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역사의 주인공 (느11:1-36)
본문
느헤미야의 탁월한 지도력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의 재건은 5 2일 만에 끝이 났습니다.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믿음과 조국을 향한 불타는 열정으로 뭉쳐진 이스라엘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 성을 지키고 살아가야 할 주민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 새로운 성읍에 주민을 정착시킨다고 하는 것은 고 도의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한 일인데 느헤미야는 어떻게 이 일을 수행하였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새 역사의 주인공 (느 11:1-18) 본문은 7:4-5절과 연결됩니다.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인구 를 늘리기 위한 정책으로 백성들 가운데서 제비를 뽑아, 각 지파 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주를 시켰으며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하는 사람들도 이주를 허락해 주었 습니다. 먼저 예루살렘의 새 주민들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원래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예 루살렘 성읍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에게 분깃으로 준 성읍이였 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유다지파에서 468명, 벤냐민지파에서 92 8명이 새 예루살렘의 새 주인공이 되었습니다.이들은 대부분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평범하고 미천한 사람들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쓸만한 사람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약 25년 간에 걸쳐 네 차례나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자랑하여 내세울만한 무슨 자격이 있 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 었다고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형 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 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 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 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 려 하심이니라.(고전 1:26-30). 주님께서는 병든 자라야 의원이 쓸데있는 것처럼 나는 죄 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렇기에 교회 안에 문제가 있다고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교회는 주님 께서 부르신 죄인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죄인된 우리는 다 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도록 부름받고 있는 것입니다.왜 주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부르신 것일까요 사람이 약하면 약할수록 하나님은 그 만큼 크고 강하게 나타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낮추어 무릎으로 나아오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의 두목들을 모두 예 루살렘에 살도록 합니다.이는 각 두목들로 지도층을 구성함으 로서 단결을 꾀하고 또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각 성에서 차출된 십분의 일의 백성들로 새 주민을 삼습니다.모든 것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차출해서까지 예루살렘 성을 채워야 했을까요 백성들 대부분은 예루살렘 성읍에 살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여러가지 면에서 생활의 제약이 따르기에 세상적인 즐거 움을 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요, 외적으로 전쟁과 박해의 위험부 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와중에서도 스스로 예루살렘 성읍의 주민이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자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앞으로의 숱한 고난과 환란을 기쁘게 감당하기로 한 사람들입니다.하나님을 위 하여서는 기꺼이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느 11:2).성도가 물론 하나님의 일로 자원 하는 형제자매를 위하여 복을 비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그러나 이 일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요, 성도로서 마땅히 나서서 해야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미루면서 빠져 나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뒤에서 기도와 물질로 밀어 주겠다는 식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말입니다.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더욱 귀하고 복된 일, 우선하여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일에 부름받았다고 생각되면 만사을 재쳐놓고 그 일에 자원하여 앞장을 설 수 있는 성도님들 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성경은 밝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 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임을 믿어야 할지니라
2. 맡기신 일에 충성하라!(느 11:19-23)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맹세하고 각기 자기 처소로 돌아갔습니다.그리고 자기 들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함으로서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문지기로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들 17 2명이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문지기라하면 천하고 고된 직업이 라고 소홀히 여기기 쉽습니다.그러나 그 문지기에게는 예루살 렘 성읍에 사는 백성들의 생명이 걸려 있었습니다.그럼으로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수고를 감당하여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는 귀한 직분이지만 그 댓가는 천한 대접이 고작일 때가 많습니다.우리또한 철도 건널목을 지키시는 분이나, 청소원들에 대 하여 얼마나 소홀히 대접합니까 사람은 외모로 그 사람을 평 가하려 듭니다만 하나님을 그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우리는 사람 앞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된 일군으로 뽑힘받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입니다.그래서 우리를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들, 성도라고 하는 것 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 라도 성도가 가지고 있는 직분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직분입니다.세상의 모든 직분은 육에 관한 것이기에 땅에서 거두지만 성도의 직분은 영혼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에게 맡 겨진 일로 살아갑니다.이들은 입이 있어도 들래지 않고 머리가 있어도 꺼떡거리지 않으면서 묵묵히 역사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들의 손으로 성벽이 재건되었고, 예루살렘 성이 지켜지건만 이 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말없는 다수로 나타나고 하나님 앞 에서 숨겨진 의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따라 각 성 읍으로 파송을 받습니다.크고 인정된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훨 씬 좋으나 그들은 사명을 따라서 작은 성읍들로 보냄을 받고 있 고 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 습니다.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인 느디님 사람들은 예루살렘 동쪽 언덕의 남단 오벨 에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성전봉사에 인력이 필요할 때는 즉시 예 루살렘 성전으로 동원되었습니다.하나님 앞에서는 신분의 귀하 고 천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순종하여 나아가는 믿음 과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느디님 사람들처럼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떠나서, 그 일의 존귀함이나 비천함을 따지기 전에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래하는 자 아삽의 자손 웃시는 느디님 사람들과 레위인들 의 감독이 되어 성가대를 뒷바라지하였습니다.그 역시도 느디 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귀한 직분을 맡진 않았지만 그 성가대원을 뒷바라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 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위하여 자신은 뒤에서 숨겨진 수고를 기뻐하는 성도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교회는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가 될까요 !
3.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느 11:24-36) 본문은 유다 자손들과 베냐민 자손들이 거한 여러 성읍들에 대한 기록입니다.본문에서 이렇게 예루살렘 이외의 성읍이 자 세하게 언급된 것은 그곳에 사는 백성들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라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 다시 말하자면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집하지 마십시요 !저 세상의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전도의 불을 붙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 다시말하자면 장애인 형제자매들도 우리와 같은 부름앞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그들 곁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1. 새 역사의 주인공 (느 11:1-18) 본문은 7:4-5절과 연결됩니다.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인구 를 늘리기 위한 정책으로 백성들 가운데서 제비를 뽑아, 각 지파 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주를 시켰으며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하는 사람들도 이주를 허락해 주었 습니다. 먼저 예루살렘의 새 주민들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원래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예 루살렘 성읍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에게 분깃으로 준 성읍이였 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유다지파에서 468명, 벤냐민지파에서 92 8명이 새 예루살렘의 새 주인공이 되었습니다.이들은 대부분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평범하고 미천한 사람들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쓸만한 사람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약 25년 간에 걸쳐 네 차례나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자랑하여 내세울만한 무슨 자격이 있 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 었다고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형 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 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 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 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 려 하심이니라.(고전 1:26-30). 주님께서는 병든 자라야 의원이 쓸데있는 것처럼 나는 죄 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렇기에 교회 안에 문제가 있다고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교회는 주님 께서 부르신 죄인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죄인된 우리는 다 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도록 부름받고 있는 것입니다.왜 주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부르신 것일까요 사람이 약하면 약할수록 하나님은 그 만큼 크고 강하게 나타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낮추어 무릎으로 나아오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의 두목들을 모두 예 루살렘에 살도록 합니다.이는 각 두목들로 지도층을 구성함으 로서 단결을 꾀하고 또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각 성에서 차출된 십분의 일의 백성들로 새 주민을 삼습니다.모든 것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차출해서까지 예루살렘 성을 채워야 했을까요 백성들 대부분은 예루살렘 성읍에 살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여러가지 면에서 생활의 제약이 따르기에 세상적인 즐거 움을 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요, 외적으로 전쟁과 박해의 위험부 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와중에서도 스스로 예루살렘 성읍의 주민이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자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앞으로의 숱한 고난과 환란을 기쁘게 감당하기로 한 사람들입니다.하나님을 위 하여서는 기꺼이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느 11:2).성도가 물론 하나님의 일로 자원 하는 형제자매를 위하여 복을 비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그러나 이 일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요, 성도로서 마땅히 나서서 해야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미루면서 빠져 나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뒤에서 기도와 물질로 밀어 주겠다는 식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말입니다.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더욱 귀하고 복된 일, 우선하여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일에 부름받았다고 생각되면 만사을 재쳐놓고 그 일에 자원하여 앞장을 설 수 있는 성도님들 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성경은 밝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 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임을 믿어야 할지니라
2. 맡기신 일에 충성하라!(느 11:19-23)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맹세하고 각기 자기 처소로 돌아갔습니다.그리고 자기 들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함으로서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문지기로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들 17 2명이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문지기라하면 천하고 고된 직업이 라고 소홀히 여기기 쉽습니다.그러나 그 문지기에게는 예루살 렘 성읍에 사는 백성들의 생명이 걸려 있었습니다.그럼으로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수고를 감당하여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는 귀한 직분이지만 그 댓가는 천한 대접이 고작일 때가 많습니다.우리또한 철도 건널목을 지키시는 분이나, 청소원들에 대 하여 얼마나 소홀히 대접합니까 사람은 외모로 그 사람을 평 가하려 듭니다만 하나님을 그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우리는 사람 앞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된 일군으로 뽑힘받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입니다.그래서 우리를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들, 성도라고 하는 것 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 라도 성도가 가지고 있는 직분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직분입니다.세상의 모든 직분은 육에 관한 것이기에 땅에서 거두지만 성도의 직분은 영혼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에게 맡 겨진 일로 살아갑니다.이들은 입이 있어도 들래지 않고 머리가 있어도 꺼떡거리지 않으면서 묵묵히 역사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들의 손으로 성벽이 재건되었고, 예루살렘 성이 지켜지건만 이 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말없는 다수로 나타나고 하나님 앞 에서 숨겨진 의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따라 각 성 읍으로 파송을 받습니다.크고 인정된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훨 씬 좋으나 그들은 사명을 따라서 작은 성읍들로 보냄을 받고 있 고 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 습니다.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인 느디님 사람들은 예루살렘 동쪽 언덕의 남단 오벨 에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성전봉사에 인력이 필요할 때는 즉시 예 루살렘 성전으로 동원되었습니다.하나님 앞에서는 신분의 귀하 고 천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순종하여 나아가는 믿음 과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느디님 사람들처럼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떠나서, 그 일의 존귀함이나 비천함을 따지기 전에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래하는 자 아삽의 자손 웃시는 느디님 사람들과 레위인들 의 감독이 되어 성가대를 뒷바라지하였습니다.그 역시도 느디 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귀한 직분을 맡진 않았지만 그 성가대원을 뒷바라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 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위하여 자신은 뒤에서 숨겨진 수고를 기뻐하는 성도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교회는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가 될까요 !
3.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느 11:24-36) 본문은 유다 자손들과 베냐민 자손들이 거한 여러 성읍들에 대한 기록입니다.본문에서 이렇게 예루살렘 이외의 성읍이 자 세하게 언급된 것은 그곳에 사는 백성들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라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 다시 말하자면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집하지 마십시요 !저 세상의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전도의 불을 붙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 다시말하자면 장애인 형제자매들도 우리와 같은 부름앞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그들 곁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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