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에서의 부흥 (느8:1)
본문
우리는 느헤미야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느 헤미야서 1장부터 6장까지이며 둘째 부분은 7장부터 13장까지입니다. 느헤 미야서 1장 이하 6장까지는 주로 느헤미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7 장에 들아가면 주인공이 바뀝니다. 우리는 또 다른 인물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에스라입니다. 느헤미야가 정치가라면 에스란는 종교인입니다. 느헤미야가 에루살렘 성의 재건이라는 막중한 과업을 감 당했다면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재건의 사역에 종사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광경을 보앗습니다. 도시는 새롭 게 세워졌습니다. 성은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도시인들의 마음은 텅텅 비어 잇습니다. 도시의 재건,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위해서 느헤 미야를 불러 쓰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시 이 도시 사람들의 심령의 재건 을 위해서 성경학자요, 설교가였던 에스라를 사용하십니다. 에스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에스라서 7장 7,8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 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 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 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가 약 14년 전에 에스라가 먼저 일단의 무리들과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스라는 폐허가 된 예루사렘으로 돌아오면서 중대한 결심을 하나 한 것이 있습니다. 그 결심이 란 자기가 읽은 말씀,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잿더미가 되어 버린 고향의 마 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로 한 것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자기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가정에 돌아오는 그 날 부터 그 가정은 변합니다. 한 사람이 자기의 직장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말씀을 적용하고자 결심을 굳 게 하고 직장으로 돌아갈 때에 그 직장은 이 사람으로 인해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자기 생활 속에 적용해 본 주일학교 교사가 말씀을 가 르치기 시작할 때 그 반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인도로 자기 고향의 도시를 재건하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 가운데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에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에스 라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 한 이상에 불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 말씀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현대의 비극은 산업문명의 발달에 비례하여 정신문화의 각성이 없다는 것 입니다. 오늘 한인 교포 사회의 비극도 땀을 흘리며 애써 돈을 벌여 들여 집과 자동차를 샀으나 우리 마음의 정원을 황페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데 에 있습니다. 돈을 벌어 짐을 구입하고 자동차도 구입했습니다. 살 만해졌 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이혼합니다. 그들은 돈을 버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인 부부 관계, 인간 관계를 게을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을 벌어, 집을 장만하고 자동차도 구입해서 살 만해졌습니다.
그런데 자 식들이 탈선하기 시작합니다. "이 자식아, 내가 너 때문에 이민와서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그러나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교육받을 기회를 놓 쳤습니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북미 대륙과 남미 대륙을 보십시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읽고 가르치며 그리고 그들의 신앙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북미 대륙에 왔습니다. 그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구라파의 일단의 사람 들, 스페인, 북구라파, 영국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남미에 왓습니다. 남미 대륙을 찾아 왔던 사람들은 황금도 잃어 버리고 삶의 가치도 잃어 버 렸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주님을 주님을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기 로 결심하고 그 주님을 섬기고 그 주님을 사랑하고 그 주님을 높이는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북미 대륙을 찾아왓던 사람들은 하나님도 찾았고 자유와 번영과 행복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이 재건되는 것, 이것은 귀한 일입니다. 우리 삶의 외적인 조건들을 갖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다행스럽 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성을 쌓고 성전을 건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들의 마음의 문제이며 그들의 영혼의 문제임을 알았으며 그러한것에 진정한 의미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는 결코 헹복할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알았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가득채워지는 현상을 우리는 보통 부흥이라고합니다. 본문, 느헤미야서 8장에는 심령재건의 놀라운 부흥 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성경의 역사 상에 나타난 최초 의 본격적인 부흥회의 하나일 것입니다. "부흥회"하면 당신은 어던 것을 연상하게 됩니까 저마다 자기가 참석한 부흥회를 통해서 부흥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회의 모습을 생각하기 전에 성경이 제시하 고 있는 진정한 부흥의 참된 모습은 어더한 것인가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 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 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 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지금도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보면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그 문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수문(수문/the Watergate)입니다. 이 워터게이트에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은 한 마디로 말씀의 부흥입니다. 말씀의 부흥이란 말씀을 사모하는 열망이 일어 난 부흥, 말씀이 거룩한 권위가 된 부흥,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인 응답이 일어난 부흥을 말합니다.
1. 말씀을 사모하는 열망이 일어남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 강론하기를 청했습니다. 1절에서 말씀에 대한 그들의 열망이 어떤 것인가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 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 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요한 진리를 알고 있엇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벽 건 축이 완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 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스라에게 사회 학을 강론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학을 강론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에스라에게 하나님 의 말슴을 가지고 그 말씀으로 우리에게 진리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부터 오정까지 말씀을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2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 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 였는데" (2,3절). 새벽부터 오정까지, 약 6시간 정도가 될것입니다. 약 6시간 동안 에스라 목사님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앞에 두고 성경 봉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주일 아침을 선택해서 그 날 아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 봉독만 6시간 동안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그 6시간 동안 계속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뭇백성이 눈을 감고, 귀 를 막고 코를 고는 것이 아니라 6시간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선포될 때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장며늘 보십시오. 이것이 부흥입니다. 진 정한 영적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목말라하고 진리에 대해 목이 타는 갈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어는 날, 역사 속에 다가올 중대한 비극을 이렇게 예고했 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 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이같이 진리가 사라진 비극을 생각해 보십시오. 역사 속에 하나님의 말씀 이 완전히 사라지고 하나님이 거룩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비극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저면 오늘, 저와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비극을 접하고 있는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이 마음속에서 부터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놀라운 고백을 보시시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 119:131).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의 벌판에서 그 사막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한 모금의 물에 대한 갈증 때문에 허떡이며 물을 사모하는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이 사모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목이 타는 갈 증, 진리를 알고 싶어하고 내 삶이 이 진리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십시오. 당신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 일이 있습니까 세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6시간동안이나 일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6시간이라니요 예배 시간에 5분간 서 있는 것도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 입니다. 그러나 한 모금의 물에 죽느냐 사느냐의 생사가 걸린 상황을 생각해 보십 시오. 목이 타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벌판을 걷고 있던 사람들에게 한 모 금의 물이 주어지는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릴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 를이 없을 것입니다. 네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더욱 밝히 알고자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6시간 동안이나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들 은 그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이튿날 또 모인 것입니다. 도대체 성경 말씀이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끝없는 갈증을 보십시 오. 그들은 6시간이나 말씀을 듣고도 이 말씀을 더 연구하고 말씀을 더 깊 이 알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그들은 부흥사의 만담을 듣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들 의 웃음과 농담이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정치철학이나 시사만평이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 습니다. 그들은 TV에서 받은 어떤 단편적인 지식과 종교적, 도덕적인 상식 으로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이 말씀이 내 영혼 속 깊이 건드려지지 않고는 내 영혼은 결코 이 말씀을 통해서 새로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진리의 말씀을 향해서 비틀 거리며 달려가는 사람들의 행렬, 이것이 부흥입니다. 교회사에 이런 부흥이 일어났던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향 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깨닫기 시 작했을 때 그러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은 날마다 말씀 앞에 무릎을 끓고 말씀 앞에서 삶을 고치고 삶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런 부흥이 다시 찾 아 오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이러한 부흥이 오면 시간에 그애받지 않고 사람들이 꽉꽉 차기 시작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열망 때문에 항상 교회 가 가득할 것입니다.
2. 말씀의 권위에 대한 외경심이 일어남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 교회의 영성을 보려면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태도로 개인의 영성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얼마만큼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척도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다루는 태도, 성경을 접근하는 태도, 말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 식을 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는 어떠합니까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어섰습니다. 본문에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펼 때 그들은 다 일어나서 말씀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이 참 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사람의 인 격과 그 사람의 멧세지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어섭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하고 응답했습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듣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놀라우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매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말씀의 권위에 대한 그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얼마나 그들이 진리를 공감했는지, 얼마나 그들이 진리에 참으로 승복하기를 원했는지, 한 말씀이 주어질 때마다 "아멘, 옳습니다"라고 반응하며 말씀을 베푸시는 그 하나님 앞에 그들의 영혼을 굴복시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 십시오. 이것이 부흥입니다. 말씀의 권위가 존중되고 순복되는 곳에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이 말씀을 가까이 하며, 이 말씀을 사랑 하며 이 말씀을 공부하며, 이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이 말씀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사랑, 그리고 그분께 대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실 때 종종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내 생각자 나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내 철학이 내 삶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철저히 깨져 버린 사람, 하나님의 말씀앞에 달려가 이 말씀을 통해서 삶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얼마나 당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어 떻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대학생들이 논문을 쓸 때, 어떤 자료에서 어떤 이론을 인용했는가에 따라서 논문의 질이 결정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철학이나 내 견해나 사상이나 의견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용되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의 말씀에 의해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개혁 시대에 개혁자들이 모여서 어떤 의논을 하고자 할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일어나서 "성경에 의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하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회의는 종료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회의의 결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사무 처리 회의를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겐 예배와 회의가 별개의 것입니다.많은 교회들이 거룩하 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회의를 할 때는 싸웁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있습니다. "회의(회의)를 많이 하면 신앙에 회의(회의)가 생긴다." 말씀 따로, 회의 따로여서 회의하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되 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배가 끝나고 내 생활의 장으로 돌아보면 내 삶의 현장에서 이 말씀 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내 삶의 현장과 성경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말씀은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이 말씀의 권위가 당신의 삶과 인격과 삶의 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잘 보시면 그 당시에는 성경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 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좀 가지고 오십시오"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이 성경을 가지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공사하는 것도 다 끝났으니 더 중요한 것을 합시다. 에스라 목사 님, 우리 마음의 재건과 영혼의 새로움을 위해서 성경을 가져와서 말씀을 통해 이제 쌓아 놓은 이 성 안에서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전 생활을 지배받고 싶어했습니다. 피터 다이넥가라는 선교사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러시아 선교에 평생 을 바쳤던 분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는 북구라파의 사람들을 관광객 또는 무역상으로 위장시켜서 소련으로 보내어 소련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해 주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소련의 문이 더 견고하게 닫혀 있을 때라고 합니다. 한 번은 이 다이넥가 선교사가 보낸 사람이 소련의 어느 호텔에 묵으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성경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제가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성경을 잘못 건네주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성경 건네줄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그러면서 그는 기도 중에 성경을 펼쳐 놓았는데 호텔 여종업원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성경을 보더니 갑자기 그녀의 눈에 광채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나님이 저 여인에게 이 성경을 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계속 그 여인을 주시 햇습니다. 그녀가 가까이 오더니 그 성경을 만져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웃으면서 만져도 좋다고 말하며 이 성경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 습니다. 그 여인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다고 몇 번씩이나 인사를 하고 성경을 품에 안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갖기 위해서 30년간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제가 직접 읽어 보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성경이 너무 흔해서 상품화되어서 우리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에 성경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날 아침, 제가 극동 방송국에 녹음을 하기 위해서 갔다가 방송국으로 온 편지 한 장을 보고 저는 얼마 동안 할 말을 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 었습니다. 그것은 만주에 사는 우리 교포 2세로부터 날아 온 편지였습니다. 극동.아시아방송에는 신약성경을 천천히 읽어만 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귀기울여 성경을 읽는 소리를 듣던 교포 2세 소년 하나가 그 말씀을 한 자, 한 자 베껴 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소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유일한 성경은 제가 베껴쓴 이 두꺼운 성경 공책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가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습니까 여기, 새로운 역사가 필요한 역사적인 전환점에서 에스라가 거룩한 하나님 의 말씀을 열자마자 온 백성이 일어나 말씀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의 권위, 이 말씀의 생명, 이 말씀의 위대함, 이 말씀의 아 름다움, 이 말씀의 영광 앞에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하는 백성들의 태도 를 보십시오. 전 세기의 유명한 신학자인 벤쟈민 워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라는 말은 성경 외의 책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의 '두려워 말라'는 말과 성경에서의 그 말은 너무나 다릅니다. 성경에서의 그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이 절망과 좌절과 불 안속에 있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사 41:10).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얼마나 격려가 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 은 이 말씀을 붙들고 그 동안 주저앉아 있었던 절망과 불안의 자리를 박차 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삽니다. 당신은 이 말씀을 얼마나 존중합니까 말씀의 권위가 당신의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습니까
3.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 반응이 나타남 인격이란 지성.감성.의지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7절이하의 말씀 을 보십시오.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가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재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 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7-9절).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달앗습니다. 위의 말씀은 에스라가 말씀을 증거할 때 처소에 서 있던 백성들에게 율법 을 깨닫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교자의 책임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 에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먼저 지성으로 깨달았습니다. 말씀의 진정한 의미와 참된뜻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왜 성경이 재미 없다고 말씀하십니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하옵소서." 저는 책을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의 제 별명은 책벌레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참으로 책 중의 책인 성경을 접하게 된 이레로 저는 성경과 관련되지 아니한 다른 모든 책들에 대해 흥미를 잃어 버렸습니다. 이 말씀의 깊이와 이 말슴의 거룩한 영광, 이 말씀을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 말씀보다 더 위대하고 존귀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책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 말씀이 깨달아지십니까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말씀을 깨달았을 뿐만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 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감성적인 반응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까가들의 양심이 말씀에 접촉되면서 그들은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눈물, 이 기쁨! 다음 장면을 보면 느헤미야가 울지 말라고 말합니다. 설교자가 그들을 의 도적으로 울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통한의 눈물 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슬픔과 기쁨에 뒤섞여 말씀 앞에서 울고 있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감성의 표현을 보십시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13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이 곳에 모여서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찌니라 하였고" (13,14절). 초막절에는 마당히 초막에 거해야 한다는 말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 서 감람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 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하였는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가지 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 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엠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5,16절). 그들은 성경에서 "초막절에는 초막을 짓고 초막에 거하라"라는 말씀을 보 앗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초막을 짓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접합니다. 그러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 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는 말씀을 보앗습니다. 이 말씀을 읽자마자 아.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구나라고 깨달 으면서 염려를 즉각적으로 중단하고 무릎 끊고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 을 전파하라" (막 16:15)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그 말씀 대로 복음 전파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난미의 말슴에 대한 지적인 깨달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성적인 반응을 보엿을 뿐만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의지 적으로 순종하여 그 말슴을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아름다 운 광경을 17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 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 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이 위대한 부흥! 그들의 지식과 그들의 감성과 그 들의 의지가 전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온 인격으로 말씀을 받아 그들의 삶 전체에 말씀을 적용하여 말씀대 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붙들 때 그때로부터 당신은 성경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당신을 붙들었을 때, 비로소 당신은 본격적으로 신앙 생활 속에 들어가며 그것이 성경 공부의 완 성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붙들었을 때가 성경 공부의 시작이라면 성경이 당신을 붙들 었을 때, 말씀이 당신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에, 그 때부터 당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 생활 속에 들어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말씀이 그렇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 주일에 한 번 나와서 의례적으로 설교를 들을 때에만 한 번 펴 보고마는 그런 성경입니 까 그래서 우리에게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과 권능을 모릅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배당한 적이 있습니까 이 부흥 이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 주님! 이런 부흥을 내게도 주옵소서."
첫째 부분은 느 헤미야서 1장부터 6장까지이며 둘째 부분은 7장부터 13장까지입니다. 느헤 미야서 1장 이하 6장까지는 주로 느헤미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7 장에 들아가면 주인공이 바뀝니다. 우리는 또 다른 인물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에스라입니다. 느헤미야가 정치가라면 에스란는 종교인입니다. 느헤미야가 에루살렘 성의 재건이라는 막중한 과업을 감 당했다면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재건의 사역에 종사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광경을 보앗습니다. 도시는 새롭 게 세워졌습니다. 성은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도시인들의 마음은 텅텅 비어 잇습니다. 도시의 재건,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위해서 느헤 미야를 불러 쓰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시 이 도시 사람들의 심령의 재건 을 위해서 성경학자요, 설교가였던 에스라를 사용하십니다. 에스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에스라서 7장 7,8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 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 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 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가 약 14년 전에 에스라가 먼저 일단의 무리들과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스라는 폐허가 된 예루사렘으로 돌아오면서 중대한 결심을 하나 한 것이 있습니다. 그 결심이 란 자기가 읽은 말씀,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잿더미가 되어 버린 고향의 마 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로 한 것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자기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가정에 돌아오는 그 날 부터 그 가정은 변합니다. 한 사람이 자기의 직장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말씀을 적용하고자 결심을 굳 게 하고 직장으로 돌아갈 때에 그 직장은 이 사람으로 인해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자기 생활 속에 적용해 본 주일학교 교사가 말씀을 가 르치기 시작할 때 그 반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인도로 자기 고향의 도시를 재건하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 가운데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에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에스 라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 한 이상에 불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 말씀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현대의 비극은 산업문명의 발달에 비례하여 정신문화의 각성이 없다는 것 입니다. 오늘 한인 교포 사회의 비극도 땀을 흘리며 애써 돈을 벌여 들여 집과 자동차를 샀으나 우리 마음의 정원을 황페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데 에 있습니다. 돈을 벌어 짐을 구입하고 자동차도 구입했습니다. 살 만해졌 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이혼합니다. 그들은 돈을 버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인 부부 관계, 인간 관계를 게을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을 벌어, 집을 장만하고 자동차도 구입해서 살 만해졌습니다.
그런데 자 식들이 탈선하기 시작합니다. "이 자식아, 내가 너 때문에 이민와서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그러나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교육받을 기회를 놓 쳤습니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북미 대륙과 남미 대륙을 보십시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읽고 가르치며 그리고 그들의 신앙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북미 대륙에 왔습니다. 그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구라파의 일단의 사람 들, 스페인, 북구라파, 영국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남미에 왓습니다. 남미 대륙을 찾아 왔던 사람들은 황금도 잃어 버리고 삶의 가치도 잃어 버 렸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주님을 주님을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기 로 결심하고 그 주님을 섬기고 그 주님을 사랑하고 그 주님을 높이는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북미 대륙을 찾아왓던 사람들은 하나님도 찾았고 자유와 번영과 행복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이 재건되는 것, 이것은 귀한 일입니다. 우리 삶의 외적인 조건들을 갖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다행스럽 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성을 쌓고 성전을 건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들의 마음의 문제이며 그들의 영혼의 문제임을 알았으며 그러한것에 진정한 의미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는 결코 헹복할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알았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가득채워지는 현상을 우리는 보통 부흥이라고합니다. 본문, 느헤미야서 8장에는 심령재건의 놀라운 부흥 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성경의 역사 상에 나타난 최초 의 본격적인 부흥회의 하나일 것입니다. "부흥회"하면 당신은 어던 것을 연상하게 됩니까 저마다 자기가 참석한 부흥회를 통해서 부흥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회의 모습을 생각하기 전에 성경이 제시하 고 있는 진정한 부흥의 참된 모습은 어더한 것인가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 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 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 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지금도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보면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그 문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수문(수문/the Watergate)입니다. 이 워터게이트에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은 한 마디로 말씀의 부흥입니다. 말씀의 부흥이란 말씀을 사모하는 열망이 일어 난 부흥, 말씀이 거룩한 권위가 된 부흥,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인 응답이 일어난 부흥을 말합니다.
1. 말씀을 사모하는 열망이 일어남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 강론하기를 청했습니다. 1절에서 말씀에 대한 그들의 열망이 어떤 것인가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 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 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요한 진리를 알고 있엇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벽 건 축이 완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 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스라에게 사회 학을 강론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학을 강론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에스라에게 하나님 의 말슴을 가지고 그 말씀으로 우리에게 진리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부터 오정까지 말씀을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2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 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 였는데" (2,3절). 새벽부터 오정까지, 약 6시간 정도가 될것입니다. 약 6시간 동안 에스라 목사님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앞에 두고 성경 봉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주일 아침을 선택해서 그 날 아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 봉독만 6시간 동안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그 6시간 동안 계속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뭇백성이 눈을 감고, 귀 를 막고 코를 고는 것이 아니라 6시간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선포될 때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장며늘 보십시오. 이것이 부흥입니다. 진 정한 영적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목말라하고 진리에 대해 목이 타는 갈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어는 날, 역사 속에 다가올 중대한 비극을 이렇게 예고했 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 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이같이 진리가 사라진 비극을 생각해 보십시오. 역사 속에 하나님의 말씀 이 완전히 사라지고 하나님이 거룩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비극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저면 오늘, 저와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비극을 접하고 있는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이 마음속에서 부터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놀라운 고백을 보시시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 119:131).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의 벌판에서 그 사막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한 모금의 물에 대한 갈증 때문에 허떡이며 물을 사모하는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이 사모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목이 타는 갈 증, 진리를 알고 싶어하고 내 삶이 이 진리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십시오. 당신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 일이 있습니까 세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6시간동안이나 일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6시간이라니요 예배 시간에 5분간 서 있는 것도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 입니다. 그러나 한 모금의 물에 죽느냐 사느냐의 생사가 걸린 상황을 생각해 보십 시오. 목이 타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벌판을 걷고 있던 사람들에게 한 모 금의 물이 주어지는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릴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 를이 없을 것입니다. 네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더욱 밝히 알고자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6시간 동안이나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들 은 그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이튿날 또 모인 것입니다. 도대체 성경 말씀이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끝없는 갈증을 보십시 오. 그들은 6시간이나 말씀을 듣고도 이 말씀을 더 연구하고 말씀을 더 깊 이 알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그들은 부흥사의 만담을 듣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들 의 웃음과 농담이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정치철학이나 시사만평이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 습니다. 그들은 TV에서 받은 어떤 단편적인 지식과 종교적, 도덕적인 상식 으로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이 말씀이 내 영혼 속 깊이 건드려지지 않고는 내 영혼은 결코 이 말씀을 통해서 새로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진리의 말씀을 향해서 비틀 거리며 달려가는 사람들의 행렬, 이것이 부흥입니다. 교회사에 이런 부흥이 일어났던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향 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깨닫기 시 작했을 때 그러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은 날마다 말씀 앞에 무릎을 끓고 말씀 앞에서 삶을 고치고 삶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런 부흥이 다시 찾 아 오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이러한 부흥이 오면 시간에 그애받지 않고 사람들이 꽉꽉 차기 시작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열망 때문에 항상 교회 가 가득할 것입니다.
2. 말씀의 권위에 대한 외경심이 일어남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 교회의 영성을 보려면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태도로 개인의 영성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얼마만큼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척도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다루는 태도, 성경을 접근하는 태도, 말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 식을 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는 어떠합니까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어섰습니다. 본문에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펼 때 그들은 다 일어나서 말씀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이 참 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사람의 인 격과 그 사람의 멧세지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어섭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하고 응답했습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듣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놀라우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매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말씀의 권위에 대한 그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얼마나 그들이 진리를 공감했는지, 얼마나 그들이 진리에 참으로 승복하기를 원했는지, 한 말씀이 주어질 때마다 "아멘, 옳습니다"라고 반응하며 말씀을 베푸시는 그 하나님 앞에 그들의 영혼을 굴복시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 십시오. 이것이 부흥입니다. 말씀의 권위가 존중되고 순복되는 곳에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이 말씀을 가까이 하며, 이 말씀을 사랑 하며 이 말씀을 공부하며, 이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이 말씀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사랑, 그리고 그분께 대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실 때 종종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내 생각자 나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내 철학이 내 삶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철저히 깨져 버린 사람, 하나님의 말씀앞에 달려가 이 말씀을 통해서 삶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얼마나 당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어 떻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대학생들이 논문을 쓸 때, 어떤 자료에서 어떤 이론을 인용했는가에 따라서 논문의 질이 결정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철학이나 내 견해나 사상이나 의견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용되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의 말씀에 의해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개혁 시대에 개혁자들이 모여서 어떤 의논을 하고자 할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일어나서 "성경에 의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하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회의는 종료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회의의 결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사무 처리 회의를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겐 예배와 회의가 별개의 것입니다.많은 교회들이 거룩하 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회의를 할 때는 싸웁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있습니다. "회의(회의)를 많이 하면 신앙에 회의(회의)가 생긴다." 말씀 따로, 회의 따로여서 회의하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되 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배가 끝나고 내 생활의 장으로 돌아보면 내 삶의 현장에서 이 말씀 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내 삶의 현장과 성경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말씀은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이 말씀의 권위가 당신의 삶과 인격과 삶의 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잘 보시면 그 당시에는 성경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 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좀 가지고 오십시오"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이 성경을 가지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공사하는 것도 다 끝났으니 더 중요한 것을 합시다. 에스라 목사 님, 우리 마음의 재건과 영혼의 새로움을 위해서 성경을 가져와서 말씀을 통해 이제 쌓아 놓은 이 성 안에서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전 생활을 지배받고 싶어했습니다. 피터 다이넥가라는 선교사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러시아 선교에 평생 을 바쳤던 분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는 북구라파의 사람들을 관광객 또는 무역상으로 위장시켜서 소련으로 보내어 소련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해 주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소련의 문이 더 견고하게 닫혀 있을 때라고 합니다. 한 번은 이 다이넥가 선교사가 보낸 사람이 소련의 어느 호텔에 묵으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성경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제가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성경을 잘못 건네주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성경 건네줄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그러면서 그는 기도 중에 성경을 펼쳐 놓았는데 호텔 여종업원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성경을 보더니 갑자기 그녀의 눈에 광채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나님이 저 여인에게 이 성경을 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계속 그 여인을 주시 햇습니다. 그녀가 가까이 오더니 그 성경을 만져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웃으면서 만져도 좋다고 말하며 이 성경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 습니다. 그 여인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다고 몇 번씩이나 인사를 하고 성경을 품에 안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갖기 위해서 30년간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제가 직접 읽어 보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성경이 너무 흔해서 상품화되어서 우리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에 성경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날 아침, 제가 극동 방송국에 녹음을 하기 위해서 갔다가 방송국으로 온 편지 한 장을 보고 저는 얼마 동안 할 말을 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 었습니다. 그것은 만주에 사는 우리 교포 2세로부터 날아 온 편지였습니다. 극동.아시아방송에는 신약성경을 천천히 읽어만 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귀기울여 성경을 읽는 소리를 듣던 교포 2세 소년 하나가 그 말씀을 한 자, 한 자 베껴 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소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유일한 성경은 제가 베껴쓴 이 두꺼운 성경 공책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가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습니까 여기, 새로운 역사가 필요한 역사적인 전환점에서 에스라가 거룩한 하나님 의 말씀을 열자마자 온 백성이 일어나 말씀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의 권위, 이 말씀의 생명, 이 말씀의 위대함, 이 말씀의 아 름다움, 이 말씀의 영광 앞에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하는 백성들의 태도 를 보십시오. 전 세기의 유명한 신학자인 벤쟈민 워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라는 말은 성경 외의 책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의 '두려워 말라'는 말과 성경에서의 그 말은 너무나 다릅니다. 성경에서의 그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이 절망과 좌절과 불 안속에 있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사 41:10).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얼마나 격려가 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 은 이 말씀을 붙들고 그 동안 주저앉아 있었던 절망과 불안의 자리를 박차 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삽니다. 당신은 이 말씀을 얼마나 존중합니까 말씀의 권위가 당신의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습니까
3.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 반응이 나타남 인격이란 지성.감성.의지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7절이하의 말씀 을 보십시오.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가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재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 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7-9절).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달앗습니다. 위의 말씀은 에스라가 말씀을 증거할 때 처소에 서 있던 백성들에게 율법 을 깨닫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교자의 책임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 에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먼저 지성으로 깨달았습니다. 말씀의 진정한 의미와 참된뜻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왜 성경이 재미 없다고 말씀하십니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하옵소서." 저는 책을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의 제 별명은 책벌레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참으로 책 중의 책인 성경을 접하게 된 이레로 저는 성경과 관련되지 아니한 다른 모든 책들에 대해 흥미를 잃어 버렸습니다. 이 말씀의 깊이와 이 말슴의 거룩한 영광, 이 말씀을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 말씀보다 더 위대하고 존귀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책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 말씀이 깨달아지십니까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말씀을 깨달았을 뿐만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 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감성적인 반응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까가들의 양심이 말씀에 접촉되면서 그들은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눈물, 이 기쁨! 다음 장면을 보면 느헤미야가 울지 말라고 말합니다. 설교자가 그들을 의 도적으로 울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통한의 눈물 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슬픔과 기쁨에 뒤섞여 말씀 앞에서 울고 있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감성의 표현을 보십시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13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이 곳에 모여서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찌니라 하였고" (13,14절). 초막절에는 마당히 초막에 거해야 한다는 말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 서 감람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 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하였는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가지 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 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엠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5,16절). 그들은 성경에서 "초막절에는 초막을 짓고 초막에 거하라"라는 말씀을 보 앗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초막을 짓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접합니다. 그러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 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는 말씀을 보앗습니다. 이 말씀을 읽자마자 아.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구나라고 깨달 으면서 염려를 즉각적으로 중단하고 무릎 끊고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 을 전파하라" (막 16:15)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그 말씀 대로 복음 전파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난미의 말슴에 대한 지적인 깨달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성적인 반응을 보엿을 뿐만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의지 적으로 순종하여 그 말슴을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아름다 운 광경을 17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 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 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이 위대한 부흥! 그들의 지식과 그들의 감성과 그 들의 의지가 전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온 인격으로 말씀을 받아 그들의 삶 전체에 말씀을 적용하여 말씀대 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붙들 때 그때로부터 당신은 성경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당신을 붙들었을 때, 비로소 당신은 본격적으로 신앙 생활 속에 들어가며 그것이 성경 공부의 완 성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붙들었을 때가 성경 공부의 시작이라면 성경이 당신을 붙들 었을 때, 말씀이 당신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에, 그 때부터 당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 생활 속에 들어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말씀이 그렇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 주일에 한 번 나와서 의례적으로 설교를 들을 때에만 한 번 펴 보고마는 그런 성경입니 까 그래서 우리에게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과 권능을 모릅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배당한 적이 있습니까 이 부흥 이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 주님! 이런 부흥을 내게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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