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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된 유다 민족의 원수들 (에9:1-32)

본문

유다 민족이 말살될 수도 있었던 아하수에로의 조서가 마침내 철회됨으로써 유다 민족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뒤 사건(8장)에 이어 부상에는 하만의 뜻을 같이 하 여 유다 민족을 학살하려던 원수들이 오히려 도륙되는 대역전의 역사가 소개된다. 본장에는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던 그 날에 오히려 유다 민족을 살해하려던 자들이 도륙되는 역사(1-16절)와 그 날을 기념하여 유다 민족의 승리의 기념일인 부림절로 제정되는 장면(17-32절)이 소개되고 있다. 이같은 역사의 대반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재림으로 이루어질 최후 심판날의 전경을 예표해 준다. 실로 최후 심판 때에는 이 땅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던 모는 성도들이 주 앞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고 즐거운 찬송을 부르는 대신 악인들은 처참한 멸망의 처소에서 슬피 이를 갈 것이 다(계19:1-20:15). 여기서 믿음의 교훈을 살펴 보도록 하자.
'본론'
1. 성도는 거룩하고 신령한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10, 16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대 학살일로 계획되었던 아달 월(유대력 12월 양력 2-3월) 13일을 기해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였습니다. 즉, 자신들을 죽이려는 주변 이방 족 속들을 맞이하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습니다. 물론 이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침략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생명을 해치리는 주변의 악한 이방인들 에 대한 방어 전쟁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유대인들은 오히려 악한 이방인들을 철 저하게 전멸하였습니다. 원래 이 날은 유대인들의 대학살일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이 날을 승리의 날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날 죽인 이방인들의 숫가 75 ,000명이나 되었습니다(16절).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이들의 재산에는 일체 손을 대 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로 이미 본분에서 두 차례(10, 16절)에 걸쳐 강조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즉 유대인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단지 남 의 개산을 약탈하기 위한 세속적 침략 전쟁이 아님을 분명하게 깨우쳐 주기 위함 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싸워야 할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엡 6:12). 그러기에 우리 성도의 싸움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세상적인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비난하고 성도들의 성결한 삶을 파괴하는 악하고 더러운 사단의 세력들을 상대하여 거룩하고 신령한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것 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런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부름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요, 십자가 군병임을 잊지 맙시다.
2. 악의 근원은 철저히 뿌리뽑아야 합니다(13절). 유대인늘은 아달 월 13일을 택해 자신들을 죽이려던 악한 이방 족속들에게 대대 적인 반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방 족속들을 죽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단지 아달 월 13일 하루 농안에만 허락되었습니다. 이제 이 날이 지나가면 유대인들은 자위권 발동이 금지돼고 다시 악한 이방인들로부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당부하여 유대인들에게 자위권 발 동을 허락한 날을 하루 더 연장시켜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에스더 의 이같은 당부는 마치 피에 굶주린 마녀와 같은 잔혹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차제에 유대인들은 대적들을 완전히 진멸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 제 또다시 원수들로 말미암아 지금과 같은 대학살의 음모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노 릇이었습니다. 에스더가 유대인 자위권 발동을 하루 더 연장토록 당부한 이유가 바 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실로 악은 철저히 진멸하여 뿌리를 뽑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악과는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악과는 다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당장에 그 자리에서 악은 철거히 진멸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이 순결하고 성결한 삶을 보장하는 유일할 비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강 한 어조로 명령하였던 것입니다(살건 5:22).
3.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자비와 자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22절). 민족이 완전히 멸절될 것같은 위기에서 벗어난 유대인들우 이 날을 부림절이라 명명하고 큰 기념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부림절 이틀 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날에는 서로에게 선물을 하며, 또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실로 일순간에 전 민족 이 멸절되기 직전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생명을 건짐받고 구원의 은혜를 입 었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겠습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기쁨과 즐거움을 온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웃에게 선물도하고 또 가난한 자들은 구제하였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환희의 날이 되었으니 아마 강제로 입을 막는다 한들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그 기쁨의 외침을 어찌 막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실로 주 안에서 구천한 은총을 입은 자의 삶이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 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값없이 돈없이 그저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니 그 기쁨과 구원의 복된 소식을 어찌 외치고 부르 짖으며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히 누가 이런 기쁨의 참된 소식을 방해하며 가로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의 날을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이 기쁨의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 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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