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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존엄성 (시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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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모름지기 인간이 하나님을 회피하려는 일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러니칼 한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분이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인류는 마치 하나님을 자신의 행복과 꿈을 빼앗아가려는 거대한 샤일록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의 경우와도 흡사합니다. 사춘기를 맞이한 청소년은 어느 때보다도 어른들이 필요하고, 그들의 인도와 모범과 사상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도움이나 사랑의 관심을 마치 간섭이나 속박인 것처럼 오해하고 어른들의 보호권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것과도 비교 가 됩니다. 따라서 자신이 누구시며 자신의 갈 길을 종종 파악하지 못하고 탈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만 보고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우주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가 해결되 지 않고서는 인간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참 인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사에 길이 빛 나는 한 성도인 어거스틴은 문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찾으라. 자신의 참 의미를 발견하라. 누구든지 찾는 자는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고 기쁜 사 실은 그렇게 할 때에 그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는 그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참회록 서문 중에서) 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을 깊이 깨닫는 자는 그의 자각의 눈이 열려 하나님만 볼 뿐 아니라 하나님과 우주와 인간의 올바른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시편기자는 어느날 유대 지방 한 구석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 순간 인간과 우 주의 참 의미를 깨달아 이 시편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이 시편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고자 의도했던 최고 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자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8:1,2). 온 자연 중 가장 중요한 존재는 사람이다 (8:3,4). 사람은 하나님 버금가는 자연의 통치자이다 (8:5-8).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사람의 가장 큰 의무이다 (8:9). 가. 하나님의 영광은 온 자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 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온 땅과 하늘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달나라로 여행한 소련의 첫 우주인에게는 온 땅 과 하늘 에 가득찬 주의 영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려와서 나는 거기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필경 사람의 존재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면에 시편 기자는 주께서 온 땅과 하늘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이 모 든 것들을 그 능력의 손으로 붙들과 있음을 알았습니다.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은 그 능력이 얼 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는 이 영광스러운 능력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말로도 그 오며함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야말로 이 시 뿐 아니라 시편 전부를 지배하는 요점이며, 더 나아가서는 구약 전체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라고 주장했었습니다. 확고부동한 하나님의 영광 온 땅 과 하늘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확고부동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 과 젖먹이들에게 그 영광을 보존하도록 맡기시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그 영광을 보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가 예기치 않던 방법으로도 보존하 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와 젖먹이에게까지 그의 영광 을 보존토록 하신다면 비록 약하고 쓰러지기 쉬운 우리에게까지도 그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기시 리라는 기대와 확신이 있습니다. 온 땅 과 온 하늘 위 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찬미할 수 있는 어린 아이와 젖먹이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을 눈 앞에 두고도 머리조차 숙일 줄 모르는 대제상장과 서기관보다 얼마나 더 가치가 있는가에 대하여서는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21:16참조). 인간은 이런 영광스러운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을 때에만 그 가치가 인정 될 수 있습니다. 나. 온 자연 중 가장 중요한 존재는 사람입니다(8:3,4). 자연을 주신 이유 지금도 밤하늘에 별과 달이 꽤 맑게 보이는데, 공해라는 개념이 있기도 전 시편 기자가 세상에 거닐 때에는 그것들이 얼마나 선명하게 보였겠습니까 가히 짐작이 갑니다. 아마도 시편 기자는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를 보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무기력한가를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자연을 보았을 때는 다른 결론에 도달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 (3절)이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그는 알 수 있었습니다. 대개 다른 종교는 자연을 숭배하는 쪽 으로 기울어지는데 비해 3절은 자연이 사람을 염두에 두고 창조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천지창조의 순서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지구를 포함한 천 체를 창조하시고(창1:1-10) 각종 생물들 및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1:11-26). 그 다음 비로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였던 것입니다.(창1:26-31). 사람이 거처하고 생육하 고 번성하기에 알맞도록 해 놓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보면 피조물 중 틀림없이 사람이 가장 존귀한 존재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모든 다른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에는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셨으나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신 사람을 보고는 심히 좋았더 라 고 감탄을 하신 것을 미루어 보아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인류는 다시 한번 이와 같은 인간관을 되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 게 되면 인간은 존귀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간을 볼 때 더 이상 인간을 플라스틱 병처럼 소모 품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주님의 마음 사실상 주님께서는 우리를 꼭 필요로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영광 중에 계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셔도 이미 완전하십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 중에서 우리에게 하강하시어 우리를 생각하고 권념하신다는 것은 시편 가자에게 있어서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도 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4절). 하나님의 영광과 비교해 보았을 때 사람 자체를 보아서는 난쟁이 중에 난쟁이요, 먼지 중에 먼지 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피조물 중에 영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권념하시고 생각해 주셔서 만물보다 더 사랑하시고 존귀케 하시는 이 유를 우리는 은혜 이외의 그 어떤 다른 것으로부터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비록 타락 하여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위치에서 떨어졌고, 우리 속에 있는 양심과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지만 아직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바 있는 십자가에 처리되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의 저속한 부분과, 시편 기자와 창조의 기사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인간의 숭고한 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을 신격화시키거나 인간의 타락설을 부인하거 나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하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반면에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나 세속주의자 들이나 현대 산업 사회에서처럼 인간을 하나의 경제적 수단이나 노동력이나 이용물로 보아서도 안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 중에서만 온전한 존엄성을 찾을 수있다는 신본주의적 인간관을 시장가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위정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되찾지 않으면 안됩니다.다. 사람은 하나님 버금가는 자연의 통치자이다(8:5-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인간은 위대해질 대로 위대해집니다. 시편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 내용 중에서 우리는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본 부분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어떤 부분들은 예수님의 인 성과 연관하여 신약에 인용된 것도 있습니다(예:히2:6-8). 열등의식으로 고생하거나, 자손감이 손 상되어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낮게 보는 사람이 시편을 깊이 묵상하고, 시편 기자의 신학을 터득 하게 되면 그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추천하는 이유도 아마 이런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5절 이하에서 인간에 대한 신비성과 존엄성의 극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를 천사(히브리 원본-엘로힘'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 나이다 (5절). 우리말 뿐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70인경 또는 흠정역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천사 보다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으나 루폴이라는 주석가는 히브리어에 엘로힘 곧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이 너무 엄청난 사실이므로초기 변역가들이 천사 로 격하시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타당한 것은 신학적으로 보아 히1:14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의 위치를 구속받은 성도의 위치보다 낮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잠깐동안 우리가 천사보다 어떤 면에 있 어서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천사들의 섬김을 받을 존재들입니다. 천사도 친히 말하기를 계22:9절에 요한이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을 때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고 했습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얼마나 높게 보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보다 못하게 보신다고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상태대로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타락해서 원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손치더라도 재창조된 우리로서 그 존엄성의 상당 부분이 회복되었다고 볼 때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사람위에는 오직 하나님만 계실 뿐입니다. 자연과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6-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부분들을 하나님 대신 다스려서 하나님의 온 피조물계에 이루어지 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성경의 하나님만이 인간이 경배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나머 지는 인간이 다스려야 할 대상이지 숭배하거나 섬길 대상은 못되는 것입니다. 돈도, 부귀도, 명예 도 모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다스려야 할 대상이지 인간들보다 위에 놓아서는 안 될 것들입니다. 라.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사람의 큰 의무이다(8:9). 얼추 보기에는 우리는 9절이 1절의 반복인 것같이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1절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9절에서 그는 더 깊이 감동되어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어떤 가치를 부여했는가를 생각한 후에 9절이 되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가슴 깊이까지 감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우리는 다시 한번 성서적인 인간관을 회복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산업사회로 치닫는 세계는 인간을 경시하는 풍조를 조성하기 마련인데, 심지어는 교회 지도자들까지도 이런 가치관에 물들어가고 있는 것 같 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인간들을 세상이 악용하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회에서까지 그 렇게 해서야 되겠는가 말입니다. 성경적인 인간관을 갖지 않는 한 성경이 말씀하는 이상적인 부부 관계나, 고용 관계나, 부모와 자 녀 관계를 갖는 것은 요원(아득하게 멂)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참으로 존귀한 존재 로 지음받은 인간에 대한 성서적 인간관이 없이는 그 누구도 휼륭한 스승이나 훌륭한 스승이나 훌륭한 학생, 훌륭한 정치가 또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주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모두가 완전한 성서적 인간관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가운데 인간을 봄으로써 성서적인 인간관을 갖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운동 을 각 분야에서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하늘과 온땅에 가득한 영광에 동참하라고 하시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본 분을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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