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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힘써 (벧후1:1-11)

본문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흩어져 있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한 일이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다. 3절-‘주셨으니’ 하나님은 주시기를 참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셔서 우리가 갖게 되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무엇을 주셨다고 말하는가 1생명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데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이 생명이 무엇인가 영생이다.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희생하셨다
2경건에 속한 모든 것 '경건'은 생명을 얻은자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적인 힘. 이것은 어떻게 주어졌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3큰 약속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은자가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질 약속을 말한다. 미래의 일들 즉 그리스도의 재림(3:4,9,12), 새 하늘과 땅(3:13)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11절)에 참여케 되는 것을 가리킨다.
4.절-하셨으니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자 되게 하심 왜 생명을 주셨습니까 왜 경건에 속한 모든 것, 영적인 힘, 은혜를 주셨습니까 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그것가지고 이땅에서 잘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적인 쾌락을 위하여 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엇이라 말합니까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이 말은 이 세상을 향한 정욕보다 더 좋은, 더 가치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영적인 힘이라는 것을, 약속이라는 것을 세상의 정욕을 얻게하는 것에 많이 치우쳐 왔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육신의 정욕, 세상의 것을 얻는데 얻게하는 힘으로 믿고, 의지하였던 것이 솔직한 우리의 심정이다. 여러분! 믿음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 속에 더덕더덕붙어 있는 옛사람, 옛자아, 옛습관, 옛 생활을 부수는 것이요, 떨어져 나가고, 새 살이 붙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것과 영생얻은자로 영적인 힘을 주시는 것,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에 대한 약속을 주신 것은 이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자” 신의 성품이란 신의 성품이란 그리도의 형상을 입는 것, 주님 닮는 것,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그리스도와 같은 생각을 하게되고,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러분과 저를 주님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이 그렇습니까 죄인된 내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의인이 된것입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모르던 나를 알게 하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즐거워 하고 있는 것 잠간 있다가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땅의 것 몇가지 얻고 만족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그것 얻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되어지기 위한것입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가진자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한것입니다. 육의 것이 아니라 영의것, 신령한 것을 가지고 살아 가게 하기 위한것입니다. 그 받은 것으로 족하지 않고, 그것을 삶에서 누리는 자 되어지라고 주셨습니다. 그러니 주신 것을 가지고 신의 성품에 참예한자 됩시다. 누리는자 됩시다.
1.‘이러므로’ 무슨 말입니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을 주셨고, 생명을 유지해 나갈수 있는 힘을 주셨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신의 성품에 참예한자 되었으니, 알았으니, 받았으니, 가졌으니라는 말이다. ‘더욱 힘써’
그러므로 더욱 힘써라. 이 말씀은 1하나님은 우리가 퇴보되거나,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받은 것을 족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안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것 가지고 족하게 하기 위하여서 그런 것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이 있는데 이것을 누리는 자 되어지게 하기 위하여 행하신 시작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힘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자라게 되어 있고,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더욱 힘써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자라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도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공이 집으로 가기 위하여 나룻배를 탓습니다. 배에 타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저쪽으로 다달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닿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에 타고만 있기 때문입니다. 밧줄을 풀고, 노를 저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고, 경건에 속한 것을 받고, 약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저 건너편으로 건너 갈수 있는 배에 탄것과 같습니다. 배에 탈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배에 탓으니 밧줄을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수 있습니다. 여러분! 고여 있는 물은 금방 썩게 마련입니다. 생명력이 없어 집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가지고 장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살아 있기 위해서 밧줄을 풀고 열심히 노를 저읍시다.
2받은 것을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고여 있는 그것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받는 즉시 없어 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없어지지 않도록 지속케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지속하려면 더욱힘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를 타서 밧줄을 끊었다 할지라도 노를 젓지 않으면 물살에 의해 떠내려 갈수 밖에 없습니다. 떠내려 가지 않으려면 노를 힘껏 저어야 합니다. 우리가 더욱힘쓰지 않으면 세상의 물결에 우리는 떠 내려 갈수 밖에 없습니다. 받은 은혜를 지속하는 비결은 노를 젖는 일입니다. 이것을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습니까 받은 은혜를 지속해 나가기 위하여 힘씁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까먹어 버립니다. 소멸되어 버립니다. 3주신 것을 통해서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그의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으려고 힘써 참여를 했더니 은혜가 내것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2시간반, 3시간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지만 참고 견디었더니 신령한 은혜가 내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 더욱 힘쓸때에 그 힘씀을 통하여 주의 일들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더욱 힘씁시다.
2.무엇을 힘써야 하겠습니까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공중에 반원을 그리는 신비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비온 후에 태양의 반대 편에 서기 때문도 아닙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일곱까지 색이 조화를 잘 이루어 화려한 색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 안에 화려한 일곱가지 무지개와 같은 믿음의 색깔을 지닐 때에 보배로운 믿음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5절에서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흡족하게 있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신앙이 되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8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화려한 일곱까지 믿음의 색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믿음에는 덕이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기서 덕이란 믿음의 적극적인 활동 가운데서 나타나는 거룩한 용기와 같은 믿음의 그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덕이 있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사람이 모여들고 가까이 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쉼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의 그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덕을 끼칠 수 없는 믿음은 부도덕한 믿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2덕은 지식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덕스러운 일은 한답시고 무대포로 또는 막무가내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식별을 할 수 있는 지식을 통해서 그 덕을 성장시켜 나가기 위해 믿음의 덕에는 영적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3덕과 지식의 연합은 언제나 절제력을 요구해 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절제치 못한다면 안됩니다. 믿음의 분수를 넘어서는 것은 자기과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롬12:6) 방언을 잘 해도 절제없이 행하면 안됩니다. 방언은 개인의 유익을 위하여 있는 것으로서 절제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14:4) 이 절제는 믿음보다 더 큰 과욕을 가질 때에 자신의 욕심을 주관하여 정욕으로 구하는 것을 피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4자기의 욕심을 다스릴 줄 아는 절제있는 믿음을 가진 자는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는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절제가 외적인 일이라면 인내는 내적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력이 없어서 응답을 받지 못하거나 실패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함을 알아야 합니다. 5경건이란 존경의 정신으로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경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자기 앞에 하나님을 두고 일하게 됩니다. 절대로 자기가 앞서지 않고 하나님을 앞세우며 그의 모든 노력이 하나님을 위하여 진행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데만 마음이 열리도록 해 줍니다. 6그러나 경건한 믿음이라고 해서 형제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1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믿음에는 형제우애가 따라야 할 것을 말합니다. 7마지막으로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의 역할을 하는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13:13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는 띠가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골로새서 3:14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힘썼더니 18절-‘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그리스도를 더 잘 알게되고, 열매맺게 된다.
210절-‘이것을 행한즉’-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함 311절-‘이같이 하면’-넉넉히 얻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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