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느6:1-19)
본문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려고 할 때 부터 시작된 대적들의 방해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됩니다. 사단은 기 회있는대로 간교한 계교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삼키려고 두루 찾아다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며 결국 은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단의 온갖 술수를 이 기고 승리하기 위하여 느헤미야가 어떻게 대적을 이기고 승리하 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번째 시험:적의 음모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을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고 너희 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저희가 4번이나 이같이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느 6:2-4).
1. 여전히 산발랏은 느헤미야에게 오노평지에서 만나 협상을 벌이자고 4번이나 제의합니다. 그러나 이는 실상은 느헤미야를 헤치고자 함이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때마다 큰 역사(役事)를 때문에 내 려가지 못하겠다고 거절하고 아무일 없는 듯이 여전히 일을 계속 합니다. 끈질기게 비방하고 모함하면서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일 을 그르치게 하려는 대적들과는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온 마음과 뜻을 다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 선한 일에는 언제나 악한 영들의 방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훼방도 계속된 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아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8-9). 성도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이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 기신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흔들림이 없는 여전함으로 달려갈 길을 달려 가는 것입니다. 입달린 사람은 오해하고 말할 권리있고, 귀있는 성도는 안들을 권리있고, 입가 진 성도는 일일이 해명할 의무없습니다. 삽살개는 짖어도 밤기 차는 달리는 법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실진데 발있고 손있는 성도는 여전히 일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뿐입니다.
2. 실상은 또한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게셈이 만나자고 하는 속셈을 알아 채렸습니다. 이 기회에 역으로 보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만 느헤미야는 복수보다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 이기에 어찌하여 이 큰 역사를 떠나 정지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 겠느냐고 대답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로 부름받은 순간부터 십자가로 초대됩니다. 성도가 가야할 사명의 길이란 죽음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 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일개인이나 공동체의 대적에 대한 복수는 성도가 할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입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마저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고, 양과 염소가 함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직 접 택하신 12제자 중에도 주님을 파는 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가라지와 염소를 골라낼까요 주님께서는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 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 리라 (마 13:29-30).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앞에서 어찌하든 지 선하게 대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도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 신 것이라고 고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갈 2:20). 성도가 부 름받고 있는 자리는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굶주릴 때, 성도는 거보라고 하면서 고소하다는 듯이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먹여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목말라 애태울 때, 성도는 통쾌하다는 듯이 조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실 물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오직 우리 성도는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으로 평화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롬 12:17-21).
2. 두번째 시험:중상모략 느헤미야의 대적들은 네 번에 걸친 음모가 모두 수포로 돌아 가자 이번에는 보다 악한 소문을 퍼뜨려서 곤경에 빠뜨리기 시작 합니다. 네번째 편지까지는 봉하여 보내던 산발랏은 다섯번째 편 지는 봉하지 않은 채로 들려보냅니다. 사람의 호기심을 이용한 아주 교묘한 수법으로 백성들 사이에 말을 집어넣습니다. 거짓 증인인 가스무와 선지자들까지 등장시켜서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 하고 왕이 되려고 한다는 중상모략을 한 것입니다. 이제 대적들 은 그들의 계략대로 느헤미야가 난처해질 것이고 그러면 자기들 과 타협하기 위하여 성의 역사를 중지하고 내려올 것이라고 믿었 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 서 지어낸 것이라 (느 6:8).고 사실 만을 밝힐 뿐 해명하기 위 하여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더욱 열심을 냅니다.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 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 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느 6:9).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 이는 자신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일에 더 큰 관심을 둔 사명자의 모범적인 기도입니다. 사명자는 설사 억울한 누명을 덮어 쓸지라도 긴 변명과 해명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대적들에게 하나님께서 본때를 보여주셔야한다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 부름받은 순간부터 세상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산 자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란 자기를 벗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던져버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마땅히 죽어도 좋다는 사람들입니다.
3. 세번째 시험: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자신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깨달은 산발랏은 이 제 최후의 수단으로 들라야의 아들 선지자 스마야와 여자 선지자 노아댜 등의 몇몇 선지자에게 뇌물을 주어서 거짓 예언과 악한 말을 지어 비방하도록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말했습니다. 대적 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올테니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피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 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시는 하나님 (요 9:31)께서 느헤미 야에게 깨닫는 영을 주셨습니다. 대적들은 느헤미야에게 종교적 인 죄를 범하도록하여서 죽일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성전에 머 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레위 자손의 제사장들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外人)은 죽일찌니라 (민 18:7)고 분명히 밝혀두셨습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자기 한 몸 살겠다고 성전에 들어가는 날이면 그를 하나님의 법에 의해 공개적으로 죽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 은 자주 잘못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그러므로 사람을 쫓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오직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요 !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느 6:11). 자기 한 목숨 보존하기 위하여 구차한 짓을 않겠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는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신의를 져바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명예스러운 구차한 삶의 연장보다는 멋있는 죽음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 느헤미야 ! 쉬임없이 밀어닥치는 대적의 음 모와 중상모략, 동족의 배반은 그를 지치고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에 사람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를 힘쓴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의 변화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역이 소홀해질까봐 기도의 손 을 늘어뜨리지 않은 사명에 목숨을 건 사람 느헤미야 ! 결국, 이 사람 느헤미야에 의하여 하나님의 승리가 선포되고 야 말았습니다.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 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 신 것을 앎이니라 (느 6:15-16).
1. 첫번째 시험:적의 음모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을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고 너희 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저희가 4번이나 이같이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느 6:2-4).
1. 여전히 산발랏은 느헤미야에게 오노평지에서 만나 협상을 벌이자고 4번이나 제의합니다. 그러나 이는 실상은 느헤미야를 헤치고자 함이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때마다 큰 역사(役事)를 때문에 내 려가지 못하겠다고 거절하고 아무일 없는 듯이 여전히 일을 계속 합니다. 끈질기게 비방하고 모함하면서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일 을 그르치게 하려는 대적들과는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온 마음과 뜻을 다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 선한 일에는 언제나 악한 영들의 방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훼방도 계속된 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아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8-9). 성도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이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 기신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흔들림이 없는 여전함으로 달려갈 길을 달려 가는 것입니다. 입달린 사람은 오해하고 말할 권리있고, 귀있는 성도는 안들을 권리있고, 입가 진 성도는 일일이 해명할 의무없습니다. 삽살개는 짖어도 밤기 차는 달리는 법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실진데 발있고 손있는 성도는 여전히 일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뿐입니다.
2. 실상은 또한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게셈이 만나자고 하는 속셈을 알아 채렸습니다. 이 기회에 역으로 보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만 느헤미야는 복수보다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 이기에 어찌하여 이 큰 역사를 떠나 정지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 겠느냐고 대답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로 부름받은 순간부터 십자가로 초대됩니다. 성도가 가야할 사명의 길이란 죽음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 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일개인이나 공동체의 대적에 대한 복수는 성도가 할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입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마저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고, 양과 염소가 함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직 접 택하신 12제자 중에도 주님을 파는 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가라지와 염소를 골라낼까요 주님께서는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 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 리라 (마 13:29-30).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앞에서 어찌하든 지 선하게 대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도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 신 것이라고 고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갈 2:20). 성도가 부 름받고 있는 자리는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굶주릴 때, 성도는 거보라고 하면서 고소하다는 듯이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먹여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목말라 애태울 때, 성도는 통쾌하다는 듯이 조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실 물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오직 우리 성도는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으로 평화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롬 12:17-21).
2. 두번째 시험:중상모략 느헤미야의 대적들은 네 번에 걸친 음모가 모두 수포로 돌아 가자 이번에는 보다 악한 소문을 퍼뜨려서 곤경에 빠뜨리기 시작 합니다. 네번째 편지까지는 봉하여 보내던 산발랏은 다섯번째 편 지는 봉하지 않은 채로 들려보냅니다. 사람의 호기심을 이용한 아주 교묘한 수법으로 백성들 사이에 말을 집어넣습니다. 거짓 증인인 가스무와 선지자들까지 등장시켜서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 하고 왕이 되려고 한다는 중상모략을 한 것입니다. 이제 대적들 은 그들의 계략대로 느헤미야가 난처해질 것이고 그러면 자기들 과 타협하기 위하여 성의 역사를 중지하고 내려올 것이라고 믿었 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 서 지어낸 것이라 (느 6:8).고 사실 만을 밝힐 뿐 해명하기 위 하여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더욱 열심을 냅니다.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 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 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느 6:9).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 이는 자신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일에 더 큰 관심을 둔 사명자의 모범적인 기도입니다. 사명자는 설사 억울한 누명을 덮어 쓸지라도 긴 변명과 해명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대적들에게 하나님께서 본때를 보여주셔야한다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 부름받은 순간부터 세상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산 자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란 자기를 벗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던져버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마땅히 죽어도 좋다는 사람들입니다.
3. 세번째 시험: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자신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깨달은 산발랏은 이 제 최후의 수단으로 들라야의 아들 선지자 스마야와 여자 선지자 노아댜 등의 몇몇 선지자에게 뇌물을 주어서 거짓 예언과 악한 말을 지어 비방하도록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말했습니다. 대적 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올테니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피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 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시는 하나님 (요 9:31)께서 느헤미 야에게 깨닫는 영을 주셨습니다. 대적들은 느헤미야에게 종교적 인 죄를 범하도록하여서 죽일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성전에 머 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레위 자손의 제사장들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外人)은 죽일찌니라 (민 18:7)고 분명히 밝혀두셨습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자기 한 몸 살겠다고 성전에 들어가는 날이면 그를 하나님의 법에 의해 공개적으로 죽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 은 자주 잘못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그러므로 사람을 쫓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오직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요 !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느 6:11). 자기 한 목숨 보존하기 위하여 구차한 짓을 않겠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는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신의를 져바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명예스러운 구차한 삶의 연장보다는 멋있는 죽음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 느헤미야 ! 쉬임없이 밀어닥치는 대적의 음 모와 중상모략, 동족의 배반은 그를 지치고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에 사람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를 힘쓴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의 변화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역이 소홀해질까봐 기도의 손 을 늘어뜨리지 않은 사명에 목숨을 건 사람 느헤미야 ! 결국, 이 사람 느헤미야에 의하여 하나님의 승리가 선포되고 야 말았습니다.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 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 신 것을 앎이니라 (느 6: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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