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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힘쓰라 (히10:19-25)

본문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하나님께서 만사를 계획 속에서 진행하시는 데,그 계획 속에는 우리가 열심히 힘쓸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따라서 우리가 열심히 힘을 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와 같 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본분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오늘 본 문 속에서 이런 주제를 발견하게 됩니다.은혜를 많이 받은 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묵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눕시다.오늘의 말씀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우리가 더욱 힘쓰야 할 일이 무엇인지로 나누어 묵상하고자 합니다.
I.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객관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을 우리 앞에 열어 주셨 고 주관적으로는 그 새롭고 산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의 피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이 두 가지를 차례로 살펴봅시다.
(1).우리 앞에 열려진 새롭고 산 길 19절과 20절의 말씀을 봅시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 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얻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직접 열려 있지 못하고 제사장과 제물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그나마 성소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 어갈 수도 없었습니다.성소에는 일반 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었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오직 한 번을 들어가며 들어갈 때에는 피 없이는 못 했습니다.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를 가지고 손으로 짓지 아니 한 하늘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히 단번에 속죄를 완성하셨습니다.따라서 두번 다시 피를 뿌려 죄를 속하는 일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조석으로 드 리던 피의 제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는 두려움 없이 담대히 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그래서 19절의 접속사 [
그러므로]라는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바로 앞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구약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반복적 제사가 가능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속죄는 그렇게 반복적으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동정심 많은 위대한 대제사장,멜리세덱의 서열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제사장일 뿐 아니라 자신이 또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 입니다.자신이 제물이 되셨다면 한 번밖에 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만 죽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반복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죽음과 부활을 수없이 되풀이 해야만 할 것입니다.그래서 그리스도는 단 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바로 그 속죄에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 갈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담력도 받게 되었습니다.이 담력은 예수의 피에 서 나온 것입니다.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 을 열어놓게 하였습니다.이 길은 새로운 길이요 산 길입니다.이 '산 길'은 피 없이 지성소에 들어가도 죽지 않도록 생명이 보장된 생명의 길이며,짐 승의 피 없이도 속죄가 발효되는 유효한 길입니다.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을 만나도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을 누릴 수 있는 특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이 멋 있는 길을 닦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는 대가를 치루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 힐 때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둘로 찢어졌습니다.이것은 하나님 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터였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그 러니까 이 길은 피로써 닦은 길입니다.피는 생명입니다.피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그래서 이 길은 [산 길]입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2).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하심 21에서 22절을 봅시다."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객관적으로 우리 앞에 새롭게 산 길을 열어 놓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맘 에 확신을 주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것은 예루살렘 성문 밖 갈 보리에서지만 주님은 그 피를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셨습니다.그곳에서 하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쉬임없이 대속의 은혜를 내려주 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가 없습니다.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단번에 하늘 지성소에 피를 뿌렸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냥 빈손으로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그리스도의 피는 하늘 지성소에만 뿌려진 것이 아닙니다.우리 인간의 지성소인 마음에도 뿌린 것입니다.이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뿌림으로 양심이 변화되어 새롭 게 되었습니다.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게 되었습니다.이 씻음의 표현은 구약의 결례법으로,새롭게 된 성도들의 상태를 묘사합니다.그 씻음의 결과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의 상태를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은 그리스도께서 자 신의 피를 뿌려서 새롭고 산 길을 우리 앞에 다듬어 놓으셨을 뿐 아니라 그 새롭고 산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깨끗하고 새로운 양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새사람이 되게 했다는 말입니다.안팎으로 새롭게 했습니다.이런 은총을 입 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주제를 다음에서 묵상해 봅시다. 우리가 더욱 힘쓸 일은 무었인가
II.우리가 더욱 힘쓸 일들 우리가 힘쓸 일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인내를 가지고 소망 을 견고히 잡으며 서로 선행과 사랑을 격려하며 이를 위해서 열심히 모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차례로 묵상합시다.
(1).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힘쓰야 합니다 22절 하반절입니다."-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영생의 길을 닥아놓으심은 그 길로 걸어가도록 하 기 위함입니다.길을 닦는 이유는 그 길로 걸어가기 위해섭니다.하나님께서 직접 자기에게로 나아올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닥아 주셨으니 우리는 열심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 위해서 생명길을 닥아놓으 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그 길로 전진해야 합니다.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주는 것입니다.하늘 가는 새고속도 로,하늘의 하이웨이,이 길은 믿음이 있는 자만이 걸어갈 수 있습니다.이 편 과 저 편을 잇는 새로운 다리를 놓아주었지만 그 길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자는 건널 수 없었습니다.홍해가 이스라엘 앞에서 갈라졌을 때에 이스라엘 은 건넜습니다.믿음으로 건넜습니다.우리가 다 건너기까지는 절대로 이 물 이 다시 합하지 않을 것을 믿고 건넜습니다.그러나 바로의 군대는 믿음으로 건너지 않고 오직 복수심에 차서 그 홍해의 길,새로운 길,아무도 걸어가보 지 않은 그 길을 건너다가 홍해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하나님께서 열 어놓으신 새로운 길은 믿음으로만이 건널 수 있고 또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 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2).소망을 굳게 잡는 일에 힘쓰야 합니다 23절입니다."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 이지 않고 굳게 잡아"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를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거기로부터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내려주시기로 약속하였습니다.또 장차는 거기로부터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따라서 이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붙잡는 일에 힘쓰야 합니다.소망이란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것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흔들릴 수 있습니다.그래서 이 약속을 흔들림없이 굳게 잡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그렇게 붙잡고 나아가도 실패하지 않을 것은 이 약속을 주신 이는 미쁘시기 때문입니다.주님의 성실성,이것은 우리의 소망 의 닻과 같은 것입니다.
(3).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일에 힘쓰야 합니다 24절을 볼까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땅 위에서 이런 소망이 있는 자는 짧고도 허무한 이 세상의 것에 취해서 살지 않습니다.자기만 위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습니다.무엇이 보다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아는 것입니다.따라서 서로 돌아보면서 삽니다.서로 사랑하 면서 삽니다.선한 일을 격려하면서 삽니다.자기만 선행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여 선을 행하도록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우리는 이런 일 에 힘쓰야 합니다.하늘의 쌓아둔 더 나은 소망을 가진 자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속죄의 은총을 입은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 가고 인내로 소망을 굳게 잡고 사랑으로 서로 격려할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믿음의 전진,소망의 인내,사랑의 격려가 하나님의 구속의 특혜를 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본분이라고 본 것입니다.이 주제는 11,12,13장에 계속됩니다.11: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니"라고 시작합니다.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구름 같은 증인들을 든 것입니다.12: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그리스도의 인 내를 예로 들면서 영광의 그날까지 인내할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그리고 13:1,2절에서는 "형제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선행과 사랑의 격려인 것입니다.이와 같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더욱 힘쓰기 위해서는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이제 마지막으 로 이를 묵상하도록 합시다.
(4).모이는 일에 힘쓰야 합니다 25절의 말씀입니다."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와 같이 꿈이 있고 소망이 있는 자는 이 꿈을 가꾸기 위해서 서로 모 여서 격려하게 되는 것입니다.초대교회가 핍박에 직면했습니다.이 핍박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서로 모여서 격려해 줄 필요가 있 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을 싫어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굳이 모일 필요가 있는가 집에서 조용히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되었지 사람들 에게 들킬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여야 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조 용히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모이기를 싫어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모이기를 권하라고 했습니다.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신앙생활은 개인적인 문제 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문제입니다.개인의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따라서 모이지 않으면 신앙 성장이 기대할 수 없고,위험에 노출될 때에 그 위험을 극복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을 위 해서는 자꾸만 모여야 합니다.모이지 않고 신앙이 자라는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새롭고 산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또 그 새로운 길 로 걸어가기에 합당하도록 새사람이 되게 하고 새마음을 주셨습니다.새길은 새사람만이 것입니다.이와 같은 은혜를 입은 자는 더욱 열심을 내어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하나님의 신실성을 믿고 주신 약속을 굳게 잡는 일입니다.핍박 중에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여야 합니다.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천국은 모이는 자의 천국이지 혼자만의 천국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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