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고 슬플 때 (시3:7-8)
본문
1.시편-탄식의 책 시편의 히브리어 본명은 테힐림(Tehillim)으로 "찬양들"이란 뜻이다. 이 말은 "찬양하다"를 뜻하는 동사 "할랄"(Halal)에서 나온 말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인 "할렐루야"(Hallelujah)와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말하 자면 시편은 "할렐루야" 책인 셈이다.
그런데 시편에는 어렇듯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시 보다는 개인과 백성의 슬픔과 괴로움, 불평과 낙망 등을 표현한 탄식 시가 더 많이 실려 있어 시편이 찬양의 책이라기 보다 오히려 탄식의 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시편의 삼분의 일이 넘는 60여 편이 이런 탄식의 시 들인데 그 중 50편 쯤은 개인의 탄식, 10편 쯤은 백성의 탄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도 다윗의 시편으로 표제가 붙여진 시들은 더욱 이러한 비통을 표현한 탄 식의 시 들임을 발견하게 된다.찬양의 책 시편에 이 무슨 이변인가 탄식 도 찬양이고 불평도 찬송이란 말인가 그러나 다윗의 파란 만장한 일생을 생각하고 또 우리 자신들이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쉽사리 그 까닭을 알게 된다. 즐거웠던 일 보다는 괴로웠던 일이 더 많았던 나날들이며, 모든 것이 흐믓하여 감사에 넘쳤던 회상보다는 아쉽고 괴롭고 답답하여 마음이 눌리고 상했던 회상이 압도하 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창세기 만큼이나 오래 된 시 문서로 알려진 욥기에서도 생생하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 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욥기14 장 1,2절). 이러한 회상은, 예전에는 드믈게 오래 살았을 나이인 고희(고 희)였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90편 10절). 울면서 태어 났다가 울음 소리를 들으며 죽어가는 인생의 시말(시말)을 생각할 때, 인간의 짙고 진한 공통적인 경험을 앙금으로 가라않힌 시편이 탄식으로 가득차 있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2.깊은데서 탄식하고 시편에서 우리는 우여 곡절이 많은 인생길의 깊은 골짜기와 한없이 빠져 들어가는 심연을 경험한다. 그리고 거기서 외롭게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하는 연약한 인간의 애소(애소)를 듣는다. 인생 바다의 깊은데 곧, 영혼의 해저 2만리(해저 2만리)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애가로 듣는 것이다. "여호와여 내기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시편130편 1,2절)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나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시편69편 1,2절) 짖눌려 터진 포도알에서 포도즙이 흘러 나오고 중압에 못 견뎌 으깨어진 감람 열매에서 감람유가 스며나오듯, 괴로운과 슬픔으로 상하고 터진 인간 의 심령에서는 탄식이 애가로 엉켜 나온다. 이것이 시편에 응고된 탄식시 의 앙금이다. 그러나 시편에 쓰여진 탄식의 시들은 통속 문학이나 세상에서 흔히 듣는 그런 넋두리가 아니고 들어줄 사람도 없는 끊없는장탄식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와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엄마가 있음 을 확신하고 고고(고고)하게 울어대는 고고지성(고고지성)과도 같다. 울음을 능사(눙사)로 삼아 만사를 해결하던 어린 아기는 걸음마를 배워 자립(자립)과 독보(독보)를 익히면서 울음의 횟수를 줄여간다. 그리고는 독립(독립)의 나이 성년에 이르면 자존심을 상할까봐 좀처럼 울지 않는 다 부진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어른도 울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어린 시절 처럼 엄마가 듣고 달려 오기만 하면 그쳐 지는 그런 울음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곧 시편에서 수 없이 불리 워진 "여호와", "나의 주" 그 "하나님" 만이 들으실 수 있는 그런 어른의 울부짖음을 우리는 시편의 탄식시에서 나의 것으로 공명하며 다시 듣게된다.
3.높은데서 찬양하고 다급해진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듯, 탄식시들은 대개 하나님을 찾는 애절한 호칭으로 시작된다. 그리고는 상심이나 불평, 탄식이나 원망이 뒤 따르는데 때로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시편42편,5,11절 참조), 혹은 자기 를 이 지경에 처하게 한 대적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기도 하며(시편42편 3절 참조), 직접 하나님께 불만과 원망을 터뜨리기도 한다(시편42편 9절 참조) 이렇게 시작된 불평이나 원망은 그것을 낱낱이 이해하고 분명히 들어주 실 하나님이 계심을 자각하면서 신뢰의 고백으로 바뀌고 어느 사이에 탄식 은 그치고 모든 것을 해결헤 주실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간절한 탄원 으로 바뀐다. 이렇게 실컷 마음을 토(토)하고 나면(시편62편 8절,142편2절 참조) 갑자기 근심과 불안은 사라져 가슴이 후련해지고 심령은 독수리의 날개를 단듯 짙은 구름을 둘고 치 솟는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어 현실이 달라지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숨 막히게 했던 탄원이 접수되어 우주의 재 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맡아 처리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는 송사(송사)이다. 깊은데 닻을 내린 심령은 동요를 그쳤고 마음은 찬양의 날개를 펴고 높 은데를 향하여 치 솟는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꿀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시편40편 2,3절)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지어다" (시편148편 1절) 이리하여 깊은데서의 탄식으로 시작된 시편의 탄식시들은 마침내 연약한 인간 자식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높은데서 부르는 찬 양으로 화하여 그 절정에 이른다. 골짜기가 깊으면 산도 높듯이, 고통과 슬픔이 깊을 수록 찬양도 높아진다. 이리하여 불평과 원망, 신음과 탄식 으로 점철되었던 시편은 마침내 마지막 일곱 편(144-150)에서 감사의 찬양 이 강세를 더해가며 고조되다가 마지막인 150편에 이르러서는 끝내 장엄한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의 폭족을 터뜨려 하늘과 땅을 온통 찬양의 불꽃으로 뒤덮는 벅찬 감격에 휩싸여 들어간다.
4.첫번째 탄식-자식 때문에 시편 1편에는 그토록 행복을 원하던 인간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여호와 의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사는데 있음을 깨우쳐주며, 이어 2편에 서는 마침내 죄의 통찰을 끝내시고 평화로 다스리시며 행복을 가져다 주실 왕이신 메시아를 소개한다.시편은 이제 3편부터 17편(8,9,15편 제외)까지 깊은데서 탄식하며 도움을 호소하는 인간들의 탄원을 접수하기 시작한다. 첫번째 탄식시의 사연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배역한 자식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갈등을 겪는 다정 다감한 아버지의 탄식이다. 인륜 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대적하여 반역의 칼을 뺀 탕아 압살롬과 변절한 신 민(신민)들로 졸지에 홍수처럼 불어난 반군을 피하여 경황없이 피난길에 오른, 노년에 접어든 무력한 왕 아버지의 처절한 탄식이다. 그것이 시편 3 편의 표제에 나타난 사연이다. 20마일 밖 헤브론에서 살기 등등한 아들 압살롬이 부왕을 무찌르기 위해 진군을 서두르는 동안 정든 예루살렘 궁전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넌 "다 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사무엘하15장 30 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도망의 비탄과 피로에 시달리며 다윗과 그의 일행은 몇 시간 쉬어 가기 위해 요단강 가에 머물렀다.그러나 즉시 도망하라고 청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어둠 속에서 남녀와 어린 아이들 일행은 깊고 물살이 빠른 강목을 건 너지 않으면 안되었다. 반역한 아들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하기 때문이었다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한자가 없었더라"(사무엘하17장22절) 자기 몸에서 낳은 자식이 원수가 되어 대세를 따라 재빨리 마음을 바꾼 다수의 신민을 이끌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추격해 오는 이 참담한 시간, 다윗의 심령은 깊은데서 탄식한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시편 3편 1,2절)
5.저녁에는 울음이, 아침에는 노래가 그러나 이러한 기막힌 시련,견딜 수 없는 고통이 "소시(소시)부터 곤란 을 당하여 즉게 되었"(시편88편15절)으나 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지해 온 다윗의 철석 같은 믿음을 부수지는 못하였다. 참으로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시편129편2절) 소시로부터 한 번도 자신을 잊거나 버리지 아니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암담한 시간, 애처럽게 도우심을 간구하는 자신을 변덕스런 인간처럼 버리실 리가 없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시편 3 편 3,4절) 그렇다! 풍전 등화와 같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나의 방패이신 여호와, 모욕과 수치와 절망으로 땅에닿도록 수그러진 나의 머리를 다시 들게하여 영광를 되 찾아 주실 나의 하나님, 그분께 나는 탄원할 것이요 그 응답은 언제나 확실하다. 갑자기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확신이 마음을 채웠다. 이렇게 불확실 한 미래가 희망으로 밝아지자 마음은 한 없이 평안해 졌다. 불안이 가시자 몰려오는 피곤과 함께 잠이 쏟아졌다. 피난길의 잠은 한 없이 달았다. 위 험한 피난길의 노숙으로 잠시 눈 붙인 것이지만 평안한 단 잠이었다. "내가 누워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 (시편 3 편 5,6절) 단잠은 아무나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밤마다 수면제를 복용하고도 잠 못이루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편127편 2절) 다윗은 곤란과 번민 중에서도 단잠을 자는 비결을 알았다. 그는 그것을 "여호와게서 나를 붙드심"이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두렵던 많은 대적, 몰 려오는 반군들이 이제는 겁나지 않았다. 한분 하나님이 그에게는 다수였으 므로 그를 둘러 치려는 인간의 다수인 천만인이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워 하소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백성에게 내리소서" (시편 3편 7,8절) 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답답한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다윗의 아침 기도는 얼마나 신선하고 고무적인가 다윗의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셔서 우리의 탄원을 들으시니 우리도 다윗처럼 아침의 탄원을 드리 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편30편5절)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생애로 보증한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편에는 어렇듯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시 보다는 개인과 백성의 슬픔과 괴로움, 불평과 낙망 등을 표현한 탄식 시가 더 많이 실려 있어 시편이 찬양의 책이라기 보다 오히려 탄식의 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시편의 삼분의 일이 넘는 60여 편이 이런 탄식의 시 들인데 그 중 50편 쯤은 개인의 탄식, 10편 쯤은 백성의 탄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도 다윗의 시편으로 표제가 붙여진 시들은 더욱 이러한 비통을 표현한 탄 식의 시 들임을 발견하게 된다.찬양의 책 시편에 이 무슨 이변인가 탄식 도 찬양이고 불평도 찬송이란 말인가 그러나 다윗의 파란 만장한 일생을 생각하고 또 우리 자신들이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쉽사리 그 까닭을 알게 된다. 즐거웠던 일 보다는 괴로웠던 일이 더 많았던 나날들이며, 모든 것이 흐믓하여 감사에 넘쳤던 회상보다는 아쉽고 괴롭고 답답하여 마음이 눌리고 상했던 회상이 압도하 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창세기 만큼이나 오래 된 시 문서로 알려진 욥기에서도 생생하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 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욥기14 장 1,2절). 이러한 회상은, 예전에는 드믈게 오래 살았을 나이인 고희(고 희)였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90편 10절). 울면서 태어 났다가 울음 소리를 들으며 죽어가는 인생의 시말(시말)을 생각할 때, 인간의 짙고 진한 공통적인 경험을 앙금으로 가라않힌 시편이 탄식으로 가득차 있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2.깊은데서 탄식하고 시편에서 우리는 우여 곡절이 많은 인생길의 깊은 골짜기와 한없이 빠져 들어가는 심연을 경험한다. 그리고 거기서 외롭게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하는 연약한 인간의 애소(애소)를 듣는다. 인생 바다의 깊은데 곧, 영혼의 해저 2만리(해저 2만리)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애가로 듣는 것이다. "여호와여 내기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시편130편 1,2절)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나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시편69편 1,2절) 짖눌려 터진 포도알에서 포도즙이 흘러 나오고 중압에 못 견뎌 으깨어진 감람 열매에서 감람유가 스며나오듯, 괴로운과 슬픔으로 상하고 터진 인간 의 심령에서는 탄식이 애가로 엉켜 나온다. 이것이 시편에 응고된 탄식시 의 앙금이다. 그러나 시편에 쓰여진 탄식의 시들은 통속 문학이나 세상에서 흔히 듣는 그런 넋두리가 아니고 들어줄 사람도 없는 끊없는장탄식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와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엄마가 있음 을 확신하고 고고(고고)하게 울어대는 고고지성(고고지성)과도 같다. 울음을 능사(눙사)로 삼아 만사를 해결하던 어린 아기는 걸음마를 배워 자립(자립)과 독보(독보)를 익히면서 울음의 횟수를 줄여간다. 그리고는 독립(독립)의 나이 성년에 이르면 자존심을 상할까봐 좀처럼 울지 않는 다 부진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어른도 울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어린 시절 처럼 엄마가 듣고 달려 오기만 하면 그쳐 지는 그런 울음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곧 시편에서 수 없이 불리 워진 "여호와", "나의 주" 그 "하나님" 만이 들으실 수 있는 그런 어른의 울부짖음을 우리는 시편의 탄식시에서 나의 것으로 공명하며 다시 듣게된다.
3.높은데서 찬양하고 다급해진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듯, 탄식시들은 대개 하나님을 찾는 애절한 호칭으로 시작된다. 그리고는 상심이나 불평, 탄식이나 원망이 뒤 따르는데 때로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시편42편,5,11절 참조), 혹은 자기 를 이 지경에 처하게 한 대적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기도 하며(시편42편 3절 참조), 직접 하나님께 불만과 원망을 터뜨리기도 한다(시편42편 9절 참조) 이렇게 시작된 불평이나 원망은 그것을 낱낱이 이해하고 분명히 들어주 실 하나님이 계심을 자각하면서 신뢰의 고백으로 바뀌고 어느 사이에 탄식 은 그치고 모든 것을 해결헤 주실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간절한 탄원 으로 바뀐다. 이렇게 실컷 마음을 토(토)하고 나면(시편62편 8절,142편2절 참조) 갑자기 근심과 불안은 사라져 가슴이 후련해지고 심령은 독수리의 날개를 단듯 짙은 구름을 둘고 치 솟는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어 현실이 달라지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숨 막히게 했던 탄원이 접수되어 우주의 재 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맡아 처리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는 송사(송사)이다. 깊은데 닻을 내린 심령은 동요를 그쳤고 마음은 찬양의 날개를 펴고 높 은데를 향하여 치 솟는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꿀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시편40편 2,3절)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지어다" (시편148편 1절) 이리하여 깊은데서의 탄식으로 시작된 시편의 탄식시들은 마침내 연약한 인간 자식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높은데서 부르는 찬 양으로 화하여 그 절정에 이른다. 골짜기가 깊으면 산도 높듯이, 고통과 슬픔이 깊을 수록 찬양도 높아진다. 이리하여 불평과 원망, 신음과 탄식 으로 점철되었던 시편은 마침내 마지막 일곱 편(144-150)에서 감사의 찬양 이 강세를 더해가며 고조되다가 마지막인 150편에 이르러서는 끝내 장엄한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의 폭족을 터뜨려 하늘과 땅을 온통 찬양의 불꽃으로 뒤덮는 벅찬 감격에 휩싸여 들어간다.
4.첫번째 탄식-자식 때문에 시편 1편에는 그토록 행복을 원하던 인간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여호와 의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사는데 있음을 깨우쳐주며, 이어 2편에 서는 마침내 죄의 통찰을 끝내시고 평화로 다스리시며 행복을 가져다 주실 왕이신 메시아를 소개한다.시편은 이제 3편부터 17편(8,9,15편 제외)까지 깊은데서 탄식하며 도움을 호소하는 인간들의 탄원을 접수하기 시작한다. 첫번째 탄식시의 사연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배역한 자식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갈등을 겪는 다정 다감한 아버지의 탄식이다. 인륜 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대적하여 반역의 칼을 뺀 탕아 압살롬과 변절한 신 민(신민)들로 졸지에 홍수처럼 불어난 반군을 피하여 경황없이 피난길에 오른, 노년에 접어든 무력한 왕 아버지의 처절한 탄식이다. 그것이 시편 3 편의 표제에 나타난 사연이다. 20마일 밖 헤브론에서 살기 등등한 아들 압살롬이 부왕을 무찌르기 위해 진군을 서두르는 동안 정든 예루살렘 궁전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넌 "다 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사무엘하15장 30 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도망의 비탄과 피로에 시달리며 다윗과 그의 일행은 몇 시간 쉬어 가기 위해 요단강 가에 머물렀다.그러나 즉시 도망하라고 청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어둠 속에서 남녀와 어린 아이들 일행은 깊고 물살이 빠른 강목을 건 너지 않으면 안되었다. 반역한 아들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하기 때문이었다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한자가 없었더라"(사무엘하17장22절) 자기 몸에서 낳은 자식이 원수가 되어 대세를 따라 재빨리 마음을 바꾼 다수의 신민을 이끌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추격해 오는 이 참담한 시간, 다윗의 심령은 깊은데서 탄식한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시편 3편 1,2절)
5.저녁에는 울음이, 아침에는 노래가 그러나 이러한 기막힌 시련,견딜 수 없는 고통이 "소시(소시)부터 곤란 을 당하여 즉게 되었"(시편88편15절)으나 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지해 온 다윗의 철석 같은 믿음을 부수지는 못하였다. 참으로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시편129편2절) 소시로부터 한 번도 자신을 잊거나 버리지 아니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암담한 시간, 애처럽게 도우심을 간구하는 자신을 변덕스런 인간처럼 버리실 리가 없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시편 3 편 3,4절) 그렇다! 풍전 등화와 같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나의 방패이신 여호와, 모욕과 수치와 절망으로 땅에닿도록 수그러진 나의 머리를 다시 들게하여 영광를 되 찾아 주실 나의 하나님, 그분께 나는 탄원할 것이요 그 응답은 언제나 확실하다. 갑자기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확신이 마음을 채웠다. 이렇게 불확실 한 미래가 희망으로 밝아지자 마음은 한 없이 평안해 졌다. 불안이 가시자 몰려오는 피곤과 함께 잠이 쏟아졌다. 피난길의 잠은 한 없이 달았다. 위 험한 피난길의 노숙으로 잠시 눈 붙인 것이지만 평안한 단 잠이었다. "내가 누워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 (시편 3 편 5,6절) 단잠은 아무나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밤마다 수면제를 복용하고도 잠 못이루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편127편 2절) 다윗은 곤란과 번민 중에서도 단잠을 자는 비결을 알았다. 그는 그것을 "여호와게서 나를 붙드심"이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두렵던 많은 대적, 몰 려오는 반군들이 이제는 겁나지 않았다. 한분 하나님이 그에게는 다수였으 므로 그를 둘러 치려는 인간의 다수인 천만인이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워 하소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백성에게 내리소서" (시편 3편 7,8절) 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답답한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다윗의 아침 기도는 얼마나 신선하고 고무적인가 다윗의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셔서 우리의 탄원을 들으시니 우리도 다윗처럼 아침의 탄원을 드리 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편30편5절)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생애로 보증한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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