에 들어와 좌정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도 만물을 주장하시고 섭리하시며, 친히 주인이 되시는 분을 우리 심령 가운데 모시며, 그분의 소유권을 인정하고,우리의 처지 를 자각하고 청결한 마음과 여호와를 찾는 귀한 심령으로 나의 마음에 주님을 좌정 시키시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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