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깨었으니 (시3:18)
본문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 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3:1-8 오늘 본문인 시편 제 3편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몸을 피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시편 전체에는 다윗의 생애 중 실제로 일 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지어진 시가 모두 14편이 있는데 (시
3, 7, 18, 30, 34, 51, 52, 54, 56, 57, 59, 60, 63, 142) 오늘 시편 제 3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평생을 영웅답게 살았던 다윗이 노년에 아들의 반역을 피해 도주해야 했던 심경을 단순히 그 아들이 밉다는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서 험난을 당한 성도의 후회와 간구가 뒤섞인 심정으로 생생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 시편이 단순한 비탄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한 승리의 확신으로 끝맺는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은 항상 하나님 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본문 가운데 5절 말씀인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 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겠읍니다. 자고 깨는 일은 사실 평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일이기에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자리에 들면 자게 되고 또 자 게 되면 다시 깨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일은 사실 시의 소제가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자고 깨는 일이 그저 평범한 일로 묵살되 어져 버릴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또는 전장터에서 긴장 속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때로는 자고 깨는 일이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리에 들어 자고 또 깬다고 하는 이 말 속에는 평범한 느낌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 자는 그 순간도 또 깨는 그 순간도 의미깊은 삶에 대한 감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는 것도 내가 건강해서가 아니고 깨는 것도 내 육 체적 조건이 그러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덕분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다윗은 본 시를 통해서 자신이 체험한 평범한 사건에서 얻은 감격을 노래함으로써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감격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로서는 깨 닫기 힘든 것입니다. 그저 날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까지도 상당히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그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를 염려해야 할만 큼 자기 생명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만큼 불안한 밤이었지만 하룻밤을 무사히 넘기고 또 다시 새 아침 을 맞이했을 때, 그 감격-그러한 위험한 순간을, 즉 자기 육체의 생명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오늘 이 시편의 자고 깬다는 이 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격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폐병에 걸려서 폐병 요양소에서 생활하면서 불안한 밤 과 낮을 보내고 있었는데 실제로 같은 환자들이 그렇게 불안한 밤을 맞이하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는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는 것을 보곤 했던 그 사람에게 있어서 자고 깨는 그런 평범한 일도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는 장엄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자고 깨는 일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사랑과 은총을 가지고 돌보아 주셔야만 날마다 남들처럼 똑같이 자고 깰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 시편의 다윗이 어떤 생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인지 구체 적으로 알기는 힘들지만 사무엘 하 15장에 있는 그대로,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황급히 왕궁과 수도 예루살렘을 피해갔을 때 다윗 은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갔다"(삼하15:30)고 할만큼 생명의 위기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왕궁을 빠져나온 다윗은 그날 요단을 건너 바후림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밤 사이에 추격병들이 따 라와서 찾았지만 다윗은 그 환란의 밤을 무사히 넘기게 되어 새 아침 을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순간들이 찾아왔던 밤을 지나 아침 을 맞이한 다윗이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다는 것 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편 제 3편을 어떤 사람들은 '탄식시', 또는 '고난시'라고도 부릅니다. 다윗이 겪는 고난은 '대적이 많고', 그를 '치는 자'가 많 기 때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환경이 문자 그대로 위기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생명을 앗아가기 위해 목숨을 노 리는 순간들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처럼 천만인이 둘러 서서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위험한 환경과 순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의 손이 있는 것을 노래 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사실, 위기에 대한 간증이 아니라 그 모든 위기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증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가 이 시를 '탄식시'나 '고난시'라 부르기 보다는 "의지의 시"라 부 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상은 위기와 불안에 대한 탄식이 아니 라, 생명의 위기가 순간 순간 닥쳐오는 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손길이 다윗의 목숨을 털끝만큼도 해치지 않도록 지켜 주심에 대한 신뢰감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이 본문 3절과 4절, 그리고 6절 하반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내가 자고 깨는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혹 우리 가운데 어떤 심각한 고통이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분이 있 으십니까 또는 죽음으로 몰고가는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분이 있으 십니까 우리 교회 성도 가운데 그런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우리는 어떠한 위험한 순간이라도 무사히 보낼 수 있습니다. 참된 안전은 물량적인 것에서나 군사적인 방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 심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제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확고한 믿음 가운데서 하루 하루 를 무사히 자고 깨는 복을 받고 있습니다. 자고 깨는 이 평범한 사실에서도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간증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3, 7, 18, 30, 34, 51, 52, 54, 56, 57, 59, 60, 63, 142) 오늘 시편 제 3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평생을 영웅답게 살았던 다윗이 노년에 아들의 반역을 피해 도주해야 했던 심경을 단순히 그 아들이 밉다는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서 험난을 당한 성도의 후회와 간구가 뒤섞인 심정으로 생생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 시편이 단순한 비탄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한 승리의 확신으로 끝맺는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은 항상 하나님 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본문 가운데 5절 말씀인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 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겠읍니다. 자고 깨는 일은 사실 평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일이기에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자리에 들면 자게 되고 또 자 게 되면 다시 깨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일은 사실 시의 소제가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자고 깨는 일이 그저 평범한 일로 묵살되 어져 버릴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또는 전장터에서 긴장 속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때로는 자고 깨는 일이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리에 들어 자고 또 깬다고 하는 이 말 속에는 평범한 느낌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 자는 그 순간도 또 깨는 그 순간도 의미깊은 삶에 대한 감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는 것도 내가 건강해서가 아니고 깨는 것도 내 육 체적 조건이 그러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덕분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다윗은 본 시를 통해서 자신이 체험한 평범한 사건에서 얻은 감격을 노래함으로써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감격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로서는 깨 닫기 힘든 것입니다. 그저 날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까지도 상당히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그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를 염려해야 할만 큼 자기 생명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만큼 불안한 밤이었지만 하룻밤을 무사히 넘기고 또 다시 새 아침 을 맞이했을 때, 그 감격-그러한 위험한 순간을, 즉 자기 육체의 생명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오늘 이 시편의 자고 깬다는 이 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격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폐병에 걸려서 폐병 요양소에서 생활하면서 불안한 밤 과 낮을 보내고 있었는데 실제로 같은 환자들이 그렇게 불안한 밤을 맞이하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는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는 것을 보곤 했던 그 사람에게 있어서 자고 깨는 그런 평범한 일도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는 장엄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자고 깨는 일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사랑과 은총을 가지고 돌보아 주셔야만 날마다 남들처럼 똑같이 자고 깰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 시편의 다윗이 어떤 생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인지 구체 적으로 알기는 힘들지만 사무엘 하 15장에 있는 그대로,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황급히 왕궁과 수도 예루살렘을 피해갔을 때 다윗 은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갔다"(삼하15:30)고 할만큼 생명의 위기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왕궁을 빠져나온 다윗은 그날 요단을 건너 바후림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밤 사이에 추격병들이 따 라와서 찾았지만 다윗은 그 환란의 밤을 무사히 넘기게 되어 새 아침 을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순간들이 찾아왔던 밤을 지나 아침 을 맞이한 다윗이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다는 것 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편 제 3편을 어떤 사람들은 '탄식시', 또는 '고난시'라고도 부릅니다. 다윗이 겪는 고난은 '대적이 많고', 그를 '치는 자'가 많 기 때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환경이 문자 그대로 위기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생명을 앗아가기 위해 목숨을 노 리는 순간들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처럼 천만인이 둘러 서서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위험한 환경과 순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의 손이 있는 것을 노래 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사실, 위기에 대한 간증이 아니라 그 모든 위기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증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가 이 시를 '탄식시'나 '고난시'라 부르기 보다는 "의지의 시"라 부 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상은 위기와 불안에 대한 탄식이 아니 라, 생명의 위기가 순간 순간 닥쳐오는 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손길이 다윗의 목숨을 털끝만큼도 해치지 않도록 지켜 주심에 대한 신뢰감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이 본문 3절과 4절, 그리고 6절 하반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내가 자고 깨는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혹 우리 가운데 어떤 심각한 고통이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분이 있 으십니까 또는 죽음으로 몰고가는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분이 있으 십니까 우리 교회 성도 가운데 그런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우리는 어떠한 위험한 순간이라도 무사히 보낼 수 있습니다. 참된 안전은 물량적인 것에서나 군사적인 방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 심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제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확고한 믿음 가운데서 하루 하루 를 무사히 자고 깨는 복을 받고 있습니다. 자고 깨는 이 평범한 사실에서도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간증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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