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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정착한 귀환자들 (느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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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앞에서 자신들의 지난 허물을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했던 유 다 백성들의 행적(10장)에 이어 본장에는 포로 귀환자들이 고토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장면이 소개된다. 즉 회복된 유다의 영토에 비해 귀한자들의 숫자기 월등히 적 었는데 그중에서도 수도 예루살렘의 방어를 위해서는 인구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이에 예루살렘 정착자들(백성의 두목, 제비를 뽑아 선별한 자들, 예루살렘 거 주를 자원한 자들)을 선별하게 되고(1-19절), 그 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유다 전역 에서 각기 기업을 얻어 정착하게 되었다(20-36절). 한편 예루살렘 거주 자원자들에 게 백성들이 축복을 빈 것을 보면 당시 예루살렘 거주가 얼마나 위험스럽고 어려운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어쨌든 이러한 자기 희생적 노력이 따르지 않고 서는 하나넘의 나라 건설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십자가를 즐겨 지는 자가 많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는 더욱 힘있게 전개되어갈 것이다.
'본론'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스런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일 은 누구라도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우선 백성의 지도 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였습니다(1절). 그리고 다음으로 제비를 뽑아 추첨된 자를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였습니다(1절).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청하는 자들을 선정하였습니다(2절). 이리하여 예루살렘 거주민들 은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거주자로 선정된 세 부류에 대해 살펴보며 은혜 를 나누도록 합시다.
1. 지도층 인사들이었습니다(1절). 재건된 예루살램 성에 거주하기로 확정된 자는 제일 먼저 유대 지도층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되었습니다.
첫째, 유대인들의 방백들입니다. 이들은 본토로 귀환하여 유대인들의 일상 생활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행정 관리 등 정치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유다 지파의 지도층 인사 468명(6절), 베냐민 지파의 지 도충 인사 928명(8절)이 있었습니다.
둘째. 제사장들입니다(10-14절).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전 제사에 주력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기에 예루살띵 성에 거하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사장 집안에서는 822명이(12절), 어떤 집안에서는 242명이(13절), 그리고 어떤 제사장 집안에서는 128명이(14절) 예루살렘 거주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셋째, 레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성문지기 172명을 포함하여 284명이었습니다 (18절). 이들 세 부류는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은혜를 입고 정치적으로나 종교 적으로 유대 백성들의 지도자로 부름받았기에 예루살렘 성을 파수하기 위해 예루살 램 성내에 거주함이 마땅하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주의 백성들이 영원한 하늘 도성, 예루살렘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특별히 주님으로부터 크신 은혜를 입은 지도층에 있는 성도들은 더욱 열심으로 하늘 도성을 파수하며, 천국 복음 확장을 위해 거룩하고 신령한 영적 전쟁을 치루어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많이 받은 자로부터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 제비뽑기로 당첨된 자들이었습니다(1절). 다음으로 예루살렘 성에 거주할 자는 제비 뽑기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비록 유대 지도층 인사들이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긴 했지만 이들로서는 이방인들의 위협 이나 침입을 온전히 막아내는 것이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거주할 자들을 선택하였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서는 고래로부터 하나넘의 뜻을 붇는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잠 16:33). 따라서 제비뽑기 에 당첨된 자는 비록 다소 마음에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이 결정에 순복해야 하습니다. 이런 당시 분위기로 볼 때 아마 예루살렘 파수를 위해 예루살렘 성내에 거 주한 자들 가은데는 제비뽑기에 당첨되어 마지 못해 거주한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억지로 진 십자가일 망정 겸손히 순복하고 주의 십자가를 지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골고다까지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 몬(마 27:32)은 이 일이 인연이 되어 그후 그의 아들 루포가 로마 교회의 신실한 인물로 당대 최고의 사도인 바울로부터 사랑받고 문안받는 지도자가 되었고 또한 시몬의 아내는 로마 교회에 열심으로 헌신하고 봉사하여 사도 바울에게는 어머니와 같이 존경받는 자가 되었습니다(롬 16:13). 그렇습니다. 때로는 주의 복음 사역이 힘들고, 또한 사단을 대적하여 영적 전쟁 을 치르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억지로일 망정 맡겨진 사명 완수를 위해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복되고 귀한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의 수고 역시 정녕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3. 지원자들이었습니다(2절).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안 거주자로 지원자들을 확정하였습니다. 이 들은 앞의 유대 방백이나 제비뽑기에 의해 당첨된 자들과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자 기의 의사대로 예루살렘 성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조용히 살 수 도 있었지만 애 써고 힘써 재건한 예루살렘 성을 지키겠다는 열심과 용기를 가지고 예루살램 성 안 거주를 자원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축복하신 예루살렘 도성을 사랑하는 애끓는 열정과 열심으로 가득찬 나머지 이 들 은 자신의 손으로 예루살럼 성곽을 파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주의 나라와 복음 을 위해 부름받은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가장 올바른 신앙 자세는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물론 억지로 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바람직한 것은 자진하여, 스스로 주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백 명의 징집병 보다는 한 명의 자원병이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의무적으로 군 대에 입대한 자보다는 자원해서 입대한 자가 그만큼 용감하게 싸운다는 뜻입니다. 하늘 예루살렘을 파수하기 위해 부름받은 복음의 전사 역시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같이 하늘 예루살램을 지키고 파수하기 위해 사단의 세 력을 싸워 물리칠 복음의 전사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용사된 우리들의 신앙 자세가 어떠해야 할까요 마지 못해 졸리는 눈으로 파수하는 게으르 고 책임감 없는 군사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비겁한 징집 기피자가 되어서 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나약하고 비겁하며, 책임감 없는 군사가 되지 맙시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대장 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깃발 아래 일치 단결하여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깨부수고, 굳건하고 튼튼하게 하늘 예루살렘 성을 지키고 파수하는 주의 자랑스럽고 용감한 십자가 군병이 됩시다. 마지막 날 우리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하늘 예루살렘 성에서 대장 되신 그리스도 앞에 영광스러운 귀대 신고를 하는 그날까지 말입니다(엡6:10-20, 빌3:14, 딤후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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