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는 사람들 (시146:1-10)
본문
한국미와 서양미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곡선과 직선 의 차이일 것입니다. 미술의 경우를 보면 한국화는 대부분 곡선처리가 많고, 서양화는 직선처리가 많습니다. 음악의 경우도 한국음악은 그 리듬이 퉁소 나 가야금을 뜯는 곡선음악인데 반대 서양음악 은 트럼을 불고 팀파 니를 두들기는 직선적 기법을 동월하고 있습니다. 건축의 경우도 한국건축은 지 처마 등이 곡선으로 처리되는가 하 면 서양건축은 직선처리 공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의상의 경 우를 보더라도 한복은 싸매고 졸라매는 은폐식 복식을 강 조하는가 하면 양장은 선이 곧을 뿐만 아 니라 과감한 노출도 허용되 고 있습니다. 감정 표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한국사람은 좀처럼 자신의 희노애 락에 얽힌 감정을 노출시키려 들지 않습니다. 슬픔도 울음도 참아야 하고 음식상 앞에서는 다 소곳하게 먹는데만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떠들면 안됩니다. 배가 고파도 상대편에서 '진지 드셨습 니까'라고 물 으면 '예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전혀 그런게 없습니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이야기합니다. 자 기 감 정이나 의사표시를 직설적으로 해 버럽니다. 목사님들이 모인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인간관계 훈련세 미나였습니다. 그날 밤 각각 방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전화를 걸어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된다는 숙제를 받고 각 방으로 헤어졌습니다. 차 례대로 집에 전화를 걸어 '여보 사랑해'라는 고백을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경상도에서 을라온 나이든 목사님 차줴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난 못한다. 난 안한다'라면서 전화거는 것을 주저하자 다른 목사님이 수화기를 빼앗아 다이얼을 돌린 후 수화 기를 주면서 어서 빨 리 사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재촉 했습니다. 마지못해 수 화기를 받 아든 목사님이 수화기에 대고 한참 뜸을 드리더니 '여보 나 다 사-찰 잘 있나'라고 헤서 한바탕 웃 음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표현도 은유적이고 은근하게 합니다 그러나 한국식 감정표현이 늘 아름답고 매력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의 경우는 그 표현이 명확하고 분명 해야 합니다. 더우기 찬양의 경우는 가락과 곡조에 담은 신앙고백이 기 때문에 그 표현과 태도가 확실해야 합니다. 시편 146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할렐루야 시 가운데 한편입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와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영흔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할렐루야 내 영흔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세속음악과의 차이점 입니다. 세속음악은 그 대상이 사람입니다. 트롯트, 발라드, 팝, 록, 댄스뮤직 등 그 장르가 여러가지 입니다만 그 대상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듣기 고 부르기 편한 것이 대증음악 입니다. 그러나 제아무 리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노래라도 lo년이 나 20년을 유행하진 못합니다. 글자 그대로 유행하다 지는 것이 세속 음악입니다. 세속음악은 영혼을 위한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그 노래를 듣고 강 도가 회개했다든지 깡패가 회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찬송은 전척 그 장르가 다릅니다 대 상이 하나님입니다. 그 리고 영흔으로 불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찬송은 입술의 노래가 아니라 영 흔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찬송 때문에 영흔에 변화가 일어나고 감동이 넘치게니다. 한마디로 찬송은 신령한 노래인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연주기법에 앞서 그 영흔의 건강상태가 더 증요합니다. 저는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김일성노래를 부르는 북한 소년들의 모 습을 지켜본 일이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모습이 마치 신 들린 표정이었습니다. 하나님 찬양을 거기에 비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만 그 태도보다 천만배 더 진실하고 감격적이어야 합니다 찬송가 18장을 보면 '내 영흔아 곧 캐어 주 찬양하여라고 했고 19 장을 보면 '내 영흔아 찬양하라 주님 에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해야 합니다
2. 생전에 찬앙해야 함니다. 2절을 보면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본절의 뜻은 살아있는 동안, 내가 숨쉬는 동안 그리고 일생동안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앞 에서 말씀드린 대로 세상노래는 그 수명이 그다지 길지 못합니다. 이미자씨가 부른 '동백 아가씨'는 가장 그 수명이 긴 노래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정규씨가 부른 '두만강 푸른 믈에'도 명 이 긴 노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노래들은 나이든 을드 팬들에 의 해 지금껏 애창될 뿐이지 프세대 나 신세대들은 동백 아가씨나 두만강 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별 인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일과성 유행가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됩니다. 일생동안,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지상 에서 영원까지 블러야 할 노래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전에J '평생에'라는 것입니다. 소리지를 수 있을 때 소리질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펀강할 때,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노래합시다. 함께 찬송 부를 때 콧노로 흥얼거리지 맙시다. 5년 전 미국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 하는데 설교 후 특별 찬송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찬송할 사람을 소개하는데 깜 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1960년대 한국성악계를 주름잡던 유명한 여자 교수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피아노를 한손으로 짚고 서서 '거룩한 성'을 부르던 감동적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반주자의 전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60 년대 초에 나를 감동시켰 던 '거룩한 성'이었습니다. 드디어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떻게 못할 수가 없었기 때 문입니다. 물론 제 귀가 6o년대 초보 다는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했겠 지만 형편없는 노래였습니다. 나증에 안 일입니다만 나이가 0이 지 났고 몸이 아파 전척 노래를 부르지 못했는데 집회 참석하고 은혜받 은 간증으로 찬송을 부르게 됐 다는 것이었습니다 힘있고 감동적인 찬송은 그 사람의 건강과 비례합니다. 영흔과 육 신이 함께 건강 하면 찬송이 힘있고 기찹니다. 그러나 영육이 허약 하고 병들면 찬송소리 역시 무기력하게 됩니다. 사는 동안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하나님 찬양에 최선을 다합시다.
3. 하나님깨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6절을 보면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S절을 보면 '도울 힘이 없는 방백도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고 했 고 4절을 보면 '그 호흡이 끊 어지면 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작년 월 화양동에 있는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조용 필 의 '미지의 세계'를 부르자 두 사람이 일어나 흥에 겨워 춤을 추었습니다. 마침 단속차 나온 구 청단속반이 그 모습을 보고 단속규정 위반 으로 입건했고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춤추면 안되는 규 정을 무시하고 춤추는 손님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주인은 서울 고법에 영업정지 처분 취소 소송을 냈습니다. 법의 판결은 '단속규정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공간에 서 손님이 흥에 겨워 춤추는 일이 영업 행태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 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흥에 겨워 추는 춤은 죄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린 지금 세상노래의 홍수 속에는 것을 보면 제정신이 아닙니다. 거기 비해 우리가 부르는 찬송의 태도와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사람들의 찬송소리, 찬송태도는 이대로 괜찮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살 길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 로 그 사실을 가사에 담고 곡 조에 실어 부르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에 최선을 다합시다.
4.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l0절을 보면 시온아 네 하나님은 영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네로도, 뭇솔 리니도, 히틀러도, 스탈린도, 진시황제도 죽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월한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월히 존재하십니다. 그러니까 찬양도 영원히 계속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군데군데 찬송이 나오고 있습니다. 천사 들이 찬송하는가 하면 네 생물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가 하면 14만 4천인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관한 예언입니다. 우 린 그 곳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찬양하는 공동체입니다. 사실상 서양음악의 모체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아니였으면 지금처럼 세계음악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찬송이 성해야 합니다. 기독교 가정 역시 찬송이 성해 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죽음과 함께 증 단니다. 그것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증단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모든 피조물 에게 주신 하나님 의 명령입니다. 열심으로 찬양합시다. 정성껏 찬양합시다. 힘껏 찬양합시다. 찬송이 넘치는 가정, 교회가 되게 합시다. 찬송을 많이 부릅시다 찬송을 많이 들읍시다. 찬송에 최선을 다합시다 아멘
1. 영흔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할렐루야 내 영흔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세속음악과의 차이점 입니다. 세속음악은 그 대상이 사람입니다. 트롯트, 발라드, 팝, 록, 댄스뮤직 등 그 장르가 여러가지 입니다만 그 대상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듣기 고 부르기 편한 것이 대증음악 입니다. 그러나 제아무 리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노래라도 lo년이 나 20년을 유행하진 못합니다. 글자 그대로 유행하다 지는 것이 세속 음악입니다. 세속음악은 영혼을 위한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그 노래를 듣고 강 도가 회개했다든지 깡패가 회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찬송은 전척 그 장르가 다릅니다 대 상이 하나님입니다. 그 리고 영흔으로 불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찬송은 입술의 노래가 아니라 영 흔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찬송 때문에 영흔에 변화가 일어나고 감동이 넘치게니다. 한마디로 찬송은 신령한 노래인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연주기법에 앞서 그 영흔의 건강상태가 더 증요합니다. 저는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김일성노래를 부르는 북한 소년들의 모 습을 지켜본 일이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모습이 마치 신 들린 표정이었습니다. 하나님 찬양을 거기에 비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만 그 태도보다 천만배 더 진실하고 감격적이어야 합니다 찬송가 18장을 보면 '내 영흔아 곧 캐어 주 찬양하여라고 했고 19 장을 보면 '내 영흔아 찬양하라 주님 에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해야 합니다
2. 생전에 찬앙해야 함니다. 2절을 보면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본절의 뜻은 살아있는 동안, 내가 숨쉬는 동안 그리고 일생동안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앞 에서 말씀드린 대로 세상노래는 그 수명이 그다지 길지 못합니다. 이미자씨가 부른 '동백 아가씨'는 가장 그 수명이 긴 노래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정규씨가 부른 '두만강 푸른 믈에'도 명 이 긴 노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노래들은 나이든 을드 팬들에 의 해 지금껏 애창될 뿐이지 프세대 나 신세대들은 동백 아가씨나 두만강 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별 인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일과성 유행가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됩니다. 일생동안,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지상 에서 영원까지 블러야 할 노래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전에J '평생에'라는 것입니다. 소리지를 수 있을 때 소리질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펀강할 때,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노래합시다. 함께 찬송 부를 때 콧노로 흥얼거리지 맙시다. 5년 전 미국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 하는데 설교 후 특별 찬송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찬송할 사람을 소개하는데 깜 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1960년대 한국성악계를 주름잡던 유명한 여자 교수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피아노를 한손으로 짚고 서서 '거룩한 성'을 부르던 감동적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반주자의 전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60 년대 초에 나를 감동시켰 던 '거룩한 성'이었습니다. 드디어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떻게 못할 수가 없었기 때 문입니다. 물론 제 귀가 6o년대 초보 다는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했겠 지만 형편없는 노래였습니다. 나증에 안 일입니다만 나이가 0이 지 났고 몸이 아파 전척 노래를 부르지 못했는데 집회 참석하고 은혜받 은 간증으로 찬송을 부르게 됐 다는 것이었습니다 힘있고 감동적인 찬송은 그 사람의 건강과 비례합니다. 영흔과 육 신이 함께 건강 하면 찬송이 힘있고 기찹니다. 그러나 영육이 허약 하고 병들면 찬송소리 역시 무기력하게 됩니다. 사는 동안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하나님 찬양에 최선을 다합시다.
3. 하나님깨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6절을 보면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S절을 보면 '도울 힘이 없는 방백도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고 했 고 4절을 보면 '그 호흡이 끊 어지면 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작년 월 화양동에 있는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조용 필 의 '미지의 세계'를 부르자 두 사람이 일어나 흥에 겨워 춤을 추었습니다. 마침 단속차 나온 구 청단속반이 그 모습을 보고 단속규정 위반 으로 입건했고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춤추면 안되는 규 정을 무시하고 춤추는 손님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주인은 서울 고법에 영업정지 처분 취소 소송을 냈습니다. 법의 판결은 '단속규정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공간에 서 손님이 흥에 겨워 춤추는 일이 영업 행태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 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흥에 겨워 추는 춤은 죄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린 지금 세상노래의 홍수 속에는 것을 보면 제정신이 아닙니다. 거기 비해 우리가 부르는 찬송의 태도와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사람들의 찬송소리, 찬송태도는 이대로 괜찮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살 길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 로 그 사실을 가사에 담고 곡 조에 실어 부르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에 최선을 다합시다.
4.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l0절을 보면 시온아 네 하나님은 영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네로도, 뭇솔 리니도, 히틀러도, 스탈린도, 진시황제도 죽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월한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월히 존재하십니다. 그러니까 찬양도 영원히 계속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군데군데 찬송이 나오고 있습니다. 천사 들이 찬송하는가 하면 네 생물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가 하면 14만 4천인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관한 예언입니다. 우 린 그 곳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찬양하는 공동체입니다. 사실상 서양음악의 모체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아니였으면 지금처럼 세계음악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찬송이 성해야 합니다. 기독교 가정 역시 찬송이 성해 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죽음과 함께 증 단니다. 그것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증단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모든 피조물 에게 주신 하나님 의 명령입니다. 열심으로 찬양합시다. 정성껏 찬양합시다. 힘껏 찬양합시다. 찬송이 넘치는 가정, 교회가 되게 합시다. 찬송을 많이 부릅시다 찬송을 많이 들읍시다. 찬송에 최선을 다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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