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여호와의 손길 (시3:1-8)
본문
인도네시아 부흥사 중의 한 사람인 팍 옥타비아누스 목사는 신앙생활을 등산하는 비유하여 다음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처음 신앙을 얻을 때를 산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으로 비유했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이 깊어지는 상태를 산 중턱에 오른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신앙을 위해 고난을 경험하는 사람을 산 정상에 오른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이런 비유가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고난을 통과한 사람은 그 신앙의 깊이가 다릅니다. 신앙은 역시 온실 안에서는 자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실제로 고난 이 다가왔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회를 사용하셔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더 깊게 해주실 것을 아는 사람들까지도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편 3편에서는 이와 같이 고난을 당하여 괴로워하는 저자의 마음을 밝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듯 합니다. 저자를 다윗으로 볼 때, 아마도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어 괴로움을 당할 때 이 시편을 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2절에서는 다윗을 둘러싼 적이 많은 것을 강조했는데, 많은 이란 말이 두 절 중에 세 번이나 나 오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우리가 좋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우리 주변 에 있는 것같다가도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다시 보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고 오히려 대적하는 사람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가 쉽습니다. 다윗에게서 가장 치욕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 라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아무런 괴로움을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여려번 경험했고 어려움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경혐한 사람이었다. 목동으로 아버지의 양을 돌볼 때 갑자기 나타난 사자의를 맨주먹으로 때려 잡았다.(삼상17:36,37) 불러셋 족속의 장수인 골리앗을 돌 다섯개 준비하여 가서 골리앗을 이긴 승리의 경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다윗에게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엊지 못한다고 한 말은 가장 큰 타격이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이사야 1:2,3에서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라고 말씀하시듯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또 죄를 숨기고 회개하지 않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시66편18에 내가 내 마음 속에 죄악을 품으 면 주께서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하셨듯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윗은 이 경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두가지 방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듣고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을 때도 있고 또 하나는, 이런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말보다도, 환경보다도, 사람의 논리보다도, 하나님의 긍휼을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되도록 사람의 말을 듣고 실망하고 죄절하고 스스로 포기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듣지 말고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비참하게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께만은 있는 그대로 나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42장3절에서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껴져가는 등불을 끄 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배플 것이며.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럼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는 것인가 가,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2절 내용과 3절 내용은 아주 대조적입니다. 2절에는 많은 사람의 의견이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의견은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강한 부정과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시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방패는 주로 나무를 깍아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깍은 나무 위에 가죽을 씌웠습니다. 그 다음 기름을 발라 그 가죽을 팽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방패는 군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적 군의 화살이나 창이나 칼을 막는 데 썼던 것입니다. 이런 방패는 사실상 언제 어디서 날아올 줄 모르는 적의 화살을 모두 막아 주기에는 너무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가 나의 방패라고 생각했을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여호와가 내 방패 라고 생각할 때 그 어떤 적의 무기도 나를 해칠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고난 받는 한이 있 어도 실제적으로 여호와가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보장만 있다면 확실 할 것입니다. 이데 대해서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로마서 8:31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 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했고 바로 이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게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시니라 고 확신 시켜 줍니다.
2.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십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피해 도망하는 도중 말할 수 없는 굴욕을 경험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런 굴욕을 씻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분명히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세상 에 사는 도중에 다윗의 경우처럼 억울하게 굴욕적인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비록 즉각적인 명예 회복을 경험하지 못한다 해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기 때문에 회복 시켜 주실 것입니다.
3.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 머리를 든다는 것은 법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한 죄인이 억울하게 법정에 끌려 나와서 무고하게 수모를 당할 때 재판관이 무죄 를 선포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그 운명이 바 뀌게 됩니다. 이때 떨구었던 그의 머리를 든다는 푠현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다윗이애매히 게 당하는 곤경을 순식간에 바꾸실 수 있음을 다윗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애매하게 고난을 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으실 수가 있습니다. 아무런 발전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고난도 있고 어려움도 있으되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 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성숙을 경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한 번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게 되고 그런 사람은 무슨 희생을 치르 고서라도 하나님과 가진 깊은 관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나. 고난 중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3:4-6)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해도 하나님 편에서 실제로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의뢰하는 것이 헛것이 되고 맙니다. 시편 기자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있는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 까요
1.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4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가령 압살롬의 의도에 따라서 다윗 왕이 그 왕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처럼 불의가 의를 이긴 것처럼 보이는 때가 인간사 중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공의를 실현하실 것을 믿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시편 3 편의 이 경우는 좀 특이합니다. 압살롬이 승리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아브라함과 압살롬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으 세계라 로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의가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 있는 데까지는 갈 수 없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 가야 합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계시기 대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시편 기자의 평강과 확신의 기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완결된 말씀이 아니라 계속적인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되는 위협과 어려움 중에서도 시편 기자는 밤에 잠을 자며 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에 붙잡혀 있기만 하면, 비록 고난을 받는 한 이 있어도 안전하고, 평강이 있고, 보호 하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손 밖에 있다면 편안하고, 안전하고, 아무런 부족함 이 없는 곳에 있으면서도 잠을 아루지 못하고 고민하고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붙드심을 감사할 수 있기 를 바랍니다.
3.하나님께서 우리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습니다.(6절)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천만인이 더 우세하고 이긴다고 생각할 지라도 하나님께는 숫자적으로만 따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숫자로 이긴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났을 때 무엇부터 먼저 보는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 안 되면 결국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의뢰하지는 않는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찌라도 아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7,8절은 신앙을 집약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결론 현대인들에게는 이와 같은 신앙심이 너무 부족합니다. 모든 것이 이해타산적이고 과학적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갖는 믿음도 자신의 이성의 하나계를 초월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시편 기자의 시대처럼 지금도 군사가 일어나듯이 일어나셔서 우리에게 애매한 고난을 주는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데에는 최소한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언약적인 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여러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여호와께 우리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의 귀를 기울이기가 쉽습니다. 이 때에도 구원의 하나님께 귀를 기울려서 다윗처럼 8절의 말씀이 간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2절에서는 다윗을 둘러싼 적이 많은 것을 강조했는데, 많은 이란 말이 두 절 중에 세 번이나 나 오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우리가 좋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우리 주변 에 있는 것같다가도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다시 보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고 오히려 대적하는 사람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가 쉽습니다. 다윗에게서 가장 치욕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 라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아무런 괴로움을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여려번 경험했고 어려움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경혐한 사람이었다. 목동으로 아버지의 양을 돌볼 때 갑자기 나타난 사자의를 맨주먹으로 때려 잡았다.(삼상17:36,37) 불러셋 족속의 장수인 골리앗을 돌 다섯개 준비하여 가서 골리앗을 이긴 승리의 경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다윗에게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엊지 못한다고 한 말은 가장 큰 타격이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이사야 1:2,3에서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라고 말씀하시듯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또 죄를 숨기고 회개하지 않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시66편18에 내가 내 마음 속에 죄악을 품으 면 주께서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하셨듯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윗은 이 경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두가지 방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듣고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을 때도 있고 또 하나는, 이런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말보다도, 환경보다도, 사람의 논리보다도, 하나님의 긍휼을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되도록 사람의 말을 듣고 실망하고 죄절하고 스스로 포기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듣지 말고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비참하게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께만은 있는 그대로 나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42장3절에서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껴져가는 등불을 끄 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배플 것이며.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럼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는 것인가 가,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2절 내용과 3절 내용은 아주 대조적입니다. 2절에는 많은 사람의 의견이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의견은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강한 부정과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시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방패는 주로 나무를 깍아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깍은 나무 위에 가죽을 씌웠습니다. 그 다음 기름을 발라 그 가죽을 팽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방패는 군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적 군의 화살이나 창이나 칼을 막는 데 썼던 것입니다. 이런 방패는 사실상 언제 어디서 날아올 줄 모르는 적의 화살을 모두 막아 주기에는 너무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가 나의 방패라고 생각했을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여호와가 내 방패 라고 생각할 때 그 어떤 적의 무기도 나를 해칠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고난 받는 한이 있 어도 실제적으로 여호와가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보장만 있다면 확실 할 것입니다. 이데 대해서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로마서 8:31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 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했고 바로 이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게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시니라 고 확신 시켜 줍니다.
2.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십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피해 도망하는 도중 말할 수 없는 굴욕을 경험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런 굴욕을 씻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분명히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세상 에 사는 도중에 다윗의 경우처럼 억울하게 굴욕적인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비록 즉각적인 명예 회복을 경험하지 못한다 해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기 때문에 회복 시켜 주실 것입니다.
3.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 머리를 든다는 것은 법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한 죄인이 억울하게 법정에 끌려 나와서 무고하게 수모를 당할 때 재판관이 무죄 를 선포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그 운명이 바 뀌게 됩니다. 이때 떨구었던 그의 머리를 든다는 푠현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다윗이애매히 게 당하는 곤경을 순식간에 바꾸실 수 있음을 다윗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애매하게 고난을 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으실 수가 있습니다. 아무런 발전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고난도 있고 어려움도 있으되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 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성숙을 경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한 번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게 되고 그런 사람은 무슨 희생을 치르 고서라도 하나님과 가진 깊은 관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나. 고난 중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3:4-6)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해도 하나님 편에서 실제로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의뢰하는 것이 헛것이 되고 맙니다. 시편 기자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있는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 까요
1.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4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가령 압살롬의 의도에 따라서 다윗 왕이 그 왕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처럼 불의가 의를 이긴 것처럼 보이는 때가 인간사 중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공의를 실현하실 것을 믿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시편 3 편의 이 경우는 좀 특이합니다. 압살롬이 승리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아브라함과 압살롬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으 세계라 로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의가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 있는 데까지는 갈 수 없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 가야 합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계시기 대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시편 기자의 평강과 확신의 기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완결된 말씀이 아니라 계속적인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되는 위협과 어려움 중에서도 시편 기자는 밤에 잠을 자며 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에 붙잡혀 있기만 하면, 비록 고난을 받는 한 이 있어도 안전하고, 평강이 있고, 보호 하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손 밖에 있다면 편안하고, 안전하고, 아무런 부족함 이 없는 곳에 있으면서도 잠을 아루지 못하고 고민하고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붙드심을 감사할 수 있기 를 바랍니다.
3.하나님께서 우리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습니다.(6절)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천만인이 더 우세하고 이긴다고 생각할 지라도 하나님께는 숫자적으로만 따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숫자로 이긴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났을 때 무엇부터 먼저 보는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 안 되면 결국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의뢰하지는 않는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찌라도 아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7,8절은 신앙을 집약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결론 현대인들에게는 이와 같은 신앙심이 너무 부족합니다. 모든 것이 이해타산적이고 과학적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갖는 믿음도 자신의 이성의 하나계를 초월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시편 기자의 시대처럼 지금도 군사가 일어나듯이 일어나셔서 우리에게 애매한 고난을 주는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데에는 최소한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언약적인 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여러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여호와께 우리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의 귀를 기울이기가 쉽습니다. 이 때에도 구원의 하나님께 귀를 기울려서 다윗처럼 8절의 말씀이 간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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