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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시12:1-8)

본문

먹이를 찾는 사슴은 사방을 두리번 거럽니다. 그리고 위험이 느껴 지면 사슴은 동서남북을 살핍니다. 그러나 사냥꾼이나 사냥개에게 쫓 기게 되면 사방을 두리번 거릴 겨를이 없읍니다. 그냥 뛰고 달릴 뿐입니다. 사냥꾼의 총구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그리고 피난처를 찾을 때 까지 뛰고 달릴 뿐입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은신처나 안전지대를 찾 으면 목숨을 건지 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안전지대란 사슴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안전지 대가 필요하고 짐승 에게도 필요하고 곤층에게도 필요합니다. 시인이 시편 12편을 을었을 당시의 정황은 한마디로 안전지대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본문 1히 이하를 살펴보면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발 붙이지 못하는 시대였고 자신 의 삶에 층성을 다하는 사람이 행세하지 못하는 시 대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짓이 범람하고 아첨의 배가 진실을 오 도하는 시대였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이 어수선하고 어두워서 의를 쫓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발 붙일 곳 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되면 사람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첫는 온통 세상이 썩었다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도피주 의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는 재빨리 현실에 영합하고 따라가는 타협주의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 은 구태어 모나게 굴거나 유별나게 살 필요가 없 다면서 현실에 영합하게 됩니다. 세째는 모조리 뜯어 고쳐야 한다면서 반항하고 부정하고 도전하는 공격주의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넷째는 역사 현실을 그대로 인정은 하면서도 새로운 출구를 찾는 희망주의자들이 생기 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역사를 밝은 눈으로 보는가하면 비록 어두운 역사일지 라도 신앙적인 관점 에서 조명하여 신앙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자세는 바로 신앙적 자세인 것입니다. 한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거 나 문제를 당하게 됐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 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고통의 날을 기념할 때는 삶은 달걀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음식물은 삶으면 삶을 수록 액체가 되지만 달 걀은 삶아도 삶아도 더 단단해진다는 탈 무드의 교훈 때문으로 보는 것입니다. 탈무드는 '인생은 삶은 달걀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고난의 가마솥에 들어가면 금방 흐늘흐늘해져 떠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안할 때는 강한 것 같다가도 어려운 일을 당하기만 하면 쉽 게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일의 나찌스들은 유대인을 가장 미워했습니다. 유대인을 말살하 기 위해 만든 수용 소가 왈쏘 수용소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인 것입니다. 나찌스들은 유대인의 살 껍질을 벗겨 전등 갓을 만들었고 시체에서 기름을 뽑아 비누 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유태인들은 녹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민족 흔과 민족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 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대인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대인 공포증 환자의 수가 얼마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 습니다만 그 수가 점차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이 겹나고 사람들이 하는 일이 겁 나고 사람들의 말이 겁나는 그래서 사람 대하기가 두려운 세상이 되 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2편의 저자인 다윗의 경우도 인간 공포증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과 상황이 가져다 주는 불안이나 공포의 해결점을 자기 자신이나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았습니다. 이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인 것입니다.
5절 속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 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라고.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은 고통받고 절망 중에 빠진 사람들을 방관 하지 않으시고 안전지 대로 옮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안전지대란 불안한 요소와 위협이 없는 곳입니다. 간흑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차량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나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표지 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곳이 안전지대인 것입니다. 법적인 통제력을 가진 표지판을 세워 놓고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놓은 곳. 그래서 철없는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곳이 안 전지대인 것입니다. 인생의 안전지대는 어느 곳 입니까 이것이 안전지대이며 여기가 안전지대라고 표지판을 세워 놓은 곳 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것들은 참으로 안전한 곳은 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병사들이 지키고 경호원이 지키는 궁정동의 어느 방안에 서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시해를 당했다는 사건은 표지판을 세고 병사를 세웠고 경호원을 세다고 해서 그것이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밝척 줍니다. '내가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고. 그 뜻은 하나님이 만들고 준비하신 안전지대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안전한 처소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지대는 구원의 자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읍니 그러니까 잠깐 피신 하는 곳,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아니라 내다. 영흔이 구원받고 편히 쉬는 곳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칼 융(Jung) 은 '현대인의 공통분모는 허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의 연합군 포로 수용소에서 근무한 군의관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병 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시철망병이라는 것이 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우울해지고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정신은 극도로 쇠약해져서 누워만 있으려고 하는데 그 원인도 모를 뿐만 아니라 치 료 방법도 없었다는 것 입니다. 포로 수용소의 가시철망에 갇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희망이나 기쁨이 있을 리 없었고 거기서 오는 불평과 불만이 땋여 그들이 정신마 져 가시망 안에 갇히게 된 데서 온 병이었 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증요한 사실은 포로 수용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 조리 가시철망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 병에 걸린 사람도 있었고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 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온종일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시철망만을 바라보며 한을 품고 한 숨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가시철망병에 걸렸고, 눈을 들어 푸른 하늘도 보고 철망 밑에서 피어나는 들국화 나 푸른 풀잎도 보고 고향 도 그려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생각한 사람들은 가시철 망병 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같은 장소에서 가시 철망 안에 갇혀 있더라도 무엇을 바라보고 무 엇을 생각하느냐에 따 라 환자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으로 살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은 모두가 다 가시 철망 안베 갇혀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 라 밝은 인생을 살 수도 있고. 어둡고 침 울한 인생을 살 수도 있는 것 입니다. 본래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의 가시 철망에 갇힌 채 살아왔읍니다. 그러나 그 안에 서 눈을 높이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를 바 라보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 본 사람,들은 죄와 사망의 무로부터 벗 어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참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안전지대 '라고 을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러야 할 영원한 안전지대는 어느 곳입니까
1.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는 곳입니다. 에베소서 2장 26절을 보면 '십자가도 원수된 것을 소멸하셨다'고 17 절에서는 H먼 데 있는 자들과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해 주셨 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예수의 십자가 밑에 화해가 있고 사랑이 있고 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밑에 참 쉽이 있고 안전이 있다는 뜻입니다. 471장 찬송의 저자는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저 햇 심 히 쬐이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곳 찾았네'라고 노 래했습니다. 십자가 그늘이란 주님 안에서란 뜻입니다. 주님의 품, 그 곳이 안전 지대입니다. 신명기 33장 27절을 보면 '영원한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팔을 벌리고 나를 떠받들어 주시고 지키시는 곳. 거기가 우리의 영원한 처소인 것입니다. 시편 36장 7절에서 시인 다윗은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아래 피하나 이다'라고 노래 했습니다. 주의 품, 주의 날개는 인생들이 머물러야 할 영원한 안식처인 것입니다. 끄 영원한 하늘나라가 안전지대입니다. 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를 꼽는다면 증럽국가나 미국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도 질병과 슬픔과 이별과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곳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원한 안전지대는 어느 곳입 니까 요한계시록 21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는 사망도, 애통도, 통 곡도, 질병도 다시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2장 5절에서는 그 곳엔 밤도 없고 등불도 햇도 쓸데 없다 고 했습니다. 바로 거기가 안전지대입니다. 죽음이 없는 곳, 슬픔이 없는 곳, 절망이 없는 곳, 아픔이 없는 곳,흑암이 없는 곳이 안전 지대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지대에 두신다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지대에 두시기 위해 그 곳을 미리 준비해 두 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 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밝혔습니다. 영원한 안전대는 미국이나 중럽국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안전지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사모하옇 소유하기를 힘쓰며 그 나라의 시민된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전한 삶을 원한다면. 핑안과 안정을 바란다면, 걱정과 두 려움이 없는 생활을 희망한다면, 예수 품에 안겨야 합니다. 그리고 영 원한 세계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소련에서 원자로가 폭발하자 영국, 블갈서가 물론 캐나다에서도 여 행객이 줄었는가하 면 우유도 마시지를 않는 사건이 벌어졌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지상에 안전지대는 없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안전지대, 그 곳에서 참 쉽을 얻게 된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켜 은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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