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만한 물가 (시23:1-6)
본문
시원한 나무 그늘이나 물가를 찾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휴가니 피서니 하는 구실로 산과 바다를 찾는 인파가 금년에도 천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문화생활의 변천과 함께 여가나 휴가를 즐기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웬만하면 집을 일단 떠나야 휴가나 피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만 그러나 막상 나서고 보면 갈만한 곳도 없는 것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한 마디로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유엔환경 프로그램(The U.N.Environmental Program)의 발표에 의하면 매년 2백억톤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산업폐수,쓰레기,매연,중금속 등이 마구 쏟아지면서 땅도 강도 산도 썩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차를 타고 시골 길을 가다가 길가에 맑은 냇물이 흐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이었기 때문에 더위도 식힐 겸 차를 멈추고 개울가로 내려섰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울에 이르렀을 때 멀리서 보던 그 개울이 아니었습니다. 군데군데 쓰레기며 인분이 널려 있었고 개울 속에도 더러운 것들이 잠겨 있었습니다. 멀리서 본 개울 물은 깨끗했지만 가까이서 본 개울 물은 더러웠습니다. 결국 발도 잠그지 못하고 그곳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쉴만한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인 다윗은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리시며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라 고 노래했습니다. 푸른 초장,쉴만한 물가는 어딥니까 인적이 닿지 않는 아프리카의 밀림입니까,아니면 남태평양의 어느 섬입니까 시편 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는 서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시인의 노래는 하나님이 나의 푸른 초장이시며 쉴만한 물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을 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내가 쉴만한 물가라는 것입니다. 음악의 악보를 보면 쉼표 라는게 있습니다. 쉼표의 모양을 따라 길게 쉬는 것도 있고 짧게 쉬는 것도 있습니다. 숨 안쉬고 계속 노래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운동경기도 반드시 게임중간에 휴식시간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중간중간에 휴게소가 있습니다. 인생행로에도 쉼표나 쉼터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쉴만한 물가며 푸른 초장이라고 밝혀줍니다. 우리는 본문속에서 참 쉼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1.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교통문화에 대한 욕망을 예로 들겠습니다. 오솔길이나 산골길을 100리 200리 걸어서 다닐 때 사람들의 욕망은 길이 넓게 뚫렸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길이 뚫렸습니다. 사람들은 욕망은 우마차나 인력거를 타고 다녔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력거나 우마차 시대가 되었습니다.그렇게되자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싶어했고 자전거가 변해 자동차,기차,비행기로 욕망이 변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콩코드가 개발되고 초음속기가 개발되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모든 면에서 끝이 없습니다. 끝없는 욕망이 계속되는한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장에서 나는 풍부나 비천에도 처할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족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시인 다윗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최고 권력을 장악한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저택인 왕궁에서 최상의 문화생활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는 돈도 많았고 보석도 많았습니다.후궁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만족의 원인을 그런것들 속에서 찾지 않고 나는 하나님 때문에 만족하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부족을 모른다 라고 고백한 까닭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윗이 누렸던 것들을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잠깐 동안 만족을 주는 조건들일 수는 있지만 영원한 만족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별 하나가 떨어지는 것은 1층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별 둘이 떨어지는 충격은 2층에서,별 셋은 3층에서,별 넷은 4층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 다고 합니다. 왜 대통령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장관들과 별들이 떨어집니까 세상 영광이나 만족은 영원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고백과 찬양시들을 썼습니다만 단 한번도 나는 왕이 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한다든지 나는 돈이 많은 것을 만족한다든 지 부동산이 많은 것을 만족하게 생각한다고 한 일이 없었습니다. 역대상 29장 11절 이하를 보면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주권도 주께 속한 것입니다.부와 귀도 주님이 주셨습니다. 권세와 능력도 주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얼마나 행복한 고백입니까 만족과 마음과 믿음을 지녀야 감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찬송과 기도가 막히지 않습니다. 역대상 29장 14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나이다 라고.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원인도,과정도,결과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있다는 것입니다. 17년만의 고백입니다만,저는 1976년 5월 충신교회에 부임했습니다. 그때 제 기도는 충신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다른 교회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충신교회 목사로 보내셨습니다. 17년이 지난 오늘 충신교회 목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하고 바라는 목회자입니다만, 그 때는 그저 그렇고 그랬던 교회였습니다. 76년 5월 첫주간 목요일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새벽 4시 50분에 교회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날 새벽기도에 나온 사람은 네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사찰집사였던 박세근 집사님과 김정수 집사님 내외분이었습니다.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본당 2층은 건축을 못하고 아랫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주보를 보았더니 지난주일 장년 출석 150여명에 주일학교가 50여명이었습니다. 헌금은 18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달이 지났는데도 제 월급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제가 떠올리던 대중가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라는 노래였습니다. 그 때 제 심정은 내가 왜 이런 교회로 왔는가라는 원망과 후회가 짙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심정은 그때 충신교회로 안오고 딴 데로 갔더라면 큰일 날뻔했다는 감사가 날마다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넓고 높고 깊은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투정부리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고 믿음을 지키고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라는 신앙으로 자족하고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2.인도자가 있는 것입니다. 양들의 경우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오아시스나 샘이 곁에서 솟고 있더라도 그곳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없으면 꼴도 물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인은 본문 2절에서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여행 안내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훈련과 학습을 거친 다음 자격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행자 혼자서 지도책을 드려다보며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행 안내자의 안내를 받으면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 쉽게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힘으로 길을 찾고 지도를 보면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고독하고 힘든 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안내자가 든든하면 여행길이 편안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안내자 입니까 시편 121편을 보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신다 고 했습니다. 시편 139편을 보면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통촉하신다 고 했습니다. 시편 27편을 보면 주는 나의 빛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설명해주는 구절들입니다. 나의 인도자 하나님! 얼마나 든든합니까 맥아더가 남긴 말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나이가 든다고 늙는 것은 아니다.그가 늙는 것은 이상을 상실하기 때문에 늙는다.나이가 들면 피부에 주름이 생길 것이다.그러나 이세상 일에 흥미를 잃어버 리지 않는다면 마음에 주름이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원리는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철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코 나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무디가 어떤 날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섯살짜리 아들이 서재로 들어왔습니다. 무디가 자신의 글쓰는 일이 방해될까봐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왜 들어왔니.뭘 원하니 라고 묻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냥 아빠와 함께 있고 싶을뿐이예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무 소리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아빠 서재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무디는 자기 서재에서 조용히 놀고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나가라 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충성을 다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은 주님이 내쫓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1.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교통문화에 대한 욕망을 예로 들겠습니다. 오솔길이나 산골길을 100리 200리 걸어서 다닐 때 사람들의 욕망은 길이 넓게 뚫렸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길이 뚫렸습니다. 사람들은 욕망은 우마차나 인력거를 타고 다녔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력거나 우마차 시대가 되었습니다.그렇게되자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싶어했고 자전거가 변해 자동차,기차,비행기로 욕망이 변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콩코드가 개발되고 초음속기가 개발되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모든 면에서 끝이 없습니다. 끝없는 욕망이 계속되는한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장에서 나는 풍부나 비천에도 처할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족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시인 다윗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최고 권력을 장악한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저택인 왕궁에서 최상의 문화생활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는 돈도 많았고 보석도 많았습니다.후궁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만족의 원인을 그런것들 속에서 찾지 않고 나는 하나님 때문에 만족하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부족을 모른다 라고 고백한 까닭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윗이 누렸던 것들을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잠깐 동안 만족을 주는 조건들일 수는 있지만 영원한 만족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별 하나가 떨어지는 것은 1층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별 둘이 떨어지는 충격은 2층에서,별 셋은 3층에서,별 넷은 4층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 다고 합니다. 왜 대통령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장관들과 별들이 떨어집니까 세상 영광이나 만족은 영원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고백과 찬양시들을 썼습니다만 단 한번도 나는 왕이 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한다든지 나는 돈이 많은 것을 만족한다든 지 부동산이 많은 것을 만족하게 생각한다고 한 일이 없었습니다. 역대상 29장 11절 이하를 보면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주권도 주께 속한 것입니다.부와 귀도 주님이 주셨습니다. 권세와 능력도 주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얼마나 행복한 고백입니까 만족과 마음과 믿음을 지녀야 감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찬송과 기도가 막히지 않습니다. 역대상 29장 14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나이다 라고.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원인도,과정도,결과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있다는 것입니다. 17년만의 고백입니다만,저는 1976년 5월 충신교회에 부임했습니다. 그때 제 기도는 충신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다른 교회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충신교회 목사로 보내셨습니다. 17년이 지난 오늘 충신교회 목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하고 바라는 목회자입니다만, 그 때는 그저 그렇고 그랬던 교회였습니다. 76년 5월 첫주간 목요일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새벽 4시 50분에 교회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날 새벽기도에 나온 사람은 네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사찰집사였던 박세근 집사님과 김정수 집사님 내외분이었습니다.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본당 2층은 건축을 못하고 아랫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주보를 보았더니 지난주일 장년 출석 150여명에 주일학교가 50여명이었습니다. 헌금은 18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달이 지났는데도 제 월급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제가 떠올리던 대중가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라는 노래였습니다. 그 때 제 심정은 내가 왜 이런 교회로 왔는가라는 원망과 후회가 짙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심정은 그때 충신교회로 안오고 딴 데로 갔더라면 큰일 날뻔했다는 감사가 날마다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넓고 높고 깊은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투정부리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고 믿음을 지키고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라는 신앙으로 자족하고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2.인도자가 있는 것입니다. 양들의 경우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오아시스나 샘이 곁에서 솟고 있더라도 그곳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없으면 꼴도 물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인은 본문 2절에서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여행 안내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훈련과 학습을 거친 다음 자격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행자 혼자서 지도책을 드려다보며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행 안내자의 안내를 받으면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 쉽게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힘으로 길을 찾고 지도를 보면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고독하고 힘든 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안내자가 든든하면 여행길이 편안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안내자 입니까 시편 121편을 보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신다 고 했습니다. 시편 139편을 보면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통촉하신다 고 했습니다. 시편 27편을 보면 주는 나의 빛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설명해주는 구절들입니다. 나의 인도자 하나님! 얼마나 든든합니까 맥아더가 남긴 말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나이가 든다고 늙는 것은 아니다.그가 늙는 것은 이상을 상실하기 때문에 늙는다.나이가 들면 피부에 주름이 생길 것이다.그러나 이세상 일에 흥미를 잃어버 리지 않는다면 마음에 주름이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원리는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철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코 나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무디가 어떤 날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섯살짜리 아들이 서재로 들어왔습니다. 무디가 자신의 글쓰는 일이 방해될까봐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왜 들어왔니.뭘 원하니 라고 묻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냥 아빠와 함께 있고 싶을뿐이예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무 소리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아빠 서재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무디는 자기 서재에서 조용히 놀고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나가라 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충성을 다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은 주님이 내쫓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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