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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연단 (시23:4-5)

본문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이후 인류의 앞길에는 온갖 가 시와 엉컹퀴가 돋아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인간이 살아가는 여정 속에는 항상 가시와 엉컹퀴와 같이 괴롭게 하는 시련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인간의 삶 가운데는 수없이 많은 비극과 고통들이 꼬리에 꼬리 를 물고 일어났다 사라지곤 해 왔던 것입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었으나 단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혐의를 받고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감옥 창살 신세가 되어버린 기가 막힌 비극의 주인공이 젊은 세월들을 감옥에서 다 흘러 보내 고 나서야 누명이 벋겨지고 초췌한 노구의 몸으로 풀려나는 허망한 일들이 있는가 하면, 탄탄 대로로 갈것만 같던 사업이 하루 아침에 부도의 댄서리를 맞아 길거리로 나 앉게 만드는 시련의 가시와 엉컹퀴가 우리 주변에는 허다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인생의 시련과 아픔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은 숯한 좌절과 한숨으로 세상을 저주하며 사람을 원망하며 깊은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체념으로 상실한 삶을 살 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품 안에 안겨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되 면,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들을 오히려 크나큰 영혼의 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 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 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또한 (벧전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 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 를 얻게 하려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환난과 고난의 불을 통과할 때에 반드시 그것이 우리에게 연단되는 신령한 유익이 있다는 진리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론'
1.시련과 고난은 나의 아집을 깨뜨리는 연단 방망이입니다. 아담 하와의 타락 이후 인생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인본주의로 살았습니다. 인간은 아집으로 꽉 들어차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나아가 "내게 속한 분깃은 내게 주소서!"라고 말했던 것처럼, 타락한 인생은 거저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자기 중심적인 탐욕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같이 타락한 성품인 탐욕을 갖고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 다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뜨리고 없애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께서는 이 인간의 아집과 탐욕을 깨뜨리시기 위하여 인간에게 시련의 바람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고난의 풀무불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만 아집 덩어리가 녹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시험과 고난에 참여할 때에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12:5-8)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 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이렇게 시련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는 훈련과 연 간의 과정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친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영광스러운 자격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 반드시 채찍질하시고 훈련하심 으로 `변화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련과 환난의 불을 통과해야 만이 비로소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불순물이 불타 버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는 것은 대단히 중 요한 과정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성도다운 인격으로 변화 받을 수가 없습니다.
2.시련과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입니다. 사람들은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자기 중심적인 아집이 깨어져서 이해심과 사랑과 동정심과 인내심이 자랍니다. 어릴 때 부모의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사람은 자기 중 심적이고 자기 고집이 꽉차서 타인을 이해하고 동정하며 사랑하며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갈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난을 통과한 사람은 인격이 성숙해져 이해 심과 사랑과 동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게 됩니다. 시련과 고난은 `더 나은 삶을 향한 변화의 진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요셉의 시 련과 고난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 버 렸습니다. 종으로 팔릴 때 요셉의 마음의 비통함과 절망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게서는 요셉의 형들을 통해 요셉을 팔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장차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고 기근이 다가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길은 언제나 `골고다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요, `시련 과 고난의 길'입니다. 시련과 고난의 길을 지나면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복과 영광이 다가오는 법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편안한 날 하루 없이 노예로서 일하였습니다. 온갖 고생 끝에 노예 중에서도 좀 지위가 높아져 서 드디어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때, 그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 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 비정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때 애굽이 떡 장관과 술 장관 이 모반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요셉이 갇혀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요셉은 그들이 이상한 꿈을 꾸는 것을 보고 그들의 꿈을 해모해 주면서 자신의 누명 을 벗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과연 요셉의 해몽대로 떡 장관은 사형을 당했으나, 술 장관은 복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술 장관은 요셉의 해몽과 부탁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올 때까지 요셉으로 하여금 감옥에서 시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때가 오매 하나님께서 요셉을 불러 내어 바로 왕 앞에 서게 하시고 어려움에 처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셔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 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보니 니제까지 걸어온 모든 시련과 고난의 발걸음이 바 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교육 과정'이요, `연단 과정'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는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배후에 서 하나님의 손길이 일일이 역사하셔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때다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눈 앞에 일어나는 현상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단 정 지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배후에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세월이 지나 고 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인도하셨나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시련과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고 찬양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로 내려가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누려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찾 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건성으로 찾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건성으로 드리고, 찬송을 해도 건성으로,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부딪침이 없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시련과 고난에 부딪치면 이 건성이 모두 절실한 체험이 됩니다. 성도는 이때 마음에 부딪치는 회개를 하게 되고 절절이 사무치는 마음으로 찬송을 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로 내 려 가야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시험을 통하 여 자아가 깨어져야만 하나님을 절대자로 인정하고 그 섭리에 순종하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 당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조종당하시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깨뜨리십니다. 인간은 시 련과 고난을 통해 비로소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편에 서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이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편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능 력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당 하는 시련과 고통은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하게 해주는 `지팡이'가 됩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가지고 양을 인도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시련과 고난이란 지팡이를 통 해 성도를 순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막대기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시련과 고난 을 지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권능이 나타나 보호받는 것을 체험합니다. 즉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를 지난다는 것은 우리가 더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시험과 환난을 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라고 말 하는 사람은 "나는 하나님을 뼈저리게 체험하지 못했고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많이 겪을수록 기도를 많이 하게 되고, 참회를 많이 하 게 됨으로써 더 깊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깨닫고 알게 되어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물치고 오랜 세월 동안 시련과 고난으로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시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삭은 모 리아 산에서 죽음의 고난을 통과했으며, 야곱은 어린 나이에 부모 슬하를 떠나 20년 동안 고난을 당했습니다. 요셉은 13년 동안 억울하게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했으며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외롭고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이들은 하나같 이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변화받고 깨어져서 하나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인도와 권능을 받았습니다.
4.시련과 고난은 영적인 진수 성찬입니다. 본문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 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시련과 고난은 우리에게 침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시련과 고난을 당 하면 그 아픔으로 인해 땅을 치고 통곡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바로 그 고난과 상처의 현장에서 진수 성찬을 성도에게 베푸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사상 유례없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룬 것은 일제치하 와 6.25 전쟁이라는 시련과 고난을 통과한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역시,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 그 고 통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 없이 영광스러운 부활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시련과 고난이 다가 오거든 원망하거나 불평하 거나 탄식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수 성찬이 베풀어지기 때문입니다.
5.시련과 고난은 우리를 축복의 그릇으로 만드는 연단 과정입니다. 시련과 고난을 통해 우리 마음이 깨어져 하나님께 합당한 연단된 그릇이 준비되면 바로 그 그릇에 하나님께서는 복을 담으십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고난이 지나간 후 에는 반드시 이전으로 회복하던지, 그 이상의 복을 우리에게 안겨 주십니다. (시 91:15)"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 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멀리 피하여 숨어버리신 것같은 느낌을 받지만, 하나님께서는 "환난 때 에 내가 저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면 모든 사람들 은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친척도, 친구도 다 떠납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이 우리 곁에 함께 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목적 하신 교육과 연단을 받고 나면 우리는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고 영화로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화롭게 되는 것은 좋아하지만, 환난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환난없는 영화란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시 29:10-11)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 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 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 다가오십니까 홍수 때 홍수 위에 앉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홍수는 가만히 있는 물이 아닙니다. 홍수는 혼란과 고통을 동반한 물입니다. 우리게에 다가오는 시련과 고난의 홍수 위에 주님께서 좌정하셔서 우리에게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조용하고 평안하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시련의 홍수를 몰고 오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부귀, 영화, 명예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찾아 오시는 것, 이 이상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질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지위나 명예를 통 해서도 찾아 오시지 않습니다. 환난의 홍수 때에 비로소 주님께서는 그 홍수 위에 앉으셔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홍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고난을 주님께서 다스리시고 계시 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이제 더 이상 환난과 고난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 시는 그때 그 홍수를 잔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 풍파가 일어났을 때 일어나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니 즉시 잔잔해 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고난의 홍수를 잔잔하게 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과 고난의 홍수가 밀려올 때 그 아픔을 바라보고 절망할 것 이 아니라, 홍수 위에 좌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련의 홍수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힘을 얻고 평강을 얻습니다. (시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결론' 밥상 앞에서 판찬투정하며 편식하는 자녀는 허약체질이 되어 잘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잘 먹는 자녀는 건강하고 튼튼합니다. 마찬가지로 달콤하고 편안한 것만을 좋아하고 시련과 고난을 달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성도는 나약한 신 앙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성도는 강인 해지고 생활에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홍수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평안 과 축복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에는 그 시련과 고난이 점점 더 무서운 얼 굴을 하고 달려 듭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난을 하나님이 섭리로 보고 믿음으로 감사하는 자에게는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차고 연단이 끝나게 될 때, 그 시련과 고난 이 가면을 벗고 은총과 축복으로 변화하는 것을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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