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 (왕상13:1-34)
본문
북왕국의 왕이 된 여로보암의 일방적인 종교정책으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 을 만들고는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길로 빠지도록 미혹하였다. 우상숭배를 정치 적으로 이용하였다. 여로보암이 자신이 정한 종교절기를 지키려고 벧엘로 올라갔을때 유다로부터 온 선지자가 여로보암이 분향하는 단을 향하여 저주하며, 그것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는 예조까지 말하였다. 이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은 나중에 회유에 미혹을 받아 하나님 말씀을 어김으로 죽음을 당하고 만다.
'본론'
1. 하나님의 사람과 여로보암
1)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되찾으시는 여호와
(4)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자기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란 이름을 지워버리고자 제단도 바꾸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절대 로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처럼 인간의 주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대적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 있을 때에만 자신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있다.
2)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우상의 형상으로부터 당신의 형상을 되찾으셨다. 선지자의 선언은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비인격적인 피조물의 형상으로 바꾼 것에 대한 회복적 선언이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은 더러워진 형상을 용납치 않으신다. 이처럼 절대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은 타락과 직결되는 것이다.
2.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6-10) (왕상13:4)"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 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 시 거두지 못하며" 하나님은 신앙이 메말라버린 이스라엘을 일깨우기 위하여 즉각적인 이적을 보이 셨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가 마비되는 경험을 한 여로보암은 잠시 놀랐을 뿐 여호와를 인식지 못한 채 완악한 심령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자신의 종교정책이 잘 진행되어 나가자 고무된 여로보암이 전국민적인 절기 행사를 치루는 마당에 갑작스 럽게 출현한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하는 메시지는 백성들 앞에 선 여로보암에게는 모욕적이요 도전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여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사람을 잡 으라!도 명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발하여 그의 손이 마르게 되어, 신경이 마비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때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은혜를 입게 기도해 달라고 여로보암이 선지자에 게 요청하고 선지자의 기도로 다시 회복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시라도 살아갈 수 없다. 은혜는 기도로써 받 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통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리게 된다.
3. 선지자의 불순종과 징계(11-34) 사태가 이같이 발전하자 여로보암은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의 사람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먹고 마시고자 하였던 것이다. 종교절기를 대대적인 행사로 치르고 있던 까닭에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뇌물로 회유하고 자 한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단호히 그 회유를 거절하고 자기의 갈 길을 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평강이 보장된다.
그런데, 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를 이스라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가 찾아가서 "나도 선지자라"고 하면서 내게 하나님의 말씀이 천 사를 통하여 임하였다면서 거짓으로 넘어뜨린다. 사단은 간계를 써서 공격한다. 가 장 종교적인 모습으로 유혹하여 온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유다의 선지자는 그 순간 하나님께 직접 물어봄으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했다. 왕의 권유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던 선지자는 신성과 성결을 빙자하여 유혹에 너 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빙자하거나, 신앙을 사칭한 달콤한 유혹들에 조심해야 한다. (행17: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세가 신앙의 바른 자세이다. 이 불순종으로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길에서 맹수인 사자에게 물려서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 유다의 선지자가 죽은 이유는 동류 선지자의 말을 자신이 받은 말씀보다 더 신뢰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일 그 뜻을 바꾸셨다면 유다 선지자에게 직접 말씀하 셨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확신치 못했다. 자기와 교제하는 하나님이시라면 분명코 자신에게 말씀하시리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조언 보다 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그 뜻을 깨닫는 것이 축복의 길을 가는 비결이다.
'본론'
1. 하나님의 사람과 여로보암
1)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되찾으시는 여호와
(4)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자기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란 이름을 지워버리고자 제단도 바꾸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절대 로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처럼 인간의 주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대적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 있을 때에만 자신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있다.
2)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우상의 형상으로부터 당신의 형상을 되찾으셨다. 선지자의 선언은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비인격적인 피조물의 형상으로 바꾼 것에 대한 회복적 선언이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은 더러워진 형상을 용납치 않으신다. 이처럼 절대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은 타락과 직결되는 것이다.
2.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6-10) (왕상13:4)"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 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 시 거두지 못하며" 하나님은 신앙이 메말라버린 이스라엘을 일깨우기 위하여 즉각적인 이적을 보이 셨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가 마비되는 경험을 한 여로보암은 잠시 놀랐을 뿐 여호와를 인식지 못한 채 완악한 심령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자신의 종교정책이 잘 진행되어 나가자 고무된 여로보암이 전국민적인 절기 행사를 치루는 마당에 갑작스 럽게 출현한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하는 메시지는 백성들 앞에 선 여로보암에게는 모욕적이요 도전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여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사람을 잡 으라!도 명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발하여 그의 손이 마르게 되어, 신경이 마비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때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은혜를 입게 기도해 달라고 여로보암이 선지자에 게 요청하고 선지자의 기도로 다시 회복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시라도 살아갈 수 없다. 은혜는 기도로써 받 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통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리게 된다.
3. 선지자의 불순종과 징계(11-34) 사태가 이같이 발전하자 여로보암은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의 사람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먹고 마시고자 하였던 것이다. 종교절기를 대대적인 행사로 치르고 있던 까닭에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뇌물로 회유하고 자 한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단호히 그 회유를 거절하고 자기의 갈 길을 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평강이 보장된다.
그런데, 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를 이스라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가 찾아가서 "나도 선지자라"고 하면서 내게 하나님의 말씀이 천 사를 통하여 임하였다면서 거짓으로 넘어뜨린다. 사단은 간계를 써서 공격한다. 가 장 종교적인 모습으로 유혹하여 온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유다의 선지자는 그 순간 하나님께 직접 물어봄으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했다. 왕의 권유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던 선지자는 신성과 성결을 빙자하여 유혹에 너 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빙자하거나, 신앙을 사칭한 달콤한 유혹들에 조심해야 한다. (행17: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세가 신앙의 바른 자세이다. 이 불순종으로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길에서 맹수인 사자에게 물려서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 유다의 선지자가 죽은 이유는 동류 선지자의 말을 자신이 받은 말씀보다 더 신뢰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일 그 뜻을 바꾸셨다면 유다 선지자에게 직접 말씀하 셨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확신치 못했다. 자기와 교제하는 하나님이시라면 분명코 자신에게 말씀하시리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조언 보다 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그 뜻을 깨닫는 것이 축복의 길을 가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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