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은 은혜의 전주곡 (시107:23-32)
본문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풍랑의 세월이 있습니다.아무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생각지 않은 유라굴로 같은 광풍이 몰아칠 때 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도 풍랑의 세월을 경험했고 교회적으로도 광풍의 고 통 을 겪었으며 또 가정적으로도 거센 풍랑의 파도속에서 침몰의 위경을 당하 기도 했습니다.인생 중에 풍랑의 세월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 은 극히 소수 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위로받는 것이 있습니다.성경의 기사 그 어느 곳에 서도 풍랑의 고통은 잘 그려져 있지만 그 풍랑속에서 파멸하였다는 기사는 한곳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그 풍랑의 파도에서 구원받은 역사가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풍랑의 파도속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어느것도 우연한 사건 은 없다는 사실입니다.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숨겨져 있기도 하고 우리 의 잘못을 회개시키기도 하며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풍랑의 파도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찾아 보는 지혜가 있게되시기를 바랍니다.오늘 본문은 두가지 사실을 우리 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광풍의 바다의 모습에서 우리의 현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 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시편 107:25) 이는 풍랑이 일고있는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씀 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세상과 사회와 가정안에서 얼마나 큰 풍랑의 파 도가 일어났었습니까.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인생항로에서 풍랑과 싸우 면서 목 적지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행복의 순풍속에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신바람난 항해를 할때 도 있었고 고난과 역경의 광풍속에서 몸부림 칠때도 있었습니다.바다에 광풍 이 몰아칠때 선원들은 당황하고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풍랑속 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이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 생선에 풍랑의 파도는 일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지 않은 풍랑의 파도속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술취한자 같이 흔 들거릴 때가 있습니다.이것이 인생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둘째,그러나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세상의 바다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광풍을 평정케 하실수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는 바다의 광풍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작부터 그 끝까지를 다 아시는 분이시며 또한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 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광풍이 몰아 쳐올때 기도하게 돼 있습니다.광풍의 세월에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참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고 근심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희 가 그 근심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 하여 내시고 광풍 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시편 107:28-29) 우리는 평안 할 때보다 곤궁한 중에 처할때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절망중에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 하여 주실줄로 믿습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자비하신 분이기 때 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파도치는 바다를 향해 바다야! 파도 야! 잔잔하라고 권세있는 명령을 하시고 계실줄 믿습니다.주님은 필요 할때 지도자의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험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인생선을 타고 있습니다 .때 로는 잔잔한 바다위를,때로는 폭풍 몰아치는 캄캄함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힘든 항해가 끝난 다음 소원의 항구에 다다르게 됩니다. 항구에는 휴식이 있습니다.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안전함이 있습니다. 주님께선 우리를 거친 파도와 풍랑속에서 건지시고 나아가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실줄 믿습니다. 역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하라! 본문 성경:시 73:1-28 어려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의 신앙생활에 감사가 없으면 사는 것이 허무해지기가 쉬운 데 감사절기에 우리의 구원받음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여 우리 의 삶 이 늘 하나님의 목전(目前)에 있음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추수감사절 이후로 성탄감사를 기다리게 됨으로 년중 끝에서 지난 1년을 돌이 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요 감사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의 무엇을 감사할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저자인 아삽이 고통과 역경중에서 감사하게 된 경우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들과 같은 처지일 것입니다. 본문에 시인은 번영하고 번창하여 감사드린 것이 아니라,막을 수 없는 극심한 재 난이밀 려 왔 을 때에 도저히 헤어 날 길이 없어서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심 을 감사하였습니다. 이 성도가 세상의 악인들 처럼 태평하고 평탄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어렵게 사는 연약한 자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성도였습니다. 세상적 표준과 판단으 로 볼 때 에는 전혀 감사가 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동안 감사 할 것으로 가득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배상 을 청구해야 할 것으로 가득합니까 본문에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통치를 믿었습니다. 이 확신에 찬 서두를 1 절 에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선하고 의로우신 분으로 드러내셨고 악은 필히 벌하 시고,선 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으로 자기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곧 2절에 하나님의 그 섭리(攝理)와 통치를 이해 할 수 없었음을 시인은 솔직 히 고 백 하 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의인과 경건한 자가 복을 받고 번성해야 당연한 법인데 오히려 악인들과 오만(傲慢)한 자들이 번창하고, 그들은 넘어짐도 없고, 고통도 없고, 재산 증가는 돈에 돈을 더하여 소원보다 더 넘치게 되었고, 도도하고, 교만하고, 강포를 행하기 를 즐겨 하 고 있습니다(3-9). 그런데 의로운 시인은 날마다 재앙의 연속이요,징게를 맛보고 있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짓거나 불의한 일을 행하였으면 그 값이라 하겠지만 늘 무죄 하게 사는 데 도 이런 일이 계속되니 자기 지혜로는 도저히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인은 이 역경 의 삶 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13절에 이럴바에야 의롭게 사는것이 다 헛된 것이라고 낙망하여 외치 고 있습니다. 늘 악인과 함께 길을 걷지 않으려고,죄악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않으려고 조심하였고,누명을 썼으 나 복수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왔는데도 당하는 것은 종일 재앙과 징계와 책망 뿐이었으니 하나님의 공의가 이런 것인가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 아닌 것이 아닌가 세상을 안 다스리는 가 날 사랑 안하시는가 시인은 낙망하였고,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를 고민하다가 17 절에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인자와 가르침을 받고서야 그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해답은 악인보다 넘치는 축복을 받아 재산이 늘어나고, 건강을 찾고, 만사가 형통하여 짐으로 만족과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상과 영원한 관점에서 이 세상에로 미끄러질뻔한 시험의 해결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악인의 결국과 의인의 결국이었습니다. 악인은 현세에서 번창, 풍성,행복하여도 종말에는 파멸과 황폐와 전멸로 운명을 마치게 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의 인 은 종 말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고 현세에서는 하나님의 교훈을 따라 살게 된다는 것이 었습니다. 시인은 이것이 의인이 받는 영원한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해답은 실로 신앙적이 었고,미 래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리하여 27-28에는 이제부터 늘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이 마음 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1년간 주의 은혜를 감사하려고 시은소로 모였습니다. 우리도 물질의 축복과 번영과 건 강 때 문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역경과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려고 모 였습니다. 그러니 성도의 감사는 역경속의 감사입니다. 그렇다고 기쁨과 소원성취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올 한 해가 큰 행운의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혼,승진,득남,득녀,성공,---등 등)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인생 길이 슬픔과 수고 뿐이라는 진리에 비추어 보면 그리 중요 한 것 이 못되는것 같습니다. 반면에 이별과 슬픔, 실패, 질병,가난, 배신, 모함, 오해 등으 로 잊 을 수 없는 악몽의 한 해일 수도 있습니다.
행 16장에 아시아에서 전도를 하다가 유럽으로 건너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성에서 귀 신들린 점장이를 고쳤는데 이것이 화근이되어 사실 심리도 못한채 재판을 받아 매질을 당하고 착고 에 묶 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살이 터지고 찢어져서 심한 고통이 왔습니다. 인간의 본성대 로 하 면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야 하지만 바울은 실라와 함께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 였습니다. 옥중에 갇힘과 억울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의 기쁨 때문에 감사 와 찬미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성도들은 거의 다 고통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성도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요,고난의 길입니다. (시90;9-10,창47;9) 그러나 이 의로운 성도들이 받는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 삽이 이 진리를 깨달은 후 세상에 현혹되어 신앙적 사고를 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회개 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심(信仰心)이란 조금도 없이 좁은 마음과 짧은 안목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 처지를 한탄한 것을 회개 하였습니다. 21-22에 보면 자기의 우매(愚昧)함과 무지(無知)하였음이 짐승처럼 되었었고, 이 죄악을 심장 이 찔리는 큰 고통으로 회개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법은 악인이 번창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을 의인이 바라 볼 때에 굉장히 부러워 보입니다. 아! 나도 저렇게 됐으면 얼마 나 좋을 까! 3절에 아삽도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 하였다고 토설(吐設 숨겼던 사실을 비로 소 밝히 말함)하였습니다.
여기서 "질시"란 질투하고,샘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속담에 '사 촌 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인도 오만한 자를 보고 샘을 내 었다고 하 였 으니 악인이 목에 힘주고 거드렁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배탈이 났던 것 같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하면서 다녀 봤으면! 호의 호식하고,권세를 휘두르고,경쟁자와 원수들의 코를 좀 납짝하게 해 주고,명절날 집 안 의 형 제와 친척들이 다 모이면 기 안 죽고 목에 힘주고 다닐텐데,특히 욕심 많은 큰집(한국형) 식구들 에게 자랑을 좀 할 것인데---아삽이 이런 사고방식에 빠져들어 그 정신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드시는 은혜로(23절)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신앙과 충성으 로 돌 아 설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영광의 자리로 자기를 이끄실 것을 바라보고 더욱 더 성도의 올바른 자세 로 돌 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성도들도 아삽처럼 미혹되어 세상식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악인보다 더욱 더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서 번 성 하고 부자가 되는 비결을 가르치는 교회와,드린 헌금액수와 봉사한 양(量)에 비례하여 억 만배의 축복을 판매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가득 가득 모여듭니다. 이처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은 세상 적 방식으로 부유하고,번창하려고 합니다. 힘껏 일하고,수고하여,고통과 땀의 결실을 얻기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도 남의 돈을 거저 가져가려는 도둑질 법을 가르치고,그런 방식으로 살아 가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악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가지 마십시오. 그들이 가는 길 은 의 인이 갈 길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욕심을 품지 마십시오. 넓은 안 목으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세계관(世界觀)을 가지십시오. 이생의 유혹을 받지 마십시 오. 시 1편에 악인의 최후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리라"는 진리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역경의 역사로 섭리(攝理)하시는가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에게만 붙어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이 평안하고 잘되기만 하면 마음이 타락하여 곧 주를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 택 하신 백성은 역경이 있어야만 주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계속 순풍만 불면 그리스도를 의 지 하 고 사모하는 열심이 식어지고 감사와 겸손이 없어지고 나 때문에 잘 된 것인양 자고 (自喬)하게 됩 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려움이 계속될 때에야만 하나님께 간구하고 신뢰(信賴)하여 항상 붙 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28절에 하나님의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잘 되기만 하면 죄를 지으려고 합니다. 잘 되기만 하면 죄를 지어도 되는 줄로 착 각 할 때가 많습니다. 잘 되기만 하면 열심을 안내다가 역경을 만나면 그때서야 겸손해 지고,악을 버리 고,열심을 내게 됩니다. 그러니 고난이 오면 빨리 회개하고 정신을차리십시오. 빨리 하나님 을 순 종 하십시오. 이처럼 고난은 신자를 신자되게 하는 훈련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는 수련장 입니다. 그 리하여 하나님은 늘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의 역 사와 섭리(攝理)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면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십시오. 육체가 병들고 마음 이 쇠 잔하여도(26절) 낙심하지 마십시오.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의인이 사모할 자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의인에게 영원한 분깃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26절에 시인은 찬양 하였습니다. 그러니 의인 의 부 요 함은 무엇입니까 시 16편에도 보면 하나님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심이,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든든한 반석이요,요새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 이것을 보배로 삼고,고통과 사망의 길에서도 항상 이 진리를 묵상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의인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첫째는 광풍의 바다의 모습에서 우리의 현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 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시편 107:25) 이는 풍랑이 일고있는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씀 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세상과 사회와 가정안에서 얼마나 큰 풍랑의 파 도가 일어났었습니까.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인생항로에서 풍랑과 싸우 면서 목 적지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행복의 순풍속에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신바람난 항해를 할때 도 있었고 고난과 역경의 광풍속에서 몸부림 칠때도 있었습니다.바다에 광풍 이 몰아칠때 선원들은 당황하고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풍랑속 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이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 생선에 풍랑의 파도는 일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지 않은 풍랑의 파도속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술취한자 같이 흔 들거릴 때가 있습니다.이것이 인생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둘째,그러나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세상의 바다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광풍을 평정케 하실수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는 바다의 광풍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작부터 그 끝까지를 다 아시는 분이시며 또한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 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광풍이 몰아 쳐올때 기도하게 돼 있습니다.광풍의 세월에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참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고 근심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희 가 그 근심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 하여 내시고 광풍 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시편 107:28-29) 우리는 평안 할 때보다 곤궁한 중에 처할때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절망중에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 하여 주실줄로 믿습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자비하신 분이기 때 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파도치는 바다를 향해 바다야! 파도 야! 잔잔하라고 권세있는 명령을 하시고 계실줄 믿습니다.주님은 필요 할때 지도자의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험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인생선을 타고 있습니다 .때 로는 잔잔한 바다위를,때로는 폭풍 몰아치는 캄캄함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힘든 항해가 끝난 다음 소원의 항구에 다다르게 됩니다. 항구에는 휴식이 있습니다.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안전함이 있습니다. 주님께선 우리를 거친 파도와 풍랑속에서 건지시고 나아가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실줄 믿습니다. 역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하라! 본문 성경:시 73:1-28 어려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의 신앙생활에 감사가 없으면 사는 것이 허무해지기가 쉬운 데 감사절기에 우리의 구원받음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여 우리 의 삶 이 늘 하나님의 목전(目前)에 있음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추수감사절 이후로 성탄감사를 기다리게 됨으로 년중 끝에서 지난 1년을 돌이 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요 감사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의 무엇을 감사할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저자인 아삽이 고통과 역경중에서 감사하게 된 경우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들과 같은 처지일 것입니다. 본문에 시인은 번영하고 번창하여 감사드린 것이 아니라,막을 수 없는 극심한 재 난이밀 려 왔 을 때에 도저히 헤어 날 길이 없어서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심 을 감사하였습니다. 이 성도가 세상의 악인들 처럼 태평하고 평탄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어렵게 사는 연약한 자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성도였습니다. 세상적 표준과 판단으 로 볼 때 에는 전혀 감사가 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동안 감사 할 것으로 가득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배상 을 청구해야 할 것으로 가득합니까 본문에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통치를 믿었습니다. 이 확신에 찬 서두를 1 절 에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선하고 의로우신 분으로 드러내셨고 악은 필히 벌하 시고,선 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으로 자기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곧 2절에 하나님의 그 섭리(攝理)와 통치를 이해 할 수 없었음을 시인은 솔직 히 고 백 하 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의인과 경건한 자가 복을 받고 번성해야 당연한 법인데 오히려 악인들과 오만(傲慢)한 자들이 번창하고, 그들은 넘어짐도 없고, 고통도 없고, 재산 증가는 돈에 돈을 더하여 소원보다 더 넘치게 되었고, 도도하고, 교만하고, 강포를 행하기 를 즐겨 하 고 있습니다(3-9). 그런데 의로운 시인은 날마다 재앙의 연속이요,징게를 맛보고 있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짓거나 불의한 일을 행하였으면 그 값이라 하겠지만 늘 무죄 하게 사는 데 도 이런 일이 계속되니 자기 지혜로는 도저히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인은 이 역경 의 삶 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13절에 이럴바에야 의롭게 사는것이 다 헛된 것이라고 낙망하여 외치 고 있습니다. 늘 악인과 함께 길을 걷지 않으려고,죄악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않으려고 조심하였고,누명을 썼으 나 복수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왔는데도 당하는 것은 종일 재앙과 징계와 책망 뿐이었으니 하나님의 공의가 이런 것인가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 아닌 것이 아닌가 세상을 안 다스리는 가 날 사랑 안하시는가 시인은 낙망하였고,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를 고민하다가 17 절에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인자와 가르침을 받고서야 그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해답은 악인보다 넘치는 축복을 받아 재산이 늘어나고, 건강을 찾고, 만사가 형통하여 짐으로 만족과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상과 영원한 관점에서 이 세상에로 미끄러질뻔한 시험의 해결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악인의 결국과 의인의 결국이었습니다. 악인은 현세에서 번창, 풍성,행복하여도 종말에는 파멸과 황폐와 전멸로 운명을 마치게 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의 인 은 종 말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고 현세에서는 하나님의 교훈을 따라 살게 된다는 것이 었습니다. 시인은 이것이 의인이 받는 영원한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해답은 실로 신앙적이 었고,미 래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리하여 27-28에는 이제부터 늘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이 마음 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1년간 주의 은혜를 감사하려고 시은소로 모였습니다. 우리도 물질의 축복과 번영과 건 강 때 문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역경과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려고 모 였습니다. 그러니 성도의 감사는 역경속의 감사입니다. 그렇다고 기쁨과 소원성취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올 한 해가 큰 행운의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혼,승진,득남,득녀,성공,---등 등)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인생 길이 슬픔과 수고 뿐이라는 진리에 비추어 보면 그리 중요 한 것 이 못되는것 같습니다. 반면에 이별과 슬픔, 실패, 질병,가난, 배신, 모함, 오해 등으 로 잊 을 수 없는 악몽의 한 해일 수도 있습니다.
행 16장에 아시아에서 전도를 하다가 유럽으로 건너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성에서 귀 신들린 점장이를 고쳤는데 이것이 화근이되어 사실 심리도 못한채 재판을 받아 매질을 당하고 착고 에 묶 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살이 터지고 찢어져서 심한 고통이 왔습니다. 인간의 본성대 로 하 면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야 하지만 바울은 실라와 함께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 였습니다. 옥중에 갇힘과 억울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의 기쁨 때문에 감사 와 찬미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성도들은 거의 다 고통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성도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요,고난의 길입니다. (시90;9-10,창47;9) 그러나 이 의로운 성도들이 받는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 삽이 이 진리를 깨달은 후 세상에 현혹되어 신앙적 사고를 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회개 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심(信仰心)이란 조금도 없이 좁은 마음과 짧은 안목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 처지를 한탄한 것을 회개 하였습니다. 21-22에 보면 자기의 우매(愚昧)함과 무지(無知)하였음이 짐승처럼 되었었고, 이 죄악을 심장 이 찔리는 큰 고통으로 회개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법은 악인이 번창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을 의인이 바라 볼 때에 굉장히 부러워 보입니다. 아! 나도 저렇게 됐으면 얼마 나 좋을 까! 3절에 아삽도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 하였다고 토설(吐設 숨겼던 사실을 비로 소 밝히 말함)하였습니다.
여기서 "질시"란 질투하고,샘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속담에 '사 촌 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인도 오만한 자를 보고 샘을 내 었다고 하 였 으니 악인이 목에 힘주고 거드렁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배탈이 났던 것 같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하면서 다녀 봤으면! 호의 호식하고,권세를 휘두르고,경쟁자와 원수들의 코를 좀 납짝하게 해 주고,명절날 집 안 의 형 제와 친척들이 다 모이면 기 안 죽고 목에 힘주고 다닐텐데,특히 욕심 많은 큰집(한국형) 식구들 에게 자랑을 좀 할 것인데---아삽이 이런 사고방식에 빠져들어 그 정신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드시는 은혜로(23절)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신앙과 충성으 로 돌 아 설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영광의 자리로 자기를 이끄실 것을 바라보고 더욱 더 성도의 올바른 자세 로 돌 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성도들도 아삽처럼 미혹되어 세상식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악인보다 더욱 더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서 번 성 하고 부자가 되는 비결을 가르치는 교회와,드린 헌금액수와 봉사한 양(量)에 비례하여 억 만배의 축복을 판매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가득 가득 모여듭니다. 이처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은 세상 적 방식으로 부유하고,번창하려고 합니다. 힘껏 일하고,수고하여,고통과 땀의 결실을 얻기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도 남의 돈을 거저 가져가려는 도둑질 법을 가르치고,그런 방식으로 살아 가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악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가지 마십시오. 그들이 가는 길 은 의 인이 갈 길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욕심을 품지 마십시오. 넓은 안 목으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세계관(世界觀)을 가지십시오. 이생의 유혹을 받지 마십시 오. 시 1편에 악인의 최후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리라"는 진리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역경의 역사로 섭리(攝理)하시는가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에게만 붙어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이 평안하고 잘되기만 하면 마음이 타락하여 곧 주를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 택 하신 백성은 역경이 있어야만 주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계속 순풍만 불면 그리스도를 의 지 하 고 사모하는 열심이 식어지고 감사와 겸손이 없어지고 나 때문에 잘 된 것인양 자고 (自喬)하게 됩 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려움이 계속될 때에야만 하나님께 간구하고 신뢰(信賴)하여 항상 붙 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28절에 하나님의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잘 되기만 하면 죄를 지으려고 합니다. 잘 되기만 하면 죄를 지어도 되는 줄로 착 각 할 때가 많습니다. 잘 되기만 하면 열심을 안내다가 역경을 만나면 그때서야 겸손해 지고,악을 버리 고,열심을 내게 됩니다. 그러니 고난이 오면 빨리 회개하고 정신을차리십시오. 빨리 하나님 을 순 종 하십시오. 이처럼 고난은 신자를 신자되게 하는 훈련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는 수련장 입니다. 그 리하여 하나님은 늘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의 역 사와 섭리(攝理)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면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십시오. 육체가 병들고 마음 이 쇠 잔하여도(26절) 낙심하지 마십시오.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의인이 사모할 자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의인에게 영원한 분깃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26절에 시인은 찬양 하였습니다. 그러니 의인 의 부 요 함은 무엇입니까 시 16편에도 보면 하나님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심이,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든든한 반석이요,요새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 이것을 보배로 삼고,고통과 사망의 길에서도 항상 이 진리를 묵상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의인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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